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세계를 향한 열정과 도전 | 송상현 회고록

內戰에 아동 내보낸 루방가에 14년형 선고

  • | 송상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제2대 국제형사재판소장

    입력2018-10-1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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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세 이하 남녀 아동을 병사로 동원하는 등의 전범 혐의로 기소된 콩고민주공화국 군벌 토마스 루방가에 대한 본안상고사건에 대해 2014년 12월 1일 선고했다. 루방가에 대한 상고심 선고는 국제형사재판소 역사상 첫 상고사건 선고라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루방가는 소년병을 내전에 동원한 혐의 등으로 1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2015년 네덜란드 헤이그 교도소에 수감됐다.
    국제형사재판소 상고심 심리 모습.

    국제형사재판소 상고심 심리 모습.

    2014년 1월 6일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로 귀임했다. 소장실 직원들과 신년 인사를 나눴다. 소장직 마무리를 잘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업무를 시작했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해온 재판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국제형사재판소는 2003년 3월부터 가동됐는데 당선된 재판관 18인 전원을 한꺼번에 배치한 게 아니라 필요하면 몇 명씩 소장단 결정에 따라 상근으로 임명했다. 

    나는 2003년 11월 1일부터 상고심 재판관으로 일해 달라는 소장의 요청을 받았으나 교섭을 통해 2004년 1월 업무를 시작하기로 했다. 서울대 법대 강의를 마무리해야 했고 매년 신정 초 세배 오는 제자들과 인사와 덕담을 나누는 오랜 관례를 생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부족 언어 동시통역 난제로 떠올라

    법원이 설립되면 첫 사건이 들어와 재판 절차가 가동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린다. 더군다나 상고사건이 올라오기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구체적 사건이 법원에 도착할 때까지 재판관들은 새 재판소 골격을 구축하기 위한 내부 규정 및 절차와 증거에 관한 세칙, 재판부 구성, 재판관 윤리규범 등을 다듬는 데 시간을 투입했다. 나도 2004년 1월 부임하자마자 이 같은 규정 제정 작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재판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그들의 인품과 스타일이 어떤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각자의 본국 법제와 관행이 어떠한지, 법률 문화가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국제형사재판소는 로마규정을 어떻게 해석해 적용할 것인지 등 낯선 문제가 나를 포함한 재판관들 앞에 가로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재판관이 전자산업 강국인 한국에서 온 재판관이 법정 전산화를 담당해야 한다고 우겨대는 통에 얼떨결에 전자재판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법정의 전산화 작업을 총지휘하는 일을 맡았다. 



    다른 것은 그런대로 감당이 됐는데 법정 동시통역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그램 설치와 원만한 가동이 가장 어려웠다. 

    국어와 필요한 외국어 간 왕복 통역으로 충분한 국내 법원과 달리 국제형사재판소는 아프리카에서 온 피고인과 증인의 부족 언어를 영어와 불어로 동시에 통역하고 기록하는, 최소한 삼차원적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그런 시스템을 구매하거나 디자인하기가 당시에는 참으로 어려웠다. 

    법정언어 문제는 재판이 지연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국제형사재판소 공식 언어는 영어와 불어지만 피고와 증인이 문자가 없는 아프리카 소수 부족 언어만 이해하는 경우에는 모국어 진술을 영어와 불어로 왕복 동시통역해야 한다. 피고들은 대개 대통령 등의 고위직이므로 교육을 받아 불어나 영어를 잘하지만 법정에서 모른다고 잡아뗄 수도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는 알아듣기 어려운 부족 언어가 수천 개 있는데 피고인과 증인의 언어가 생소하면 재판 절차를 중단한 후 국제형사재판소가 그들의 부족사회에 가서 영어나 불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데려와 6개월 내지 1년간 동시통역 훈련을 한 다음 법정에 투입한다. 이렇듯 국내 법원이나 유엔 산하 다른 국제 법정이 경험하지 못한 언어 장벽이 우리를 괴롭혔다.

    응보적 정의 넘어선 치유적 정의

    2006년 5월 19일 마침내 첫 상고사건이 상고심에 접수됐다. 5인의 상고심 재판관이 모여 누구를 재판장으로 지명할지 논의했다. 키프로스 대법원장을 지낸 동료와 직전까지 다른 유엔 임시 형사재판소 소장을 지낸 여성 동료가 첫 상고사건 재판장을 하겠다고 나서 경합했다. 전 세계 언론에 자기 이름이 나오는 것을 계산한 포석 같았다. 키프로스 전 대법원장이 신사도를 발휘해 여성에게 양보함으로써 이 문제는 쉽게 일단락됐다. 

    첫 사건은 비교적 단순한 절차적 쟁점 문제였는데도 심리에 진전이 없었다. 재판관 5인 중 평생 외교관이던 두 분의 동료는 아마도 형사재판을 구경조차 한 일이 없었을 것 같았고, 다른 분들은 서로 상대방 눈치만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답답한 나머지 쟁점을 정리한 후 상고심 해결 방안을 요약한 메모를 작성해 다른 동료들에게 회람하게 했다. 그러나 모두 만나 토론할 때까지 오랫동안 내 메모에 대한 응답이 없었다. 새로운 법제와 환경에서 자기 좌표를 모색하고 정립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나는 47개 상고심 사건에서 재판장 또는 주심으로 판결했으며 21개의 소수의견 및 별개의견을 냈다. 국제형사재판소 역사상 첫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이기도 하다. 2007년 2월 13일 선고된 콩고민주공화국 군벌 토마스 루방가 사건과 관련해 5인으로 구성된 상고심에서 4인이 다수의견, 나 홀로 소수의견을 냈다.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 피해자가 형사소송절차에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는 기준, 범위, 효과 등에 관한 첫 다툼이었다. 

    로마조약에는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 피해자가 형사재판 절차에 참가해 필요한 주장과 소송행위를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로마조약 이전 다른 유엔 임시법정의 경우에도 피해자가 소송절차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그때는 오직 증인으로 소환된 경우에 한정됐다. 그런데 국제형사재판소에서는 피해자가 거의 소송 당사자와 맞먹는 지위와 권한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기의 한 맺힌 경험과 피해 사실을 법정에서 모두 다 말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국제형사재판소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치유를 명하는 판결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같은 규정에는 전통적 형사정의 개념인 응보적 정의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적 정의와 치유적 정의도 적극적으로 포함함으로써 피해자를 구제하고 보호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가해자를 응징해보았자 피해자들의 처지가 실제로 개선되는 것은 거의 없으므로 가해자 처벌 외에 피해자 구제를 아울러 도모하자는 취지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진일보한 조약이다.

    국제형사재판소 역사상 첫 소수의견

    다만 피해자의 개념이 불명확하고 수많은 피해자가 모두 소송 참가를 원한다면 절차가 필요 이상으로 지연되고 혼란을 방지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다수의견은 피해자의 범위, 기준, 참가 절차와 요건 및 효과에 관해 다소 보수적 입장에서 엄격하고도 선별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왕 로마조약에 피해자 보호를 위해 소송 참가 제도를 규정했으면 아무런 제약 없이 가능한 한 다수 피해자가 참가하게 허용하고 한 번 참가하면 어느 심급과 절차에서든지 모두 참가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만장일치 합의가 성립되지 않아 4대 1로 첫 상고심 판결이 선고됐다. 

    법학 분야 산학협동 체제가 잘 돌아가는 미국의 많은 법률 전문 잡지가 대부분 나의 소수의견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평석을 게재했다. 국제형사재판소 검찰부에서도 내 소수의견을 전 검찰 직원에게 반드시 읽어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내 소수의견은 이 판결이 내려진 지 10년 뒤면서 내가 퇴임한 후인 2015년 국제형사재판소 공식의견으로 채택됐다. 국제형사재판소가 내 소수의견을 공식의견으로 채택하는 판례 변경을 한 것이다. 2015년 5월 6일 내 후임인 실비아 페르난데스 소장이 e메일로 그러한 사실을 알리면서 나에게 축하의 뜻을 표했다. 법관으로서 뿌듯함을 느꼈다. 

    국제형사재판소 소송 규칙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상고심에서 판결을 선고할 때는 5인 재판관 전원이 법정에 임석한 가운데 재판장이 판결의 요약문을 낭독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요약문이 영어와 불어로 당사자와 방청인에게 동시통역된다. 

    재판을 방청한 유럽 각 대학 대학원 세미나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함께 판결 선고를 경청한 직후 판결문 사본을 즉석에서 교부받아 재판소 내 예약한 회의실에서 밤늦도록 분석하고 토론하기도 한다. 나는 이처럼 교육과 법조 현장이 즉석에서 연결되는 시스템 운영이 참으로 부러웠다. 

    5인의 상고심 재판관이 모두 임석하는 판결 선고일자를 잡기가 참 어려웠다. 당연직 상고심 재판관인 소장의 잦은 출장 및 다른 동료들의 빈번한 여행 때문이다. 특히 다른 임시 형사재판소 소장을 지낸 여성 동료의 잦은 여행을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한번은 사건의 선고가 너무 지연돼 할 수 없이 그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선고일자를 정하고 법정에 입장했다. 

    단상의 법대에는 4인의 재판관이 착석하고 본국에서 휴가 중이어서 결석한 여성 동료를 위해 국제전화를 연결하고 그 수화기를 법대 위에 설치해 그녀도 선고를 들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재판장이 판결 요약문을 반쯤 읽어 내려갔을 무렵 갑자기 전화에서 그녀 옆에 있던 개가 요란하게 짖어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법정 내 모든 사람과 유리창 너머에 앉아 있던 방청객이 모두 이를 듣고 혼비백산했다. 이 전대미문의 사태를 경험한 상고심 재판관들은 회의를 열고 규정을 개정해 앞으로는 재판장만 홀로 법정에 들어가 판결 요약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형식을 바꾸었다.

    세계 最古 식당, 소브리노 데 보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소브리노 데 보틴’. [위키피디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소브리노 데 보틴’. [위키피디아]

    2014년 4월 부활절 연휴 기간을 이용해 스페인 마드리드를 방문했다. 2013년에만 관광객 6000만 명이 다녀간 가톨릭 대국에 발을 디딘 것이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요금은 뉴욕처럼 정액제로 30유로에 미터기가 맞추어져 있다. 잘하는 일이다. 초행길인 나라에서 바가지 요금으로 승강이를 하면 기분이 상하게 마련이다. 

    이튿날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머핀으로 아침을 먹었다. 잘 살펴보니 물부터 소프트드링크까지 모두 1유로만 받는다. 역시 관광대국답다. 저렴한 데다 거스름돈을 주고받는 시간도 절약된다. 시내 무개차 관광버스를 탔는데 65세 이상 할인을 받으니 요금이 아주 저렴하다. 이 버스를 교통수단으로 삼아 일단 시내를 돌아본 후 세부적으로 방문할 곳을 선택하기로 했다. 얇게 저민 이베리안 햄(Iberian ham) 한 접시와 쇠고기 양으로 만든 내장탕을 시켜 점심으로 포식을 했는데 이 역시 가격이 아주 싸다. 가게도 벅적거리는 분위기에 들떠 있어 관광객의 호감을 살 만하다. 

    소브리노 데 보틴은 1725년부터 영업한 세계 최고(最古) 식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이곳에서 구운 애저(cochinillo·새끼 돼지)를 먹지 않을 수 없다. 이 전통 요리 덕분에 지금껏 영업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또다시 뜬다’ 등 수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한 식당이기도 하다. 종업원들이 공손하고 값도 적당하고 분위기도 좋아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열게 할 만하다. 스페인 문화를 알리는 전통 음식점으로 손색없다고나 할까. 

    4월 18일 성(聖) 금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예수 수난을 재현한 거리 행진이 내가 묵은 호텔 앞에서 시작됐다. 신자들이 행진을 따르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 마리아가 꽃장식한 자동차 위에 서 있는 모습, 검은색 옷을 입은 건장한 젊은 남녀가 상여를 좌우로 흔들면서 지나가는 모습, 성가대 악단의 음악에 맞춰 행진하는 신도들의 모습, 검은색이나 보라색 또는 붉은색 원추형 벙거지를 쓴 채 행진하는 사람들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스페인은 당시 경제가 나쁘고 빚을 많이 져서 유럽연합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유럽의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놀기 좋아하는 남유럽인을 은근히 경멸하는 인상을 내비칠 때도 있었다.

    바다를 지배한 강국

    한국인으로서 스페인 같은 관광산업 대국을 둘러보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착잡해지게 마련이다. 한국은 5000년 역사를 자랑한다지만 전쟁의 파괴를 감안하더라도 외국인에게 가시적으로 내놓을 만한 관광 상품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스페인은 신대륙을 개척했으며 수백 년간 바다를 지배한 강국이다. 2014년 현재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져 있더라도 그들 조상이 남긴 엄청난 유산을 관광자원으로 삼아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 조선 시대 우리가 초가집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갈 때 그들은 웅장한 석조 교회와 아름다운 회화 및 조각을 창조해 자손만대에 걸쳐 본전을 뽑는 셈이다. 

    강대국의 착취만 당한 우리는 저들의 부를 남을 착취해 쌓은 것이라고 비판만 하고 말 것인가. 서양 문명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혹시나 북서부 유럽 중심으로 유럽인을 재단하면서 남부 유럽의 문화적 축적을 과소평가한 일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4월 20일, 예수가 부활한 날이다. 우리는 톨레도를 찾았다. 버스 단체관광을 신청했는데 시니어 할인을 받아 저렴하다. 비용에 포함된 오찬도 완벽했다. 스페인 어느 곳을 가나 단체관광 요금이 합리적으로 책정돼 있다는 인상이 든다. 안락한 버스로 약 70㎞를 달렸다. 연도에 가구 단지가 많은 게 눈에 띈다. 

    황갈색 바위 위에 건설된 도시라는 게 톨레도의 첫인상이다. 기원전부터 로마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도시의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자연 요새가 됐고,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엔 700년 된 것도 있다. 기가 막힌 것은, 산등성이를 걸어 올라가야만 옛 시가와 건물을 구경할 수 있는데 관광객 편의를 위해 기묘하게도 에스컬레이터를 여러 겹으로 설치해 산 정상까지 오르게 해놨다는 점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자연스럽게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고도의 좁은 골목들을 구경했다. 

    산상 가장 높은 곳에 터를 잡은 식당으로 안내돼 이 지역 와인을 곁들여 잘 구운 양다리를 배불리 먹었다. 관광산업이란 이들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내 나라의 호텔업자, 식당업자, 관광안내업자, 기념품 판매업자들이여! 좀 대오각성하면 좋겠네. 아시아 동쪽 귀퉁이의 한국이 관광 사업을 하네, 동북아 금융의 허브가 되겠네 하는 발상은 좋지만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건지 구체적 기본 방안은 아무것도 없이 값만 높이고 바가지만 씌우면 누가 장단을 맞춰주겠나. 더군다나 서울처럼 공기 나쁘고 물가 비싸고 말이 안 통하는 데다 안전의식까지 부족하면 오겠다는 손님에게 걱정만 끼치지 않겠나.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르노 조립 공장이 유일한 大공장

    5월 13일 독일 베를린에서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하는 북한인권 문제 심포지엄에서 축사를 했다. 공평무사를 원칙으로 내세우는 국제형사재판소 소장이 어느 국가를 지목해 비판하기 어려우므로 사실 내가 축사를 할 성격의 회의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중요 행사이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 내가 축사를 하러 간다고 하니 독일 측 준비위원들도 바짝 긴장해 태도가 달라지더란다. 고맙게도 동아일보에서 1개 면을 할애해 심포지엄을 보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5월 14일 슬로베니아 출장길에 올랐다. 재임 중 동유럽 출장은 처음이다. 슬로베니아가 리히텐슈타인과 공동으로 캄팔라에서 합의한 로마조약 개정안 비준을 촉구하는 국제회의를 열었다. 개정안은 침략 범죄에 대한 정의와 관할권 행사 기준 등을 새로 담은 것으로 강대국들이 퍽 민감하게 신경 쓰는 의제다. 

    인구 200만 명의 슬로베니아는 산업 기반이 부족해 농업과 관광업에 의존해 살아간다. 큰 공장이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가 세운 조립 공장 하나뿐이다. 수도 류블라냐는 작은 도시다. 

    첫 일정으로 류블라냐대에서 강연을 했다. 이튿날 아침 슬로베니아 정부가 제공한 차량으로 회의장인 의회센터(Brdo)로 향했다. 회의장은 옛날 성채라고 하는데 시설이 멋지다. 유고연방 시절 티토 원수가 거처하던 곳이라고 한다. 동유럽을 비롯한 각지에서 여러 나라 대표가 참석했다. 아제르바이잔 조약국장이 발언하기를 자기 나라에서 국내 절차가 진행 중이고 내년 이맘때 쯤 비준이 가능하다고 한다. 좋은 회의 시설에서 잘 준비된 회의가 원만하게 진행됐다. 

    류블라냐에서 자동차를 타고 하루 일정으로 크로아티아를 방문했다.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까지 1시간이 걸린다. 차 안에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산천을 구경했다. 슬로베니아는 그야말로 녹색의 나라로 어디나 깨끗하고 아름답다. 스위스가 연상될 만큼 푸른 야산의 목장에서 가축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빨간 지붕의 농촌 집이 푸른 자연과 대조를 이뤄 더욱 아름답다. 우리나라 농촌의 주택들이 언제쯤 동네 풍경과 조화를 이룬 모습으로 탈바꿈할까. 

    자그레브는 류블라냐와 비교가 안 될 만큼 크고 바쁜 도시다. 크로아티아 정부 인사들이 외무부 청사 앞 미술관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크로아티아 법무부 여성 직원이 우리를 수행했는데 일행을 위해 별도로 미술관 가이드를 배정해줬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외무부 청사에 들어서니 단정한 차림의 의전관 여성이 나를 맞아 접견실로 안내한다. 좋은 인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어느 나라든 첫인상이 중요한데 나라의 수준에 따라 그렇지 못한 곳도 있다.

    “15세기 이래 서구의 해양 개척… 악전고투·착취 동시에 떠올라”

    포스토니아 동굴.

    포스토니아 동굴.

    외무장관인 60세 여성 베스나 푸시치는 미인인 데다 옷을 잘 입었으며 진보적 생각을 갖고 있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후일 반기문 총장의 후임을 노리고 움직이다가 중도 포기한 분이다. 그녀와 대화를 마친 후 법무장관 오르자트 밀예니치가 주최한 숲속의 오찬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해 많은 얘기를 심도 있게 나눴으며 우리가 제의한 증인보호협정과 형사판결집행협정 등 필요한 협정 체결을 토의하는 등 귀중한 회담을 진행했다. 밀예니치 장관은 젊은 사람인데 아주 화끈한 분인 것 같다. 거침없이 약속을 한다. 

    오찬 후 자그레브대에서 공개 강연을 했다. 크로아티아 학생들이 잘 아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와 국제형사재판소가 어떻게 다른지를 중심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크로아티아 일정을 마치고 류블라냐로 귀환했다. 

    5월 17일은 토요일이다. 슬로베니아 정부가 우리를 유명한 포스토니아 동굴로 안내했다. 정부로부터 이 일대를 임차해 경영하는 마리얀 바타겔리 내외가 문전에서 우리를 영접한다. 사진부터 찍어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을 제대로 입고 올 걸 그랬다. 기차를 타고 지하 22㎞나 되는 석회암 동굴을 전문가 설명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둘러봤다. 방명록에 서명도 했는데 국제형사재판소 소장이 방문한 곳이라면서 선전하는 데 사용할 것 같았다. 동굴에서 나와 보니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아 기분이 좋았다. 한국어 책자는 물론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헤드폰까지 구비돼 있었다. 

    9월 9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을 방문했다. 케이프타운은 해발 1000m 넘는 고지에 위치한 도시다. 해안과 절벽, 포도밭과 산행길이 교묘하게 얽힌 아름다운 곳이다. 남아공에서 편견이 가장 적고 관용적인 도시라고 한다. 1487년 포르투갈 선원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 일대를 순항하고는 포르투갈어로 Cabo da Boa Esperanca (Cape of Good Hope)라고 명명한 것이 서구인과의 첫 접촉이다. 

    대서양을 따라 해변도로를 드라이브하는데 수많은 만과 전망대뿐 아니라 서구의 진출 역사 사연을 담은 장소가 우리를 맞이한다. 지난 세기에 난파된 항해선 유적을 보존한 곳이 참 많아 초기 개척사의 어려움을 일깨워준다. 교외로 나가니 지형이나 토질, 수목, 바위, 바다 등이 모두 특이해 눈길을 끌 뿐 아니라 경관이 빼어나다. 도로도 포장 상태가 그런대로 좋고 연도의 가옥도 깨끗하다. 타조 농장에 들러 인공 사육 타조를 보았는데 발정한 놈이 포악하게 달려드는 수도 있다고 한다. 가이드의 친구가 운영하는 고아원도 살펴봤는데 부모가 에이즈(AIDS)로 사망한 고아를 거둬 기르는 시설이라고 한다. 독일에서 모금을 해 유지하고 있단다. 

    희망봉 [위키피디아]

    희망봉 [위키피디아]

    대서양 해안을 따라 남행해 정오경 희망봉에 도착했다. 이곳이 어릴 적 지리 시간에 배운 희망봉이라는 곳인가. 15세기 이래 서구 해양 개척 세력의 악전고투가 떠올랐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착취사도 연상된다. 중세에 얼마나 많은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 사람이 미지의 세계를 찾고자 루트 개척에 공을 들였을까. 이곳에는 바르톨로뮤 디아스, 바스코 다 가마 등이 남긴 유적이 있으며 이 지역을 둘러싼 네덜란드와 영국의 경쟁으로 두 나라의 문화와 아프리카의 그것이 뒤섞여 있다. 가이드도 300년 전에 정착한 백인 이민자의 후손이다. 

    희망봉 일대는 자연 보존지역(Natural Reserve)이다. 입장료를 내고 광활한 공원에 들어왔다. 커다란 맹수는 하나도 없지만 처음 보는 기화요초(fynbos)와 각종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도마뱀과 거북, 여러 종류의 새가 주인 노릇을 한다. 

    언필칭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난다는 케이프포인트(Cape Point)에 도착했다. 대서양의 찬 벵겔라해류와 인도양의 따듯한 아굴라스해류가 만나는 곳이다. 양 대양의 수온이 다른 덕분에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한다. 이 뾰족한 반도의 최남단은 서쪽에 희망봉, 중간에 케이프매클리어, 동쪽에 케이프 포인트 등 3개의 산허리(岬)로 구성된 절벽이다. 저 멀리 등대가 보이는 바위 언덕 정상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름조차 두 대양 식당(The Two Oceans Restaurant)인데 손님이 바글거린다.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기 전에 유럽인들은 이곳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아시아로 향했다. 그들이 남긴 역사와 문화인류학적 흔적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을 갖고 있었다.

    반인도적 범죄 저지른 국가원수들

    2014년 7월 17일 유엔과 국제형사재판소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2014년 7월 17일 유엔과 국제형사재판소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나다.

    2014년 10월 2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칼럼이 눈에 띈다. 김정훈 사회부장(현 편집국장)이 쓴 ‘오늘과 내일’ 제하 칼럼이다. 반인도적 범죄를 처벌하는 국제형사법 체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이곳에 인용해본다. 

    20일 아침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그날 아침신문에 보도된 주요 기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마침 본보 A14면에 실린 권오곤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의 ‘5·18 진압 주동자들을 국제재판소에 세울 수 있었다’는 기사가 소개됐다. 본보 사회부 기자가 쓴 기사가 소개되니 반가웠는데 끝 부분에 “이 기사가 동아일보에만 실려 있어 좀 의외라는 느낌입니다”라는 코멘트가 나왔다. 

    무슨 뜻에서 한 얘기인지 모르겠으나, 동아일보가 이 기사를 보도한 것이 의외의 일인가?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권 부소장의 발언은 18일 대법원 산하 연구기관인 사법정책연구원이 주최한 학술 강연에서 한 얘기였고, 하루 전날 강연 자료도 배포돼 있었다. 기삿거리가 된다고 판단한 후배 기자는 신문기자들이 다 쉬는 토요일에 일부러 권 부소장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권 부소장의 주장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행위는 ‘반인도적 범죄’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세울 수 있는 범죄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제형사법이 우리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국제사회에서 법에 의한 지배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취지였다. 벌써 14년째 ICTY 재판관으로 일하는 권 부 소장의 시각이 보도 가치가 없는 것이었을까. 필자는 그날 아침 동아일보를 빼고는 다른 어떤 신문도 이걸 보도하지 않았던 것이 의외로 느껴졌다. 

    권 부소장이 강연에서 지적한 것처럼 요즘 국제재판소의 핫이슈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국가원수들을 ICC 법정에 세우는 문제다.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반인권 범죄로 기소 대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올해 7월 6일 한국인으로서 국제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상현 ICC 소장, 권 부소장, 정창호 크메르루주 유엔특별재판소 재판관 등 3명과 한자리에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어렵게 모인 이 자리에서도 김정은 기소 문제가 화제가 됐다. 

    이 자리에서 권 부소장은 김정은 기소는 여러 가지로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김정은을 ICC에 기소하게 되면 남북 정상회담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한국이 ICC 협약국인 만큼 김정은은 체포해야 하는 대상이지 대화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003년부터 ICC 재판관으로 일해온 송 소장은 내년 초에, 권 부소장은 내년 여름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예정이다. 두 명이 잇따라 임기를 마치게 되면서 당장 우리로서는 이들의 뒤를 이어 누군가 국제재판소에 진출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됐다. 그러나 10여 년의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곧 한국에 돌아올 이들을 우리 정부가 또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일반 법관 같았으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라는 최고 법관의 자리에 오르든지, 아니면 중도에 변호사 개업을 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국제재판관으로서의 경력은 변호사 개업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한국을 대표해 국제사회에 기여했다는 큰 명예를 얻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지만, 국제사법무대에서 이들이 10여 년 동안 일하며 체득한 경험은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이들이 경험한 세계는 사법 분야라기보다 외교 분야에 더 가깝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국제정치 무대에서 한 톨이라도 국익을 챙기려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배운 분들이다. 내년에 두 사람이 차례로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종신직 대통령 고문’ 쯤으로 모셔서 그들의 지혜와 경륜을 국가재산으로 영구히 몰수하면 어떨까.


    김정은이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다면 그것은 김정은이 평생 차고 다녀야 할 족쇄다. 언젠가 처벌받을 범죄자가 되는 것은 그를 ‘최고 존엄’으로 떠받드는 북한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ICC 제소를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김정은이 범죄자로 기소된다면 상황에 따라 북한 권력집단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북한에 특정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김정은을 체포해 ICC에 넘기려는 세력이 생길 수도 있다. 요컨대 ICC 제소 추진은 김정은을 최대로 압박하는 것 중 하나다. 한국 정부는 북한 이슈가 지정학적 문제가 아닌 인류의 보편적 인권 문제와 관련된 사안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강조해야 한다.

    차기 소장 선거戰 불붙어

    2014년 11월 4일 국제형사재판소 신축 건설 현장에서 브리핑을 받는 나(왼쪽).

    2014년 11월 4일 국제형사재판소 신축 건설 현장에서 브리핑을 받는 나(왼쪽).

    어느덧 11월이다. 완연한 가을이다. 국제형사재판소 차기 소장 선거를 위한 전초전이 뜨겁다. 마음씨가 못된 A, 치기 어린 B, 순진한 C, 야무지고 똑똑한 D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일본 재판관도 출마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선거 때가 되면 국제형사재판소가 판사들의 법원인지 정치인들의 모임인지 헛갈릴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로서는 야무지고 똑똑한 D가 가장 많은 표를 확보하는 듯하다. 권오곤 ICTY 판사 내외를 만찬에 초청해 함께 식사했다. 

    헤이그 외교가에서 국제기구 수장으로 일하다 보니 각국의 국경일 리셉션에 얼굴을 비추는 것도 고되다. 어떤 날에는 3건이 겹치기도 한다. 이런 행사에 참석하면 잘 모르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편린이나마 접하게 되는 기쁨도 있다. 수요일인 오늘부터 주말까지 그런 행사로 일정이 가득 차 있다. 오늘은 튀니지 대사관이 주최하는 카르타고 전시회에 참석하는 날이다. 튀니지가 최근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로마조약에 가입한 데다 헤이그에 새로 부임한 튀니지대사가 참 점잖아 그 나라에 대한 인상도 좋았다. 

    연전에 튀니지 여행을 갔을 때 안내자가 한니발 장군에게 패배한 로마군이 튀니지를 정복한 후 복수심에 불타 카르타고 유적을 송두리째 파괴해 남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카르타고 전시회는 라이덴에 있는 네덜란드 국립 고대 박물관(Dutch National Museum of Antiquities, Leiden)에서 열렸다. 

    카르타고는 기원전 814년 세워진 후 로마에 정복되기 이전까지 레바논에서부터 오늘날 튀니지에 이르는 지중해의 해운과 통상 무역을 지배한 강력한 도시국가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와 시실리섬은 지중해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주지하듯 로마와 카르타고는 세 차례에 걸쳐 포에니전쟁(Punic Wars)을 벌였다.

    네덜란드 헤이그 감옥에 수감된 전범(戰犯) 루방가

    콩고민주공화국 군벌 토마스 루방가.

    콩고민주공화국 군벌 토마스 루방가.

    이번 전시에는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튀니지 국립박물관, 네덜란드의 여러 박물관에서 유물을 빌려와 250점을 전시했다. 볼 게 상당히 많았다. 페니키아 시대 레바논에서부터 키프로스를 거쳐 튀니지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연안을 따라 기원전 9세기부터 카르타고가 망한 기원전 146년까지 출토된 각종 장묘 비석(stela), 남녀 대리석상, 모자이크, 석조 해시계, 각종 금과 보석 장식품을 볼 수 있었다. 

    12월 1일 15세 이하 남녀 아동을 병사로 동원하는 등의 전범 혐의로 기소된 콩고민주공화국 군벌 토마스 루방가에 대한 본안상고사건에 대해 선고했다. 루방가에 대한 상고심 선고는 국제형사재판소 역사상 첫 상고사건 선고라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언론들이 선고 내용을 대서특필한 이유다. 

    나는 다른 3인의 재판관과 동일하게 검사와 피고의 쌍방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는 다수의견에 동조했다. 다만 로마조약 8조의 전쟁범죄 구성 요건 중 소년병 문제와 관련해 동료 3인은 3개의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봤으나 나는 범죄행위 방식과 유형에 차이가 있을 뿐 한 가지의 동일 범죄이므로 3가지 범죄의 상상적 경합으로 보는 것은 틀렸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아니타 우샤스카 재판관은, 소년병은 15세 이하를 가리키는 것인데 연령에 대한 입증이 확실하지 않으므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샤스카 재판관의 견해가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20년 넘게 내전을 치른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출생 등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할 때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피고인 또한 자신이 행한 행위는 부정하면서도 소년병 문제는 일반화돼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우샤스카 재판관의 견해대로라면 아프리카나 기타 장기간의 전쟁 지역에서 일어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를 유죄로 입증하는 작업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 있다. 

    루방가는 소년병을 내전에 동원한 혐의 등으로 1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2015년 네덜란드 헤이그 교도소에 수감됐다.

    송상현
    ● 1941년 출생
    ●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 고등고시 행정과(14회)· 사법과(16회) 합격
    ● 미국 코넬대 법학박사
    ● 서울대 법대 교수
    ● 서울대 법대 학장
    ●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 現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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