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호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태국 아유타야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입력2015-12-22 10: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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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유타야는 불교 유적의 천국 같은 곳이다. 18세기 후반 미얀마의 공격으로 파괴된 이후 재건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고고학 유적지가 됐다. 곳곳에서 불탄 흔적, 부서진 불상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고전 영화 ‘왕과 나(the King and I)’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마거릿 랜든이 1944년 펴낸 자전적 소설 ‘애나와 사이암의 왕(Anna and the King of Siam)’인데, 이 소설의 배경이 태국 남부의 아유타야(Ayutthaya)다.
    태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3곳의 문화유산과 2곳의 자연유산을 갖고 있다. 그리고 5개 유산이 잠정목록에 올라 있고, 현재 등재에 도전하는 유산이 11개나 된다. 가히 유산의 나라다. 아유타야는 태국역사공원(Historical Parks in Thailand)이라는 명칭으로 지정·관리되는 10개의 유산 중 1개. 그중 아유타야를 포함한 4개가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돼 있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불교의 세계관에 따라 건설된 왓 차이왓타나람 몽콘.


    영화 ‘왕과 나’ 배경

    아유타야 역사도시는 ‘진정한 태국 예술 발전의 단계를 훌륭하게 간직’하고 있어 등재기준 (ⅲ)인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적어도 특출한 증거’라는 조건을 충족시킴으로써 1991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특히 아유타야는 등재기준 (ⅲ)의 세계적인 대표 사례로 간주된다.
    아유타야는 한때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렸고, 사이암 왕국의 두 번째 수도였다. 첫 번째 수도 롭부리(Lop Buri)에 천연두가 창궐하자 아유타야로 천도했다. 아유타야는 바다로 연결되는 3개의 강에 에워싸인 섬으로 외적의 침입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지역이다. 도시는 14세기 중엽 건립됐고, 18세기 후반에 미얀마의 공격으로 파괴됐다. 이후 도시는 재건되지 않은 채 고고학 유적지로 남았다. 곳곳에 불탄 흔적이나 부서진 채 몸만 남은 불상 등 유적이 즐비하다.
    아유타야 역사도시(Historic City of Ayutthaya)에는 유적이 수도 없이 많아 걷고 또 걸어도 끝이 없다. 대표적인 유적 몇 군데를 소개한다.

    왓 야이 차이몽콘
    Wat Yai ChaiMongkhon

    섬의 남동쪽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요즘도 현지인이 자주 찾는 사원이라 참배객들로 무척 붐볐다. 1357년 초대 우통 왕이 스리랑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승려들의 명상 수업을 돕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사원에는 거대한 와불(臥佛)이 있는 비하라 유적, 좌불(坐佛)이 있는 비하라 유적, 셀 수 없이 많은 좌불이 있는 갤러리, 체디(Chedi)라고 하는 대규모 주 불탑과 작은 체디 등이 있다. 주 불탑인 프라 체디 차이몽콘(Phra Chedi Chaimongkhon)은 나레수언 왕이 1592년 미얀마와 싸울 때 코끼리를 타고 맨손으로 미얀마의 왕자를 죽여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사원은 ‘승리의 대사원(Great Monastery of Auspicious Victory)’이라 한다.
    이 주 불탑의 높이는 72m로 아유타야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북동쪽의 도시 반대편에 미얀마가 세운 불탑 체디 푸 카오 똥(Chedi Phu Khao Tong)과 대비되기도 한다. 주 불탑은 가파른 경사 계단을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에는 유물을 보관해놓은 공간이 있다. 방문객이 하도 많아 움푹 파인 곳들이 있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관람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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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 차이왓타나람 몽콘
    Wat Chaiwatthanaram Mongkhon

    아유타야 남서쪽 외곽이자 차오프라야 강(Chao Phraya River) 서안에 있는 대규모 불교 유적지다. 아유타야 최고의 유적지로 역사공원 경계 밖에 있는데도 세계유산에 포함됐다.
    이 사원의 이름은 ‘장구한 통치 및 영광의 시대를 위한 사원(the Temple of long reign and glorious era)’이라는 뜻. 1630년 프라삿 통 왕이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세운 왕궁사원으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Ankor Wat)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전체 배치 및 조형은 불교의 세계관을 따른다. 가운데에 중심축인 수미산(須彌山, Mount Meru)을 상징하는 커다란 중앙 쁘랑(Prang Prathan)을 세우고, 그 주위 사방에 대륙을 상징하는 4개의 작은 쁘랑을 세웠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네 개의 대륙으로 헤엄쳐갈 수 있다는 의미다. 대륙 중 하나는 인간이 살고 있는 땅, 남섬부주(南贍部洲)를 상징한다.
    체디 모양의 예배소도 독특하다. 모두 여덟 곳의 예배소 내부에는 벽화가 남아 있고, 외부에는 본생담(本生譚, 석가모니의 전생을 묘사한 설화)인 자타카(Jataka)를 표현한 부조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반드시 시계 방향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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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 프라 시 산펫
    Wat Phra Si Sanphet



    ‘성스럽고 화려한 전지전능의 사원(Temple of the Holy, Splendid Omniscient)’이라는 의미로 태국 수도 방콕 왕궁 내 에메랄드 불상이 있는 왓 프라 깨오(Wat Phra Kaeo)의 전형이 된 중요한 사원이다.
    이 사원은 고대 아유타야 왕궁 내에 건립된 왕실사원이었다. 승려는 살지 않고 오로지 왕실의 행사 등에 사용됐으며 100년가량 왕실의 거주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아유타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이었다는 이곳에는 343kg의 금을 입힌 높이 16m의 입불상이 있었다고도 한다. 1767년 미얀마에 의해 모두 파괴됐을 때 불상에 입힌 금이 녹아내렸고 건물은 다 타버렸다고 전해진다. 당시 체디들도 모두 파괴됐다. 현재 있는 3개의 체디는 1956년에 시작된 복구 작업으로 재건된  것이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아유타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원이었던 왓 프라 시 산펫 유적. 금을 입힌 입불상이 녹아내렸을 정도로 미얀마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현재 있는 3개의 체디는 복구 작업으로 재건된 것.


    왓 로까이수타람
    Wat Lokayasutharam

    옛 왕궁 뒤편에 있는 사원. 길이 37m, 높이 8m의 동쪽을 향한 와불(Phra Bhuddhasaiyart)로 유명하다. 아유타야에는 커다란 와불이 많이 있지만, 이 와불상의 규모가 가장 크다. 와불의 머리는 연꽃 위에 놓여 있고, 다리는 포개어 발가락을 가지런히 하고 있다. 불상 뒤 쪽으로 사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span style="font-weight: normal;">왓 몽콘 보핏의 내부 불상.</span>

    왓 몽콘 보핏

    Wat Mongkhon Bophit

    왓 프라 시 산펫과 이웃한 사원으로 미얀마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56년 미얀마가 마련한 기금으로 복구했다. 내부에 대형 청동불상이 있다.

    왓 프라 마하탓
    Wat Phra Mahathat

    ‘막대한 유물의 사원(Temple of the great relics)’이라는 뜻으로 14세기에 건립됐다. 체디와 쁘랑이 혼재하고, 무엇보다도 돌로 만든 부처의 머리(佛頭)가 무화과나무 줄기와 뿌리에 에워싸여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불두에 대한 추측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훼철되어 동댕이쳐진 불두가 오랫동안 방치돼 나무뿌리와 줄기가 자라서 휘감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둑이 불두를 베어다 숨겨놓았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아유타야에서 북쪽으로 50km, 방콕에서는 약 150km 떨어진 곳에 롭부리가 있다. 7~13세기 이 지역을 지배한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아유타야 왕국의 나라이 대왕은 프랑스 건축가들을 끌어들여 여러 건축을 시도했는데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선사시대부터 3000년 이상 된 다양한 문화를 간직한다.

    왓 프라 시 라따나 마하 탓
    Wat Phra Si Ratana Mahathat

    롭부리 마을 중앙에 있는 대규모 왕실사원으로 건설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크메르 시절로 추측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수차례 복원해 원형에서 변형된 것으로 판단된다. 사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살라 쁠루엉 크루앙(Sala Pluang Khruang)으로 왕이 종교적 행사에 참석하기 전 옷을 갈아입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주실의 서쪽에는 회반죽을 입힌 라테라이트(laterite, 紅土)로 지은 높이 30.7m의 큰 쁘랑이 있다. 이 탑에는 부처와 부처의 삶이 조각돼 있다. 14세기경에 처음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고, 탑파, 갤러리 및 비하라 등은 나라이 대왕 때 사원을 복구하면서 함께 건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프라 쁘랑 삼욧.


    프라 쁘랑 삼욧
    Phra Prang Sam yod

    롭부리의 대표적 사원으로, 수백 마리의 원숭이가 이 사원을 점령하고 있다. 사원에는 힌두의 삼위일체인 브라마(Brahma), 비슈누(Vishnu), 시바(Shiva)를 상징하는 세 개의 쁘랑이 서로 연결돼 있다. 이 쁘랑들은 12~13세기 크메르 바욘 스타일로 지어졌다. 각 쁘랑은 붉은 흙인 라테라이트로 축조됐고 회반죽이 덧대어져 있다.
    이 사원은 크메르 불교 사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시바의 링가(다산의 상징인 시바의 성기)가 만들어지며서 힌두 사원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나라이 대왕에 이르러 불교 사원으로 재보수됐다. 건축양식은 입구의 계단과 창문에서 볼 수 있듯 아유타야와 유럽 양식이 혼합돼 있다. 내부에는 사암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 모셔져 있다. 아유타야 초기 양식이다.

    반 루앙 랍 랏차툿
    Ban Luang Rap Ratchathaut

    나라이 왕은 롭부리 왕궁 근처에 외교관 및 사제를 위한 저택을 지었다. 콘스탄틴 팔콘 (Constantine Phaulkon)이라는 그리스 외교관이자 무역인이 왕의 측근으로 지근거리에 있게 되자 저택을 하사하는데, 바로 반 루앙 랍 라차툿 서쪽의 차오프라야 위카옌(Chao Phraya Wichayen)이다. 대개의 건물은 바로크 양식에 태국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타이-유럽 저택 (Thai-European Palace)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왕궁에서 그를 시기하던 사람들에 의해 팔콘은 훗날 참수를 당한다. 왕은 이 음모를 뒤늦게 눈치채게 되는데, 이미 병환이 깊어 이를 저지할 힘이 없었고, 불과 며칠 후 왕 또한 서거했다고 한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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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인 숙

    ● 1954년 서울 출생
    ●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성균관대 석·박사(건축학)
    ● 서울시 북촌보존 한옥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 現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 역사건축구조 국제학술위원회 부회장, 국제건축사연맹 문화정체성-건축유산위원회 국제공동위원장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1357년 초대 우통 왕이 세운 왓 야이 차이몽콘. 요즘도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사원이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왓 프라 마하탓. ‘막대한 유물의 사원’이란 뜻이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왓 프라 시 산펫. 아유타야 왕궁 내 사원으로 ‘성스럽고 화려한 전지전능의 사원’이라는 뜻이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왓 야이 차이몽콘에 있는 거대한 와불.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아유타야에서 뚝뚝(tuktuk, 삼발택시)을 대절해 유적지를 탐방했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왓 프라 마하탓에서는 무화과나무 줄기와 뿌리로 에워싸인 불두를 볼 수 있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왓 몽콘 보핏. 미얀마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것을 미얀마 기금 후원으로 복구했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왓 프라 시 라타나 마하 탓. 롭부리 마을 중앙에 있는 왕실 사원의 쁘랑이다.

    불교 세계관 원형 간직한 ‘동양의 베니스’

    롭부리 왕궁 근처 외교관 저택 유적지. 바로크 양식에 태국 양식을 가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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