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벤투 사단 한국 축구 부흥시킬까

“히딩크처럼 전 영역 자극 줄 것”

  • 입력2018-09-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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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성적 부진? 되레 명예회복 의지 클 것

    • 독자적 훈련 방법으로 전성기 포르투갈 축구 이식 기대

    • 첫 소집부터 전문화·분업화 훈련 눈길

    • 벤투의 축구 철학, 한국 축구 DNA와 닮아

    한국 축구 새 사령탑 벤투 감독. [동아DB]

    한국 축구 새 사령탑 벤투 감독. [동아DB]

    크지 않은 키와 각진 얼굴에서 완고함이 느껴졌다. 짧고 단정하게 자른 머리칼, 종종 미소를 보이지만 대체로 무뚝뚝한 표정은 그런 이미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큰 눈을 번쩍이며 답변하는 그에게서 미사여구(美辭麗句)나 농담을 발견하긴 어려웠다. 시종일관 진중했다. 지난 8월 23일 취임 기자회견을 열고 본격적으로 한국과 마주한 파울루 벤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첫인상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대표팀이 9월 4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을 했다. 벤투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지켜보며 코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대표팀이 9월 4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훈련을 했다. 벤투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지켜보며 코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0으로 꺾는 대파란을 일으켰음에도 16강 진출에 실패한 한국 축구는 다시 외국인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이 50여 일에 걸친 두 차례 유럽 출장에서 10여 명의 유명 감독을 면접한 뒤 최종 택한 인물이 전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벤투다.

    하락세의 명장, 17년 전 히딩크도 그랬다

    파울루 벤투  감독과 그의 코치진이 8월 23일 고양 엠블호텔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동아DB]

    파울루 벤투 감독과 그의 코치진이 8월 23일 고양 엠블호텔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동아DB]

    벤투 감독 선임이 알려진 뒤 여론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당초 팬들로부터 인기가 높은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대표팀 감독, 키케 플로레스 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 등과 협상했다는 소식이 보도돼 한껏 고조된 기대감이 일순간 식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케이로스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의 러브콜을 이란 잔류 협상에 활용한 케이스였다. 유럽 잔류 의지가 강한 키케 감독은 협상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후안데 라모스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과도 진지한 협상을 했지만, 김판곤 위원장은 벤투 감독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다. 1969년생으로 홍명보, 황선홍과 같은 연배인 벤투는 아직 40대인 젊은 감독이다. 현역 시절 강인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그는 2002 FIFA 한일월드컵에 참가해 한국과의 조별리그에도 출전한 바 있다. 그는 2004년 현역 은퇴 후 자신의 마지막 소속팀이던 포르투갈 명문 스포르팅 CP의 유스 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금방 능력을 입증한 그는 2년 뒤 스포르팅 1군팀 정식 감독으로 승격해 4년간 139승 51무 39패(승률 60%)를 기록하고 4개의 컵대회에서 우승했다. 

    2010년부터는 포르투갈 대표팀을 맡아 자신의 지도자 커리어 황금기를 썼다. 유로 2012에서 포르투갈은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4강에 올랐다. 특히 그 대회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과의 준결승전은 명승부로 꼽힐 정도로 감독의 능력이 발휘된 경기였다. 호날두라는 슈퍼스타를 보유했지만 원맨팀으로 불리던 포르투갈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이 경험을 토대로 4년 뒤 유로 2016에서 우승을 거뒀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도 이끌었다. 유럽 예선에서 러시아에 밀려 F조 2위를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한번 명승부를 펼치며 스웨덴을 누르고 본선에 올랐다. 독일, 미국, 가나와 함께 죽음의 조로 불리던 G조에 속한 포르투갈은 1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득실차에 뒤져 16강에 오르지 못했다. 독일과 치른 1차전에서 수비수 페페가 상대 공격수 토마스 뮐러를 머리로 가격해 퇴장당하며 기록한 0-4 대패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벤투 감독은 월드컵 이후에도 팀을 맡았지만 유로 2016 예선 첫 경기 패배에 여론의 비판이 겹치자 자진 사임했다. 

    벤투 감독에 대한 국내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은 지난 2년간의 이력 때문이다.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물러난 뒤 휴식을 취한 그는 2016년 5월 브라질의 명문 크루제이루를 맡았지만 2개월 만에 사임했다. 그 뒤 그리스 최강 올림피아코스에 부임한 벤투 감독은 채 한 시즌을 채우지 못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충칭 리판에서도 7개월 만에 물러났다. 사임과 경질의 반복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한국보다 축구 수준이 떨어지는 중국에서 실패했다는 것에 부정적 반응이 이어졌다. 

    하지만 실패 이유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크루제이루는 브라질에 닥친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계약을 해지했다. 그리스 올림피아코스에서는 리그 조기 우승을 눈앞에 두고 핵심 선수를 팔아버린 구단주를 비판했다가 경질됐다. 강등권의 팀 충칭은 외국인 선수를 중심으로 대대적 투자를 약속하며 벤투 감독을 데려왔다. 하지만 이니에스타 영입이 무산되는 등 혼란이 이어지자 실망한 벤투 감독이 팀을 떠났다.

    유럽의 새로운 대세가 된 포르투갈 축구

    김판곤 위원장은 선임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외부 요인으로 이어진 벤투 감독의 실패에 대해 설명하며 “실력은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지원하고 믿어주면 결과를 낼 수 있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되레 최근 실패가 한국에서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의지와 책임감으로 이어질 걸로 본 셈이다. 실제로 벤투 감독은 충칭에서 받던 연봉의 절반 수준으로 대한축구협회와 계약했다. 

    이는 2002 FIFA 한일월드컵을 성공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의 경우와 닮아 있다. 히딩크 감독은 1998 FIFA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으로 이끌며 상종가를 쳤다. 이에 세계 최고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가 그를 영입했지만 8개월 만에 수뇌부와의 갈등, 성적 부진이 겹쳐 사임했다. 히딩크 감독은 레알 베티스에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성적 부진으로 3개월 만에 경질됐다. 스페인에서 연이어 실패한 히딩크 감독은 2000년 말 한국이라는 낯선 땅으로 왔다. 1년 6개월 뒤 그는 대성공을 거두며 유럽으로 금의환향했다. 

    김판곤 위원장은 “유럽 명장들은 아시아에서 일하는 것을 본인 경력의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 벤투 감독처럼 스크래치가 있는 인물이 오는 게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벤투 감독 역시 “아시안컵 우승, 그리고 월드컵에서 성공해 나와 한국 축구 모두 한 단계 올라섰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취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벤투 감독 선임에는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선진 축구에 대한 직접 경험이다. 지난 10년 동안 세계 축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아 끊임없이 변화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점유율의 축구가 몰락하고 공수 전환에서 빠른 속도가 전술 테마로 등장했다. 한국은 이런 흐름을 좇는 속도가 늦다. 선수들의 유럽 진출은 과거보다 늘었지만 지도자들의 해외 진출은 일본, 중국 등 아시아가 한계다. 2002 FIFA 한일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이 남긴 유산은 4강 신화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한 한국인 코치들은 히딩크 감독의 훈련과 전술 방법론을 K리그 등에 퍼뜨렸다. 이미 유럽에서는 보편적이던 압박 축구와 피지컬 훈련이 그때부터 국내에서도 일반화됐다. 

    최근 포르투갈은 기존의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축구 전술과 방법론을 리드하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포르투갈 축구는 ‘전술 주기화’라는 개념을 통해 유럽 축구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다. 전술 주기화는 경기 혹은 대회를 준비하며 정해진 기간 내에 장기, 중기, 단기의 훈련으로 세분화해 훈련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방식을 말한다. 특히 철저하게 전술에 초점을 맞춰 피지컬, 기술, 분석, 심리 등의 요소를 맞춘다. 실제 경기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맞춰 모든 훈련을 진행하는 것이다. 과거 피지컬 훈련이 공과 상관없는 집중 트레이닝을 통한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면, 포르투갈 방식은 실제 경기 상황과 닮은 상황에서 공을 갖고 하는 훈련에서 대체 방법을 찾는다. 포르투 대학의 비토르 프라디 교수가 제시한 이 이론은 젊은 지도자들 사이에서 번져갔다.

    15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주제 무리뉴는 이 훈련 개념을 가장 잘 활용한 감독이다. 유럽 축구에 신선한 충격파를 준 무리뉴는 어느덧 50대 중반의 감독이 됐다. 지금도 레오나르두 자르딩,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같은 포르투갈 출신의 젊은 감독들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벤투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포르투갈은 독일과 더불어 유럽에서도 철저한 실력주의로 지도자를 양성한다. 선수 시절 무명이었거나 아예 경력이 없어도 프로팀을 맡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벤투 감독의 경우 국가대표팀서 긴 시간 활약했지만 동시대의 루이스 피구, 후이코스타 같은 특급 스타는 아니었다. 그도 유스팀을 맡아 실력을 증명하며 성장한 인물이다. 

    포르투갈 축구의 특징은 전술 주기화 이론에 근거한 훈련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각 파트에서 전문가가 코치로 일한다는 점이다. 최근 유럽 축구에서는 1명의 감독 아래 다수의 코치가 장시간 함께 일하는 사단 형태 운영이 대세다. 이 역시 무리뉴 감독을 비롯한 포르투갈 지도자들이 일으킨 유행이다. 

    김판곤 위원장은 벤투 감독을 선임한 이유 중 하나가 그와 장시간 함께한 코치들의 전문성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벤투 감독은 2명의 필드 코치와 각각 1명인 피지컬 코치, 골키퍼 코치 등 총 4명과 함께 한국에 왔다. 여기에 2명의 한국인 코치가 추가돼 총 7명의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상시 운영된다. 과거엔 월드컵 직전이 아니면 보통 4~5명 규모였고, 피지컬 코치는 대회에 임박해 선임했다.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은 아르무아 코치 1명만 동행했는데, 재임 기간 내내 그의 능력은 의심받았다. 일각에서는 슈틸리케 감독의 말벗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9월 3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비를 맞으며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동아DB]

    파울루 벤투 감독이 9월 3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비를 맞으며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동아DB]

    지난 9월 3일 처음 선수들을 소집한 벤투 감독은 종전에 보지 못한 전문적이고 분업화한 훈련을 진행해 눈길을 모았다. 한 번에 2개 훈련장을 사용해 영역별 훈련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다. 각 훈련은 담당 코치들이 주도했다. 벤투 감독은 전체를 지휘하고 상항에 맞게 포인트를 일러주는 역할을 했다. 훈련 초반 워밍업과 피지컬 훈련을 마친 후 곧바로 미니게임이나 운동장 절반을 쓰는 하프게임을 통한 포지셔닝 훈련과 전술 훈련을 실시했다. 이전 감독들은 그사이에 패스게임을 의례적으로 넣었지만, 벤투 감독 체제에서는 진행하지 않는다. 실제 전술에 필요한 훈련 중심으로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유럽 생활을 오래 했고 세계 최고 감독인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훈련과 전술을 토트넘에서 경험하고 있는 손흥민은 벤투 감독의 훈련 프로그램에 대만족을 표시했다. 그는 “독일과 영국에서 경험한 것과 비교해도 인상 깊다. 큰 틀에서 어떻게 할지를 정확히 얘기해줬다. 훈련할 때는 디테일하게 얘기해줘 감명 깊었다”라고 말했다. “축구에서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좋은 프로그램을 갖고 과정을 밟으면 결국 경기장에서 그게 나온다”라며 벤투 사단을 대거 영입한 게 바른 방향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과거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할 때부터 선수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몇몇 선수는 “K리그에서 경험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의견도 냈다. 벤투 감독 선임은 직접적으로는 대표팀에 오는 선수들, 간접적으로는 한국 축구 전 영역에서 일하는 지도자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일이다. 김판곤 위원장은 벤투 감독 선임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당시 “포르투갈은 현재 유럽 축구의 새로운 대세다. 좋은 지도자를 계속 배출하고 있고, 특별한 훈련 방법론을 다른 나라가 배우려고 한다. 벤투 감독과 그의 코치들을 통해 그 부분을 한국 축구가 흡수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벤투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축구 철학을 밝혔다. 그는 “90분간 끊임없이 뛰고, 공간을 창출하며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팀의 정체성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수비에서는 강도 높은 압박이 이뤄지고 그것이 시발점이 돼 공격적인 축구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 벤투 감독이 이끌던 포르투갈 대표팀도 4-3-3 포메이션과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압박 수비와 측면을 이용한 빠른 공격 전환이 돋보였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벤투 감독의 철학은 2002 FIFA 한일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을 통해 한국이 찾은 DNA와 닮았다는 평이다.

    “벤투 감독에 대한 믿음과 의심 공존해야”

    팀을 최우선으로 삼고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점도 히딩크와 비슷하다. 벤투 감독은 대표팀 소집 첫날 선수단에 지각하지 말 것, 식사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 것, 대표팀 소집 기간엔 복장을 맞출 것을 지시했다. 포르투갈 대표팀 시절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공격수 나니의 휴대전화가 식사 중에 울리자 압수해 그대로 휴지통에 버린 일화도 남겼다. 히카르두 카르발류, 조제 보싱와 등 유명 선수들이 팀을 위해 헌신하지 않자 과감히 퇴출시킨 일도 있다. 호날두는 과거 벤투 감독에 대해 “그는 포르투갈 대표팀을 진정한 하나의 팀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벤투 감독의 임기는 2022년 11월 열리는 FIFA 카타르 월드컵까지 4년 4개월이다. 지금까지 한국 축구는 새로운 감독을 선임할 때마다 월드컵의 시작과 끝을 동일 인물로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2년 9개월 동안 팀을 이끈 게 역대 가장 긴 기간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건강한 믿음과 의심이 공존해야 한다. 

    김판곤 위원장을 중심으로 대한축구협회는 벤투 감독을 최대한 지원하고, 작은 패배에 흔들리지 않는 인내심을 보여야 한다. 동시에 슈틸리케 감독 때처럼 작은 성공에 마냥 찬사를 보내는 것도 위험하다. 성공에 가려진 문제점은 없는지 의심하고 조기에 해결해야 한다. 이번엔 용두사미가 돼선 안 된다.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벤투 감독과 함께 꽃길을 걷기 위해서는 그전에 펼쳐질 가시밭길부터 차분하게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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