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애들 싸움’이 송사로…위기의 학교 현장

툭하면 ‘학폭위’ 여차하면 소송

  • 입력2018-10-03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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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정 싸움 시작되면 교사도 중재 못 해

    • “경미한 징계 받아도 입시 망친다” 우려 확산

    • ‘학교폭력 해결’에 뛰어드는 변호사들

    • 교내 징계 불복 소송 급증, 대법원 상고 사건도 3년 새 8건

    초등학생 딸 A를 둔 학부모 B씨는 최근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며 고통을 호소한 게 시작이었다. 차근차근 달래가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급생 C가 몇 달째 딸을 괴롭히고 있었다. A뿐 아니라 여러 아이가 C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된 B씨는 C와 만나 “계속 친구를 괴롭히면 경찰 아저씨한테 혼날 수 있어”라고 경고했다. B씨는 이 행동으로 문제가 개선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C가 그날 집에 돌아가 부모한테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사건은 오히려 커졌다. C의 부모가 B씨를 협박 혐의로 형사 고소한 것이다. B씨는 자녀가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는데 자신이 수사기관을 드나들고 처벌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에 대해 박현정 변호사(법무법인 도담)는 “사실관계를 좀 더 따져봐야겠지만 초등학생 아이에게 ‘경찰 아저씨’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 협박죄가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 “다만 아이들 문제에 부모가 감정적으로 개입하면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 자식은 내가 지킨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교사 중재로 끝났을 사소한 다툼이 송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잖다. 초등학교 교사 D씨는 “2010년 무렵부터 학교 내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사건 등이 사회문제로 부상하며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예방법)’이 강화됐다. 이제는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되거나 피해를 주장하는 측이 요구하면 반드시 학폭위를 열어야 한다. 교사가 섣불리 나섰다가는 ‘학교폭력을 은폐하려 한다’는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어 말 한 마디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털어놓았다. 

    학폭위가 가해 학생에게 내릴 수 있는 조치는 최저 ‘피해자에 대한 서면 사과’부터 최고 ‘퇴학’까지 모두 9개다. 가해 학생이 이 가운데 한 개 또는 여러 개를 받으면 그 내용은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고스란히 남는다. 이후 피해자와 화해하고 징계 사항을 충실히 이행해도 기록을 지울 수 없다. 교육부 훈령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최소 졸업할 때(졸업식 이후부터 2월 말 사이 졸업생 학적 반영 이전) 삭제가 가능하고 ‘사회봉사’ ‘출석정지’ ‘전학’ 등 상대적으로 중한 처벌은 원칙적으로 ‘졸업일로부터 2년 후’ 지워진다. 

    ‘퇴학’ 처분을 받은 기록은 영구히 남는다. 이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는 직접적 징계보다 학생부 기재가 더욱 강력한 처벌 수단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생부가 특목고 및 대학 입시에서 주요 평가 자료로 사용되고, 학교폭력에 대한 기록은 입학사정관에게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입시를 앞두고 있지 않은 초등학생도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담임교사가 학생부를 열람하고 해당 학생에 대해 선입관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부 기재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D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실랑이를 벌이다 욕설을 하며 의자를 걷어찼는데 상대 측 부모가 학교폭력이라고 문제 삼았다. 담임교사가 ‘그쪽에서 학폭위 소집을 요구할 것 같다. ‘서면 사과’ 조치라도 받으면 대학 진학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으니 피해자 측과 합의하거나 안 되면 전학을 가라’고 하더라. 이런 일로 아이 인생에 ‘빨간 줄’을 긋는 게 말이 되느냐”고 토로했다. 

    반면 상당수 피해자 학부모는 “학교폭력으로 아이가 큰 상처를 입었는데 학교나 교사가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기고 가해자를 감싸고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호진 변호사(법률사무소 태동)는 “학교폭력 문제로 상담을 하는 학부모들을 보면 피해자 측은 아이가 학교폭력 대상이 됐다는 사실에 일단 분노한다. 아이에게 후유증이 남을까 걱정하고, 재발을 막고자 처벌과 피해보상을 요구한다. 반면 가해자 측은 ‘내 아이가 별다른 행동을 안 하고도 억울하게 얽혔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작은 일로 아이의 미래에 장애가 생길까 봐 걱정한다. 이렇게 서로의 분노와 억울함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자녀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지니 원만한 화해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신뢰받지 못하는 학폭위

    갈수록 증가하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자 대구시 수성구 대구수성청소년경찰학교 외벽에 설치한 ‘망원경으로 학교폭력 현장을 지켜보는 경찰 조형물’

    갈수록 증가하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고자 대구시 수성구 대구수성청소년경찰학교 외벽에 설치한 ‘망원경으로 학교폭력 현장을 지켜보는 경찰 조형물’

    이를 중재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학폭위에 대한 현장의 신뢰가 낮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학폭위는 학교폭력 여부를 심사하고 징계 수위를 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학교폭력예방법은 교내 ‘자치’의 의미를 강화하고자 학폭위 전체 위원의 과반수를 학부모가 맡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예민한 문제가 많다보니 상당수 학부모가 위원으로 참여하기를 꺼리고, 학교 측 요청을 받은 간부 학생 부모가 위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후문이다. 이 탓에 ‘학폭위는 교장의 허수아비다. 학교가 예뻐하는 학생은 폭력행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고, 부모가 학교 활동에 소홀한 아이만 표적이 된다’는 등의 오해를 사는 경우도 적잖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 학부모가 학폭위 징계를 불신하고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에 나서고 있다. 

    학교 내 승강기 내외부에 설치된 '친구 아이가' 래핑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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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양과 F군, G군은 2014년 초등학교 1학년 동급생이었다. F군은 그해 11월 놀이시간에 운동장에서 E양을 잡는 놀이를 하자는 G군의 말을 듣고 다른 친구 10명과 함께 E양을 쫓아다니며 때릴 것처럼 나뭇가지를 휘둘렀다는 등의 이유로 학폭위에 회부됐다. 이후 ‘서면 사과’ 등 모두 3가지 처분을 받았다. F군 부모는 ‘장난에 불과한 일로 정신적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처분을 받았다’며 반발하고 이를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2016년 서울행정법원은 F군 행위가 학교폭력에 해당하지만 그에게 내려진 처분은 과하다고 판결했다. 서면 사과 정도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소송이 최근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 가해자가 징계에 불복해 학교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은 2014년 35건에서 2015년 57건, 2016년 77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7년에는 상반기에만 54건에 달했다. 학교폭력 문제로 대법원 상고에 이른 사건도 2014~2016년 3년간 8건으로 조사됐다. 8월 말 교육부가 ‘단순·경미한 학교폭력의 경우 학폭위를 열지 않고 학교장이 자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에 대한 신뢰 또한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고등학교 교사 출신인 이보람 변호사(법무법인 태율)는 저서 ‘학교폭력 대처법’에서 “현재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책은 가해 학생을 징계하고 그 사실을 학생부에 남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학교폭력을 완벽하게 예방할 수 없다면 ‘교육적으로 적절한 해결 방법’을 마련하려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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