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20대 리포트

‘불법 낙태약’ 확산 실태

“15만 원 기부하면 ‘먹는 낙태약’ 준다”

  • 입력2018-10-07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한국인 여성 1328명 이용

    • 불법 해외 직구도 성업

    • “39만~59만 원 주면 퀵서비스 당일 배송”

    • 중절수술보다 부담 적어 선호

    W단체는 기부를 통해 먹는 낙태약을 받은 여성이 국가별로 어느 정도 되는지 지도상에 표시하고 있다. 한국 여성 규모도 적지 않다.

    W단체는 기부를 통해 먹는 낙태약을 받은 여성이 국가별로 어느 정도 되는지 지도상에 표시하고 있다. 한국 여성 규모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낙태(인공적 임신중절)는 불법이다. 그러나 실제론 산부인과 병원에서 낙태 수술이 빈번하게 행해진다. 2016년에만 16만 건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갈피를 못 잡는 모양새다. 지난해 23만 명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낙태죄를 폐지해달라’고 청원하자 청와대는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하겠다”면서 이를 이슈화했다. 그러나 가톨릭계의 반발을 사자 이내 조국 민정수석이 부랴부랴 사과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낙태 의사 처벌 강화’를 발표했다가 양성평등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자 양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양성평등위원회를 운영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낙태 수술 대신, ‘미프진(Mifegyne)’이라는 외국산 낙태유도제를 불법으로 구해 복용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미프진은 정부가 처방과 판매를 허가한 국가에선 의사의 처방을 통해 사용되는 전문의약품이지만, 낙태 자체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선 처방, 판매, 구입, 복용하는 자는 누구나 불법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취재 결과, 해외에 기부를 하고 미프진 알약을 받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젊은 층에 널리 알려져”

    W단체가 먹는 낙태약을 주기 전에 작성하도록 하는 문답자료.

    W단체가 먹는 낙태약을 주기 전에 작성하도록 하는 문답자료.

    필자가 만난 다수의 20대는 “미프진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미프진을 먹고 낙태했다는 지인들을 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모 대학 대학원생 강모(여·25·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씨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고민하던 친구가 미프진을 해외 직구로 구해 복용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주변에서 미프진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안모(여·27·서울 서대문구) 씨는 “인터넷 여초(사용자 중 여성이 비율적으로 많은 것) 커뮤니티에 미프진을 구한다는 글이 자주 올라오는 편이다. 해외에 거주한 사람들이 미프진 사용을 권유하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정모(여·25) 씨는 “낙태약을 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부쩍 많이 듣는다”고 했다. 

    이들은 젊은 층 사이에서 미프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이유로 △성 개방 풍조와 성 지식 부족으로 미혼 임신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점, △임신중절수술에 비해 먹는 낙태약이 비용이 저렴하고 심리적 부담이 적은 점, △미프진의 낙태 성공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점을 들었다. 



    기부금을 내면 낙태약을 배송해주는 네덜란드 W 사회단체.

    기부금을 내면 낙태약을 배송해주는 네덜란드 W 사회단체.

    특히 네덜란드의 W사회단체는 한국처럼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 사는 여성들에게서 30유로(3만9000원)~90유로(15만6000원)의 기부를 받고 먹는 낙태 약 미프진을 배송해주고 있는데, 다수의 한국 여성도 이곳을 통해 미프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체는 기부금을 좋은 일에 쓴다고 밝히고 있다. 

    이 단체는 2015년 한국어 사이트를 개설했고 ‘낙태가 필요해(I need an abortio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 여성들과 기부금-미프진 교환을 중개해온 것이다. 기부 방식으로 먹는 낙태약을 받는 실태는 지금까지 언론엔 거의 보도되지 않았는데, 이런 행위도 한국에선 불법이다.

    “복용 후 2주 정도 출혈”

    필자는 이곳에 접속해 기부 절차를 밟아봤다. 먼저 임신 기간 계산기가 나왔다. 마지막 생리일을 입력하면 임신 기간을 예측해준다. 이어 ‘낙태가 필요해’라는 상단 창을 클릭하자 먹는 낙태약을 받는 절차가 안내됐다. “문답을 작성하고 확인 e메일을 받은 뒤 기부금을 내면 10일 안에 낙태약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용 약관에 동의하느냐” “진실하게 답변하겠느냐” “임신을 확인했느냐” “초음파검사도 해봤느냐” “원치 않는 임신을 했으며 이로 인해 건강이 위태로워졌느냐”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여기서 ‘건강’은 완전한 신체적·정신적· 사회적 안녕을 의미한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이어 “낙태를 결심하는 많은 여성이 죄의식, 혼란, 두려움, 분노, 슬픔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낙태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낙태를 강요하는 사람이 없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어 “이 서비스는 여성들의 자의에 의한 낙태를 제한하는 나라에 사는 여성들을 위해 제공한다”면서 거주 국가를 선택하도록 했다. 이 목록엔 ‘한국’도 있었다. 

    다음 단계에서 “임신 10주 이후에 낙태유도제를 복용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혈액형이 무엇이냐”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낙태나 유산, 출산 경험이 있느냐” “심장, 신장, 간, 갑상샘 관련 질환이나 천식을 갖고 있느냐” “복용 중인 약이 있느냐” “특정한 약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적이 있느냐”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응급처치가 가능한 병원에 6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느냐” “약 복용 시 곁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이어갔다. “자궁 내 피임기구는 제거돼야 하며 임질 같은 성병을 갖고 있다면 약을 복용할 수 없다”는 점도 언급됐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게 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낙태유도제가 일으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설명과 함께 복용 방법이 제시됐다. “낙태유도제가 우편 소포로 배송될 것이며 미프프리스톤(200mg) 한 알과 미소프로스톨(200mg) 여섯 알로 구성됐다”고 언급했다. “약 복용 후 출혈이 최장 2주 정도 지속될 수 있다면서 2주 이상으로 길게 출혈이 지속되거나 38도 이상 열이 나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름, 약을 받을 실제 거주지, e메일 주소를 쓰자 신청이 완료됐다. W단체는 필자가 기재한 e메일로 기부금에 대한 안내문을 보내왔다. “신용카드 결제나 계좌 이체 중 원하는 방식으로 90유로(15만6000원)를 기부하면 낙태유도제 발송이 시작된다”고 했다. 만일 90유로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금액이 조정될 수 있으니 안내된 주소로 e메일을 보내라고 덧붙였다. 

    W단체는 자신들에게 기부하고 먹는 낙태약을 받아간 각국 여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세계지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에 따르면, 이들 여성 중엔 한국 여성도 적지 않게 포함돼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 단체는 2017년 10월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여성 1328명에게 낙태유도제를 제공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웹상에서의 기부를 통한 먹는 낙태약 확보 방식은 최신 방식이고 다수의 여성은 웹상에서 해외 직구 방식을 써온 것으로 알려지는데, 필자가 직접 알아본 결과 이 해외 직구 방식도 손쉬웠다.

    ‘실시간 상담’ 받아보니

    10분 정도 만에 미프진을 판매하거나 해외 구매를 대행해주겠다는 각종 공지에 접했고 이들이 지시하는 절차에 따라 ‘송금하면 미프진 배송하겠다’는 최종 단계에 쉽게 도달했다. 이런 곳들은 “39만~59만 원에 미프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중 한 곳에 ‘실시간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사가 “거주지가 어디신가요”라고 물어 “서울”이라고 답하자 “서울이면 오토바이 퀵으로 당일 수령이 가능하다”고 답해 왔다. 상담사는 “퀵 배송엔 3만 원 정도 추가비용이 든다. 택배로 해도 늦어도 5일 내에 도착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담사는 자신의 모바일 메신저 아이디를 알려주면서 “카톡으로 연락 주세요”라고 했다. 건네받은 모바일 메신저로 연락하자 “가격은 임신 7주 차 이하는 39만 원, 7~10주는 59만 원이다. 입금 후 바로 배송 가능하다”고 했다. W단체는 그나마 약 복용의 안전성에 관한 질문에 상세하게 답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런 구매 대행업체에선 복용의 안전성에 관한 별다른 질의응답 절차나 상담 없이 약을 거래하고 있었다. 

    취재 결과, 불법 낙태약 거래는 상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부라는 기발한 방식도 등장했고, 하루 만에 배송되는 점으로 미뤄 유통 규모도 급속하게 커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복용하는 여성들의 안전이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 태아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 공급을 억제하고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을 유도하는 약물로, 67개국에서 합법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약의 부작용도 보고되고 있고, 임신한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이 약을 복용해선 안 된다. 이와 관련해 W단체는 “5명의 의사가 의료적 조언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불법 판매 업체들은 “전문 약사가 상담한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언이나 상담은 어디까지나 온라인상에서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이런 정도로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일부 불법 판매 업체들은 “제품 복용과 이용 후기를 작성하면 구매 금액의 1~10%를 돌려주는 이벤트를 무기한 실시 중”이라고 광고하고 있었다. 이들의 게시판에는 3일에 한 번꼴로 후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 중 약을 복용한 일부 여성은 “3주 동안 계속 하혈하고 있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 불안하다”고 썼다.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

    서울 중랑구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한 산부인과 전문의(여·50대)는 “산부인과에서 임신중절은 환자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의사의 처방 없이 먹는 낙태약을 복용하면 큰일 날 수 있다. 이 약의 진짜 문제는 복용한 이후에 발생한다. (임신중절 유도제에 의해 사산한 태아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기도 하는데, 그럴 땐 바로 수술해야 한다.” 그는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먹는 낙태약에 대해 “어떤 것은 정품이 아니어서 성분이 불분명한 것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바나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