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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

“내 소설의 동력은 사랑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느끼는 아름다움”

  • | 김창희 연세대 교수 changheekim@yonsei.ac.kr

2017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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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제7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은 영국 작가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81)은 10월 28일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지병이 악화된 데다 낙상사고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주한 영국문화원 마틴 프라이어 원장이 대리 수상을 했다. 동아일보, 강원도, 원주시와 함께 박경리문학상을 공동 주최하는 토지문화재단의 권오범 사무국장이 2017년 11월 13일 영국 남부 푸트니에 사는 작가의 자택을 방문해 상패를 전달했다. 동행한 김창희 연세대 교수가 작가의 문학 세계를 놓고 인터뷰한 내용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2017 박경리문학상 수상자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81)을 만나러 간 2017년 11월 13일은 변덕스러운 런던 날씨로는 드물게 화창한 날이었다. 바이엇의 자택은 정원이 잘 가꾸어진 아담한 목조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실에 앉아 우리 일행을 기다리던 바이엇 부부가 맞아주었다. 비서인 길 마스든, 작가 대리인 조 왈디 등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거실 뒤편 조그만 수영장과 실내 정원까지 갖춘 자택은 미술가인 작가의 딸이 선물한 조각과 각종 그림, 장식품, 그리고 많은 장서로 발 디딜 틈 없어 마치 골동품이 가득한 선물의 집처럼 느껴졌다. 정오에 박경리문학상 수상 축하 오찬이 예정돼 있어 우리는 인터뷰 진행을 서둘렀다. 처음엔 바이엇의 안색이 그리 밝지 않았으나 대화에 몰입하며 초반의 경직된 분위기도 한결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어졌다.

먼저 2017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영국 작가로서 작가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지면으로나마 수상 소감을 전해주시지요. 


“박경리문학상 수상 소식은 제 생애에 가장 놀라운 사건 중 하나였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수북한 편지 더미에서 수상 소식을 알리는 아주 특별한 편지를 발견하고는 남편에게 곧장 달려가 소식을 전했지요. 그 덕에 박경리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죠. 그분의 소설 ‘토지’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고 물론 한국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한국을 가지 못한 점 한국 분들께 매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국에 꼭 가고 싶습니다. 예전에 중국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적이 있긴 한데 아주 짧은 시간이었어요. 제게 박경리문학상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으신 느낌이 어땠는지 좀 더 말씀해주시겠어요? 


“‘토지’가 장편소설인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읽은 영어 번역본은 많이 짧은 느낌이었어요. 읽을 때 자꾸 끊기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답답함을 조금 느꼈어요. 원본은 훨씬 더 길지 않나요? 물론 아주 정성 들여 잘 번역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양한 등장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기엔 분량이 적은 느낌이었습니다. ‘토지’를 읽고 박경리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고 더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어지는 매력이랄까. 언젠가 이 소설의 전편이 완역돼 나오길 기대합니다.”

“여성 작가가 아닌 그냥 작가”

바이엇은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 옥스퍼드대, 미국 브린모어대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런던대에서 영미문학을 가르친 학구파 작가다. 1964년 ‘태양의 그림자’로 데뷔했으며 1990년 맨부커상을 받은 ‘소유’로 문학적 명성을 확립했다. ‘소유’는 20세기 문학 연구자들 커플과 그들이 추적하는 19세기 남녀 시인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남녀 관계와 인생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사유를 담아낸 소설이다. 원시 대자연 속의 삶과 문명을 대비시킨 2부작 ‘천사와 벌레’, 요크셔를 무대로 한 가족 4부작 ‘바벨탑’ ‘정원의 처녀’ ‘정물’ ‘휘파람 부는 여자’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작가님의 작품은 현재와 과거, 역사와 신화, 더 나아가 현실과 허구의 인식론적 그리고 존재론적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세계를 그려내곤 합니다. 특히 초기작들이 빅토리아조의 과학적 발견의 시대를 맞아 종교적 확실성이 소실되고 이로 인한 믿음의 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 영성, 과학 등이 작가님 작품의 주제적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요? 과거나 현재나 남성성이 강조되고 그로 인한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향해 여성 작가로서 작가님에게 이러한 주제들이 어떤 의미일까 궁금합니다. 



“영국에서 사랑받고 있는 작가들이 누구일까 생각을 미리 해봅니다. 조지 엘리엇, 제인 오스틴, 아이리스 머독 등 많은 여성 작가가 먼저 머리에 떠올라요. 전 오랜 시간을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그곳에선 남녀 작가의 구분이 따로 없고 여성 작가의 작품들도 여성에 대한 것으로 한정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에 영국에선 많은 여성 작가가 여성 문제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책을 써왔습니다. 엘리엇이 대표적인 경우죠. 최근 젊은 여성 작가 중에는 여성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자리를 찾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가 많습니다. 정말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전 좀 다릅니다. 솔직히 페미니즘 때문에 개인적으로 골치 아픈 면도 있어요. 전 여성 작가가 아닌 온전히 ‘작가’이고 싶거든요. 글로 묘사하는 것, 제가 하고 싶은 건 그게 전부입니다.” 

페미니스트 작가로 불리는 것이 부담스러우신 건가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좀 두려운 건 사실이에요. 사실 전 거리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다’라고 시위하는 세대보다는 좀 앞선 세대죠. 제 어머니는 저보다도 더한 페미니스트였어요. 어머닌 노동자 신분이었고 케임브리지대를 다닌 사회주의자였죠. 굉장히 급진적인 성향을 갖고 계셨는데 안타깝게도 성격도 무척 급하셨죠. 견디기 힘들 정도로. ‘여자는 부엌에나 있으라’고 말하던 당시 사회의 피해자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안타까우면서 화가 나기도 해요. 제 작품 속에 그런 부분이 드러나 있죠. 

아버지가 최고 법정변호사인 ‘퀸스 카운슬’이 되셨을 때 전 무척 긴장되기도 했어요. 그동안 어머니는 부엌에서 투덜거리고 계셨거든요. 아버지는 국회에서 일하시는데 어머니는 집에만 계셨으니까요. 당시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세대를 비롯해 이후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점차 자신들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최소한 여자가 판사 가발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이죠. 제가 기여한 바는 별로 없지만, 굉장히 감사한 일입니다.”

콜리지와 아이리스 머독, 멜빌

급진적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셨지만 동시에 행복하지 못한 어머니를 보신 거군요. 잘 알겠습니다. 애초 문학을 학자로서 연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문학 연구에도 상당한 열정을 보여주고 계시고요. 

“네,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그만뒀지만,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에게 찰스 디킨스,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등의 작품으로 강의를 했지요. 그래서 작품을 집필하면서 별도로 연구할 필요는 없었어요. 제게 문학 연구와 창작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 대학에서 미국 문학을 가르친 적도 있습니다. 케임브리지 졸업 뒤 미국 유학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선발 조건이 미국 문학을 연구하는 것이었죠. 당시 유럽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처음엔 미국 문학에 그리 흥미가 없었는데 공부하다 보니 새로 흥미를 갖게 됐어요. 특히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관점에 사로잡혀 편협하다고 느껴질 때면 더 그랬죠. 

오해는 마세요. 그들의 생각이 얕다거나 사소하다는 게 아니라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인에 비해 사고방식이 자기중심적이고 좁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대신에 매력적일 만큼 감성적인 부분은 미국 문학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비롯해 19세기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당대의 미국 작품들은 미국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사로잡혀 있진 않았거든요. 이제 막 미국인이 되기에 바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작가님이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비평과 창작의 문제와도 관련 있을 듯한데, 전 낭만주의자 새뮤얼 콜리지와 그의 시 ‘노수부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콜리지도 저처럼 평론가이면서 작가였어요. 자신이 읽던 책에서 다른 책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 그 책들을 늘 공부하듯 찾아 읽었어요. ‘노수부의 노래’는 어떤 다른 언어로 쓰인 시들보다도 역동적이면서도 매우 학구적인 작품입니다. 그의 작품은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요. 

콜리지가 제 상상 속 멘토라면 아이리스 머독은 제 실제 멘토라 할 수 있죠. 그의 소설을 대학원생일 때 처음 읽었는데, 당시 제 남자친구가 제가 좋아할 거라며 추천해준 것이 계기였어요. 실제로 전 머독의 작품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근데 기대가 너무 컸던지 나중에 실제로 머독을 만났을 땐 좀 실망했어요. 머독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이 별개의 것으로 느껴졌다고나 할까. 술을 너무 좋아해서 엄청난 양의 브랜디나 술을 마시곤 했거든요. 여기 보세요, 제 거실에 있는 이 유리로 된 황소 조각상은 머독이 제게 준 선물입니다. 이것들 말고도 다른 방에 여럿 더 있어요. 이 조각상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제가 직접 수집하기도 했는데 서로 같아 보여도 하나하나 다 다르죠. 마치 글이 그런 것처럼. 너무나 아름다워요.”

“영어를 사랑하지만 영국 작가로 한정되고 싶지 않아”

세계문학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영국 문학이 가진 고유한 민족적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늘날 영어권 문학이 전 세계 출판 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하게 된 것은 세계 공용어로서의 영어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영어가 가진 문학적 특징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세월이 지나 나이를 먹을수록 전 제 자신이 매우 행운아라고 느껴요. 그런 감정이 언제부터였던가 되짚어보면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합니다. 제가 언어 감각이 좀 있는 편이어서 불어나 독어, 이탈리아 등의 언어를 할 줄 아는데, 이들 언어와 영어를 비교해도 영어가 참 아름다운 언어구나 새삼 깨닫게 돼요. 엘리엇은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를 할 수 있었던 반면 디킨스는 영어밖엔 할 줄 몰랐어요. 하지만 영어에서는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작가예요. 둘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재밌는 건 엘리엇은 시골에서 태어나 폐쇄적이고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랐고 여성이라는 제약을 갖고 있었어요. 인물도 참 별로고요. 그런 악조건이 오히려 작가로서의 그에겐 큰 도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엘리엇은 제게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지요. 미국영어도 그 나름대로 매력적인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영미 영어가 서로 비슷한 면도 많지만, 미국영어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캐나다 등에서 사용되는 영어와 비교될 수 있을 거예요. 반면에 영국 영어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있지 않나요?” 

예를 들자면 어떤 그림일까요. 

“자연이나 정원의 식물과 어우러진 풍경 같은 것 말이죠. 물론 영어는 여러 다양한 문화권의 언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언어이고 그런 지역성이 한데 엮여 현재의 영어가 된 거죠. 다른 언어를 잘 끌어들이기도 하고 빌려서 쓰기도 하면서 말이죠. 제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런 언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었어요. 단어의 뜻을 생각하거나 단어가 어떤 것을 묘사하는 것을 볼 때면 기분이 무척 좋아져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로서 제 자신을 꼭 영국인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작가로서의 제 정체성이 꼭 영국인일 필요는 없다는 말이죠.
 
영어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 언어의 “영국스러움”과 “미국스러움”에 대해 생각할 순 있겠죠. 그렇다고 전 그런 민족적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구분하고 싶진 않네요. 오히려 제가 정치적이지 않기에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이유는 인간이란 존재가 매우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 간에 끊임없는 차이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뜻하지 않게 서로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 그런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에서 글을 쓰는 거니까요. 그 과정이 제게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 

지역성, 민족성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글의 원동력이라는 말씀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님의 소설 ‘소유’를 보면 영국과 미국 학자들이 빅토리아 시대 유산에 대한 진실을 좇는 과정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위대했던 영국의 문화유산을 두고 두 나라의 학자 간 경쟁 구도를 연출한 듯 보이는데요. 

“미국인과 영국인 학자들 사이에 경쟁의식 같은 것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지요. 자신들이 미국인임을 잘 알고 다른 이들에게 항상 따라오기 기대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죠. 반대로 영국인들은 유럽인으로서 자국 문화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아주 배타적이라 생각진 않아요. 

제 미국인 친구 중에 닐 무커지라는 소설가가 있어요. 인도 콜카타 출신인데 서구 문화를 배우고 지금은 미국 프린스턴에서 가르치고 있죠.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영미 두 나라의 학술 문화에 관심이 아주 많은 친구입니다. 아직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으면 읽어보길 권합니다. 정말 탁월한 작가거든요. 요즘은 덜 하지만 오래전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유럽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너무 적어 놀란 적이 있어요. 자신의 작품에 영국, 미국 혹은 인도 같은 지역적인 요소를 담아내면서도 동시에 초국적인 공통의 정서를 잘 포착해 표현하는 작가들도 많아졌어요. 무커지처럼 말이죠. 매우 흥미롭고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어린 시절의 전쟁 경험

2017년 11월 13일 영국 런던 남부 푸트니에 있는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바이엇(왼쪽)과 김창희 연세대 교수. [토지문화재단 제공]

2017년 11월 13일 영국 런던 남부 푸트니에 있는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 자택에서 인터뷰 중인 바이엇(왼쪽)과 김창희 연세대 교수. [토지문화재단 제공]

작가님 말씀을 들으니 사람처럼 언어도 끊임없이 주변의 언어와 교류하며 변화하는 생물처럼 느껴집니다. 이번엔 작가님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을 좀 드릴까요? 올해로 81세가 넘으셨는데 앞서 오랜 연륜이 좋은 작품을 쓰는 데 큰 자산이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동안 삶 속에서 창작을 위한 작가님의 감수성에 영향을 끼친 추억이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기억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전쟁과 관련된 기억은 절대 잊히지 않아요. 제 가족에 대한 기억을 전쟁이 송두리째 바꿔버렸거든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셰필드에는 산업시설이 많아 적군이 폭격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항상 있던 곳이었고, 실제로 큰 피해를 입었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요크의 연못이 있는 작은 집으로 피난을 가야 했어요. 그곳에서 제 둘째 아들이 숨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도 생생합니다. 아버진 전쟁이 터지기도 전에 공군에 입대하셨어요. 전쟁이 임박했음을 이미 아셨던 거죠. 

어느 날 아버지가 카키색, 아니 공군 색깔인 파란색 가방을 둘러메고 현관문 앞에 서 계셨어요. 평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죠. 그러고는 홀연히 떠나버렸어요. 그게 아버지를 본 마지막 모습이에요. 전쟁이 한참 지난 후 우연히 아버지 사진 몇 장을 발견했어요. 아버지가 공군 변호사로 있는 동안 한 달 정도 휴가를 얻어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찍은 것들이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영국을 벗어난 적이 없어 유럽인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사진 속 아버지는 유럽인의 모습을 하고 있더군요. 당시엔 전쟁으로 인해 다른 방식의 삶을 강요받은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일종의 탄압으로 느껴져 고통스러웠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 또한 현재의 저를 만든 중요한 기억임에 틀림없어요.” 

히틀러와 독일에 대한 반감이 크시겠군요. 


“당시에 그런 변화 자체가 정말 싫었고 그만큼 히틀러를 평생 증오하고 있지요(웃음). 혹시 히틀러 험프티덤프티라는 캐릭터 아세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그 달걀 캐릭터에 히틀러 얼굴이 그려진 것 말이에요. 어릴 때 친구들과 달걀껍데기로 히틀러 얼굴을 한 험프티덤프티를 만들어 그걸 막대기로 부수곤 했어요. 제 작품에 언급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인생에서 잊지 못할 부분 중 하나예요. 그렇게 열심히 만들어놓고는 정말 열심히 부셨으니까. 솔직히 어릴 땐 독일 사람이 정말 무서웠어요. 그 난리를 경험한 아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네덜란드에서 독일로 가는 기차를 탄 적이 있어요. 기차 안은 전부 독일인들이었고 제 속의 어린아이는 잔뜩 겁을 먹고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죠. 

그중에 매우 괴상한 남자 한 명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어요. ‘영국인들은 전부 탁월한 범죄자들이야.’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그에게 동조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절 보더니 샌드위치와 케이크를 주는 거예요. 정말이지 그때 독일인들이 무서우면서도 굉장히 유별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은 전투복을 입고 전쟁터 나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만큼이나 생생해요. 지금은 친한 독일 친구들도 있어요. 불쌍한 독일군이기도 했었지만, 반드시 적이 될 필요는 없는 친구들이죠. 박경리 작가의 소설도 전쟁 속 분위기를 잘 담고 있지 않나요? 그분의 작품을 읽다 보면 마치 소설 속 현실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분의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된 것은 정말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설은 사랑 이외에도 모든 것 묘사 가능

전쟁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이나 그 밖의 경험들이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작가님의 작품에 적지 않은 영감을 준 것 같습니다. 2017년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인 김우창 교수가 작가님에 대해 사회적 사실주의를 넘어서 개인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과 주제들을 포착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평가했어요. 단순히 사실주의적인 것을 넘어 작가님이 표현하고자 하는 문학적 가치나 이상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사실주의 작가들은 사회적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특정 언어를 사용해요. 저 같은 작가들이 사용하는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언어와는 다릅니다. 그런 언어들은 제 소설에서처럼 작품에서 세계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요. 물론 사회적 리얼리즘 소설 중에도 좋은 작품이 많지만 제가 그런 책들을 쓰고 싶진 않아요. 그런 작품들은 ‘만약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책 쓰는 법을 가르쳐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전 그런 교조적인 문학의 기능성에 얼마나 진실이 담겨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반면 제 작품 속에서 전달되는 의미 있는 주제로 사랑을 꼽고 싶네요. 사랑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하자면 일단 ‘매우 위험하다’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사랑이 멈출 때를 생각한다면 상대에게 너무 빠져드는 건 위험할 수 있죠. 하지만 다행히도 오늘 아침에 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결혼생활을 오래 해왔지만 정말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왔구나.’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또 한 가지, 사랑에 빠지면 그것이 전부가 되어버립니다. 모든 것이 사랑에 휩쓸려버리고 말죠. 이런 말이 있어요.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왔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세상이 다시 보이는 거예요. 세상에는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왔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란 표현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즐기며 소설을 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점이 아닌가 싶네요. 사랑 이외에도 소설은 세상의 많은 것을 묘사할 수 있으니까. 많은 소설이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소설에는 사랑 이외에도 많은 것이 존재하고, 그만큼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작가라는 존재가 그런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식물을 보여준다든지 토끼를 보여준다든지 혹은 긴 역사를 보여준다든지 그 어떤 추상적인 것을 재현해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것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니까. 

오늘 아침 낯선 고양이 한 마리가 집 뒤뜰 수영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그 고양이를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왜냐하면, 제 몸 상태가 안 좋았거든요.(웃음) 지금이 두 번째 결혼인데, 많은 사람이 그렇듯 저도 실수한 적이 있어요. 그럴 경우엔 다음에 잘하면 되는 거지요. 현재의 전 정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너무도 사랑스럽고 손자들도 너무나 예쁩니다. 어릴 적엔 전 참 순진한 소녀였어요. 두려움이 정말 많았고요. 그래선지 지금처럼 인생을 즐길 수 있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불편한 몸이 낫는다면 지금보다 더욱 즐길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오늘 긴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얼른 쾌차하셔서 머지않아 한국에서 꼭 뵐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네. 저도 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창희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및 석사,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에서 미국 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연세대학교 인문예술대학 영어영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 

미국 문학, 문학비평, 아시아계 미국문화연구와 관련해 연구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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