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무장지대 걷기 행사’로 이름값을 높인 위민크로스 DMZ가 미국 의회를 상대로 북한을 옹호하는 로비를 벌여 일부 성과를 거뒀다. 한국에서 추방된 신은미 씨는 미국에서 주가가 더 올랐다. 재미(在美) 북한 옹호 혹은 지지 그룹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위민크로스 DMZ 비무장지대 걷기 행사.
별다른 수식 없이 ‘평화운동가’로만 소개된 그는 미국에선 북한 지지 성향의 활동가로 알려져 있다. 한 재미 인사는 “한국과 미국 정부에 반대하는 북한 지지 활동가가 한국까지 건너가 반(反)한국 정부 시위에 참여하는 꼴인데, 일부 언론은 그를 평화운동가로만 소개하더라”고 지적했다. 개그논 씨는 내란선동죄 등으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지지한다. 언론이 그를 소개할 때는 ‘북한 지지 성향의 미국인 평화운동가’라고 밝히는 게 옳을 듯하다.
‘Pro-North Korean Group’
재미 과학자 안수명 씨는 ‘대(對)잠수함전(戰) 전문가’ ‘대잠수함전과 알루미늄 흡착과 관련해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라고 한국 언론에 소개됐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2013)에는 “수심 20m에서 천안함이 잠수함에서 발사된 어뢰에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그의 발언이 담겼다. 2012년 6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피격됐을 확률은 0.0000001% 수준으로 제로에 가깝다”고도 했다. 안씨는 ‘천안함 침몰은 한국 혹은 미국의 작품’이란 견해가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
그는 방위사업체 ‘안텍’의 대표로 일하다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줬는데, 안텍이 미국에서 국방 관련 비밀취급 권한을 회복하고자 미국 공군과 체결한 협약서(2014년 4월 30일)에는 그의 북한 관련 행적이 담겨 있다. 이 협약서에 따르면 미국 국방보안원(DSS)은 안 박사의 노트북,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한 결과 그가 2013년 9월 중국 베이징을 찾아 북한 관료에게 자신이 △미국 해군의 잠수함 전력에 박식하고 △미국의 비밀취급권을 소지하고 있으며 △북한 국적자를 미국 국방부 발주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겠다고 제안한 사실을 확인했다.
안씨는 평화운동을 표방한 ‘위민크로스 DMZ(Women Cross DMZ)’에 참여한 ‘원 코리아를 위한 행동’의 J 대표, ‘통일운동가’로 알려진 O씨 등과 교류했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인터넷 언론을 운영하면서 북한 정권을 열렬하게 옹호해온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가 주관하는 행사에도 참여했다. 한국계 미국인이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것은 문제가 없는 일이겠으나, 북한과의 관계에서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는 사람의 주장을 북한과 관련된 문제에서 대서특필하는 것이 바람직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나 평가가 나올 수 있다.
개그논 씨처럼 한국을 비판하고 북한을 옹호하는 미국 내 단체로는 민족통신을 비롯해 △노동자 세계당 △사회주의·해방 그룹 △코리아 정책연구소 △코리아 전쟁 종언 국민 캠페인 △코리아를 걱정하는 학자 동맹 △평화를 위한 베테랑들 △원 코리아를 위한 행동 △코드 핑크 △재미 자주사상 연구소 △재미동포전국연합회 △LA 시국회의 △노둣돌 △미주 사람 사는 세상 △내일을 여는 사람들 △6·15 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사발통문 등이 있다.
美 의회에 北 옹호 로비
위민크로스 DMZ 회원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
“잘 모르겠습니다.”(허준영 한국자유총연맹 회장)
“제가 종북입니까?”(임 의원)
“연구해보겠습니다.”(허 회장)
9월 1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임 의원이 허 회장에게 “취임사에서 종북세력을 두더지처럼 때려잡겠다고 말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하면서 공방이 시작됐다. 임 의원과 함께 학생운동을 한 이들은 ‘종북’이라는 딱지를 임 의원 같은 사람에게 붙이는 사람을 보면 웃는다. 임 의원은 대학 시절에도 주체사상 같은 이념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게 하나같은 얘기다.
하긴, 일국의 정보기관 수장이 어처구니없게도 야권의 상당 부분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정치 개입,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직원들에게 “종북좌파들이 북한과 연계해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간에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한다” “야당이 되도 않는 소리 하면 강에 처박아야지” 등의 발언을 했다.
‘종북몰이’라는 말도 있다. 정치적 반대자나 집단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려는 태도를 지칭하는 미국의 ‘매카시즘’과 비슷한 표현이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 ‘베테랑’에서 “왜 그런 단체(민주노총)에 가입해, 니들이 종북좌파야?”(하청업체 사장이 화물차 운전사에게)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니가 좌빨이야?”(반장이 서도철 형사에게)라는 대사로 ‘종북몰이’의 허황함을 비웃는다.
그럼에도 북한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이 ‘평화운동가’ ’반전운동가’ ‘통일운동가’의 견해로만 알려지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석기 씨를 비롯한 ‘마지막 주사파’가 헤게모니를 쥔 통합진보당의 전례가 대표적일 것이다.
북한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성향의 단체(Pro-North Korean Groups) 중 최근 이름값이 높아진 곳은 ‘위민크로스 DMZ’다. ‘위민크로스 DMZ’ 회원 30여 명은 5월 24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북한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면서 유명해졌다.
미국 한인사회의 북한 지지·옹호 집단을 연구해온 로렌스 펙 박사는 “위민크로스 DMZ 기획자들이 한국 방문 이후 미국에서 유명해졌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이름을 알려 앞으로 펀딩, 행사 기획을 하기가 수월해졌다. DMZ를 거쳐 한국과 북한을 방문하면서 정당성, 존경심을 얻었다”고 말했다.
‘신동아’가 DMZ 걷기 행사 이후 ‘위민크로스 DMZ’의 행적을 추적해본 결과 이들은 미국에서 북한이 일관되게 요구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고 북한인권법을 비롯한 대북 제재와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 반대하는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소행이 아니다” “북한은 지뢰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여론전에도 나섰다. 미국 의회를 상대로도 로비에 나서 그 나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위민크로스 DMZ를 가로지르는 낱말은 ‘반미’ ‘반제국주의’다. 한 DMZ 걷기 행사 참가자는 미국에 돌아간 후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 동지의 뜻에 충실하자”는 문구가 실린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DMZ 걷기 행사를 기획한 크리스틴 안 씨는 복수의 북한 지지 및 옹호 성향 단체에 속했는데, DMZ 걷기 행사 이후에는 ‘위민크로스 DMZ’의 이름으로 주로 활동하고 있다.
“NO apology by North”
위민크로스 DMZ는 7월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의회 브리핑’이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미국 하원 의원들이 참여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찰스 랜겔, 존 콘이어스, 샘 존슨 의원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 “한반도가 여전히 전쟁 상태라는 사실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히면서 한국 전쟁 종전 결의안을 제안했다. 위민크로스 DMZ의 활동이 소기의 성과를 보인 셈이다.
위민크로스 DMZ는 9월 2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는 62년을 기다렸다”면서 평화협정을 맺으라는 예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지도자들이 비무장지대의 지뢰를 제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위민크로스 DMZ의 이 같은 주장을 오피니언 란에 실은 미국 언론도 있다.
위민크로스 DMZ는 남북 포격전 등과 관련해 남측이 북측을 도발해 위기가 고조됐다고 본다. 남측의 확성기 방송이 평화에 해가 됐다는 것이다. 또한 DMZ에서 폭발한 지뢰가 북측이 설치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남북 고위급 접촉 때 북한의 유감 표명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다. “북의 사과는 없었다(There was NO apology by North, The North did not apologize).” ”북은 공격에 사과한 것이 아니라 사고에 연민한 것이다(North Korea did not apologize for attacks. They expressed sympathy for the incident).”
DMZ 걷기 행사에 위민크로스 DMZ와 함께 참여한 ‘코드 핑크’도 미국 의회를 상대로 “조건 없는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로비를 벌인다. 위민크로스 DMZ 행진에 참여한 리자 마자 씨는 세계민주여성연합(WIDF)의 아시아 책임자다. WIDF는 사회주의 성향의 단체다. 마자 씨는 최근 미국 입국을 거부당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소개한, WIDF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에게 2012년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WIDF의 회의가 김일성 주석의 탄생 100주년 기념 기간에 열린 것은 의미가 상당합니다. 김일성 주석은 위대한 사상가며, 이론가며, 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한 탁월한 지도자…”(2012년 4월 12일 조선중앙통신)
“우리는 남북 사이에서 중립”
미국 내 북한 지지 및 옹호 성향 단체들은 북한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북한이탈주민을 미국으로 초청해 강연하게 하는 행사도 기획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전역에서 북한 옹호 성향의 강연이나 콘퍼런스를 주최해왔다.
‘코리안 아메리칸’이나 외국인이 신념과 양심에 따라 북한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것에 토를 달아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우리는 남북 사이에서 중립”이라고 주장하면서 활동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일부 시민단체와 연계하기도 했다. 미군기지 문제나 북한과의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단체 이름을 바꿔가면서 ‘평화운동가’ 등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이른바 ‘종북 콘서트’ 논란으로 지난 1월 한국에서 추방된 신은미 씨는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9월 16일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P교회에서 ‘북 콘서트’를 열었다. ‘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라는 제목이 붙은 홍보 포스터에는 ‘○○○통일문화상 수상’이라고 적혀 있다. 한 진보 성향 언론사가 만든 재단이 주최하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것을 홍보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P교회 담임목사는 신씨가 한국에서 추방됐을 때 LA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는데, LA에서 열리는 반(反)한국 정부 시위에 참석하는 인사다.
신씨가 추방됐을 때 윤길상 재미동포전국연합회 대표도 LA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윤씨는 위민크로스 DMZ와도 가깝다. 재미동포전국연합회는 뉴욕에 본부를 뒀으며 동부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북한 지지 단체다. 이 연합회는 북한의 비공식 영사관 기능도 한다. 북한 방문 비자 발급을 돕고 1인당 100~300달러를 받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수사당국이 재미동포전국연합회의 탈세 및 정치활동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면세 혜택을 받는 비영리 시민단체는 정치활동이 법으로 금지돼 있는데, 미국 수사당국은 연합회가 법을 어기고 북한을 옹호하는 정치활동을 벌였다고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대한 神’
신씨 역시 신념과 양심에 따라 자신이 느낀 것을 글로 쓰고 말했을 것이다. 북한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일부 하고’ ‘북한 여행을 통해 비록 가난하지만, 남한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소박한 정서를 가졌음을 발견해 이를 소개한’ 신은미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면서 추방한 것이 사리에 맞는 일이냐는 논란을 차치하고 신씨의 발언이나 강연을 청취하게 된다면 그의 성향과 주변 인사들을 감안하고 발언을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노길남 씨가 운영하는 ‘민족통신’ 게시판에 실린 글 하나를 소개한다. 민족통신 관계자들도 한국에서 쫓겨난 신씨를 마중하러 나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깨우친 것은 천만 다행이다. 그렇게 큰 덕으로 깨우치게 해주신 북조선에 참으로 감사한다. 모두가 다 알다시피 우리 조선에는 당, 원, 명, 청, 왜, 양키까지 살인 강도에 의해서 참으로 많은 세월 퍼주며 괴롭힘만을 당하며 살았다.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는 위대한 신이 꼭 필요했다. 그 신이 바로 김일성 주석님이었고 김정일 위원장님이었다. 이 두 신의 큰 덕으로 지금 북조선은 이 지구에서 최대 강국이 되었다. 노예국은 영원히 끝났다.”
한 한국계 재미 언론인은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미국식으로 볼 때 북한을 옹호하는 일부 발언을 했대서 추방하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직접 만나본 신은미 씨는 순진무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인 듯 보인다. 신은미 씨가 뭐 대단한 일을 했다고 통일문화상을 준 언론사도 우습다. 한국의 보수, 진보는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다투기만 하는 것 같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