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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부터 설까지 ‘닥치고 몰입’ 하라

새해 맞이 정치학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신정부터 설까지 ‘닥치고 몰입’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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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년 계획(New year’s resolution). 영·미인들이 새해만 되면 계획을 세우니 이런 관용어까지 생긴 것 같다. 우리도 ‘새해엔 ○○해야지’라고 곧잘 결심하곤 한다. 그러나 대개 작심삼일로 끝난다. ‘새해를 맞이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관해 얘기해보자.
신정부터 설까지 ‘닥치고 몰입’ 하라

원숭이를 주제로 한 한국조폐공사의 ‘2016년 병신년 12간지 기념메달’

2014년 이맘때도 우리는 2015년 신년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 내 주변의 많은 이는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다. 2016년 새해를 맞아 달력을 넘겨보며 우리는 다시 열망을 불태운다. 새해부터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냉정하자’고 말하고 싶다. 무리한 계획은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몸을 축나게 하고 결국 성사되지도 않는다.

시작은 창대, 끝은 미미

과도한 목표, 게으름, 예상치 못한 일. 신년 계획을 망치는 3대 요인이다. 첫째와 둘째는 결국 우리 문제다. 스스로 조정하고 극복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일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그런 점에서 운명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 예상치 못한 일은 자주 나를 굴복시킨다. 목표 달성을 방해하고 의지를 꺾는다. 의외로 치명적이다. 더욱이, 게으름에 알리바이까지 제공한다. 신년 계획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는데도 자책감마저 남지 않게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온전히 예상치 못한 일은 없다. 예컨대, 예상치 못한 일 중에는 신정 연휴도 포함된다. 이미 빨갛게 표시돼 충분히 예견 가능함에도 우리는 연휴를 마치 없는 것처럼 여긴다. 막상 연휴가 닥쳐 어디로 해돋이 여행이라도 가면 세워둔 신년 계획에 치명상을 준다. 빨간 날은 그 전후 일정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빨간 날의 비일상성 탓이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 일탈은 휴식으로도 작용하지만, 사전사후 적응과정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뺏는다. 스트레스를 낳는다. 이것이 계획의 실행을 초장부터 망친다.    

‘일반 놀반’ 골든타임

신년 계획에도 골든타임, 즉 생사가 달린 초기 대응기간이 있다. 응급처치에서 심폐소생술은 최단 5분에서 최장 10분 내에 시행해야 한다. 이때의 1분 1초는 이후 시간 대비 수십만 배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신년 계획에선 12개월을 기준으로 1/4분기, 그중에서도 1월이 바로 골든타임에 해당한다. 이토록 중요한 기간이지만 연말연시 들뜬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 것 절반 노는 것 절반, 곧 ‘일반 놀반’으로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기간 불에 기름 붓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설 연휴다. 연말이 다가오는 11월이면 벌써 송년회가 시작된다. 12월 중순 정도에 대략 송년회를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이후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돌입한다. 크리스마스, 신정 연휴를 마치면 시무식, 신년 하례가 이어진다. 서양에선 이것으로 연말연시 연휴 끝이다. 다시 평범한 일상이다. 서양인들은 1월 초부터 곧바로 신년 계획 실행에 돌입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신년 분위기가 설 연휴 때까지 이어진다. 설 연휴가 2월 말로 잡힌 해에는 사실상 3월 1일부터가 본격적 신년으로 인식된다.     

신정~설, 애매한 시기

다시 말해, 신정에서 설 연휴까지의 긴 기간이 다수의 한국인에게 애매한 시기로 비친다. ‘새해인 듯 새해 같지 않은 새해’다. 1월 1일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고, 한 달여 뒤인 설 연휴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정~설 기간을 대충 흘려보내는 사람이 많다. 사람은 원래 개념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것에 잘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음력 1월 1일(한국에선 설, 중국에선 춘절)을 기념하는 한국과 중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인들은 신정~춘절까지의 시기에 대해 한국인들과 비슷한 인지부조화를 겪을 게 틀림없다. 게다가 중국의 경우 춘절 연휴 때 고향 갔다 오는 길이 어마어마하게 멀다. 물론 정서적으로 얻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중국인들이 춘절까지 상당한 물리적 에너지를 소진한 뒤 한 해를 시작하는 건 분명하다.  

1달 내 계획 포기 70%

그러나 우리가 중국인 걱정해줄 처지는 아니다. 우리의 새해 맞이도 중국만큼이나 많은 낭비적 요소를 지녔다.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우리 직장인의 66.9%는 신년 계획을 한 달 안에 포기한다. 30.4%는 작심삼일에 그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2월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설 연휴가 신년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의지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설 연휴를 없앨 순 없다. 과거 일제가 낡은 명절이라는 의미로 ‘구정(舊正)’이라고 써가며 없애려 했고 박정희 정부도 공무원에게 불이익을 줘가면서 양력 1월 1일, 신정으로 통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몸에 밴 전통은 하루아침에 어떻게 되지 않는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기성세대가 돼 제사를 안 지내고 고향 부모님을 안 찾으면 어느 순간 설 연휴가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결국 개인적으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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