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전단, 수건, 우산에서 보조배터리, 보틀, 텀블러로

제품·기업홍보 첨병 ‘판촉물’ 이야기

  • 조용우 | 위너판촉 대표 jjj12468@naver.com

    입력2015-09-22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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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촉물에서 작은 행복 느껴”
    • “세련된 분야로 변신 중”
    전단, 수건, 우산에서 보조배터리, 보틀, 텀블러로
    1997년 벤처기업이 우후죽순 태동하던 시기. 그 중심에 필자도 있었다. 현재 국내 유수의 대형 포털을 비롯한 유명 인터넷 업체들이 필자의 회사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규모로 영업을 시작했다. 필자의 회사는 당시 국내 1위 웹 개발, 국내 최초 무료 홈페이지 개발, 대기업 투자 유치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 사업에 도움이 됐고 회사 규모는 나날이 커졌다.

    그러나 2000년경 시장 상황 악화와 경영상의 문제로 청년 벤처의 꿈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이후 ‘우리나라에선 한번 사업에 실패한 사람에겐 패자부활의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러다 최근 판촉물 회사를 한번 맡아서 경영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판촉물이라고 하면 ‘B급’ ‘3류’ 업계 이미지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이 시장에서 일하는 인력 풀(pool)이 그리 화려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이 필자에게도 고민이 됐지만 끈질긴 권유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러나 내부에서 보니, 외부의 시각과는 다른 이 업계의 면모를 관찰할 수 있었다. △역사가 오래된 지속가능한 사업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판촉물에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 △하기에 따라 꽤 세련되고 창의적인 분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포털이 먹고 남은 파이



    판촉물은 1960~70년대 초 첫선을 보였다. 이 무렵 우리나라의 산업화가 본격화하면서 소규모 상점이나 회사는 불특정 소비자에게 자신을 알릴 수단이 필요했다. 이런 목적으로 회사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작은 종이를 나눠준 게 판촉물의 시작이다.

    그러다 효과적인 홍보를 위해선 받는 사람에게 어떤 편익이 되는 물건을 줘야 한다는 점, 받는 사람이 이 물건을 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회사는 판촉물로 일회용품 대신 수건이나 우산을 제공했다. 수건이나 우산에는 회사나 상품의 이름을 새겨 넣으려 했다. 받는 사람이 쓰면서 이름을 보게 되므로 홍보 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판촉물은 주로 동네 상권에서 활성화했는데, ‘판촉물에 어떻게 이름을 새겨 넣느냐’가 당면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동네 명함·도장·상패 가게가 판촉물 제작을 대행했다. 이는 판촉물을 제작하는 기업과 사용하는 기업이 달라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판촉물 시장은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팽창했다. 당시 몇몇 판촉물 회사는 꽤 큰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이 대중화하면서 판촉물은 사업 기반을 온라인으로 옮기게 된다. 필자가 놀란 점은, 판촉물 업계 자체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낮은 편이지만 판촉물 관련 사업 활동엔 매우 다양한 IT(정보통신) 기술이 접목돼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기술력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무게가 1㎏을 넘는 두꺼운 상품 책자를 만들어 대면영업을 하는 판촉물 사업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감각 있는 사업자들은 온라인에서 활동한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기업이 판촉물 홍보를 결정하면 그 기업의 판촉물 구매담당자는 십중팔구 포털 사이트에서 ‘판촉물’이라는 검색어로 판촉물 회사들을 검색한 뒤 그중 한 곳과 접촉한다. 이러니 판촉물 회사로선 자사가 포털에서 잘 검색되게 하는 일(키워드 광고)에 많은 비용을 쓸 수밖에 없다.

    포털은 키워드 검색결과의 상위 자리를 경매 방식으로 판매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상위 10% 판촉물 회사는 수익의 무려 50% 가까운 금액을 온라인 광고비로 소진한다. 판촉물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대형 포털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대신 판촉물 업체들은 포털이 먹고 남은 파이를 두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 조금씩 나눠 갖는 셈이다. 온라인 판촉물 시장에서 대한민국 1위를 달리는 업체의 연간 매출이 1000억 원대를 넘지 못한다.

    ‘설현 포스터’ 대박

    대기업은 돈이 되는 곳이라면 골목상권이든 어디든 가리지 않고 진출하지만 판촉물 업계로는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판촉물 홍보를 결심한 어떤 회사가 포털 검색으로 특정 판촉물 회사를 검색했다고 치자. 인터넷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그다음부터는 전화 상담으로 이뤄진다.

    판촉물을 구매하려는 측은 어떤 판촉물을, 어느 정도 규모로, 어떤 가격에 확보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해당 판촉물에 어떠한 글자들을 인쇄해 넣을지에 관해 판촉물 회사 직원과 상의하려 한다. 판촉물 회사 처지에서 보면, 상담원 인력이 투입되는 과정을 거쳐야 마지막 결재가 이뤄진다. 대기업은 판촉물업이 포털 광고비에다 이러한 인건비까지 더해져 사업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진입하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의 처지에선 판촉물은 공짜로 받는 것이니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판촉물에 대한 선호도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왔다. 그렇다면 요즘 소비자는 어떤 판촉물을 좋아할까. 필자의 회사인 위너판촉의 판촉물 매출 상위 10개 종목은 보조 배터리, 보틀(bottle·휴대용 물병), 텀블러, USB, 우산, 골프용품, 티슈, 스마트폰 터치펜, 휴대전화 거치대, 만년필, 블루투스 스피커다.

    판촉물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요즘엔 스마트폰이 대중화했고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 만큼 보조 배터리는 판촉물로 큰 인기를 누린다. 소비자는 보조 배터리를 늘 휴대하면서 꺼내 쓸 것이므로 기업으로서도 지속적인 홍보 효과를 거둔다. 디자인이 깜찍하고 쓰임새가 있는 보틀도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판촉물이다.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은 판촉물에 저절로 반영되는 게 아니다. 판촉물 업자는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이들의 삶을 판촉물에 반영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판촉물 업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트렌드가 유행을 타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TV 드라마와 연예오락 프로그램도 자주 봐야 하고, 10대와 20대가 요즘 어떤 물건에 꽂혔는지에 관심을 둬야 하며, 새로운 혁신적 상품이 출시된 게 있는지도 체크해야 한다.

    나아가 판촉물 업자는 존재하지 않는 소비자의 선호도를 ‘창조’해야 한다. 소비자가 ‘어, 이런 게 있는 줄 미처 몰랐는데 마음에 드네’라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여기엔 ‘기획력’이 수반돼야 한다.

    예를 들어 최근 한 통신사는 대리점마다 하나씩 자사 광고모델인 설현의 실물 크기 뒤태 포스터를 제공했다. 이 포스터는 대박이 나서 도난당하거나 중고품 거래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설현은 자신의 포스터 옆에서 같은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이 사진은 여러 언론에 소개돼 화제를 모았다. 기획을 잘한 판촉 활동은 이렇게 원래는 없던 대중의 관심과 기호를 새로이 만들어낸다. 이는 해당 기업 브랜드의 이미지 상승으로 직결된다.

    현재 필자의 회사는 2년 만에 브랜드 대상, 고객만족대상을 수상했고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필자의 회사도 다른 판촉물 회사와 마찬가지로 포털 검색 광고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연 언제까지 포털에 수익 대부분을 제공하는 이런 영업 방식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포털 넘어 혁신으로

    ‘빅데이터 분석’은 판촉물의 블루오션인지 모른다. 판촉물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기업과 소비자를 매개해줘야 한다. 접속자 로그분석 같은 기술적 방법으로 이 둘의 속성을 잘 알게 된다면 브랜드 홍보효과(기업이 수혜자)와 판촉물 사용만족도(소비자가 수혜자)가 최적화한 판촉물을 고안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판촉물 회사와 마케팅 회사, IT 회사의 협업도 필요하다.

    기업에서 주문이 들어오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기만 할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상품과 기획으로 이러이러하게 진행했을 때 이러이러한 결과가 나온다는 분석을 통해 기업의 마케팅과 연결된 종합컨설팅 판촉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떨까. 필자의 회사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 기존에 만들어진 틀, 원래 있던 유통 시스템, 이러한 것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 한다. 포털에서 검색되기만 기다리다 물품을 주문 받아 납품하는 관행에서 탈피한다면 훨씬 큰 시장이 열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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