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 ; ‘도시의 승리’

훌라후프와 고시원

‘서울 일극주의’에 관한 논리 전면전

  • 조민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Book치고 1기

    입력2019-07-22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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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검증된 지식커뮤니티가 우리사회에 드물어서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 간 월 1회씩 책 한권을 고재석 ‘신동아’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훌라후프를 돌릴 수 있어.” 

    소설가 정세랑의 단편 ‘웨딩드레스’ 속 대사다. 주인공은 친한 후배가 결혼한 이유에 대해 질문하자 이렇게 답했다. 이는 도시 청년의 주거 빈곤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다. 서울에서 청년은 혼자 벌어서는 원룸을 벗어날 수 없다. 그나마 2인가구가 돼야 대출을 낀 채 아파트를 꿈꿔볼 수라도 있다. 

    나는 훌라후프도 돌릴 수 없는 고시원에 산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러 부산에서 서울에 온 지 7개월째. 지금 사는 곳은 보증금이 없는 방이다. 서울에서 취업에 성공해 더 나은 방으로 옮길지, 실패해 부산으로 돌아갈지 모든 게 불확실하다. ‘임시 거처’ 같은 곳에 살기 위해 굳이 대출까지 받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개인 화장실과 창문이 있어 방세가 매달 45만 원인 이 방을 계약했다. 

    이곳 방 침대에선 자주 팔, 다리가 한쪽씩 떨어진다. 방 크기만큼 침대가 작은 탓이다. 옆방 사람들과는 통화 내용, 생리 현상, 샤워 시간까지 공유한다. 방음이 안 돼서다. 어제 새벽엔 옆방 사람이 벽을 세게 치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그도 좁은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치다 그랬을 것이다. 인사조차 나눠보지 못한 사이지만, 그를 이해한다. 칸칸이 나뉜 2평 남짓한 방에서 각자 살 뿐이다. 

    한 고향 친구는 내게 굳이 왜 서울까지 가서 사서 고생하느냐고 물었다. 고향집에서 통학하며 학교 언론고시반에서 준비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런데 나는 서울 생활이 좋다. 이곳에는 사람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방 안에서는 혼자지만, 방 밖에서 나는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다양한 형태와 목적을 갖춘 만남이 방 밖의 나를 기다린다. 그리고 더 많은 회사에 자주 지원한다. 저자가 말했듯이 도시엔, 특히 한국의 거의 모든 것이 집중된 서울엔 많은 사람이 인접해 모여 살며 성장을 도모할 기회가 넘친다. 



    내가 굳이 주거 빈곤을 감수해가며 서울을 택한 이유다. 도시 빈곤은 저자의 주장대로 도시가 사람들을 빈곤하게 만드는 ‘악의 축’ 역할을 해서 빚어진 결과가 아니다. 도리어 빈곤한 이들을 이끄는 유인이 도시에 많다. 이 유인은 이곳에서 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이자, 실재하는 기회다. 나 역시 그 유인에 끌려 서울에 왔다. 나에게 서울은 안락함과 맞바꾼 기회가 있는 땅이다. 그게 나로 하여금 훌라후프도 돌릴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도 일상을 견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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