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총체적 난국 J노믹스

취준생이 느끼는 ‘월 3000명 취업자 증가 시대’

“끝이 보이지 않는 고용 빙하기에 갇혔다”

  • 입력2018-09-26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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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핸 경력자만 한두 명 뽑아”

    • “3000명 소식 듣고 더 불안”

    • “학점, 어학, 실무 경력 갖춰도 바늘구멍”

    • “‘이번 달 어떻게 살까’ 전전긍긍”

    찌는 무더위가 지나고 나니 역대급 한파가 왔다. 청년 취업 시장 이야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취업자 수는 2690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000명 증가에 그쳤다. 취업자 증가 수는 7월부터 두 달째 1만 명에 미치지 못했다. 8월의 ‘3000명’ 통계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우리는 취업준비생들이 이런 월 3000명 취업자 증가 시대를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봤다. 이를 위해 공기업 취준생, 공무원 취준생, 사기업 취준생 세 범주로 나눠 만났다.

    공기업 취준생

    금융계통 공기업 입사를 희망하는 이모(26·서울 성동구) 씨는 명문대에서 상경계열 학과를 복수전공했고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요즘 인턴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씨는 “인턴 경험이 있는 지원자를 선호한다”는 공기업 인사담당자의 언론 인터뷰를 본 뒤 인턴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그는 “지난해에 비해 올해 취업문이 더 좁아진 것을 피부로 느낀다. 공기업들이 자사 인턴을 정규직으로 잘 뽑지 않으면서 타사 인턴 경력을 기본 스펙으로 요구하는 것 같다. 힘이 많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짐”

    대학에서 철도 분야를 전공한 권모(26·경기 의왕시) 씨는 1년째 구직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14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한 군데도 합격하지 못했다. 요즘엔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 NCS(국가직무능력표준)이다. 정부가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능력중심사회를 구축할 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NCS 성적이 공기업 채용의 중요 기준이 됐다. 고졸 학력의 취준생까지 가세하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권씨는 “NCS는 고등학교만 나오면 풀 수 있는 난이도”라면서 “대학 4년 공부를 부정당한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대학 전공자와 고졸 취준생을 같은 선상에서 경쟁시키는 것이 올바른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학점, 외국어 성적, 자격증, 인턴 경력에다 이제 NCS까지 준비해야 해 벅차다. 다 갖춰도 입사하리라는 보장이 없어 암담하다”고 말했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다른 취준생은 “NCS를 준비하는 학원까지 나왔다. 사교육만 늘어난 셈”이라고 했다. 



    공기업 시험을 준비하는 많은 취준생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추진되면서 공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에 소극적인 것 같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운이 따르지 않는 한 취업이 안 될 것 같다”고 말한다. 한 취준생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고용 빙하기에 갇혔다”고 했다.

    공무원 취준생

    순경 공채를 준비하는 이모(여·29·강원 춘천시) 씨는 3년 동안 순경 공채 필기시험에 7번 응시했고 최종시험에서 2번 떨어졌다. 이씨는 “월 취업자 증가 수가 30만에서 3000으로 줄었다는 소식을 듣고 더 불안해졌다. 29세 고졸인 내가 이 순경 공채에 합격하지 않으면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이런 불안감을 안고 사는 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공무원 취업준비생 중 상당수는 시험 준비로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데 따르는 어려움도 호소한다. 이씨도 “옛 친구가 그리워 연락해보고 싶지만 백수와 만나기를 꺼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공부할 분량도 많고 이런 자괴감도 들어 연락을 끊게 된다”고 했다.

    “공공 일자리 늘었다 생각 안 해”

    이모(26·전북 전주시) 씨는 학원 강사를 하면서 역사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한다. 이씨는 “시험 대비 학원에 등록금을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아르바이트로 인해 체력이 달린다”고 말했다. 그는 “학령인구 감소로 교사가 남아돌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갈수록 취업문이 좁아지는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많은 취준생이 이씨처럼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생활비를 벌면서 취업 준비를 한다. 이씨는 ‘이번 달은 또 어떻게 살까’ ‘과연 교사가 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한다. 

    뒤척거릴 수도 없는 비좁은 침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공동 주방을 쓰는 고시원에서 이모(여·27) 씨는 견디고 또 견뎠다.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꼬박 3년을 쪽방 고시원에서 버티며 대기업 취업을 준비했다. 그러나 한 곳에도 합격하지 못하고 나이만 들었다. 이씨는 “나이 많은 여자 응시생은 안 뽑아준다”는 괴담을 들었다. 

    이씨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 일자리 81만 개 증원’ 공약에 희망을 걸었다. 캄캄한 고시원 시절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이씨의 기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졌다. 다른 분야는 약간 늘었다지만, 이씨가 준비한 분야는 오히려 줄었다. 배신감을 느낀 이씨는 더 악착같이 준비했고 마침내 합격했다. 

    이씨는 “‘공공 일자리가 늘어 취업이 쉬웠을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억울하다”고 말했다. 

    “내가 붙은 분야의 채용 인원은 지난해보다도 적었어요. 오랫동안 절박한 심정으로 준비했기에 붙은 거죠. 공공 일자리가 늘어 취업 상황이 나아졌다는 생각은 안 해요. 내년에도 공무원 일자리를 늘린다는데 과연 실질적으로 얼마나 늘까 의문이 들어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기업 취준생

    서울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졸업을 앞둔 이모(여·26) 씨는 요즘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 사기업 취업을 계속 준비할지, 공무원 시험 준비로 돌릴지 확신이 안 서기 때문이다. 원래 이씨는 기업의 재무·관리직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자율적으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업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갈 만한 데가 자꾸 줄어"

    재무가 적성에 맞은 이씨는 전공 과목도 재무 위주로 수강했고 투자 동아리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여러 공모전 수상, 투자상담사 자격증 취득까지 웬만한 직무 관련 스펙도 쌓았다. 다소 늦게 졸업해도 곧 취업이 되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취업 전선에 뛰어든 올해 이씨는 고용 빙하기를 체험한다. 이씨는 올해 상반기부터 기업 공채에 지원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공채 공고 자체가 별로 뜨지 않았다. 재무·관리직을 뽑는 기업이 더러 나왔지만 이씨가 원하는 곳은 없었다. 

    이씨는 “내가 원하는 급여 수준은 소박한 편이다. 눈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년제 대학 나와 이 정도는 바라도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갈 만한 데가 자꾸 줄어요. 지난해까지 공채 공고를 내던 회사들이 올해 경력직만 한두 명 뽑습니다. 제가 볼 때, 대학교육까지 마친 학생들이 만족할 일자리는 지금 고용 시장에 별로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 채용 확대 소식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말 1만여 명 증원 계획을 내놓았다. 고용률이 최저치를 찍는 지금, 이씨는 원래의 꿈을 접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까 고민 중이다. 이씨는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공무원 말고도 많은데, 공무원만 늘린다? 나라가 청년들에게 꿈을 접으라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취업 준비 길어지면서 경제적 어려움 가중

    사기업 채용 시장에서 구인하는 업체가 갑의 위치에 오르면서, 취준생들 사이에선 “거긴 얼굴도 본다”는 이야기가 많이 돈다. 이 때문에 사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엔 성형수술을 단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외국계 B사에서 해외영업직 인턴 일을 하고 있는 임모(여·25) 씨는 지난겨울 쌍꺼풀 수술을 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기 전에 꼭 수술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임씨는 “영업직은 특히 얼굴을 많이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의 얼굴이 되어 계약을 성사시켜야 하는 것이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서울 K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조모(28) 씨는 4점대를 넘는 학점, IBK 자산관리 발표회 입선 경력, 미래에셋 인턴 경력, 한국사 1급 자격증, 컴퓨터활용능력 1급 자격증을 갖췄다. 그런데도 금융권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자 조씨는 외모에 문제가 있나 생각했다고 한다. 

    “‘I은행이 얼굴을 많이 본다’는 둥의 말이 많이 돌아요. S은행 직원에게 직접 들었는데, ‘착한 인상을 가진 사람을 먼저 뽑았다’고 해요. 근거 없는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성형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니 암담했어요.” 

    우리가 취재한 결과,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취준생 중 상당수는 주거문제를 비롯한 경제 문제에 심각하게 직면해 있었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인 김모(25·충북 청주시) 씨는 서울 대학가 인근 10평 남짓한 원룸에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산다. 김씨는 “2년째 취업 준비를 하면서 금전 부담이 커졌다. 월세라도 아끼려고 원룸에 3명이 살면서 월세를 나눠 내고 있다”고 말했다. 

    졸업을 유예 중인 20대 후반의 서강대 경제학과 재학생 김모 씨는 “부모도 내 취업 준비를 돕느라 함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나이 먹고 부모님께 손 벌리기는 싫지만 취업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어학 점수는 기본이므로 영어학원도 다녀야 하고 스터디 그룹 활동 하려면 장소 대관 비용에 카페 음료 값이 나가죠. 기업마다 다른 직무적성검사를 준비하려면 책도 사야 해 책값도 만만치 않아요. 시험 대비 강의도 듣고 싶고 모의 테스트도 해보고 싶은데 다 돈이 들죠.” 삼성,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의 직무적성검사 수험서는 대부분 2만 원을 상회한다. 기업별 직무적성 모의 테스트를 보는 데엔 1만6000원 정도가 든다. 삼성 실전 문제를 풀이해주는 강의 수강료는 6만6000원에 달한다. 

    김씨는 이어 “올해 들어 물가도 가파르게 올라 밖에서 사 먹기도 두렵다. 5000원 이내로 한 끼 때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한 친구들은 차를 살까 고민하는데 나는 밥 한 끼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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