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호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스타 셰프가 본 ‘스타 셰프 전성시대’

  • 박찬일 | 요리사, 요리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입력2015-09-22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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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리의 시대다. 방송마다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다. 이른바 스타 셰프들이 주인공이다. 스타 셰프 양성학과마저 생겨났다. 이 현란한 요리의 시대는 얼마나 지속될까. 그 자신 스타 셰프인 박찬일 요리사가 관찰한 스타 셰프 시대의 빛과 그림자.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공중파 텔레비전 3곳 출연 및 자문 요청, 라디오 2곳 출연, 출판 의뢰 1곳, 출판할 서적 추천사 의뢰 1곳, 케이블텔레비전 출연 섭외 3곳, 종편채널 출연 섭외 1곳, 백화점 요리쇼 출연 섭외 1곳, 정부(농림수산부) 간담회 초청 1곳, 정부 산하기관 강연 섭외 1곳, 지자체 강연 섭외 1곳, 도서관 강연 섭외 1곳…”.

    최근 필자가 연락받은 각종 출연 섭외의 대강이다. 이 밖에도 기록하지 않은 소소한 온갖 연락이 문자 그대로 쇄도했다. 필자는 책을 출간하거나 원고를 쓰기 때문에 원래 섭외 요청이 많은 편인데도 엄청난 변화를 실감한다.

    좀 웃기는 얘기지만 한 수입 자동차 론칭쇼에서 요리를 좀 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까지 받았다. 비용을 얼마나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재료비와 수고료를 따져 대답했다. 500만 원이 넘지 않는 비용이었다. 그러자 담당자가 아주 난처한 듯 한참 뜸을 들였다. 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 깎아드리기 어렵습니다” 하고 추가로 정중히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 저희 예산이 1500만 원 잡혀 있는데 너무 적게 부르셔서….”

    ‘스타 셰프 양성학과’



    최근 한 요리잡지를 뒤적이다가 놀라운 광고를 하나 발견했다. 한 요리전문학교에서 내놓은 광고였다. 나는 눈을 씻고 다시 봤다. 모집 학과에 아주 특별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스타 셰프 양성학과’였다. 스타 셰프를 양성한다니. 헛웃음이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여러 동료 후배들이 이 광고를 보고 우려 섞인 연락을 해왔다. 너무들 한다, 이게 무슨 짓이냐, 선임급 요리사들이 당장 뭔가 발언해야 한다, 아이들 다 망치겠다, 이런 의견이 나왔다.

    결국 아무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지만, 입맛이 썼다. 스타 셰프를 양성하겠다는 의지가 진짜라고 해도, 그게 가능한 일인가. 훌륭한 명장 셰프가 될 수 있는 기초를 가르치겠다면 그것은 가능하다. 물론 2년의 재학 기간에 초보적인 토대를 잡아준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스타 셰프란 문자 그대로 대중의 인기를 담보하는 인기인을 말한다. 그것을 어떻게 양성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스타 셰프란 그야말로 우연히 탄생한다. 실력이 좋다고 해서 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예능감이 있거나 우연한 기회에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된 경우에나 가능하다. 그런데 그걸 ‘양성’하겠다고? 이러다가 양현석과 박진영이 셰프를 키우겠다고 나설 일이다.

    이 학과와는 관련 없지만 적어도 이른바 ‘스타 셰프’를 전면에 내세워 학생을 모집하는 전문학교가 늘고 있다. 지망생이 전부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다수가 그 셰프의 명성에 반해서 지원하게 될 것이다. 서울의 한 전문학교는 한동안 에드워드 권(권영민 씨)을 모델로 내세워 학생을 모집했다. 그에게 부여된 직책은 학장급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정식 커리큘럼 강의는 거의 없고, 가끔 특강하는 조건이란다.

    최근에는 그 인물이 바뀌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인기 절정인 최현석 씨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JTBC)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된 요리사다. 그도 아마 비슷한 조건일 것이다. 이 밖에 ‘마스터셰프 코리아’(올리브TV)로 알려진 강레오 씨도 모 전문학교의 학과장급 대우를 받고 광고에 참여한다.

    일반 대학의 조리학과에서는 아직 이런 움직임이 없지만,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전문학교(고용노동부 소관의 2년제 직업학교)에서 주로 스타 셰프 마케팅을 활발하게 펼친다. 이런 마케팅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시설과 탄탄한 강사진, 우수한 재료와 학사 일정 투자가 더 우선인 것은 학교라면 당연할 일일 테다.

    필자가 알기로는, 스타 셰프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7~8년 전의 일이다. 바로 에드워드 권이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필자는 서울 청담동 이탈리아 식당에서 셰프로 일했다. 어느 날 잡지를 보다가 인상적인 인물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미국에서 활동하다 중동으로 가서 속칭 별이 일곱 개인 호텔의 수석주방장이 된 입지전적인 남자의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인물이 출중했다.

    기자 출신인 필자는 그의 인물 사진에서 받은 느낌으로, 곧바로 그가 스타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 대중이 좋아할 요소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었다. 잘생겼지, 입지전적인 성공 스토리를 가졌지, 막 뜨는 고급 서양요리사지, 게다가 별이 일곱 개라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호텔에 별이 일곱 개라는 건 다소 과장된 마케팅이다. 법적인 구속은 없지만, 호텔의 별은 다섯 개가 최고다. 별이 일곱 개라고 한 건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일 텐데, 업계에서는 이런 것을 자격지심의 발로로 보기도 한다. 별 다섯 개란 단순히 시설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역사와 전통, 서비스의 격조 등이 조합돼야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탈리아 볼로냐를 방문했는데, 다이애나비가 묵은 호텔에 나도 묵을 기회가 있었다. 그 호텔의 별은 고작(?) 4개였다. 유럽 주요 도시의 최고급 호텔은 대부분 별이 4개다.

    에드워드 권의 활약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한국에 스타 셰프 시대를 연 에드워드 권.

    어쨌든 에드워드 권은 날개를 달았다. 호텔을 그만두고 즉시 한국으로 비즈니스를 하러 들어왔다. 한 유력지는 그를 대문짝만하게 실어주었다(그 신문은 나중에 그가 자신의 이력을 일부 속였다는 기사를 실은 곳이기도 하다). 대중 잡지는 앞다퉈 그를 인터뷰했다. 완벽한 이력과 용모, 요리 실력이 포인트였다.

    당연히 전파 매체도 달려들었다. 심지어 드라마에도 출연했고, 온갖 오락프로그램도 그의 몫이었다. 한 케이블방송에는 주연으로 출연, 그 유명한 ‘고든 램지’ 식의 연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든 램지는 영국에서 제작된 ‘헬스키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요리사 지망생을 가차 없이 나무라고 모욕을 주는 것으로 유명해진 영국의 스타 셰프다.

    그 프로그램에서 에드워드 권의 캐릭터는 램지를 오마주한 것처럼 보였다. 요리사 지망생을 무섭게 어르고 달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그는 여세를 몰아 강남과 이태원, 한남동 등지에 고급 식당을 여럿 열었다. 그에게 식당을 같이 하자고 돈보따리를 싸들고 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소문도 들렸다. 어쨌든 스타 셰프의 시대는 그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정부는 총력을 기울여 이 행사를 치렀다. 박정희 시대에 무궁화 다섯 개급 호텔이 몇 있었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외국 자본도 끌어들여 많은 수의 호텔을 지었다. 당연히 고급 식당도 들어섰다. 경제에 돈이 돌았다. 강남에 부유한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식당이 연이어 생겼다. 청담동 시대의 개막이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식당에 와인이 없어서 못 팔았다. 와인을 한 병씩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으면 촌스러워 ‘가오(체면)’가 떨어지는 시대였다. 셰프가 없어서 칼만 쥐어도 자리에 앉혔다.”

    김대중 정부의 소비 진작책-카드 발급 최다 기록 경신-등으로 청담동 경기는 가라앉을 줄 몰랐다. 요리사가 모자랐다. 정말 칼만 쥐어도 주방장이었다. 보통 주방장이 되는 데는 최소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고급 식당은 우후죽순으로 생겼고, 요리사는 모자랐다. 3, 4년차가 주방장이 되는 일이 허다했다. 중국요리가 팽창하던 1970~80년대에 짜장면, 짬뽕에 탕수육만 튀길 줄 알면 국자를 쥐고 주방장이 되던 것과 흡사했다.

    그렇다보니 가짜 요리사도 난무했다. 신사동의 한 퓨전 식당에 일본인이라는 셰프가 있었다. 한국말은 어눌하게 하고, 일본어를 썼다. 당시 1억 가까운 연봉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한국인임이 밝혀졌다. 소득세 신고를 하면서 주민등록증을 낸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은 거의 걸러졌지만, 가짜 이력도 많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의 식당에서 일했다는 이력이었다. 심지어 그곳에서 주방장급으로 일했다는 이력도 있었다. 물론 말짱 거짓말이었다.

    음지에서 양지로

    대중은 늘 새로운 스타를 갈구한다. 소비하고 난 스타는 버리고, 다른 스타를 찾는다. 그것이 대중의 심리다. 대중의 사랑을 영원히 받는 일은 어렵다. 방송가에 ‘잘나갈 때 요절’이라는 말이 있다. 스타성을 끝없이 유지하는 방법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작자들은 그래서 늘 새로운 스타를 공급하고자 한다.

    텔레비전에서 요리사가 등장한 것도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과거 요리사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스스로 하고 싶어 요리사가 된 경우가 드물었다. 대개는 ‘먹여주고 재워주니’ 요리사가 됐다. 2층방에서 먹고 자며 연탄불을 갈면서 요리를 배운 세대다. 그들에게 재치 있는 말솜씨와 번듯한 외모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새로운 세대의 요리사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말솜씨도 좋다. 제작자들이 좋아할 요소를 갖춘 것이다.

    때마침 유럽과 일본은 셰프의 시대였다. 한국에 아직 셰프 바람이 불기 전, 유럽과 미국은 푸드 프로그램이 넘쳐났다. 여러 프로그램에 요리사가 출연했다. 인기도 높았다. 미슐랭 스타가 상징하는 대중적 인기와 신비감을 함께 누렸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울 때, 한 요리사가 화제가 됐다. 대통령(보통 행정수반은 총리이지만 국가의 대표성은 대통령이 갖는다)의 만찬에 그를 불렀는데, 아내의 해산 때문에 요리를 할 수 없다고 거절한 것이다. 미슐랭 별이 붙은 스타는 모두가 흠모하는 대상이었다. 분자요리로 유명한 스페인의 미슐랭 별 셋 셰프 페란 아드리아는 ‘뉴욕타임스’ 음식담당기자가 자리를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좋지, 뉴욕타임스니까 특별대우를 해드리자고, 2년 후 보자고 말이야.”

    그의 식당은 2년간 예약이 꽉 차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의 대중매체에 요리사가 등장해서 ‘웃기고 인기를 끈’ 것은 아마도 ‘대가’라고 불리는 아무개 요리사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요리사들은 얼굴을 알 수 없는, 부엌 안에 있는 음지의 인물이었다.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많은 스타 셰프를 배출한 올리브TV.



    “여보, 이제 고생 끝났어”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중국음식의 달인으로 꼽히는 이연복 요리사.

    이제 요리사들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 에드워드 권이 유명해지기 전에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끈 셰프가 있었다. 아무개 씨다. 그는 탤런트 최화정 씨가 진행하는 쇼(요리가 중심은 아니지만 일반 쇼에서 요리를 무게 있게 다룬 최초의 프로가 아닌가 싶다)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첫 방송을 한 날, 집에 가서 아내에게 했다는 말을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다.

    “여보, 이제 우리 고생 끝났어!”

    그는 필자의 친한 후배이기도 하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해서 많은 후배를 가슴 아프게 했다. 어쨌든 그의 고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 열매를 따먹게 된 것은 후배들이다. 마침 패션과 스타일을 다루던 CJ 계열의 올리브TV가 요리 전문방송을 선언했다. 5년 전의 일이다. 당시 CP를 비롯한 다수의 프로듀서가 내게 자문한 기억이 난다. 요리전문방송이 먹힐 것인지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모험은 성공했다. 그 방송을 통해 많은 스타가 배출됐다. 지금 공중파에서 활동하는 요리사 대부분이 그 방송 출신이다. 그 이름 중에 이연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나이 예순이 다 돼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음식 맛 좋기로 유명한 셰프이긴 했지만, 이렇게 인기인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가 5년 전인가 올리브TV에 출연한 뒤 내게 술을 산다고 한 기억이 난다. 100만 원인가 하는 출연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공돈이 생긴 건 처음이라며 신나 했다.

    지금 그는 행사에 불려 가면 1000만 원대를 받고, 1억 원짜리 광고를 찍는 인기인이 됐다. 자신의 인생을 다룬 자서전 같은 책도 출간했다. 불과 4, 5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를 만나러 가면, 늘 꾸깃꾸깃한 조리복 상의에 기름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으로 나를 환하게 맞으며 짜장면을 볶고 만두를 튀겨주었다.

    그는 지금의 인기를 실감치 못하겠다고 한다. 하도 오라는 데가 많아서 이제는 매니저를 고용해야 할 판이라고 한다. 그의 식당엔 전화만 받는 직원이 따로 있다.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그 식당에 가보려고 전화를 걸어대니 늘 통화 중이다. 피곤한 직원이 어쩌다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으면 또 비난이 빗발친다. 그래서 호텔처럼 따로 전화 받는 직원을 고용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직원의 주 업무는 예약이 아니라 예약 거절이다. 두어 달 이상 밀려 있으니 원하는 날짜에 예약을 해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약을 받기보다 거절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말이다.

    이런 스타 셰프의 시대가 오래갈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요리가 세상의 화두가 됐지만, 스타 셰프는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일종의 허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들의 음식을 먹고 즐기고 소비하는 계층은 극소수다. 이런 상황에서 일종의 비틀기와 풍자가 나온다. 거리에서 ‘스타 셰프가 극찬 안 한 집’이라는 비틀기 광고가 나오고, 길거리와 마트에서 파는 대중음식 재료를 가지고 스타 셰프처럼 멋 부려 차린 음식 사진이 SNS에 나와서 웃음을 자아낸다.

    대중은 언젠가 스타 셰프를 소비하는 것을 지겨워할 것이다. 대중매체 운영자들은 ‘포스트 셰프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이제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아니라고? 한때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나오던 식당탐방이 조작설 등의 비난을 받으며 시들해져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소외되는 요리사들

    조선작이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를 펴낸 것이 1973년이다. 지금은 셰프의 전성시대다. 영자와 셰프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불안하고 허술한 구조의 전성시대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텔레비전에서 빛을 보며 인기를 구가할 때 절대 다수의 요리사는 고단한 노동 현장에 있다. 요리사 직종에는 대체로 노동조합도 없다. 아마도 조합 조직률이 가장 낮을 것이다. 일부 호텔에 소속된 요리사나 조합원이다. 그나마 최근 입사한 경우는 계약직 등으로 조합 가입률이 아주 낮다.

    요리사는 일반 회사원을 빼면 일반 노동자 중에 숫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설마? 사실이다. 일반 식당에서 일하는 다수의 ‘찬모’나 ‘이모’ 등으로 불리는 여성 요리노동자를 합치면 그런 비율이 나온다.

    영세하기로도 노동자 중에 최고다. 5인 이하 업장이 대다수이며, 폐업률도 가장 높다. 식당을 열어 1년 후 남아 있을 확률은 보통 30% 미만이다. 5년까지 버티는 경우는 10%도 안 된다. 최악으로 치닫는 자영업 문제도 요리사와 관련이 있다. 치킨 등의 업종에서 주방을 맡은 이들이 모두 요리사인 셈이다. 영세하다보니 퇴직금을 못 받고, 임금을 떼이는 일도 다반사다.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박찬일

    요리사.

    2002년부터 청담동 등지에서 일하며 셰프 시대의 태동과 개막을 지켜본 증인이기도 하다. 요리 칼럼니스트이자 작가로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뜨거운 한 입’ 등을 펴냈다.


    텔레비전을 틀면 요리사들이 나와서 요리를 하거나, 웃음꽃을 피우며 만담을 한다. 그들을 응시하며 음지에서 닭을 튀기며 밥을 하는 다수의 노동자 또한 그들과 같은 요리사다. 소외는 이제 요리사 세계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새로운 화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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