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20대 리포트

피아노 전공자들 ‘월 120만 원’ 박봉?

“교습소 취업해 최저임금도 못 받아”

  • | 이지은 동아 기사쓰기 아카데미 수강생 towelgo@naver.com

    입력2018-10-07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연주자 등 취업문 좁아

    • 주휴수당도, 퇴직금도 없어

    • 비싼 학비·레슨비 들여 졸업했는데…

    피아노 전공자들은 비싼 학비 때문에 “집안 기둥 뽑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예체능 계열의 등록금은 연평균 827만 원으로, 인문사회계열(644만 원)이나 자연과학계열(774만 원)보다 비싸다(2017년 대학교육연구소 자료). 피아노 전공자들은 여기에다 레슨비까지 부담한다. 지휘자이자 전 서울예술고 교장인 금난새 씨도 등록금과 별도로 레슨비를 내는 한국 음악계의 고비용 구조를 지적했다. 

    이런 피아노 전공자들도 취업난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연주자, 작곡가가 되거나 악단, 공연기획사, 교사 등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갈 자리가 많지 않다. 그래서 대개 피아노 교습소에 강사로 취업하지만 박봉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모 대학 피아노학과를 나온 심모(여·25) 씨는 서울 연희동 한 음악학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친다. 부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주로 배우러 온다. 심씨의 수입은 주 3회 5시간씩 근무에 월 35만 원. 시급으로 계산하면 최저임금 아래인 5833원이다.

    5만 원 월급 인상도 안 돼

    심씨는 “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와 초등학교 내 방과 후 교실 확대로 원생이 줄었다. 원장의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40명이던 원생은 25명으로 감소했다. 매년 5만 원씩 올려주던 월급 인상도 올해엔 없었다. 

    심씨는 적은 월급이지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아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이 수월하진 않다. 근무시간 이외 시간에도 연주회 포스터를 만들고 원장을 대신해 학원 문을 열거나 닫는다. 심씨는 근로계약서를 따로 쓰지 않았다. “아르바이트생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피아노 학원 강사 박모(여·28) 씨도 박봉을 받는다. 박씨는 퇴직금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채용됐다고 한다. 박씨는 이전 학원을 그만두면서 퇴직금 문제로 노동청에 신고까지 해봤던 터라 퇴직금에 대한 이해가 있었지만 ‘주5일 근무이기 때문에 퇴직금이 없다’는 이상한 특약이 포함된 근로계약서에 사인해야 했다. 

    “근로계약서에 말도 안 되는 문구를 써넣게 하는데도 아무 말도 못하고 일해야 하는 현실이 허탈했어요. 약 1년을 채워 퇴직금을 받으려면 원장과 싸워야 하고 신고해야 하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기에 이런 과정을 다시 거치고 싶지 않아 그냥 사인했어요.” 

    김모 씨는 최근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소재 피아노 교습소에서 강사로 다시 일한다. “월 90만 원 받고 일했는데, 급여가 너무 적어 관뒀다가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계약 조건 탓에 김씨는 한숨을 쉰다.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근무시간이지만 20분 전까지 출근해야 한다. 첫 월급에서 20만 원을 제하고 1년 근무 시 20만 원을 지급하는 조건이다. 급여 인상과 관련해선, ‘근무 태도에 따라 월급 인상이 가능하다’는 모호한 조건만 있었다. 

    김씨는 “오후 5시에 먼저 퇴근하는 원장을 대신해 거의 모든 원생을 가르쳤고 지각 한 번 없이 성실한 근무 태도를 보였지만 6개월 뒤에도 월급 인상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오른 올해 1월 이후에도 똑같이 월 100만 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어린 강사들이 어수룩해서?”

    한 예체능학원 강사 구인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제시하는 공고가 많았다. 대부분의 공고는 오후 7시간 근무를 요구하면서 급여로 월 120만 원 정도를 제시했다. 한 피아노 학원 강사는 “주휴수당(1주일 동안 근로일수를 개근하면 지급되는 유급휴일에 대한 수당)도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라고 말한다. 또 30세 미만으로 나이를 제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런 처지를 개탄하는 피아노 강사들의 자조 섞인 글도 자주 올라온다. 

    “하, 정말 100만 원으로 생활이 가능합니까? 강사님들, 학원 강사 하지 맙시다. 이건 20대, 30대 음악 일에 꿈이 있는 선생들이 할 일이 아니에요. 알바예요.”  

    “아직도 페이가 평균 120만 원이라니 정말 대단하네요. 10년 전에도 1시부터 7시까지 전임 강사 급여가 120만 원이었는데요. 30세 미만으로 나이 제한을 둔 공고가 많은데…어린 강사들이 어수룩해서 그런가요? 어릴 때부터 연마해 4년제 대학까지 나왔는데 자리가 없고 월 120만 원 번다는 것이 말이 안 돼요.” 

    “말도 안 되게 싸게 받으니까 다들 죽어나는 것 같네요. 원장선생님들 힘드신 건 이해하지만…하루에 30명씩 개인지도를 하면 정말 목이 찢어질 것 같거든요. 사실 복지도 너무 안 좋고…상여금, 주휴수당, 평일 외 출근 시 결제, 청소 등등 개선해야 할 점이 너무 많네요.” 

    “피아노 전공하느라 흘린 땀방울의 대가, 가치가 열정페이 수준밖에 안 되는 거였나요? 연주, 레슨 해보셔서 알겠지만 결코 쉬운 일 아니지 않습니까?”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터무니없이 낮은 음악 학원비를 올릴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이 등장해 1580명이 동의했다. 관련 전공자만 교습소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학원법’에 따르면 전공 여부와 상관없이 학원과 교습소를 설립할 수 있다. 피아노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강사를 고용할 수 없음에도 교습소가 강사를 채용하는 경우도 쉽게 발견된다.

    원장들 “임차료 뛰고 우리도 어렵다”

    피아노 학원·교습소 원장 상당수도 운영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서울시내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이모(여·56) 씨는 “내가 가져가는 수입보다 강사 월급이 더 많다”고 말했다. “임차료 등 고정 비용은 올라가는데 원비는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 지역 교육청은 수강료 상한 기준을 정해놓고 있는데, 예를 들어 경기도 의정부 교육청의 경우 교습시간 1분당 수강료 상한선은 피아노 일반반이 205원이고 입시반이 410원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경우 초급반이 130원, 중급반이 160원, 고급반이 190원이다. 

    경북 포항시 북구에서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여·36) 씨는 학생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만 파트타임 강사 4명을 고용한다. 김씨는 “법적으로 임대료 인상 5% 상한선이 있지만, 임대인은 작년에 임대료를 30% 인상했다.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바나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