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제주은행 빼고 대부분 석탄발전에 투자
은행 관리 지자체 금고 453조 원 규모
올해 안 76조 원 규모 금고 재지정
석탄 투자 나쁜 인식에 수익성도 떨어져
공무원·사학연금 지난해 말 탈석탄 투자 선언
충남 보령 화력발전소. [뉴스1]
6월 19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금고(金庫) 운영과 관련해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환경운동연합,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기후솔루션,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등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에 투자하고 있는 금융기관을 거론하며 “지자체가 이들을 배격하고 탈(脫)석탄을 선언한 곳에 금고 운영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자체 금고 시장은 국내 은행들의 가장 큰 사업 영역 중 하나로, 453조 원 규모다. 전국 광역·기초자치단체의 금고 규모는 2019년 기준 약 341조5775억 원. 여기에 17개 시도 교육청(약 70조5960억 원), 지자체 산하 공사 및 공단(약 28조2274억 원)과 출자·출연기관 금고(약 12조5507억 원)까지 합치면 전체 규모는 453조 원에 이른다.
전국 지자체와 교육청은 각각 행정안전부와 교육부의 금고 지정 기준에 관한 예규에 따라 조례 및 규칙을 제정하고, ‘지역특성과 정책목표’ 분야에서 일부 배점을 임의로 부여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지자체는 뜻만 있다면 금고 지정 조례 및 규칙을 개정해 탈석탄을 선언한 기관에 금고를 맡길 수 있다.
IBK기업은행 '석탄금융' 1조 원 넘어
7월 현재 지자체 금고를 관리하는 NH농협, 신한, 우리, 국민, 하나, IBK, 대구, 경남, 부산, 광주, 전북, 제주은행 가운데 전북·제주은행을 제외한 모든 곳이 석탄발전에 투자하고 있다. 은행뿐 아니다. 2017년 국내 석탄화력발전에 투자하고 있는 공적금융기관의 투자금은 9조4270억 원에 달한다. 또 한국수출입은행, 한국무역보험공사 등 주요 국책금융기관이 해외의 석탄발전에 투자하거나 지원하고 있는 금액은 모두 9조4163억 원이다.은행들이 국내외 민자 석탄발전소에 제공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모는 최소 7230억 원에 이르며, PF 대출 외의 다른 형태로 투자한 금액까지 더하면 적게는 수조 원에서 많게는 수십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특히 NH농협은행은 전국 지자체의 회계구분별 금고 941개 중 562개(59.72%)를, 17개 시도교육청 금고 중 16개를 운영하고 있다. NH농협은행의 석탄발전 PF 대출 잔액은 371억 원(장병완 의원실 제공)에 불과하지만, NH농협은행과 100% 지분관계로 연결된 농협금융지주 계열사의 제반 석탄금융(한전자회사 회사채 인수, 민자석탄 대출, 석탄열병합 대출과 사채 인수) 규모를 합하면 2018년 8월 기준으로 4조2616억 원(조배숙 의원실 제공, 기후솔루션 분석)에 이른다. 이는 국내 금융기관 중 가장 큰 규모다. PF 대출 방식 외 제반 석탄금융 규모를 고려하면, IBK기업은행 역시 1조 원이 넘고, 신한·KB국민·KEB하나 등도 국내외에 대규모의 석탄금융을 제공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탈석탄 금고 지정을 추진하고 있는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6월 19일 “국내외 석탄발전소 투자로 석탄금융 투자처가 이익을 얻는 동안 국민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고통을 받아왔다”며 “충남도는 국내 탈석탄 리더로서 석탄발전의 근원이자 뿌리인 석탄금융의 종식을 이끌어가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탈석탄 관련 실적 있어야 가점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가 6월 19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지방자치단체 및 시도교육청에 금고 지정과 관련해 석탄발전에 투자하지 않는 은행을 우대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뉴시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금고 지정 평가 내용 중에 ‘탈석탄 및 친환경에너지 투자전환사항’이 추가된 것이다. 평가 항목 가운데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실적’ 항목에 5점이 부여되는데 ‘탈석탄 선언 및 석탄금융 투자 여부’와 ‛친환경에너지 전환정책 추진실적’이 각각 1점씩 부여된다. 총 100점 가운데 2점밖에 되지 않지만 신용도 등 다른 부문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경우 탈석탄 관련 실적 유무에 따라 금고 지정이 엇갈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충남도 관계자는 “향후 탈석탄 의지보다는 과거의 관련 실적이 중요하다”며 “공고와 심사 등을 거쳐 10월말쯤 지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5개의 광역지자체(대구, 울산, 충남도, 경남도, 경북도)와 45개의 기초자치단체(당진시, 태안군, 고성군 등) 그리고 2개의 교육청(광주교육청, 전남교육청)이 금고 지정을 앞두고 있다. 총 76조 원 이상 규모다. 경기도 본청과 제주도 본청은 일반회계는 아니지만 각각 공기업특별회계와 기금에 대해 올해 금고 지정을 해야 한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장은 “작년 7월 환경부와 함께 수도권 미세먼지 퇴출 동맹을 체결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시장이 즉각 탈석탄 금고 추진 의지를 밝혀주길 바란다”며 “앞으로 지역 단체들과 함께 전국 지자체와 교육청에 탈석탄 금고 지정을 적극 촉구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시대 시장 룰 바뀌어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2019~2040년)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40년까지 30~35%로 확대하고 석탄발전과 원자력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하지만 탈석탄 정책의 경우 구체 이행계획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시민단체 등에서는 신규 석탄발전소 금지, 노후 석탄발전소 폐쇄 및 연료 전환, 봄철 셧다운(shutdown) 등 기존 기조에서 더 나아가 석탄발전소 ‘조기폐쇄’ ‘수명연장금지’와 같은 더 적극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탈석탄을 선언한 금융사에 지자체 금고를 맡기자는 주장은 더 적극적인 탈석탄 정책을 유도하는 한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금융권의 탈석탄 투자 이슈를 지자체 금고 지정과 처음 연결해 이슈를 제기한 이는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이다. 이 사무국장은 “탈석탄 금고 지정은 특정 금융기관을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시대에 대응해 시장의 룰을 바꾸어가자는 취지”라며 “특히 기후변화 리스크가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과도 밀접하게 연동돼 있는 만큼 탈석탄 금융 우대는 금융기관은 물론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해나가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탈석탄과 기후변화와 관련한 이슈에서 금융의 역할에 일찍부터 주목해왔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장마리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전 세계 탈석탄 금융선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 한국은 이미 후발주자”라며 “전 세계 2위 규모인 한국의 해외석탄발전소에 대한 금융 지원부터 시급히 중단해 타 공적기관과 민간은행들의 귀감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6683개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는 전체 전력 생산의 40%를 차지한다. 국내에서는 60기가 가동 중이며, 7기가 추가로 건설 또는 계획 중이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제시한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하 제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석탄발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16년 기후변화 정책연구소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는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유럽연합(EU) 28개국은 2030년까지, 중국은 2040년까지, 나머지 모든 국가는 2050년까지 석탄화력발전을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탈석탄이 미세먼지 문제와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실제로 2018년 3~6월 5기의 노후 석탄발전소를 중단했을 때 대기 중 미세먼지와 온실가스가 크게 줄었다. ㎥당 미세먼지가 충남은 7마이크로그램(29→22㎍), 경남은 5마이크로그램(27→22㎍), 강원은 4마이크로그램(29→25㎍)이 각각 줄었다. 온실가스는 531만t이 줄었다.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기후솔루션의 이소영 변호사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석탄산업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는 이유는, 비단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환경적 이유뿐만 아니라 시장 경쟁력이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석탄사업의 재무적 위험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금융기관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석탄발전 투자를 철회하거나, 그 비중을 빠르게 축소해나가고 있다. 6월 현재 파슬 프리 캠페인(Fossil Free Campaign)에 1070개(운용자산 규모: 8.77조 달러)의 투자기관이 동참하고 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 등 150개 이상의 연기금, HSBC, 알리안츠, 소프트뱅크 등 주요 금융기관이 여기에 포함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이 기준에 따라 2017년 3월 한국전력을 투자금지기업으로 지정했다. 세계 1위 보험사인 뮌헨 리는 “보험을 인수할 때 고객을 가리지 않는다”는 회사 원칙을 버리고 석탄발전소에 대한 보험 인수를 중단했다. 또 수익의 30% 이상을 석탄 관련 사업에서 내는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에 신규로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민연금 석탄발전에 3조5721억 원 투자
6월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공원 인근에서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관계자들이 정부의 해외 석탄 투자 중단 촉구 메시지를 담은 레이저 빔을 한국수출입은행 건물에 투사하고 있다. [뉴시스]
TCFD는 금융기관의 기후변화 리스크 대응 수준을 외부 이해관계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금융기관과 투자 대상 기업의 기후변화 관련 정보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생기는 물리적 변화와 정책·기술·소비자 인식 등의 변화에 맞춰 정책을 수립해 미래의 불확실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금융기관에 요구하고 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 사무국장에 따르면 “TCFD나 NGFS의 탄생은 기후변화가 2008년처럼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리스크라는 점을 주류 금융 당국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즉 2008년 금융위기가 부동산 자산가치에 대한 왜곡된 평가에서 비롯됐듯 자산가치 평가에 기후변화 리스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경우 버블이 생기고 가치가 폭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지난해 10월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이 금융권으로서는 처음으로 탈석탄 투자를 선언했다. 당시 선언문에서 두 기관은 △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 이하로 제한하는 인류의 공동 노력을 기관투자자로서 적극 지지하고 동참할 것이며 △ 석탄발전이 기후변화와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임을 인식하고, 향후 국내외 석탄발전소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관련 회사채 등을 통한 금융투자 및 지원에 참여하지 않고 △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와 기존 투자를 확대하는 등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지속가능투자에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권에 탈석탄 흐름이 얼마나 빨리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국내 최대 기금인 국민연금의 경우 2017년 말 기준 석탄화력발전 투자규모가 2조5911억 원이었지만, 최근 공개된 자료에선 3조5721억 원으로 늘었다. 은행권도 적극적으로 탈석탄 금융을 선언하지 않고 있다. 지자체 금고 운영에 관심 있는 곳은 어쩔 수 없이 탈석탄 방향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눈치만 보고 있는 듯하다.지자체 금고를 운영하는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관련 사항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