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포커스

南 ‘종전선언 집착’이 北 ‘핵군축협상’ 전략 도와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09-19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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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전선언 분리해낸 것은 ‘노무현 국정원’ 아이디어

    • “北, 핵전략국가 굳히기 국면 진입”

    • “종전선언 이뤄지면 한미연합사 해체 요구할 것”

    윤영관 전 외교부통상 장관(서울대 명예교수)은 북한이 밝힌 비핵화 의지를 전략적 결단이거나 전술적 술수로 본다. 결단이라면 보상을 받고 핵을 포기할 것이다. 술수라면 핵을 포기하지 않고 보상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9월 18~20일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징검다리 삼아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국면이 이어진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추상적이면서도 모호한 표현 덕분에 동상이몽(同床異夢)이 가능한 상황이 조성됨으로써 대화 모멘텀이 이어졌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능력 포기’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동시에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한 상황에서 전개되는 위협 감소 협상’으로도 읽힐 수 있다. 특히 북한의 경우 양자 해석이 가능한 입장을 줄곧 유지해왔다.”(9월 11일 아산정책연구원 이슈 브리프·최강 수석연구위원 외) 

    올해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신년사를 시발점으로 3차례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대화 국면을 북한의 선의로 볼 때와 악의로 볼 때 상황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선의의 결단이라면 한반도가 평화 시대로 진입하겠으나 악의의 술수라면 상황이 다르다. 북한이 지난해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 대화로 노선을 전환한 까닭을 크게 네 갈래로 나눠볼 수 있다.

    “핵무기·평화·제재 해제 3종 세트 원해”

    첫째,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이라는 북한의 일관된 국가 전략에 따른 것이다. 사상·군사·정치에서 강국을 이뤘으니 경제만 발전시키면 ‘사회주의강국’이 된다는 논리다. 



    북한은 2018년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병진노선의 결속, 즉 완성을 선언했다. 핵·경제병진노선을 포기한 게 아니라 완성했다고 밝힌 것은 함의가 크다. 김영환 ‘준비하는 미래’ 대표는 “핵·경제병진은 확고하면서도 강력한 노선이다. 평양은 핵무장을 완성했기에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개혁·개방을 빠르게 진행하려는 것이다. 그러려면 제재가 풀려야 한다. 안정적이면서도 강력한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핵무기, 평화, 제재 해제 3종 세트가 필요하다. 핵무기가 있어야 외부의 침공 혹은 개입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한국과 통일 문제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다. 주도권을 쥐려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균열이 요구된다. 조선중앙통신은 9월 6일 ‘무력충돌과 군사적 위협,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상황’을 ‘조선반도 비핵화’로 규정했다. 비핵화 과정에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노동당 통제하 개혁·개방을 모색하는 북한은 노동당 주도 통일 전략을 폐기한 적이 없다. 김정은이 1월 1일 신년사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12번이나 사용한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말했다.

    “안보 역학 관계 역전”

    구 이사장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북한이 한미동맹 분열을 기초로 북한 주도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구체적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6차 핵실험은 한반도 정세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이후 한반도 안보 역학 관계가 역전됐으며 대화 국면을 주도하는 역량에서도 한국과 북한의 처지가 바뀌었다. 한국의 대북 정책이 한미동맹의 균열로 이어진다면 심각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 있다.” 

    셋째, 미국의 군사 공격 위협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한미연합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 북한 인근 해역에서 실시된 한미 군사훈련 때 평양이 느낀 공포가 굉장했을 것”이라고 했다. 12월 4일, 8일 미군 인도-태평양사령부가 한국 공군과 함께 실시한 ‘비질런트 에이스’는 전면전 연습이나 다름없었다. 북한 내 타격 목표를 하루 1400회 공격하는 규모로 훈련이 진행됐으며 주일 미군기지에도 병력, 장비가 추가할 수 없을 만큼 증강됐다. 

    넷째, 제재 해제를 통해 경제적 실리를 챙기려는 것이다. 

    북한은 2021년 이후로 예상되는 8차 당대회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성과를 과시하면서 ‘사회주의 강국건설’ 완성을 선언하려 한다. 그러려면 2020년 끝나는 경제발전 5개년 전략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경제 개선으로 민생이 나아지면 김정은의 권력 기반은 더욱 공고해진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한 까닭과 관련해 첫째(사상·정치·군사·경제 강국), 둘째(북한 주도 통일 전략)는 무시하고 셋째(미국의 군사 공격 위협 해소)와 넷째(경제적 실리 확보)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선례는 있으나 일반적 프로세스 아냐”

    평양 정상회담이 마무리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시점에서 핵심 논쟁점(Key Words)은 ‘종전선언’이다. 종선선언과 평화협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가자. 

    [종전선언] : 정치 지도자들 간의 신사협정 혹은 정치선언으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 평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정상들이 서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의회의 비준을 받을 필요는 없다. 

    [평화협정] : 전쟁을 끝낸 당사국들이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로 전환하는 협정을 맺는 것이다. 경계선 확정, 군비통제, 비핵화 및 대량살상무기 포기 등이 평화협정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평화협정은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종전선언(Declaration of the End of War)은 선례가 있긴 하나 일반적 프로세스는 아니다. 국제법 용어가 아닌 정치적 표현이라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선례로는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에 체결된 캠프데이비드 합의와 올해 7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가 한 ‘전쟁 상태의 종식’ 선언이 있다. 

    종전선언은 상대를 향해 적대 행위를 하지 않으며 전쟁이 끝났다는 점을 공표하는 정치 행위다. 주한미군 지위 변경 등 복잡한 문제가 따라붙는 평화협정과 달리 말 그대로 선언적 의미가 강하나 북한이 ‘조기 종전선언’을 카드로 들고 나오면서 의미가 격상됐다. 

    평화협정 체결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미연합사 존폐, 평화보장 관리기구 설치,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함한 영토 문제, 군비 통제 및 감축, 주한미군 지위 변경 및 철수 등 난제(難題)로 가득 차 있다. 

    평화협정으로 가는 과정에서 종전선언을 분리해낸 것은 노무현 정부 때 국정원이 내놓은 아이디어다. 국정원이 2006년 핵 문제 해결조치 진행→평화체제 구축 협의 진행→북·미 간 대타협 구도→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4단계 방안을 마련하면서 평화체제 구축 협의 과정에서 상징적 행사인 종전선언을 따로 떼어냈다.

    “뒤늦게 종전선언 이용할 논리 찾아낸 北”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까지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주체가 되는 종전선언에 매달렸으나 미국은 종전선언에 관심이 없었다. 종전선언을 분리해낸 것은 노무현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의도도 있었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마련한 종전선언 구상을 문재인 정부가 12년이 지난 시점에 답습(踏襲)하는 것이다. 지난해 5월 10일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부·통일부 업무보고에 참석해 핵심 정책을 토의할 때 첫 주제가 한반도 평화체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말까지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한다.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의 진도’는 종전선언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북한은 종전선언에 주목하지 않았으나 태도가 바뀌었다. 평양이 종전선언 조기 합의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 종전선언이 명시된 이후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부터다. 종전선언은 이전까지 북한이 집착한 카드가 아니었다. 평양이 태세를 바꾼 까닭은 뭔가.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설명이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에서 군축 협상에 나서려 한다는 점에서 지금껏 일관성을 보여왔다. 종전선언에는 무게를 두지 않았는데 한국이 집착하니 뒤늦게 그것을 이용할 논리를 찾아냈다.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과정 이전에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미국과 소련이 진행한 군축회담의 논리가 성립한다. 북·미 협상이 ‘핵군축회담’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집착한 종전선언이 핵폐기 협상이 아니라 핵군축회담으로 가려는 북한에 전가의 보도가 됐다는 얘기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종전선언을 한다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은 종전선언 직후부터 한미연합사 해체를 주장할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에서 미국과 협상하려 한다. 핵 목록을 일방적으로 신고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하다고 여겨왔다. 핵군축회담의 출발점은 상호 대등성이다. 핵보유국으로서 동등한 자세에서 군축하는 것이다.”

    “신고-검증-폐기와 연계해 종전선언 추진해야”

    주승현 인천대 초빙교수는 “핵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것인지, 포기하는 시늉을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북한 내부 정치에서도 종전선언은 의미가 있다. 군부와 주민이 설득 대상은 아니나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군부와 주민을 달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마음 놓고 경제 건설에 집중하는 데 디딤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구해우 이사장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이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약화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한 것은 교과서적 얘기다.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므로 종전선언과 무관하나 유엔사는 해체 수순을 밟아야 한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한미연합사도 존재 명분을 세우기 어려워지며 주한미군도 영향을 받는다. 한미동맹이 약화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북한은 사회주의강국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핵전략국가 굳히기 국면에 들어섰다. 평양은 일관된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데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북한을 돕는 형국이다. 북한이 상황을 엔조이(enjoy)하면서 전략·전술을 능란하게 구사한다. 운전석에 앉은 건 북한의 김정은이다. 한국이 서둘러서는 안 된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핵을 가진 평양에 치밀하게 대응할 때다.” 

    미국은 종전선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북한의 핵 목록 제출을 원한다. 북·미 협상 분위기가 조성될 당시 미국이 핵물질·핵무기 반출까지 기대한 것을 고려하면 후퇴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종전선언에 조바심을 낸다. 북한은 그 같은 한국을 이용해 조기에 종전선언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의 종전선언 집착은 핵군축협상으로 나아가려는 북한을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종전선언은 신고-검증-폐기와 정밀하게 연계돼 논의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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