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인터뷰

법산스님의 ‘죽비소리’

“꽃은 스스로 떨어져도 미워하는 사람 없어… 그게 불심”

  •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8-10-03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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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산 ‘염불’, 경봉 ‘참선’, 탄허 ‘동양철학’ 가르침 받아

    • ‘조선불교통사’ 한글화, 승가고시 등 업적

    • 금강경 수행은 본래 자성의 청정한 마음 찾기

    • 차기 총무원장 ‘수행자로서 존경심 가질 수 있는 분이어야’

    • 총무원장에 목매는 건 주지 인사권 때문…사찰 재정 투명화 필요

    • 불자들도 스님 보호하는 ‘護法信徒’ 사명 다해야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불교계가 시끄럽다. 덕망 있는 스님의 따끔한 죽비소리가 절실하다. 또한 어지러운 현대인의 마음을 청량하게 해줄 청량한 법문이 그립다. 동국대 명예교수이자 조계종 대종사인 법산스님은 대표적인 학승이자 간화선 전문가다. 진흙탕 싸움이 된 종단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는 스님을 찾아 합장을 올린 이유다. 스님은 “시원찮은 사람에게 뭐 들을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서 자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는 스님이 서울에 올 때 머무는 아·태불교문화연구원에서 진행됐다. 

    1945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스님은 올해 나이 일흔셋이다. 하지만 두 시간 넘는 인터뷰 내내 흐트러짐이 없었다. 인도불교에서 선까지 거침없이 해박한 안목을 들려주었다. 세속 중생의 눈에도 ‘고승’의 법력이 느껴졌다.

    공부하고 싶어 15세에 출가

    열다섯에 남해 화방사로 출가하셨더군요. 어린 나이에 출가한 계기는. 

    “중학교도 못 갈 정도로 가난했어요. 제가 공부하고 싶어 하니까 할머니가 절에 가면 공부 할 수 있다며 권하셨어요. 스님들이 불경 공부하는 걸 보신 모양이에요. 그래서 출가한 거죠. 염불하는 법, 종치는 법 등 불교 생활과 의식을 다 한문으로 배웠는데, 배우는 게 재미있어 외우고 또 외웠지요.” 

    학승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배움에 대한 갈증이 영향을 준 셈이군요. 



    “처음엔 그런 것도 없었어요. 어느 날, 사과를 싼 신문지에서 통신교육 광고를 봤어요. 지금으로 치면 방송통신학교인 셈인데, 그때는 우편으로 강의록을 보내주는 방식이었죠. 주지스님께 통신 강의로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손수 등록해주셨지요. 당시 암자에 고시 공부를 하러 온 형들에게 물어가며 중학교·고등학교 과정을 2년 만에 다 마쳤죠.” 

    대학은. 

    “당시 남해에는 검정고시를 치를 곳이 없어서 경남 고성으로 와서 봤어요. 그래서 고성 옥천사에 잠시 기거했는데, 그곳 스님들 가운데 마산대학(지금의 경남대학교) 출신이 많았어요. 전신이 해인사에서 세운 해인대학이라 영남지방 스님 대부분이 여기를 다녔죠. 1967년 마산대학에 입학했는데, 어느 날 특강을 하러 온 서경수 동국대 교수님이 제가 범어(산스크리트어)를 잘하는 걸 보시고는 동국대로 편입시켰어요. 처음엔 촌놈이 서울 생활하는 게 겁나기도 했는데, 가서 보니 제가 범어뿐 아니라 다른 공부도 가장 잘했더군요. 장학금도 받고(웃음).” 

    범어는 대학 가기 전부터 배운 건가요. 

    “대학 들어가서 처음 배웠어요. 1학년 때부터 필수과목이었죠. 대승불교 경전이 전부 범어로 돼 있거든요. 신기해서 외우고 또 외웠죠.” 

    대학 생활은. 

    “시내 사찰에 기거하면서 아침저녁으로 염불을 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석·박사 과정 밟으면서 탄허 스님에게 사서삼경을 비롯해 도덕경, 장자, 노자 같은 동양철학 전반을 배웠지요. 박사과정을 마치고 동국대학에서 범어 강의 자리를 줘서 신나게 강의했죠.” 

    탄허스님의 학식이 그렇게 뛰어났나요. 

    “탄허스님은 16세에 사서삼경, 노자, 장자를 전부 통달했을 정도로 머리가 아주 비상한 분이셨어요. 원래 보천교 신도였는데, 환암스님과 필담을 나누다 반해서 오대산 상원사에 가서 상투를 자르고 스님이 되셨죠. 비불교계에서도 인정하는 세계적인 석학이셨지요.”

    스님 최초 대만 유학

    스님은 1980년 9월 대만 중국문화대학 철학연구소에 입학했다. 광복 후 대만으로 유학을 간 스님은 법산스님이 최초였다. 

    대만 유학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다 부족함을 느껴 인도철학을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도 유학을 결정하고 탄허스님에게 인사드리러 갔더니 ‘불교를 공부하려면 중국이 좋다. 대만으로 가거라’ 하셔서 바로 방향을 바꾸었지요. 어른이 하라는 대로 해야죠(웃음). 그리고 참선을 가르쳐주신 은사인 경봉스님에게도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중이 참선하면 되지, 웬 유학이냐’며 가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다고 안 갈 수 있나요. 시간을 두고 다시 찾아뵀더니 ‘법문(강의)을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스님 앞에서 법문을 했더니 ‘그만하면 국제포교사 정도는 해도 되겠다’며 허락해주셨죠.” 

    경봉스님에게 참선을 배웠는데 학승의 길을 걸은 걸 보면 선학에는 큰 흥미를 못 느낀 모양입니다(웃음). 

    “법은 부처님의 말을 익히는 것이고 선은 부처님의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결국 도를 깨치는 건 선이죠. 보조국사 지눌도 선과 교는 일치한다고 하셨고요. 선승들이 흔히 달마대사의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말하는데, 이 말은 글자에 치우치지 말라는 뜻이지 공부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성철스님만 해도 대표적인 선승이지만 독서량이 대단한 분입니다.”

    스님 자질 향상 위한 승가고시

    [김도균 기자]

    [김도균 기자]

    대만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전 스승 복이 많아요. 덕산스님에게 염불을 배웠고, 경봉스님에게 참선을 배웠고, 김동화 교수를 만나 학문을, 탄허스님에게 한학을 배웠으니까요. 대만 중국문화대학에 가서는 ‘선학의 황금시대’란 당대 베스트셀러를 쓴 오경웅(吳經熊) 교수를 만나 중국 선학을, 대만 푸런(輔仁)대학 총장인 로깡(羅光) 신부에게 중국고대철학사상을 배웠어요. 그러면서 한국 간화선의 원류인 보조국사 지눌의 사상적 뿌리라 할 수 있는 중국 선과 화엄사상을 심층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죠.” 

    보조국사 지눌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스님은 1986년 동국대학에 돌아와 선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동국대학의 불교대학장, 불교대학원장, 정각원장, 불교문화연구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한국선학회장, 인도철학회장, 한국정토학회장, 동국대학 명예교수,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등 학승의 길을 걸었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장으로 계시면서 한국 불교 최초의 종합 역사서이자 불교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불교통사’를 한글화했습니다. 

    “상현거사 이능화(1869~1943) 선생이 집필하고 육당 최남선 선생이 교열한 ‘조선불교통사’는 삼국유사에 버금가는 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1917년 전 3권으로 완간했는데, 서기 372년 순도스님이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이후 1916년까지 1544년간의 한국 불교사가 다 담겨 있지요. 1906년 개교한 동국대학에 출자한 사찰 명단도 들어 있어요. 독보적인 학술 가치를 인정받은 책이지만, 한문으로 되어 있어 갈수록 활용도가 떨어졌죠. 3년에 걸쳐 총 8권으로 번역해 2011년 조계사에서 봉정식을 치렀는데, 개인적으로 큰 보람을 느끼는 일이었죠. 보조국사 지눌의 보조전서를 한글화하는 작업도 했습니다.” 

    불교 논문의 학술적 권위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했습니다. 

    “한국인도철학회, 한국정토학회, 한국선학회 등의 학회장을 할 때마다 학회논문집을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에 등재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논문이 학술적으로 공인받을 수 없거든요. 불교 논문의 가치를 인정받고, 활용도를 높이는 계기를 마련한 거죠.” 

    승가고시도 만들었는데, 이유가…. 

    “승려의 자질 향상을 위해 2001년 승가고시제도를 만들어 8년 동안 고시위원장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도를 깨치는 게 스님이지, 웬 공부냐’는 반발이 많았어요. 그러나 주지나 사찰의 소임을 제대로 하려면 건축법, 도시계획법, 산림법, 문화재법, 사회복지법, 행정법 등을 알아야 하고, 참선을 가르치려면 선원의 어록을 알아야 하고, 교리를 가르치려면 강원 교과를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모르고 어떻게 주지를 하고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하고 설득했죠. 3급 승가고시에 합격한 스님에게만 주지가 될 자격을 줬어요. 처음에는 탈락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합격률이 80%가 넘습니다. 스님의 자질 향상에 일조했다고 자부하는 일이죠.”

    “이 뭐꼬”

    스님은 연구 안식년이던 2006년부터 매년 여름이면 가부좌를 틀고 좌복을 벗 삼아 ‘이 뭐꼬’ 화두를 챙기고 있다. “학생들에게 참선을 가르치면서 정작 내가 안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라며 껄껄 웃은 스님은 “석 달 동안 참선하고 나면 얼굴이 밝아지고 강의하는 기운이 달라진다”고 참선의 효과를 말한다. 

    참선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안나(들숨)와 반나(날숨)를 사띠(느끼는 것)하면서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면 곧바로 그 생각을 버려야 해요. ‘무념’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아니라 거울처럼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거울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비치는 모든 걸 담을 수 있잖아요. 그런 상태가 되는 겁니다.” 

    간화선은 화두를 잡아 참선을 한다는데, 화두가 뭔가요. 

    “화두는 무념무상의 상태로 가기 위한 지팡이 같은 것입니다. 나중에는 화두도 없어져요. 산에 오를 때 지팡이를 짚고 가면 수월하지만, 산 정상에 이르면 지팡이가 필요 없어지듯이. ‘화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한 스님이 스승에게 법당 앞에 있는 개를 가리키며 ‘이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님이 무(無)라고 대답했어요. 제자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자 스승이 ‘네가 찾아봐라’고 했어요. ‘왜 없다고 할까’가 제자에게 화두가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스님에게 ‘불법의 적적대의가 뭡니까’ 하고 묻자 스님이 ‘나는 오줌 누러 간다’면서 나갔어요. 불법에 대해 물었는데 왜 소변을 보러 간다고 하셨을까요. 소변이 마려우면 자기가 누러가야지 남이 대신 눌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의문을 스스로 찾아 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의문을 돌려주는 것, ‘왜?’가 화두인 것이죠. ‘왜?’가 중국말로 ‘시심마(是甚麽)’이고, 우리말로 ‘이 뭐꼬’입니다.” 

    근래 들어 일반인 사이에서도 참선, 명상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눈과 귀가 외부로만 쏠리고, 자기 내면을 잊고 살아요. 참선, 명상은 자기 내면을 관찰하고 마음에 있는 번뇌, 망상, 잡된 생각을 드러내 맑아지는 것입니다. 살면서 육감을 통해 입력된 정보가 많을수록 나쁜 바이러스도 많이 들어오게 됩니다. 참선을 통해서 나쁜 바이러스를 비워내는 게 필요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 때문에 명상할 여유가 없어 보여요. 틈나는 대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느라 시각과 청각이 어지러워져요. 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강경 10만 번 독송 수행

    스님은 지난해 말 선시집 ‘나는 누구인가’와 편역서 ‘뜻으로 풀어본 금강경 읽기’를 함께 출간했다. ‘뜻으로 풀어본 금강경 읽기’는 중국 역사철학자 동방교(東方橋) 교수가 쓴 금강경 해설서 ‘독금강경적방법론’을 번역한 것이다. 금강경을 유가와 노자 장자의 예를 들어 쉽게 설명했다. 

    왜 금강경인가요. 

    “조계종의 시조인 육조 혜능스님이 금강경을 읽다 도를 깨달았어요. 금강경은 선(禪)의 소의경전입니다. ‘무집착’이라는 반야사상의 핵심이 들어 있어요.” 

    금강경 10만 번 독송 수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2001년부터 수행을 시작했어요. 한 번 읽는데 15~30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재직 중에는 바쁘다 보니 1년에 500~600번밖에 못 읽었어요. 어느 날 제자가 ‘하루에 한 번씩 읽으면 10만 번 읽는 데 300년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깜짝 놀라서 틈나는 대로 하루 10번, 20번씩 읽고, 선방에 있을 때는 더 많이 읽고 있지요. 9월 말이면 4만5000독을 독파합니다. 이번 생에 다 못 읽으면 다음 생에 마저 읽는다는 마음으로 정진하고 있습니다(웃음).” 

    읽으면 뭐가 좋은가요. 

    “마음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 미움이 일어나지 않고, 정신이 맑아집니다. 이미 머릿속에 다 외우고 있지만 같은 말이 반복돼 집중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생기고요. 금강경 수행은 본래 자성의 청정한 마음을 찾아가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도 가난하게 자란 사람은 성공하면 본능적으로 물욕을 갖는다. 출가승 역시 마찬가지다. 출가 전 못 다 푼 한을 풀 듯이 부와 명예에 매달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법산스님은 낮은 곳을 먼저 본다. 

    “대학에 있을 때 가장 가까이 지낸 분들이 청소부, 수위, 운전수, 기능공들이에요. 대학총장은 한 달 넘게 학교를 비워도 학교가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지만, 이분들은 하루만 비워도 학교가 큰일 납니다. 수위는 방문객이 가장 먼저 만나고 가장 마지막에 만나는 학교의 얼굴입니다. 이분들이 밝은 얼굴을 하면 학교 이미지도 좋아집니다. 또한 장애인도 저의 친구들이죠. 1988년 수화를 배우며 광림사 연화복지원과 인연을 맺었는데, 지금도 매달 이분들을 만나 법문하는 게 가장 큰 행복입니다. 수화음악회도 열고, 시청각장애인송년잔치도 하고, 점자로 불경도 만들었어요. 눈이 어둡고 귀가 멀었더라도 지금 생에 잠깐 그런 것이지 본래 성품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덜 보고 듣는 만큼 깨끗이 수행해서 다음 생에는 부처님 세상에서 환한 눈과 밝은 귀를 갖고 태어나자고 이야기해줘요.”

    진짜 적폐는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욕심

    법산스님이 잔디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찍은 자화상. 스님은 ‘그림자 속의 나, 내 속의 그림자,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다. [법산스님 제공]

    법산스님이 잔디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찍은 자화상. 스님은 ‘그림자 속의 나, 내 속의 그림자,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다. [법산스님 제공]

    지난 8월 21일 설정 조계종 총무원장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사퇴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스님들은 물론 신도들까지 갈라져 대립하는 등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8월 26일 조계사 앞에서 ‘교권수호결의대회’와 ‘전국승려대회(승려결의대회)’가 대립적으로 열리는 등 갈등이 표출됐습니다. 


    “마음이 아프죠. 이 모든 게 탐욕심 때문입니다. 저 자신이 먼저 청정해져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순수한 수행교단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짜 적폐는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욕심입니다. 자기가 뭘 하기 위해 다른 이를 욕하고 밀어내려는 것이 적폐인 거죠. 마음의 탐욕을 버리면 얼마나 좋아요. 꽃은 스스로 떨어져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게 불심입니다.” 

    새 총무원장이 선출돼도 불교개혁행동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분위기입니다. 

    “선거를 해도 문제는 남을 겁니다. 총무원장 후보로 나설 정도의 스님이면 어떤 분인지 다들 잘 압니다. 청문회 등을 통해서 과거 행적을 철저하게 검증하고, 조금이라도 계율을 범한 게 있다면 후보에서 물러나게 해야 합니다. 제대로 검증하지 않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네 분의 스님이 총무원장 후보로 입후보했습니다. 

    “어느 분이든 개인 능력은 둘째치고 깨끗한 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승려대회 쪽 분들의 이야기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지요. 그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수행자로서 존경할 만한 분이기를 바랍니다.” 

    차기 총무원장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조계종을 수행 종단으로 만들고, 승려 교육체계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등불로 삼고 계율을 수행의 울타리로 삼으면 자연히 모든 사람이 존경하게 됩니다.”

    신도 역할도 중요

    ‘중벼슬 닭벼슬보다 못하다’는 말도 있는데, 왜 그렇게들 총무원장에 목을 매는 걸까요. 

    “주지 인사권이 있으니까요. 이제는 사찰도 신도 교육 중심으로 가고, 사찰 운영은 신도회에 맡기는 제도를 확고히 하는 게 필요합니다. 사찰 재정을 투명화해야 하지요. 지금도 규정은 그렇게 되어 있지만, 주지스님이 독주하는 걸 막을 도리가 없어요. 수입 지출을 신도회에서 분명히 관리하고, 스님을 존중하고 공부 잘하시도록 뒷받침해 신도들의 스승으로서 본보기가 되도록 해야겠지요. 물론 신도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고 부처님의 제자로서 자비를 실천하는 불자가 돼야 합니다.” 

    스님은 대만 불교를 예로 들었다.
     
    “대만 스님들은 식당도 마음대로 못 들어갑니다. 일반 식당에 들어가면 주인이 ‘여기는 스님 드실 만한 게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시라’고 내보냅니다. 스님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님이 고기를 먹으면 힘이 넘쳐서 안 되니 채식을 하셔야 한다, 스님이 골프장 같은 곳에 가서 놀면 안 되고, 수행하면서 좋은 공부해 우리를 더 잘 지도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만 사찰의 재정이나 살림 운영에도 신도들의 참여도가 대단히 높습니다. 돌아가면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수행이나 법회에서도 동참해 진행합니다. 대만 스님들은 이러한 신도들의 외호 아래 복지사업을 많이 합니다. 교육시설도 만들고, 노인시설도 만들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니 국민이 스님을 존경하고 더 많이 시주합니다.”

    대종사 법계

    스님들이 구도에 정진할 분위기를 불자들이 조성하는 게 중요하군요. 

    “한국 불교도 잘되려면 스님들의 자정 노력도 중요하지만, 불자들이 스님을 잘 보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만에서는 신도회를 호법신도회라고 합니다. 법(스님)을 보호하는 신도 모임이란 뜻이죠.” 

    스님은 지난 6월 17일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았다. 승랍 40년 이상 종사 법계를 받은 스님 중에서 품서하는 대종사 법계는 수행력과 종단 지도력을 크게 인정한다는 의미다. 현재 조계종에서 대종사 품서를 받은 스님은 51명뿐이다. 대종사 중에서 조계종 최고 어른인 종정이 선출된다. 법산스님은 이조차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부처님 말씀만 좇을 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기자의 머릿속에 스님의 시집 ‘나는 누구인가’에 실린 시 ‘靑山白雲’의 한 구절이 떠나지 않았다. 

    “청산은 백운이 가린다고 탓하지 않고백운은 청산이 걸린다고 미워하지 않네청산 없는 백운 없고, 백운 없으면 청산도 없으니청산이 백운이요, 백운이 청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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