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심층취재

자유한국당 인적 청산 발동

“선거참패보고서, 책임 묻는 근거 될 수 있어” 〈김병준〉

  • 입력2018-09-2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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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손 안 댄다 말한 적 없어” <비대위 핵심>

    • “그냥 갈 수 없다”

    • “홍준표·김무성 난맥상 책임”

    • “당협위원장 임기 끝나는 11월 결행”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한 지 두 달(9월17일)을 맞은 시점에 당내에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비대위 체제 지도부가 혁신의 무게 추를 ‘당의 가치 재정립’에서 ‘인적 청산’으로 급격히 옮기는 징후가 포착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계파 색채가 엷은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인적 청산의 ‘선봉대’를 자임하고 나섰다. 여기에 각 정파가 저마다 ‘김병준 이후 당권 장악’ 플랜을 짜고 있다. 보수 제1야당 안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두 달 탐색 후 ‘인적 청산’으로

    김 비대위원장은 취임 초 “인적 청산은 인위적으로 할 수 없다. 2020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수 없으니 마땅한 방법도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대신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보수 담론을 가다듬는 데 집중했다. 이 때문에 “보수층의 마음을 되돌릴 충격요법은 사람을 확 바꾸는 길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떨어진 지지율을 한국당이 흡수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는 비판을 샀다. 

    김 위원장은 “당의 가치와 좌표를 다시 세우면,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가는 대신 호응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인물 교체가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현실정치를 모르는 학자다운 발상” “당을 나가기는커녕 안에서 분란만 커질 것”이란 반박이 나왔다. 

    이어 숨죽이던 당내 각 계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년 2월쯤으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벌어질 당권 경쟁에 대비해 ‘대표선수’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차기 지도부는 2020년 총선 공천권을 행사한다. 

    김무성 전 대표는 ‘공화주의’를 보수의 새 기치로 내세워 옛 동지들을 끌어 모은다. 홍준표 전 대표는 미국에서 펼치던 ‘SNS 정치’를 접고 귀국해 우파 투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홍 전 대표에 대해선 ‘전당대회 출마 불가론’이 만만찮다. 보수의 추락과 대선·지방선거 참패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양측은 ‘플랜B’를 짰다는 말도 들린다. 김 전 대표는 다른 중진을 집중 지원해 당 대표로 만든 뒤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회의원이 아닌 홍 전 대표는 여의치 않으면 다른 인물을 지원한 후 자신은 내년 4월 재·보궐선거 때 새 지도부의 공천을 받아 경남지역에 출마할 수 있다는 말이 당 주변에서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 전 대통령권한대행도 몸을 풀고 있다. 9월 7일 황 전 대행의 수필집(‘황교안의 답’) 출판기념회엔 박근혜 정부 장·차관급 인사들과 친박계 국회의원 10여 명이 참석했다. 인적 청산 1순위로 꼽히는 친박계에선 ‘황교안 당 대표’를 만들면 튼튼한 울타리가 될지 모른다. 

    결국 각 계파가 생존 차원에서 당권 접수에 나선 셈이다. 이 구도가 고착되면 김병준 비대위의 인적 청산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당권 경쟁 윤곽이 잡히면서 각 의원이 줄 서기를 시작하는 순간 비대위의 존재감은 사라진다. 전당대회 준비기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두 달 동안 ‘인위적 인적 청산이 어렵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탐색만 하던 비대위가 마침내 승부수를 던질 태세다. 기류 변화는 전국 253개 당원협의회를 대상으로 한 당무감사 착수와 김 위원장 측의 달라진 정치 수사(修辭)에서 읽힌다.

    “한번 정리가 있어야 된다”

    한국당은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부터 당원협의회(옛 지구당)별로 당무감사를 벌여 결과를 발표한다. 당무감사는 통상 큰 선거가 있을 때 부실 당협을 정리해 전열을 갖추기 위해 실시한다. 때론 비상 상황에서 하부조직 정비를 위해 감사를 벌이기도 한다. 홍준표 대표 시절인 2017년 말 ‘계파 청산’을 목표로 당무감사를 벌여 전체 4분의 1에 이르는 60여 곳의 당협위원장을 교체한 바 있다. 

    이번엔 당무감사 실시가 발표된 직후부터 심상찮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지역구 초선 의원 14명이 당무감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당협위원장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8월 13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당협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백의종군을 선언한다”고 했다. 이어 “당 전체에 이러한 정신이 전면적으로 확산되어 재창당 수준의 개혁과 혁신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자신들이 마중물이 됐으니 책임 있는 중진들도 행동으로 보이라고 촉구한 셈이다. 

    당협위원장 사퇴가 곧 차기 총선 공천에서 낙천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중진의 경우 정치적 불명예인 동시에 새로 당협위원장을 맡는 정치 신인들이 치고 들어갈 틈을 주게 된다. 한국당 비대위 핵심 인사 A씨의 말을 들어보면 전위대 역할을 한 초선들의 집단행동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예고한다. 

    초선 의원들의 당협위원장 선제 사퇴가 인적 청산과 연관돼 있나요. 

    “(인적 청산을 위해선)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죠. 비대위가 먼저 ‘전부 일괄적으로 당협위원장 사직서를 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언론에서 그런 방향으로 보도할 수도 있을 겁니다. 분명한 건 어떤 형태로든 그냥 가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비대위의 확실한 입장입니다. 그냥 갈 수는 없습니다. 한번 정리가 있어야 된다는 게 김병준 위원장의 생각이고, 비대위 전체의 흐름입니다.” 

    가장 현실적이고 좋은 방법은 뭘까요. 

    “(인적 청산을) 위에서 시작하느냐, 밑에서 시작하느냐의 문제가 있죠. 또 위에서 시작하는 방법 역시 일괄적으로 요구할 수도 있고, 아니면 11월이 되면 자연스럽게 비대위가 선별적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여러 방법이 가능하죠.”

    김병준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A씨가 언급한 ‘11월’은 여태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시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 당협위원장들의 임기는 11월까지다. 당내에선 “임기 만료 시점에 인적 청산이 본격 결행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한국당 당규 26조는 당협위원장을 매년 선출하되, 선출 시기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정하도록 한다. 홍준표 대표 체제에서 지난해 10월 27일부터 11월 말까지 전국 모든 당협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뒤 위원장을 유임시키거나 새로 임명했으므로 이들의 임기는 11월까지다. 이어지는 A씨와의 대화다. 

    지도부 처지에선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밑에서부터 일어나주길 바라겠군요. 

    “그럼요. 가장 보기 좋은 방법이죠. 그렇게 되면 비대위의 부담도 적고. 어쨌든 11월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지켜보고 있어요. 다만, 어떤 형태로든 (인적청산 문제를) 그냥 지나치진 않을 겁니다.” 

    A씨의 말은 비대위 내부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김병준 위원장은 8월 11일 “인적 청산을 얘기하는데, 그것이 당 쇄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 자르고 내보내 당이 될 것 같으면 벌써 됐다”고 말했다. 비대위가 이렇게 대외적으론 발언 수위를 낮추면서도, 내부에선 당헌·당규를 검토하며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인적 청산이 쇄신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우선순위의 문제란 의미였죠. 제일 급한 건 비전과 가치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라는 뜻이었어요. 김 위원장이 한 번도 ‘일절 사람에게 손 안 댄다’고 한 적은 없어요. 순서가 있다는 거죠. 비대위가 들어가자마자 사람을 쳐내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겁니다.” 

    한국당 비대위 측은 당무감사 결과와 함께 외부에 용역을 준 ‘선거참패 결과원인 분석 보고서’에 주목한다. 김병준 위원장은 취임 후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나와야 쇄신책을 찾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외부기관에 용역을 의뢰했다. 

    김 위원장은 ‘외부기관의 평가 결과도 인적 청산의 한 명분이 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인적 청산이라기보다는 책임을 묻기 위한 하나의 근거 자료가 될 수는 있다”고 했다. 이어 “그 책임 정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만일 비대위의 분위기가 인적 청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이 보고서도 당무감사 결과와 함께 중요한 징계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9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의 새로운 철학과 모델을 제시하고 추석을 쇠면 본격적으로 당 개혁안, 정책 방향을 내놓을 것”이라며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인적 청산’을 직접 입에 담기 꺼렸다.

    “제가 말할 순 없고”

    자유한국당(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전 의원과 김무성 의원.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자유한국당(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전 의원과 김무성 의원.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그때 말한 선거참패 분석 보고서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중간보고가 곧 들어올 겁니다. 아마 10월 초순이면 최종 보고서가 나올 거고요.” 

    보고서 결과가 10월에, 당무감사 결과가 11월에 제출되면 두 자료를 합쳐 당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종합평가가 나올 수 있다. 

    보고서 결과가 인적 청산 대상을 고르는 참고자료가 될까요. 

    “제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고, 그냥 짐작하세요.” 

    당협위원장 임기가 11월까지란 해석도 있습니다만. 

    “어떤 형태로든 이제 당협위원장과 관련해 임기제를 철저히 적용하려 합니다. 당헌·당규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김용태 사무총장에게 검토하라고 했어요.” 

    당 지도부 경선에 김무성·홍준표 전 대표가 재출마하면 인적 쇄신과 반대로 가는 거 아닌가요? 

    “본인이 하겠다면 민주적 정당에서 누가 말리겠습니까. 아무리 비대위원장이라도 출마하겠다는 걸 막을 순 없죠. 억지로 의지를 꺾을 수도 없는 거고요.”

    “말릴 순 없는데, 변수는 남아”

    황교안 전 대행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인가요? 

    “어쨌든 저는 사람에 관한 얘기는 지금 단계에서 안 하고 있어요.” 

    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김무성의 당권 재도전에 대해 A씨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말릴 수는 없는데, 마지막 변수는 남은 거죠. 아직까지 당무감사나 외부 용역 보고서, 이런 문제들은 여전히 걸려 있는 것 아닌가요. 한국당이 이렇게 된 데 대한 정치적 책임, 지금의 난맥상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될 수도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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