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인터뷰

‘한국진보세력연구’ 펴낸 언론인 남시욱

“위장된 진보가 안보·통일문제 좌지우지하면 국가적 재앙”

  • 입력2018-10-03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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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민주주의 흐름 끊기고 구태의연·교조적 좌파 득세

    • 급진적 좌파전위조직 구성원이 정치인으로 성장해 진보정당 활동

    • 성공한 정권 되려면 위장된 진보의 그릇된 이념·사상과 결별해야

    • 보수 후보로 김동연 경제부총리 괜찮다는 사람 있어

    남시욱(80) 화정평화재단 이사장이 ‘한국진보세력연구’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초판이 나온 후 9년 만이다. ‘한국진보세력연구’는 2005년 처음 펴내고 2011년 증보한 ‘한국보수세력연구’와 짝을 이룬다. ‘한국진보세력연구’ ‘한국보수세력연구’는 지성계를 깨우는 역작이면서 이념과 사상 측면에서 한국 현대 정치를 서술한 통사(通史)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1938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남 이사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동아일보 수습 1기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해 사회부·정치부 기자, 도쿄특파원으로 일했다. 동아일보 출판국장·편집국장·논설실장·상무이사를 역임했다. 문화일보 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고려대, 세종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탐사보도 진두지휘

    1987년 6월 항쟁 때 민주화를 이뤄낸 주역은 시민 모두일 것이나 동아일보 탐사보도가 방아쇠 구실을 했다. 남 이사장은 현대사 분수령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탐사보도 사령탑이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서 고문치사 사건 진실을 파헤친 일련의 보도를 진두지휘했다. 

    1985년 ‘신동아’ 7월호에 ‘다큐멘터리 광주, 그 비극의 10일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다. 이른바 ‘보도지침’이라는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가 서슬 퍼럴 때 일이다. 출판국장이던 남 이사장이 ‘신동아’ 편집장에게 출고를 지시함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기술한 르포르타주가 빛을 봤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나기 6개월 전 ‘부천경찰서 성(性)고문 사건’이 터졌을 때 ‘남시욱 출판국장’은 비상한 각오를 다졌다. ‘신동아’ 편집장에게 성고문 사건 전말과 고문을 고발하는 기사를 실으라고 지시했다. 



    1986년 ‘신동아’ 9월호에 ‘특별기획 고문’이 게재됐다. ‘고문, 인류문명의 수치’(한상범 동국대 교수) ‘권력과 고문’(김상철 변호사) ‘부천서 사건 시비의 시말’(황호택 기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고문은 이제 그만’ 긴급 입수-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의 고문 실태’ 등 기획기사 4건이 실렸다. 

    ‘남시욱 출판국장’은 고문 특집을 연거푸 내보내다가 1987년 1월 1일자로 편집국장 발령을 받는다. 그로부터 보름 만에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 사망한다. “집요한 추적 끝에 그 전모가 밝혀진 대하드라마 같은 사건”(남시욱 이사장)이 시작된 것이다. 

    남 이사장은 언론인으로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면서 학술 및 저작 활동 또한 왕성하게 펼쳤다. 저서로 ‘항변의 계절’ ‘체험적 기자론’ ‘인터넷시대의 취재와 보도’ ‘6·25전쟁과 미국’ 등이 있다. ‘한국진보세력연구’ ‘한국보수세력연구’는 60대 후반에 시작해 지금껏 천착한 필생의 역작이다.

    이념·사상으로 탐구한 한국현대史

    ‘한국진보세력연구’ 개정증보판에서 5부 ‘북핵과 안보위기 시기’는 완전히 새로 쓴 것이다. 광우병 파동, 통합진보당 해산, 박근혜 탄핵, 문재인 집권을 추가했다. ‘한국진보세력연구’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문재인 정권까지 진보를 표방한 정당과 단체가 주창한 주장과 이념을 담담한 문체로 서술한다. 

    진보를 표방한 정당, 단체, 정권에 대한 평가는 매우 절제돼 있다. 보수 지식인으로서 정체성이 드러난 대목으로는 조소앙의 사회당, 조봉암의 진보당 등 ‘반공을 토대로 한 진보’를 서술한 부분을 꼽을 수 있다. 한국 정치에서 보수와 진보가 올곧게 정립하지 못한 까닭을 분단·전쟁 탓에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세력이 성장하지 못한 데서 찾았다. 

    남 이사장은 ‘한국진보세력연구’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은 2009년 초판이 발간된 이후 지금까지 9년 동안 진보세력이 걸어온 발자취를 추가 설명하기 위해 씌어진 것이다. 그동안 이 책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과분한 평가까지 받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한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진보좌파세력의 실상을 알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련권 붕괴 후 근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에서는 서구식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세력은 위축되고, 반대로 이 지구상 유례없는 김일성 세습왕조에 동조하는 친북-종북세력이 판을 치고 있는지 국민들이 궁금해했던 탓이라고 저자는 판단하고 있다.” 

    8월 31일 화정평화재단(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서 남 이사장을 만났다.

    초판이 나온 후 9년 만에 개정증보판을 냈습니다. 

    “지난해 북핵 문제로 국가 위기 상황이 조성됐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섰고요. 진보 정권 3기가 출범한 후 불안감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진보 정권 3기를 분석하다 보니 박근혜 탄핵도 다뤄야 했고요. 최근 9년간 진보세력의 부침이랄까 동향, 걸어온 길을 추가했습니다.”

    신문기자의 깡마른 글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서술이 ‘드라이’ 합니다. 평가는 자제하고 사실만 쓰려 한 듯 보입니다.

    “글쓰기와 관련한 평소 지론이 그렇습니다. 신문기자의 깡마른 글이 좋아요. 근육을 붙이지 않고 뼈대만 쓰는 겁니다. 평가를 넣으면 사실이 왜곡될 수 있어요.” 

    조소앙의 사회당, 조봉암의 진보당을 다룬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민족해방을 강조하는 이들이 당권을 잡은 한국의 진보정당은 서유럽식 사회민주주의·민주사회주의 정당이 결코 아닙니다.” 

    민주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른지요.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의회민주주의적으로 변화를 추구합니다. 민주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을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수용합니다. 1951년 독일 사회민주당, 영국 노동당이 주도한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1959년 독일 사회민주당이 채택한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서구 좌파정당은 사회민주주의에서 민주사회주의로 전환을 선언합니다.” 

    보수와 진보는 두 날개입니다. 

    “인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끝없이 논쟁했습니다. 한쪽에는 자유, 다른 쪽에는 평등이 있습니다. 자유만 추구하면 불평등이 심화합니다. 사람의 능력이 제각각이지 않습니까. 우수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어요. 우승열패(優勝劣敗·강한 자는 번성하고 약한 자는 쇠멸함)라는 말이 있잖아요. 동물의 세계가 아닐진대 우승열패의 세상이 돼선 안 되죠. 그렇다고 평등에만 방점을 찍으면 자유가 구속됩니다. 사상·이념 논쟁이 자유와 평등의 조정을 두고 끊임없이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 정책으로 설명하면 성장, 분배를 두고 논쟁하는 게 대표적이죠.”

    전쟁이 남긴 적개심

    한국에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어떻게 시작됐는지요. 

    “1919년 3·1운동을 거치면서 민주공화제, 자유민주주의의 길이 성립합니다. 전통적 자유민주주의와 민주공화제를 지키자는 흐름이 보수주의입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납니다. 인민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창한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민주주의라면서 배척합니다. 강조하건대 보수주의는 변화하지 않겠다는 이념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공화정의 가치를 지키면서 발전해나가겠다는 사상입니다. 진보주의는 보수주의보다 과격하게 변화를 추구합니다. 근대국가에서는 자유, 평등은 충돌하기도 하고 서로 보완하기도 합니다. 성장을 중심으로 하느냐, 분배를 중심으로 하느냐에 따라 정권이 보수당, 진보당으로 왔다갔다 하는 거죠. 그런 가운데서 발전이 이뤄집니다. 한국은 전쟁을 벌이면서 서로를 죽였습니다. 정상적 서구식 민주주의를 아직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은 분단과 전쟁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조소앙의 사회당, 조봉암의 진보당을 서술한 대목의 행간에서 아쉬움 혹은 안타까움이 느껴지더군요. 


    “조선공산당에서 남로당으로 이어지는 노선에 선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메리칸 데모크라시(미국식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 보니 대한민국 자체를 부인합니다. 분단국가가 성립되는 과정에서 격렬한 이념 논쟁이 불거졌습니다. 불행하게도 건국 이후 2년 만에 6·25전쟁이 일어나고요. 서로를 죽였으니 적개심이 어땠겠습니까. 온건한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라고 해도 보통 사람이 볼 때는 그놈이 그놈, 초록은 동색이 돼버린 겁니다. 조봉암이 사형선고를 받은 진보당 사건은 일종의 정치 재판이었습니다. 사형을 선고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증거를 갖고 유죄 판결을 낸 후 집행해버렸습니다.” 

    조소앙의 사회당은 선명한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내걸었다. ‘한국진보세력연구’는 조봉암의 진보당과 21세기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비교한다. 진보당은 소련과 북한을 비판하면서 6·25전쟁의 책임을 북한과 소련에 돌리는 반면 민주노동당은 분단과 전쟁의 책임을 ‘미(美)제국주의’에 돌린다.

    “군사독재 반작용으로 과격한 학생운동 단체 등장”

    1950년대 후반 서상일의 민혁당, 정화암의 민사당으로 이어진 사회민주주의 흐름은 고정훈의 민주사회당, 김철의 사회당으로 이어졌다. 1980년대 접어들어 민족해방 계열 주사파가 세를 얻는다. ‘좌파 민족주의’ 흐름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여기면서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에 경도된다. 

    조봉암은 ‘반공을 토대로 한 좌파’라고 하겠습니다. 

    “민주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정상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전쟁과 분단 탓입니다.” 

    남 이사장은 ‘한국진보세력연구’에 이렇게 썼다. 

    “전대협과 한총련은 표면상으로는 각 대학 총학생회 대표로 구성된 조직이지만 단순한 학생조직이 아닌, 급진적 좌파전위조직이다. 독자들은 이들 조직 출신 인사들이 나중에 정치인으로 성장해서 진보정당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또한 해방 후에 활동한 남로당 계열, 심지어는 빨치산 출신 인물들이 얼마 전까지 좌파진영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중도좌파로 규정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이념적 자리매김은 유보했다. 김대중 정권은 한국적 제3의 길을 추구했으며, 노무현 정권은 유연한 진보를 자임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1980년대 ‘급진적 좌파전위조직’ 구성원들이 문재인 정권의 중추가 된 것에는 우려를 나타낸다. 

    “이승만 정권 때는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할 정도의 반체제 사건은 없었습니다. 1960년대 말, 1970년대를 거치면서 반체제 사건이 생겨납니다. 인민혁명당, 통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 대표적이죠. 월남식 공산화를 하겠다는 일단의 젊은이들이 비밀 결사를 조직하는데, 남베트남에서 결성된 베트콩(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비견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극소수 혁명 분자가 그런 생각을 공유했습니다.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 독재정권이 기승을 부립니다. 군사독재에 대한 반작용으로 과격한 학생운동 단체가 등장합니다. ‘언더 조직’이 표면적으로는 온건한 간판을 내걸고 지하에서 혁명을 도모합니다. ‘한국은 왜 이 모양일까’ 토론하면서 공산주의 이론에서 비롯한 ‘식민지반자본주의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중진국자본주의론’을 두고 사회구성체 논쟁을 벌입니다. 그 결과 한국을 신(新)식민지로 규정하는 동시에 반(反)외세 민중혁명을 지향하는 지하조직이 힘을 얻습니다. 이들이 ‘언더’에서 학생운동권을 배후조종하고요. 전두환을 제국주의의 괴뢰로 규정하고 한국 경제는 미국에 수탈당한다는 것이었죠.”

    “대한민국 부인하는 전투적 세력”

    박현채가 쓴 ‘민족경제론’이 대표적입니다. 

    “박현채는 빨치산 출신으로 완전히 공산주의자입니다. 사회구성체 논쟁에서는 안병직 서울대 교수가 유명했습니다. 안병직은 나중에 우파로 노선을 전환합니다. 남미에서 종속이론이 힘을 얻습니다. 한국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논쟁하는 과정에서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에 영원히 종속되도록 구조화되고 있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논리가 그렇게 형성됩니다. 안병직에게 직접 들은 얘기인데 한국 경제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여길 때 박정희가 사망했답니다. 전두환 정권 시기 경제가 호황이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때 일본에 교환교수로 갔는데 여러 나라에서 온 학자들과 토론했답니다. ‘한국은 종속국가, 식민지국가’라고 했더니 다른 나라 학자들이 미국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업이 거덜 나고 있는데 한국이 무슨 종속국가냐면서 ‘신흥공업국’ ‘신흥산업국’이라고 하기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맞다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급진적 좌파전위조직은 삼균주의자인 조소앙과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에서 비롯한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1980년대 접어들어 학생 운동권이 바깥세상을 봅니다. 민혁당을 창당하는 김영환은 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가 김일성을 만납니다. 주체사상에 반해 평양에 갔는데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몰라 실망했다고 나중에 밝히더군요. 신군부 독재 아래 청년들이 질풍과 노도의 시기를 겪습니다. 그 과정에서 진보가 서구처럼 성장보다 분배를 중요시하고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 인권에 가치를 두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전투적 세력이 됐습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대안을 북한에서 찾은 ‘급진적 좌파전위조직’도 1987년 민주화에 기여했습니다.
     
    “맞아요. 같이 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문익환, 김수환을 비롯한 나이 많은 이들이 역할을 잘 했습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중심을 잘 잡았고요.”

    ‘해방전후사의 인식’ 프레임

    문재인 대통령은 리영희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를 삶에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습니다. 집권 측 86세대가 아직도 ‘해방전후사의 인식’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젊어서 진보주의에 빠지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마흔이 넘어 그대로이면 바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가 ‘한국진보세력연구’를 펼쳤다. 563쪽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씌어 있다. 

    “1960년대 이후 송건호 리영희 박현채 강만길 한완상 백낙청 등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좌파운동에 영향을 줬다. 송건호 등이 쓴 ‘해방전후사의 인식’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가장 많이 읽혔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은 자신의 학생 시절과 그가 애독한 저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캄캄했던 그 시절 사회과학 책이 귀하기도 했지만 유신정권의 언론·학술 통제 덕분에 사실 읽을 만한 책은 더욱 귀했다. 그래도 젊은 학도들에게 분단시대의 역사의식과 사회과학적 시각에 영향을 주고 마침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책들은 있었으니, 송건호 선생님과 리영희 선생님을 비롯해 박현채 선생님의 책 역시 그런 종류에 속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송건호 선생님의 ‘한국민족주의연구’에서 민족을 배웠고, 리영희 선생님의 ‘우상과 이성’에서 외교·정치를 배웠으며, 박현채 선생님의 ‘민족경제론’에서 경제를 배웠다. 나는 지금도 나의 젊은 시절에 영향을 준 책을 꼽으라면 이 세 분의 책을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주지하듯 문재인 정권 핵심에 86세대 운동권이 포진했습니다. 성숙도 하고, 때도 묻고, 사고도 변화했겠으나 정서로서의 반미나 친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국보수세력연구’에 두 가지 민족주의에 대해 서술한 게 있습니다. 큰 나라들의 민족주의로 ‘제국주의적 민족주의’가 있습니다.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피해를 입은 이들의 민족주의는 ‘방어적 민족주의’ ‘저항적 민족주의’입니다. 미국이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논리가 먹혀들어가는 배경에는 이런 연원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전희경과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이 주사파 논쟁을 벌이던데요. 공직을 맡았다면 생각이 과거와 어떻게 다르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는 게 조금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웰빙 정당에서 자기 이익 챙기는 가짜 보수”

    ‘한국진보세력연구’ 5부 ‘북핵과 안보위기 시기’의 마지막 소제목은 ‘가짜 진보세력이 안보·통일문제 좌지우지하면 국가적 재앙’이다. 680~681쪽에 이렇게 씌어 있다. 

    “서구민주국가들의 진보좌파세력은 정통 사회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그리고 민주사회주의로 진화했다. 근래에는 보비오의 자유주의적 사회주의(Liberal Socialism)와 기든스의 ‘제3의 길’도 등장했다. 그러나 한국의 구태의연하고 교조적인 좌파세력은 선진국의 진보좌파세력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 정권이 되려면 하루속히 정부와 여당에 둥지를 틀고 있는 가짜 진보세력, 위장 진보세력의 그릇된 이념과 사상과 결별해야 한다. 문재인 자신의 말처럼 나라가 잘되려면 진정한 보수세력과 진정한 진보세력이 협력하고 경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를 ‘3기 민주정부’라고 일컫습니다. 

    “독선적이고 오만한 태도입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등장한 보수정부는 비민주적 정권이라고 암시하는 잘못된 태도예요. 스스로를 민주정부라고 부를 때 그 민주정부는 상식적 의미에서 독재를 하지 않은 정부, 전문적 의미에서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부가 민주정부입니다. 헌법과 그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정치 질서와 시장경제 질서를 수호할 때 문재인 정부는 비로소 민주정부가 될 자격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수세력을 ‘진정한 보수세력’과 ‘위장된 보수세력’으로 구분합니다. 

    “오직 권력에 영합할 뿐 아무런 이념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보수인 양하는 세력이 위장된 보수라는 게 문재인의 생각입니다. 국가권력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가짜 보수로 이들이 경제도 망치고 안보도 망쳤다는 논리입니다. 가짜 보수세력이 있어요. 웰빙 정당에서 자기 이익 챙기는 사람들 말입니다. 가짜·위장 보수세력과 가짜·위장 진보세력이 정치판을 좌지우지하면 국가에 재앙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진정한 진보세력’과 ‘위장된 진보세력’은 어떻게 나뉩니까. 

    “내가 말하는 가짜 진보세력이란 뭐냐? 민주주의, 인권, 인간의 존엄성 등 진보의 가치를 실제로 구현하려고 하지 않는 세력입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습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십만 명이 수용됐다는 것 아닙니까. 북한 인권에 입 닫는 이들은 진정한 진보세력이 아니에요. 진정한 진보가 아니라 탈을 쓴 위장 진보입니다.” 

    보수정치가 궤멸 직전까지 갔습니다. 

    “박근혜를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한 사람으로서 임기 1년을 남겨놓고 내쫓을 만큼의 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했다거나 고문을 했다거나 엄청나게 부패해 돈을 막 챙긴 것은 아니죠. 마귀 같은 여자에게 바보처럼 당한 것인데 그것은 박근혜의 책임이죠. 바른말 못 하는 사람들로 비서진을 꾸린 것도 잘못이고요. 박근혜의 몰락과 더불어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붕괴한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둘로 쪼개지지 않았으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지 않았죠.” 

    보수정치가 회복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면 됩니다.”

    “낮은 단계 연방제 목적은 미군 철수시키는 것”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눈에 띄는 인물이 없습니다. 

    “임종석 같은 50대가 여권 후보로 거론될 텐데 보수진영에서도 그보다 젊으면 젊었지 늙은 사람이 나오면 되겠느냐는 얘기가 있더군요.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같은 사람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마크롱이 경제산업장관을 지냈습니다. 경제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죠. 나는 일면식도 없는데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보수 후보로 괜찮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무엇보다도 야당이 제대로 해야죠. 지금 잘하지 못합니다. 예리하고 당찬 이론가가 나와야 해요. 이론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도 온전한 의미의 좌·우파 정당이 경쟁하는 때가 올까요. 

    “문재인 정권이 잘해야 해요. 우려하는 바가 있으나 그것은 아니길 바랍니다. 너무 순진하거나 국제 정세에 어둡거나 가짜 진보세력한테 휘둘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한국진보세력연구’에서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결과물인 6·15 남북 공동선언 중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했다’는 부분을 비판했더군요. 

    “그 대목은 완전히 엉터리예요. 한국은 연합제, 북한은 연방제를 주장해왔습니다. 낮은 단계 연방제가 무슨 뜻이냐? 연방제에서는 외교·국방권을 연방정부가 갖습니다. 낮은 단계 연방제는 외교·국방권도 얼마간 그대로 두자는 것입니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간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고요. 연합제는 1민족 2국가입니다. 진실한 의미에서 연방제를 한다면 한국이 꿀릴 게 없습니다. 인구가 북한의 2배이니까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공작을 해 사회를 분열시킵니다. 낮은 단계 연방제의 목적은 미군을 철수시키는 거예요. 미군 철수 시 남북 간 전쟁이 일어나면 내전입니다. 종전선언·평화협정도 미군 철수와 연결됩니다. 중국 또한 미군 철수를 원합니다. 대한민국이 당면한 안보와 정치 상황이 위중합니다. 정권을 쥔 진보세력은 책임의 막중함을 잊어서는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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