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들어온 한 권의 책
| 금융의 모험 |
文·史·哲과 함께 펼쳐지는 ‘우아한’ 금융 수업
미히르 데사이 지음, 김홍식 옮김, 부키, 364쪽, 1만8000원
이 우화를 듣고 덜컥 겁이 날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금융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아닐까. 고객의 돈을 열심히 불려 높은 수익을 창출해내는 것이야말로 금융인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미히르 데사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금융학 교수는 2015년 MBA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마지막 강의에서 그동안 어느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새로운 방법으로 금융의 기능을 설명했다. 수식과 그래프도 없이, 문학과 역사, 철학, 미술, 음악, 영화 등을 통해 금융의 개념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금융의 모험’은 그의 마지막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데사이 교수는 ‘어떻게 하면 금융의 관념과 금융의 미덕을 누구나 알기 쉽고 수긍할 수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결과 그는 강의 ‘교재’로 고리타분한 교과서가 아닌 인문학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다. 언뜻 생각하면, 금융과 인문학의 연결고리가 뭐가 있을까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와 시인 윌리스 스티븐스는 보험과 금융의 본질을 일깨워주고,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리스크 관리를, 영화 ‘프로듀서’와 ‘전망 좋은 방’은 주인과 대리인(주주와 경영자) 관계를, 영화 ‘워킹 걸’은 기업 합병 기술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또 소설가 조지 오웰과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 활동을 통해 레버리지의 위력과 함정에 대해 알려준다.
1688년 상인 호세 데 라 베가는 금융을 “가장 공정하면서도 시기가 가장 심하고,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면서도 가장 악명 높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상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데사이 교수는 오늘날 ‘악덕한’ 이미지로 추락한 금융에 ‘가치 창출’이라는 새로운 날개를 덧붙여 금융의 절대적 가치를 되찾게끔 했다. 금융은 결코 ‘저급한 문명’이 아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베트남의 역사
유인선 지음, 이산, 464쪽, 2만5000원
고대에서 현대까지 다룬 베트남 통사다. 역사적 사실과 현재를 유기적으로 엮어 읽는 맛을 더했다. 한국-베트남의 역사적 접점을 확인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베트남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나라다. 베트남 펀드에 투자하는 이도 많다. 베트남 역사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번안사회
백욱인 지음, 휴머니스트, 364쪽, 1만9000원
1930년대 식민지와 1960년대 산업화 현장을 오가면서 한국 사회에 남은 근대화 흔적을 살핀다. 식민 지배를 겪은 한국은 서양을 직접 대면하는 대신 일본을 통해 서구 근대 산물을 받아들였다. 광복 이후에도 한국은 식민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미국 영향 아래 번안의 시대를 답습했다.
| 탁월한 사유의 시선 |
나에서 ‘독립’해 참된 ‘나’를 이루는 길
최진석 지음, 21세기북스, 284쪽, 1만8800원
“족할 줄 아는 데서 느끼는 만족이 영원한 만족이며, 낳았으되 소유하지 않는 어머니처럼 자애하며, 갓난아이처럼 담박하게 살면서 세상보다 앞서려 하지 말라. 이념, 신념처럼 마음속 하나의 기준을 가지면 딱딱해질 것이나, 산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뻣뻣하다. 도(道)를 체득한 사람은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노장철학 전문가 최진석이 쓴 책이다. 지난해 12월 “욕망대로 살지 않는 건 천형을 받는 것과 같은 일”이라면서 서강대를 떠났다. 노장철학이 일깨운 깨우침일까. 7년 넘게 남은 교수직을 박차고 들판으로 나섰다.
최진석은 인문학을 가르치는 건명원(建明苑)에서 후학을 양성한다. 빈틈없음을 강조하는 대학 학문 체계를 벗어나 ‘모호함을 명료함으로 바꾸기보다는 모호함 자체를 품어버리는 자’를 키워내고자 한다.
‘建明苑’을 풀어 읽으면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다. 명(明)은 해(日)를 해로만 보거나 달(月)을 달로만 보는 분리의 시각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하나의 사건으로 동시에 장악한다. 구획된 공간을 뜻하는 ‘園’ 대신 열린 공간을 가리키는 ‘苑’을 썼다.
“잘사는 나라가 됐는데도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라고 노자에게 물으면 어떻게 답할지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는 “굳어버린 신념과 이념, 가치관에 ‘너’를 맡겨서 그렇다고 말할 듯하다”고 답했다.
“이념과 신념 버리고 ‘혼자의 힘’ 믿으라”
최진석은 ‘진정한 철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철학은 부정(否定)·선도(先導)·독립(獨立)·진인(眞人) 4단계를 거쳐 현실에서 구체화한다. 기존의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창의력·상상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기존의 것과 불화를 자초해 종속적인 나에서 ‘독립’해, 주체적이고 참된 나, 즉 ‘진인’을 이루는 것이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2017년 1월 출간된 초판을 상아탑에서 떠난 후 새로 고쳐 쓴 개정판이다. “이 책을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면서 최진석은 이렇게 말했다.
“혁신은 구조가 아니라 개인에게서 나옵니다. 개인이 과감하지 못할 때 사회적 조건을 따집니다. 과감한 개인이 준비돼 있느냐가 사회의 진보 혹은 진화의 높이를 결정합니다. ‘혼자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혼자의 힘을 발동하는 데 주저하고, 사회적 조건에 견줘 무기력을 경험하면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좀 더 무모하고 과감해져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서 사회적 조건을 탓하면 ‘바보’ 혹은 ‘평범하게 살다 가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 가족과 통치 |
‘출산주도성장’이라는 해묵은 농담
조은주 지음, 창비, 376쪽, 1만8000원
오죽했으면 25세 젊은 면서기가 피임약제 보급 업무와 사용법 교육까지 맡았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1963년의 일화다. 이름만으로도 ‘관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한가족계획협회는 “피임약의 복용을 잊지 않고 상호 독려하게 만들기 위한 가임여성들의 조직을 추진”하기도 했단다. 정관수술 등 피임술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도 이때다. 목표는 ‘출산 조절’이었을 터.
광범위한 움직임 덕에 인구에 대한 지식도 축적돼갔다. 가족계획사업이 인구에 관한 자료의 일상적 수집과 계산, 기록을 수반해서다. 보건사회부는 ‘가족계획 조사평가반’을 꾸려 루프 피시술자의 추적 면접조사까지 실시했다. 1970년에는 국립가족계획연구소가 설립됐다. 요새 말 많고 탈 많은 통계의 존재감도 빛을 발했다. 가족계획사업의 원활한 실행을 위해 인구에 대한 정밀한 통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족계획사업의 미덕도 있었다. 저자 말마따나 “출산 여부, 시기, 터울을 계획하는 삶의 양식이 보편화”됐다. 덕분에 임신과 출산은 개인에게도 생애 전체를 놓고 구상하거나 계획하는 “근대적 태도 안에 자리 잡게 됐다.” 식민지 시절까지 여성에게 출산을 결정할 권리가 부재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나름대로 진전이었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비교적 자유롭게 ‘출산하지 않을 권리’를 주창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가족계획사업의 유산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출산장려금 2000만 원을 지급하고 이 아이가 성년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1억 원의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김성태 대표)고 주장한다. ‘애를 많이 낳게 하자’는 게 제1야당의 대안 경제 정책인 셈. 그 저변에 ‘출산하지 않는 자는 성장에 기여하지 않는다’라는 인식이 너무 도드라지게 엿보여서 불편하기까지 하다.
말이야 바로 하자. 지금 애들이 없어 한국이 저성장에 빠졌나? 기획재정부 말마따나 ‘생산가능인구’가 적어 고용 통계가 참사 수준에 이르렀나? 노인이 너무 많아 부양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치기 전에, 노인이 행복한 나라부터 만드는 건 어떨까. 우선 김성태 원내대표는 이 책부터 읽어보는 게 좋겠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진실사회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예문아카이브, 128쪽, 1만원
이 책은 한마디로 진실의 탈을 쓴 온갖 거짓에 관한 이야기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회의 수호자”라고 평가한 실천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가 권력자의 힘, 인간의 본능, 대중의 우매함, 종교적 맹신, 집단적 착각 등 수많은 이유로 ‘진실이 된 거짓’의 실체를 다룬다.
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지음, 해냄, 392쪽, 1만6800원
여행을 일상처럼 편안하게 일상을 여행처럼 짜릿하게 만들고 싶은 글쟁이가 쓴 ‘삶을 사랑하는 자의 은밀한 여행법’이다. 눈꺼풀이 지구만큼 무거워질 때까지 걷고, 쓰고, 사랑한 여행의 모든 기록을 담았다. 저자는 말한다.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었다면 굳이 해마다 ‘통과의례’를 치르듯 낯선 나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 서울 평양 스마트시티 |
초고속교통망·광대역통신으로 하나 되는 서울-평양 4차산업
민경태 지음, 미래의 창, 288쪽, 1만7000원
북한을 다룬 책은 오랫동안 정치 영역이 중심이었다. 김정은과 북한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경제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저개발 국가 북한은 언젠가 있을 창조적 파괴를 기다린다.
저자 이력이 독특하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건축역사 및 도시 설계’ 분야 석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에서 일하면서 해외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MBA를 마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경제·IT전공으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최첨단 도시 네트워크로 연결된 경제 공동체를 기반으로 북한을 한반도 4차 산업혁명의 출발지로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참신하면서도 도발적이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북을 연결해 네트워크 경제(Network Economics)를 구축한다면 북한이 물질적 생산 요소를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수도권 인프라에 단지 ‘접속’함으로써 네트워크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네트워크에 이용자가 추가될 때 비용이 추가적으로 투입되지 않으면서 한계 이득이 늘어난다. 네트워크 관점에서 정보기술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면 수확 체감의 법칙을 무력화할 수 있다.
네트워크 경제는 인류 사회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는다. 저자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한반도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남북을 잇는 네트워크 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서울-평양 스마트시티’는 첨단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도시 네트워크다. 초고속 교통망과 광대역 통신 기술을 이용해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두 지역을 동일한 경제권으로 통합할 수 있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세상을 바꾼 위대한 탐험 50
마크 스튜어드·앨런 그린우드 지음, 박준형 옮김, 예문아카이브 424쪽, 2만8000원
역사는 시대의 관습을 깨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도전한 사람들의 열정으로 기록돼왔다. 달 착륙에 성공한 우주비행사 암스트롱에서부터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힐러리와 노르가이, 단독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코스토에 이르기까지 한계에 맞서 인류의 지평을 넓힌 탐험가들의 역사적 순간을 그려냈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생활실천법
유태종 지음, 리스컴, 256쪽, 1만3000원.
100세 장수 시대라고 하지만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몇 살을 살더라도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게 축복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누구나 부러워하는 인생 후반기 복 받은 삶이다. 중년기부터 얼마나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했느냐에 따라 건강하게 사느냐 골골거리느냐가 판가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