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20대 리포트

대학 수업 중 ‘땡땡이’ 지켜보니…

강의시간 중 노트북 ‘딴짓’ 백태

  • | 한유진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mididogs1@nanmail.net

    입력2018-10-0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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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기하는 척 ‘게임’ ‘인터넷 쇼핑’ ‘유튜브 감상’

    • ‘PC버전 카톡’을 ‘엑셀 파일’로 위장

    • 다른 수업 과제 준비, ‘인터넷 서핑’

    • “씁쓸한 풍경” “강의할 의욕 잃어”

    • “수업 내용 뻔하니 딴짓”

    학기 중 어느 날 서울 고려대 우당교양관. 강의실마다 노트북을 들고 온 수강생으로 가득했다. 손으로 공책에 직접 필기하는 학생은 드물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학생들 손에도 노트북을 담은 전용 가방이 들려 있다. “노트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학생은 드물어요. 노트북은 대학생의 상징이죠.” 고려대 미디어학부에 다니는 김모(24) 씨가 하는 말이다. 

    필자는 서울 소재 대학 학생들이 강의 시간에 노트북으로 주로 무엇을 하는지 반복적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상당수 학생은 수업과 무관한 딴짓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당교양관에서 진행된 한 교양과목 수업. 강단 쪽에서 봤을 때, 무표정한 얼굴로 노트북 자판을 누르거나 화면을 보는 수강생이 많았다. 교수가 하는 말을 필기하거나 강의 자료를 띄워놓고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교실 뒤쪽에서 보자, 풍경이 180도 달라졌다. 많은 학생은 노트북으로 ‘딴짓’을 했다. 

    어느 화요일 오후 고려대 법학관 구관에선 문과대학 전공수업이 진행됐다. 계단식 강의실에 학생이 60명 남짓 있었다. 이 중 노트북을 쓰지 않는 학생은 9명뿐이었다. 이날은 학생들의 발표가 있었다. 교수가 먼저 관련 내용을 설명할 때 강의 자료를 노트북에 띄운 학생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수업 자료 띄운 학생 세 명뿐”

    강의시간 중 노트북으로 게임을 즐기는 서울 모대학 남학생(왼쪽)과 영화를 보는 서울 모대학 여학생.

    강의시간 중 노트북으로 게임을 즐기는 서울 모대학 남학생(왼쪽)과 영화를 보는 서울 모대학 여학생.

    교수 바로 앞에 앉은 한 남학생은 인터넷 쇼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어폰을 사려는 듯 다양한 이어폰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다른 남학생도 노트북으로 쇼핑을 하고 있었다. 이 학생은 스포츠 의류를 사고 싶은 모양이었다. 



    곧이어 학생들의 발표가 시작됐다. 발표 내용을 노트북에 띄운 학생은 세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딴짓을 했다. PC버전 카카오톡을 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몇몇 학생은 카카오톡 대화를 엑셀 파일로 위장하고 있었다. 카카오톡에서 제공하는 엑셀 테마를 사용한 것인데,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엑셀 파일 수정에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학생들은 다른 수업에 제출할 과제를 하거나 습관적으로 인터넷 서핑을 했다. 한 남학생이 온라인 레이싱 게임인 ‘카트라이더’를 켰다. 그는 나머지 시간 내내 도로 위를 신나게 질주했다. 이 남학생 뒤편에 앉은 다른 남학생도 노트북으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했다. 

    목요일 어느 날 서울 연세대 과학관의 이과대학 모 전공 수업. 계단식 강의실에 학생 30명이 앉아있었다. 노트북을 켠 학생은 8명이었다. 이 수업은 교재로 진행되기에 노트북이 필요 없었다. 이 학생들은 모두 딴짓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사용했다. 

    노트북은 학생과 교수 사이의 ‘벽’처럼 쓰이고 있었다. 학생 두 명은 노트북을 칸막이 삼아 머리를 숙이고 자고 있었다. 다른 두 명은 교수의 눈을 피해 노트북 뒤에 휴대전화를 숨겨 사용했다. 맨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은 아이패드로 유튜브 영상을 감상하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봤다. 수업이 끝날 무렵, 교수는 학생들에게 질문이 있는지 물었다. 모두 말없이 책상만 쳐다봤다.

    학생과 교수 사이의 벽

    다음 날 오전 서울대 두산인문관 강의실에서 교양수업이 있었다. 학생이 50명 안팎 앉아 있었다. 5명을 빼고 모두 노트북을 앞에 두고 있었다. 다음 시간에 기말 시험이 있어서 그런지, 수업 초반 학생들은 강의자료를 올려두고 필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딴짓을 시작했다. 대부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했다. 한 남학생과 한 여학생은 페이스북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카톡을 주고받았다. 1분에 한 번씩 카톡을 들락날락하는 학생도 있었다. 

    수업이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학생 두 명이 더 대담해졌다. 한 남학생은 ‘쥬라기공원’ 영화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여학생은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이들은 무음으로 하는 대신 자막을 보며 영상을 이해했다. 기말고사가 코앞임에도, 딴짓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물론 수업에 진지하게 참여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는 “수업 중에 노트북으로 딴짓하는 학생들로 가득 찬 대학 강의실을 보면 씁쓸하다”고 말한다. 고려대 미디어학부에 재학 중인 김모(24) 씨는 수업시간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한 휴대전화에 필기를 한다. 김씨는 “수업시간에 노트북으로 수업과 무관한 행위를 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꼬집었다. 

    연세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조모(27) 씨는 “재학 시절 맨 앞자리에 앉아 전공수업 내내 웹툰을 보는 학생이 있었다. 그 화면이 계속 어른거려서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몇몇 교수는 강의 시간 중 노트북 사용을 금지하기도 한다. 서울 한 대학의 K 교수는 스마트폰 사용이 활성화하던 시점부터 학생들의 딴짓이 훨씬 심해져 그즈음 노트북 사용을 금지했다고 한다. K 교수는 필자에게 “학생들이 딴짓하는 게 안 보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한두 명만 딴짓을 해도 신경이 쓰이고 수업 의욕이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또한 K 교수는 “노트북으로 딴짓하는 건 강의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도 하고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들을 방해하는 행위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업 중 노트북으로 딴짓하는 학생 중 상당수는 “수업을 안 들어도 강의 내용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려대 재학생 안모(24) 씨는 “강의 정보가 파일로 제공되는 경우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어 딴짓을 하게 된다. 강의 내용이 생소하면 딴짓을 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재학생 원모(24) 씨는 “뻔한 정보가 주어지는 강의에서 딴짓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했다. 원씨는 “쉬운 수업이어도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필기를 열심히 한다”고 했다. 연세대 재학생 이모(24) 씨는 “시험이 없고 보고서만 쓰면 되는 수업에서 딴짓을 많이 한다”며 “보고서는 인터넷이나 도서관에서 찾은 정보로 충분히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학 수업이 아예 필요 없다”

    몇몇 학생은 “대학 수업이 아예 필요 없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연세대 수학과 재학생 정모 씨는 “대학 공부에 수업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수업을 열심히 듣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 전공 교재를 보고 알아서 독학하는 게 태반이다. 심지어 ‘강의 내용을 알면 수업 오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말하는 교수도 있었다. 나도 수업보다 교재와 인터넷을 통해 공부하는 편이다.” 

    다른 한 대학생도 “수업 중 노트북으로 딴짓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면서 “대학 수업이 더 이상 전공 지식에 대한 유일한 정보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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