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도 넷플릭스 작품
DVD 대여점 이어 케이블 방송사도 밀어낸 ‘공룡’
전 세계 스타 감독·배우와 손잡고 영화계 위협
‘넷플릭스에 종속될라’ 우려도, 세계적인 한국 OTT 업체 생겨나야
[tvN 제공]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는 ‘미스터 션샤인’에 약 300억 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는 어쩌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제작비가 너무 비싸 지상파 편성이 불발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넷플릭스가 투자를 결정하면서 ‘미스터 션샤인’은 겨우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넷플릭스의 위력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넷플릭스는 미국 최대 ‘OTT’ 업체다. OTT란 ‘Over The Top’의 약자로 TV 셋톱박스(Top)를 넘어선(Over)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뜻이다. 한 달에 적게는 7.99달러만 내면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영화와 TV 프로그램 등 수천 개의 영상 콘텐츠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를 무기로 넷플릭스는 미국 방송업계를 석권한 데 이어 해외시장도 활발하게 개척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시초는 DVD 대여회사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1997년 비디오와 DVD를 우편·택배로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로써 미국 내 비디오 대여 시장에는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비디오 대여 서비스 1위 업체이던 ‘블록버스터’는 신생 기업 넷플릭스의 반격에 하루아침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빌려간 비디오를 약속한 기간 내에 반납하지 않으면 연체료를 물어야 하는 블록버스터에 비해 넷플릭스는 월 구독료를 내면 얼마든지 새로운 비디오를 빌려볼 수 있었다.
넷플릭스는 어떻게 공룡이 됐나
넷플릭스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7년이다. 헤이스팅스는 처음 비디오 대여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인터넷의 미래를 낙관했다. 넷플릭스라는 이름도 인터넷(Net)과 영화(Flicks)를 합쳐 만든 것이다. 결국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와 경쟁하다 밀려 2013년 파산하고 말았다. 넷플릭스가 업계를 뒤흔든 첫 번째 사건이다.그 무렵 미국 케이블 방송사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보느라 케이블 채널을 끊기 시작한 것이다. ‘코드커팅(Cord Cutting)’이라는 신조어도 이때 생겨났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넷플릭스는 2012년부터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013년 방송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기존 방송사의 유명 시리즈들을 제치고 에미상 등을 휩쓸며 콘텐츠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넷플릭스는 ‘캐시 버닝(현금을 태우다)’이라 할 정도로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지난해 쓴 제작 예산만 50억 달러(한화 약 6조 원)에 달한다. 올해는 80억 달러(한화 약 9조 원)를 투입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막대한 규모의 부채로 업계의 우려를 사기도 했지만 넷플릭스는 시장 독식 승자가 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나갔고 이는 성과로 이어졌다. 올해 에미상 시상식에서도 거대 케이블 방송인 HBO보다 더 많은 후보작을 내면서 업계를 또 한 번 충격에 빠뜨렸다.
‘옥자’, 넷플릭스 제작 영화 중 최초로 칸 입성
산골 소녀 미자와 슈퍼 돼지 옥자의 우정과 모험을 그린 영화 ‘옥자’와 감독 봉준호. [NEW 제공, 동아DB]
하지만 넷플릭스가 전통적 영화제작사가 아닌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라는 점 때문에 칸영화제 진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프랑스 극장협회 등은 “극장 상영을 하지 않는 영화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할 수 없다”며 넷플릭스의 유통 방식을 문제 삼았고, ‘앞으로는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는 칸영화제에 참가할 수 없다’는 새로운 규칙까지 생겨났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역전되고 말았다. 칸영화제가 넷플릭스 영화를 비경쟁 부문에 초청했으나 넷플릭스가 이를 거부한 것. 이 때문에 칸 마켓에서 화제작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많은 유명 감독과 배우가 넷플릭스와 손잡았기에 자연스럽게 생긴 현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영화계에서는 ‘넷플릭스가 칸마저 굴복시켰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넷플릭스의 엄청난 성장세는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매출 규모는 2014년 5조9000억 원에서 2017년 12조600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 5년간 연평균 35% 증가세를 보였다. 가입자 수도 2002년 70만 명에서 2005년 360만 명, 2017년 1억 명을 돌파, 올해는 1억2500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계적인 금융투자회사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는 2030년 넷플릭스 가입자 수를 3억6000만 명으로 점친다.
막대한 자금력과 유통망으로 한국 시장 공략
넷플릭스가 처음 제작한 한국 예능 프로그램 ‘범인은 바로 너!’ 제작발표회 현장. [스포츠동아]
넷플릭스는 영화 ‘옥자’에 이어 유재석을 앞세워 만든 예능 프로그램 ‘범인은 너!’, 드라마 ‘킹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천계영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도 오랫동안 제작을 준비 중이다. 무엇보다 투자 금액이 막대하다. ‘옥자’에는 한국 영화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600억 원이 투입됐고, ‘킹덤’에는 회당 15억~2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들었다. ‘범인은 바로 너’ 역시 스태프만 200명 넘게 투입됐는데, 이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 역대 최대 규모다. 오는 12월 개봉 예정인 ‘킹덤’은 아직 첫 방송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2 제작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박찬욱, 봉준호 감독과 함께 영화 ‘설국열차’를 드라마로 만들 예정이며 YG엔터테인먼트와 함께 ‘YG전자’를 제작 중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라바’의 스핀오프 시리즈인 ‘라바 아일랜드’도 제작이 예정돼 있다. 현재까지 넷플릭스가 방영권을 확보한 한국 콘텐츠는 무려 550여 개이며, 투입된 제작 비용만도 1500억 원가량 된다.
당초 넷플릭스는 싱가포르에 위치한 아시아태평양 본부에서 한국 시장을 관리했지만 최근에는 한국 시장에 집중하기 위해 직원을 모집하며 서울 상주팀을 꾸리고 있다. 이를 통해 넷플릭스는 한국을 아시아 콘텐츠 시장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넷플릭스가 ‘현금을 태울수록’ 제작자들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스튜디오드래곤, 제이콘텐트리 등 국내 주요 제작사의 경우 주가도 넷플릭스주의 등락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투자자 역시 넷플릭스의 국내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스터 션샤인’을 보더라도 넷플릭스의 거침없는 투자는 분명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콘텐츠의 질적 수준뿐 아니라 창작자들의 작업 여건 향상에도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범인은 바로 너’ 조효진 PD는 넷플릭스 투자와 관련해 “연출과 제작을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낸 바 있다. 주간 단위로 방송되는 국내 지상파 예능에서는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세트 제작, 사후작업 등이 쉽지 않지만, 넷플릭스 제작물은 사전 제작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넷플릭스는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소수 취향의 콘텐츠에도 투자가 가능하다. 이를 잘 이용하면 국내 콘텐츠의 다양화는 물론 해외 시장 개척도 손쉽게 이룰 수 있다. 실제로 드라마 ‘비밀의 숲’은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뽑은 최고의 TV시리즈 중 하나로 선정되며 세계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또한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남자 주인공인 정해인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OTT 업체 나와야
세계 최대 동영상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공동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사진 왼쪽)와 테드 사란도스 최고콘텐츠책임자가 2016년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콘래드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동아DB]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아직까지 넷플릭스의 국내 가입자 수는 30만 명에 불과하지만 향후 넷플릭스의 공격이 더욱 세지면, 현재 국내 통신사에서 운영하는 동영상 서비스의 침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SK브로드밴드 ‘옥수수’는 넷플릭스에 대항해 올해 콘텐츠 제작 예산을 100억 원으로 대폭 늘리긴 했지만, 규모 면에서 넷플릭스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넷플릭스는 이미 유럽에서 현지 2, 3위권 동영상 스트리밍 사업자와 제휴해 플랫폼 시장에 진출한 뒤 ‘킬러 콘텐츠’를 통해 시장을 제패했다. 한국에서도 LG유플러스, 딜라이브 등과 제휴하는 등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내 영상 콘텐츠 시장을 위협하는 존재가 비단 넷플릭스 하나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디즈니 등 기존 공룡 업체의 OTT 반격이 본격화하고 있는 데다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콘텐츠 시장 진출도 미디어 산업을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다. 유튜브의 성장세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OTT의 미래는 확고하다. 지난해 연령별 OTT 이용률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10대 58.4%, 20대 62.8%, 30대 50.9%를 기록했다. 이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OTT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건 ‘OTT 시대’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제대로 된 OTT 업체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놓고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 한다.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OTT 습격에 국내 콘텐츠 업계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