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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이 땅의 효순이들에게 말을 아껴야 한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

  • 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석재현 | 대구미래대 교수, 사진작가 | 동아일보

이 땅의 효순이들에게 말을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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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 먹던 효순이들

이 땅의 효순이들에게 말을 아껴야 한다
노동현장에서 젊은 학출들은 동료 노동자들과 연대했지만, 때로 갈등했다. 대학생, 그것도 일류 대학생과 공돌이 공순이라는 태생적 차이 때문에 적잖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서울대 재학 중 공장에 뛰어든 국회의원 심상정은 노동자들과의 정서적인 괴리에서 오는 갈등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작가 신경숙도 한때 ‘벌집’에 살며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1970년대 후반 열여섯에서 스무 살 때까지 벌집에서 여공으로 산 신경숙이 소설 ‘외딴방’에서 ‘서른일곱 개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방’이라고 한 그 방들이다. 공단 입구에 ‘기계는 30%, 노동력은 70%’라는 표어가 걸렸던 시절, ‘라인은 24시간 돌아가야 한다’는 게 모든 공장의 업무 원칙 1조였다.

식권이 한 장 나오는 날은 잔업, 두 장 나오는 날은 철야를 하는 날이었다. 철야하는 밤, 공장 입구에는 ‘타이밍’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입시 공부를 하면서 한 번쯤 삼켜봤을 각성제다. 공단의 10대 소녀들에게는 졸다가 불량품이 나올까봐 반강제로 먹인 것이다.

고된 철야를 끝내고 돌아가 쉬는 곳이 벌집이다. 두세 평 남짓한 벌집엔 벌 대신 여공들이 살았다. 벌집의 필수품은 석유곤로와 비키니 옷장, 그리고 가족사진이다. 벽지는 당연히 신문지. 공동 구입한 카세트라디오가 사과박스로 만든 간이 책상 위에 놓였다. 그들은 대개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 땅의 ‘효순이’들이다.



민주화를 향한 노동운동, 학생운동의 몸부림에는 ‘타는 목마름으로’ 같은 전설적인 저항의 노래가 있었다. 이름하여 민중가요다. 어렵사리 음반으로 나왔지만 아직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음반사는 돌연 음반 유통을 취소했고 이들의 노력도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그런 노래들을 찾아 집대성한 게 노찾사다.

1987년 6 · 29선언 이후 민주화 분위기 속에 열린 노찾사의 첫 공연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고향 생각이나 사랑이 공통의 주제이고, 서구 팝 음악의 모방에 그치던 당시 가요 시장에 노찾사의 묵직하고 음울하면서도 뜨거운 노래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중심에 ‘사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등이 있다. 특히 ‘사계’는 대학생 퀴즈 프로그램 MBC ‘퀴즈 아카데미’의 피날레 뮤직으로 사용돼 많은 이의 귀를 사로잡았다.

민중가요의 합법화, 대중화

노찾사의 노래들은 당시의 상업성과 서구식 문화에서 벗어나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줬다. 아름다운 노랫말과 멜로디, 보컬의 가창력, 가사의 전달력과 수준급 반주는 거대한 주제의식에 눌려 ‘투쟁용’에 그치던 민중가요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호탄이었다. 노동현장에서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선풍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회식 장소에까지 등장했다. 특히 김광석과 안치환이 번갈아 부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광야에서’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노래운동이 겪어온 길을 증거하는 듯한 노랫말과 호소력 짙은 음색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노래는 ‘사계’다. 여성 보컬, 건반의 경쾌한 연주와는 극히 대조적으로 여공들의 쳇바퀴 도는 듯한 단조롭고 신산한 삶을 그려낸다. 요즘도 가끔 7080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권진원의 젊은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사계’는 이후 거북이(터틀맨)에 의해 힙합 버전으로, 또 클럽하우스 버전으로 흥겹게 불려졌다. 랩 가사도 발랄해서 민중가요 세대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지금 세대에게 노래를 알리는 데는 큰 공을 세웠다.

노찾사 노래의 한계는 무거운 주제의식과 어두운 분위기다. ‘이 산하에’와 ‘오월의 노래’, 제주 4·3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 ‘잠들지 않는 남도’ 등 노래 대부분이 시종일관 침울하다. 소외된 것들을 조명하는 민중가요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한계인 듯하지만, 대중성을 얻는 데 실패했고 그런 연유로 지금 시대에는 그 깊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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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석재현 | 대구미래대 교수, 사진작가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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