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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남자만 보면 벌벌 떨어요”

개가 남자를 무서워하는 이유 5

  • 설채현 수의사·동물행동전문가 dvm.seol@gmail.com

“남자만 보면 벌벌 떨어요”

  • 수의사로서 그리고 동물 행동 트레이너로서 일하다 보면 개가 여자보다 남자를 더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직접 느끼게 된다. 남자와의 사이에 부정적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그냥 남자를 무서워하는 개가 꽤 많다. 왜 그럴까.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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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남자를 유독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보호자는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 개가 나를 만나기 전 남자에게 학대를 당했던 게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꼭 그런 과거가 있어야만 남자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도 생각해볼 수 있다.


1▶▶▶ 사회화 부족

나는 보통 15~20년 정도 되는 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생후 3~12주, 길게 보면 16주까지의 시기라고 말한다. 이때 개는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저명 행동전문 수의사인 이안 던바(Ian Dunbar)는 이렇게 말했다. “개는 생후 3개월까지 100명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면 개의 사회화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생후 3개월까지 개의 뇌는 스펀지와 같다. 이때 긍정적으로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평생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확률이 높다. 반면 이 시기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줄곧 두려움을 갖게 된다. 혼자 사는 여성이 키우는 개의 경우 어릴 때 남성을 접하지 못해 평생 이유 없이 남성을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다.


2▶▶▶ 부정적 경험

“남자만 보면 벌벌 떨어요”
일부 개는 보호자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그 배경에도 역시 사회화 부족이 있다. 

우리나라 개는 대부분 사회화 시기에 집 안에 있다. 밖에 나가는 건 백신 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을 때 정도가 전부다. 이때 개는 가뜩이나 외부에 오랜만에 나가니 모든 게 두렵다. 그런데 수의사는 주사를 놓아 개를 아프게 한다. 수의사는 대부분 남자이다 보니, 개는 남자에게 딱히 학대를 당한 게 아닌데도 남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개가 사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려움을 느낄 만한 외부 자극 중 상당수가 남자와 연관돼 있기도 하다. 거리에서 갑자기 오토바이 소리가 나거나 건설 현장에서 큰 소리가 들리면 개는 깜짝 놀란다. 그때 돌아보면 거기 남자가 있는 게 보통이니, 의도치 않게 남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화 과정이 부족해 남자에 대한 좋은 경험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부정적 경험이 쌓이면, 개는 남자 자체를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게 될 수 있다.


3▶▶▶ 걷는 모습의 차이

“남자만 보면 벌벌 떨어요”
2008년 9월 과학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는 남녀의 걷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완전히 다르게 인식된다는 내용의 논문을 실었다. 과학자들이 실험한 결과, 여성의 보행 동작은 관찰자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남성의 보행 모습은 관찰자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진다. 불안 증세를 가진 개는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존재보다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대상에게 더 큰 불안을 느끼게 마련이다. 따라서 남성은 보행 동작 때문에 개에게 더 큰 두려움을 줄 수 있다.


4▶▶▶ 목소리

사람은 개의 소리 언어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도 있다. 개가 높은 소리를 내는 건 보통 “내게 가까이 오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개는 분리불안 증세를 보일 때 하울링을 한다. 높은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보호자에게 “빨리 내게 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반면 개가 낮은 소리를 낼 때는 “내게서 멀어지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개는 위협적인 자극이 느껴지면 보통 낮게 으르렁거린다. 일부 자신감이 넘치는 개는 공격성을 드러내기 전 ‘으르렁’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는 “내게서 떨어지라”는 경고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달리 말하면 “와볼 테면 와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런 개의 목소리 언어를 이해하면, 개가 왜 남자 목소리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개의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가늘고 높은 여성 목소리는 “가까이 오라”는 사인으로, 굵고 낮은 남성 목소리는 “멀리 떨어지라”는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는 셈이다.


5 ▶▶▶ 외모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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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외양만 보고 특정 동물이 암컷인지 수컷인지 잘 구별하지 못한다. 개는 다르다. 개는 아주 예리한 관찰자다. 보통 한 번 딱 보는 것으로 사람 성별을 파악한다. 사회화 부족 또는 의도치 않은 나쁜 경험을 통해 남성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 개는, 외모만으로 남녀를 구별해 남자 옆으로는 다가가지 않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남자의 수염과 특유의 냄새도 개에게 공포를 야기할 수 있다. 

이렇게 개가 특정 성별을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남자가 억지로 다가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 상대를 위하는 길은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아닌가.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 건 그다음 문제다. 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개가 공포를 느끼는 행동은 일단 피하고, 조심스레 행동하면 개도 언젠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남자만 보면 벌벌 떨어요”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신동아 2019년 8월호

설채현 수의사·동물행동전문가 dvm.se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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