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해서는….
“인간은 진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아무리 진화해도 완전해질 수 없어요. 인간이 완전해진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완전해지는 것은 진화를 멈추는 것인데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 품에 가진 철학·사상적 및 정치적 견해를 평가할 때 본인이 보수라고 생각합니까, 진보라고 생각합니까.
“한국 사회 기준으로는 굉장히 애매한 사람인 것 같아요. 서구에서 기준으로 삼는 안락사, 낙태, 총기 소유, 다문화 포용 같은 사회적 문제 분류표를 보면 제 생각이 진보와 거의 일치하더군요. 시장과 안보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보수로 분류될 여지가 많겠고요. 급진적 혁명이 아닌 점진적 변화를 지향하는 측면도 보수라고 볼 수도 있을 터인데, 그렇다고 한국 사회의 진보라는 분들이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북한을 보편적 인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것은 진보라고 하겠는데, 한국에서 그 반대로 분류되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종북보다 친북이 더 문제”
▼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해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정도는 아니지만, 더욱 평등한 사회,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진보적으로 사고하는 이들의 일반적 특징 아닐까요.
“완전히 이상적인 사회라는 건 있을 수 없지만, 현실 사회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계획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 집행이 급진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시민운동도 마찬가지고요.
정부에서 하든, 민간에서 하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험적 노력은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실험이 축적되면 자산으로 남을 겁니다.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 실험은 반대합니다.”
▼ 민혁당을 건설해 지도했습니다. 함께 활동한 이석기 씨는 내란선동죄로 징역 9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석기 씨가 헤게모니를 가졌던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됐습니다. 종북 세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종북 세력이 굉장히 많은 것처럼 알려졌지만 20년에 걸쳐 꾸준히 줄었다고 봅니다.
마지막 종북 세력이 이석기를 중심으로 하는 구조였다고 생각해요. 이석기가 구속되면서 구심점과 동력을 거의 잃었습니다. 종북은 정신문명 발전과정을 보더라도 용납하기가 어렵습니다. 1980년대처럼 정보가 제한돼 있다면 모를까, 인민을 탄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정권을 추종한다는 게…. 지성의 극심한 마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 종북은 이석기 씨 사태로 실체가 알려지면서 심대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친북’이라고 표현할까요. 반미친북적 사고를 갖고 정치·사회활동을 하는 이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들이 더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종북은 북한에 심취해 좌우 가리지 않고 그것에만 매달리거든요. 친북이라는 표현이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람들은 좌우를 살펴봅니다. 북한에 대해 어느 정도 알면서도 정치적 입지와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 스탠스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직하지 못하다고나 할까요.”
“한·중 이해관계 상충 없다”
▼ 9월 2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변화하는 동아시아를 상징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외교 전략의 핵심 중 하나가 친중정책이라고 봅니다. 친중정책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얻을 것은 뭐라고 보는지요.
“북한 문제를 해결해 한국 주도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외교의 장기적 목표가 돼야겠지요. 북한이 위협이 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중국은 한국과 북한 둘 다 우호국가로 만들려고 할 겁니다.
북한이 미국 세력을 견제하는 완충지대 노릇을 하고 있으나 마음에 안 드는 완충지대일 겁니다. 말썽도 자주 일으키고 중국의 국제적 위신도 떨어뜨립니다. 낙제점의 완충지대라고 하겠습니다.
중국의 국익과 이해관계로만 보면 가장 좋은 것은 한국 주도로 통일된 한반도가 북한보다 고급스러운 완충지대가 되는 겁니다. 한국의 국익, 이해관계를 봅시다. 한국 주도로 통일을 이루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화 노선을 선택한다? 그것이 우리의 이해관계에 크게 배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처지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겠으나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은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따라서 한중관계의 장기적 이해관계가 상충되거나 배치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문제는 한국과 중국 사이에 아직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한미동맹이 유지되고 주한미군이 주둔하면서 통일한국이 미국에 경도된 정책을 펼치는 상황을 중국은 우려합니다. 한국은 단기적으로 중국이 북한 편만 드는 것을 걱정하는 데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통일 후 한반도에 강압적인 정책을 펴지 않을까 우려할 것이고요. 이런 불신 탓에 서로 눈치만 보는데, 통일 이후 중국이 한국에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통일로 가는 과정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고, 약속했다고 해서 지켜진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확신은 없더라도 어느 정도의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면 한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근접할 수 있습니다.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임계점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았고요.
중국은 통일한국이 어느 정도 중립적인 완충지대 역할을 하리라는 믿음을 확실히 갖고, 한국은 중국이 통일 과정에서 우리를 지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임계점입니다. 그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국이 한국 주도의 통일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대중정책을 아주 긍정적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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