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캐릭터와의 콜라보, 마케팅 업계 新트렌드
캐릭터 몸값 올라, 계약금+α 기본
밀레니얼 세대에게 친근한 이미지 부각
소확행·한정판 덕후 …‘소장 욕구’ 자극
막무가내 콜라보, 캐릭터 이미지 과다 소모 조심해야
동서식품은 신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카카오프렌즈 피규어가 올라간 머그컵과 보틀, 디저트볼 등을 줬다. 서씨 눈에는 이게 커피믹스 제품인지, 장난감 패키지인지 분간이 잘 안 갔다. 그때 옆에 있던 대학생 딸이 “어, 라이언이다! 굿즈(Goods·상품)도 주네?” 하며 커피 한 박스를 집어 카트에 넣었다.
어벤져스 식혜, 미니언즈 공기청정기, 라이언 우표
SK매직의 ‘미니언즈’ 공기청정기’(왼쪽), 팔도에서 내놓은 비락식혜 한정판 패키지. [
심지어 딱딱하고 보수적인 분위기의 공공기관도 캐릭터와 손잡고 있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마트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인기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 지금의 상황은 캐릭터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방증한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요즘은 연예인이 아니라 인기 캐릭터를 잡아야 고객도 잡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는 역대 최단기간(11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캐릭터를 내세운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식음료기업 코카콜라가 출시한 ‘코카콜라 제로 마블 스튜디오 어벤져스: 엔드게임 스페셜 패키지’가 대표 사례.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제로슈거(Zero-sugar)를 강조하는 문구 ‘코카-콜라 제로’와 세련되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히어로들의 개성을 제품 전면에 담았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식품기업 ‘팔도’도 영화 개봉에 맞춰 비락식혜 제품 겉면에 국내 인지도가 높은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스파이더맨 등의 히어로를 인쇄한 ‘비락식혜’ 캔 3종과 마그넷, 배지를 담은 한정판 패키지를 내놓았다. 총 1111개로 한정 제작된 이 패키지는 제품이 출시되자마자 품절됐다. 캐릭터 콜라보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팔도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야쿠르트 홍보팀 박대웅 과장은 “비락식혜가 장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넘어 젊은 세대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캐릭터 콜라보를 시도했다”며 “시대 트렌드를 읽고, 젊은이들이 즐기는 문화에 적극 공감하며 그들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유통·IT기업 이어 공공기관도 가세
현재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
주방가전기업 SK매직은 지난해 1인가구와 키덜트(kidult·아이 같은 취향을 가진 성인)를 겨냥한 공기청정기를 선보이면서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미니언즈’와 손을 잡았다. ‘미니언즈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는 고객에겐 제품에 부착할 수 있는 미니언즈 피규어 2종을 함께 증정한다. 이 피규어는 자석으로 만들어져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탈부착할 수 있다.
기업들이 캐릭터 콜라보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소비층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다. IT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상위권 가전 등 IT 제조사들의 기술이 평준화되면서 이제는 제품 사양이나 품질의 차별화만으로는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 어렵다”며 “대중적으로 친근한 캐릭터를 활용하면 소비활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제품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해 이들을 충성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도 캐릭터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서울중앙우체국 앞에는 일반인이 길게 줄을 서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우정사업본부가 발매한 카카오프렌즈 기념우표를 판매하는 날이었다. 이날 오전 9시 문을 열자마자 30분 만에 서울중앙우체국이 보유한 우표 7000장(전지 700장)이 모두 팔렸다. 1분당 233장이 팔려나간 것이다. 서울 광화문우체국도 이날 판매 개시 50분 만에 보유랑 4500장(전지 450장)이 매진됐다. 그동안 캐릭터를 소재로 기념우표를 꾸준히 발행해온 우정사업본부는 2011년 뽀로로 기념우표를 시작으로 뿌까(2012), 로보카 폴리(2013), 라바(2014) 등을 발매한 바 있다. 우정사업본부 측은 “보통 기념우표 발행량이 40만 장(전지 4만 장)가량인데, 카카오프렌즈 기념우표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기존 발행량보다 2배가 넘는 100만 장(전지 10만 장)을 발행했다”고 설명했다.
‘따조’ 수집 열풍 부른 치토스
캐릭터 마케팅에는 해외 기업도 가세하고 있다. 일본 콘텐츠기업 반다이남코는 올해 3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인 ‘라이언’을 새 모델로 하는 한정판 ‘건담 프라모델’을 국내시장에 단독으로 출시했다. 프라모델은 플라스틱 형태의 모델 키트를 직접 조리하는 일종의 미니어처로, 이 회사의 대표 상품 중 하나다.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제품으로 제작해 판매하는 반다이남코가 한국 인기 캐릭터를 프라모델로 선정해 출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캐릭터 콜라보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돼온 마케팅이다. 캐릭터 콜라보의 시초는 스낵 ‘치토스’다. 1988년 국내 제과기업 오리온과 미국 제과기업 프리토레이가 합작해 만든 치토스에는 미국 애니메이션 ‘루니 툰(Looney Tunes)’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를 새긴 딱지 ‘따조’가 들어 있었다. 따조는 옆면에 파인 홈을 이용해 여러 개를 조립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조립 딱지로, 플라스틱이나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졌다.
1990년대 초반까지 치타 캐릭터가 “언젠가 먹고 말 거야~”라고 외치는 애니메이션 광고와 함께 10대 어린이들 사이에서 따조 수집 열풍이 불었다.
‘국진이빵’ 열풍 또한 캐릭터 콜라보 마케팅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1999년 식품기업 SPC삼립(당시 삼립식품)이 인기 개그맨 김국진의 얼굴을 캐릭터 스티커로 제작해 출시한 ‘국진이빵’은 당시 월평균 40억 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2014년 말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해태제과의 스낵 ‘허니버터칩’이 3개월 만에 매출 50억 원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공전의 히트를 친 셈. 국진이빵 등장 이후에도 핑클빵·박찬호빵·포켓몬스터빵 등의 캐릭터빵 제품이 잇따라 시장에 출시돼 큰 인기를 얻었고, 현재 방탄소년단(BTS)과 라인프렌즈의 콜라보 캐릭터 ‘BT21’ 스티커가 첨부된 ‘BT21빵’이 출시돼 그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캐릭터보다 국산 캐릭터 ‘인기’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역시 일본 캐릭터였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유통업계에는 ‘일본 캐릭터 모시기’ 광풍이 불었다. 제품 이름이나 패키지 도안에 일본 인기 캐릭터를 그렸다 하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표적으로 ‘헬로 키티’를 꼽을 수 있다. ‘짱구는 못 말려’ ‘드래곤볼’ ‘디지몬’ ‘포켓몬스터’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그러다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요즘엔 외산 캐릭터보다 국산 캐릭터를 좀 더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분위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뽀로로, 핑크퐁, 터닝메카드, 카봇, 치링치링 시크릿 쥬쥬 등 국산 캐릭터들이 어린이 음료·제과 제품 하나씩을 꿰찼다. 국내 제과업체 소속 마케팅 담당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다소 선정적인 경우가 많아 어린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매출 효과도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인기 캐릭터의 몸값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과연 그 가격이 얼마인지 궁금한데, 해당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다만 업계에서는 “카카오프렌즈나 라인프렌즈 같은 모바일 이모티콘 캐릭터는 이미 톱스타를 넘어선 수준”이라고 말한다.
캐릭터와의 콜라보 수익 분배 방식은 크게 ‘저작물 임대권 구매’와 ‘러닝 개런티’로 나뉜다. 전자는 캐릭터를 사용하는 대가로 임대료를 지불하고, 후자는 계약금(캐릭터 사용료)과 별도로 제품 판매금액의 일부를 추가 개런티로 지급한다. 2017년까지 저작권 임대료를 구매하는 계약이 많이 체결됐으나, 요즘엔 러닝 개런티 계약이 주를 이룬다. 출연료와 별도로 흥행에 따라 개런티를 지급받는 인기 연예인처럼 캐릭터도 제품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몸값이 올라가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캐릭터와의 협업을 통해 세칭 ‘대박’을 터뜨리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일부 인기 캐릭터의 몸값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아티스트나 연예인과의 콜라보가 아닌 캐릭터와의 콜라보를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엔 현실적인 문제가 영향을 미친다. 캐릭터는 사람과 달리 음주운전이나 마약, 성 관련 추문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염려가 없다. 광고주 입장에선 더없이 좋은 모델인 셈이다.
색다른 재미로 소비층 확대
일부 기업은 새로운 캐릭터를 직접 자체 제작하기도 한다. 이마트는 가전 전문점 캐릭터 ‘일렉트로맨’을 앞세운 식품, 가전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일렉트로맨은 이마트가 2015년 가전 전문 매장인 일렉트로마트를 만들면서 캐릭터로 개발했다. 금융권에서도 자체 캐릭터 개발 움직임이 활발하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자체 캐릭터 ‘쏠 익스플로러스’ ‘위비 프렌즈’를 개발해 카드상품·인터넷·모바일 뱅킹 화면 등에 활용하는 한편 휴대전화 테마, 에코백, 목베개 등 굿즈까지 판매하고 있다.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앞다퉈 캐릭터 콜라보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주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출생한 인구집단)와 SNS, 이 두 가지에 주목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통 창구는 SNS인데, 이 공간에서 주목받는 상품을 내놓는 것이 요즘 기업들의 최대 과제이자 목표”라며 “밀레니얼 세대는 인권, 환경, 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현안에 대해 관심이 많고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차별하지 않고 자연적이며 소수집단을 위하는 철학이 녹아든 캐릭터를 내세운 상품에 자연스럽게 동질감과 애착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한편 마케팅 업계는 캐릭터가 주는 ‘친숙하고 귀여운 감성’에 주목한다. 국내 한 마케팅회사 관계자는 “카카오프렌즈는 40대 남성들에게도 반응이 좋은데, 사회생활에 지친 이들이 해당 캐릭터를 보며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캐릭터 콜라보에 있어 기업들의 만족도는 큰 편이다. 우선 가성비가 높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개발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색다른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고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매출 면에서도 ‘보통 이상’은 되고, 별도의 광고 없이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강점 중 하나다.
밀레니얼 세대의 소확행 실현해줄 수단
동서식품이 2018년 3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맥심 X 카카오프렌즈 스페셜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밀레니얼 세대에게 캐릭터 제품은 ‘소확행(小確幸)’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정판 패키지는 희소가치가 있다. 한번 ‘꽂히면’ 지갑을 시원하게 여는 키덜트족(族)이나 캐릭터 열성팬의 구매 욕구를 강하게 자극한다. 올 1월 헬스케어기업 바디프랜드가 선보인 어벤져스 ‘허그체어’는 ‘마블 덕후’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상품 전면에는 히어로를 상징하는 컬러를 적용했고, 마스크와 방패를 활용한 헤드 쿠션이 이 제품의 포인트다. 실구매자 중 30~40대 비율이 60.5%를 차지할 정도로 ‘어른이(어린이+어른)’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았다.
캐릭터 범용성 커질수록 희소성 떨어져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기업들은 너도나도 인기 캐릭터 앞에 줄을 서느라 바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캐릭터 콜라보 마케팅이 자칫 캐릭터 이미지를 과도하게 소모하는 ‘브랜드 희석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품과 캐릭터의 적합성을 고려하지 않고 캐릭터만 강조해 구매력을 높이려 하는 일부 사례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몇 년 전 프리미엄 액세서리 A브랜드가 캐릭터 협업 제품(가방)을 출시하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고상한 이미지가 강한 A브랜드와 캐릭터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자자했다. 로드숍 화장품 B브랜드 역시 고심해서 내놓은 캐릭터 제품에 대해 “어린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화장품 같다”라는 악평을 들었다.콜라보 제품의 한정판 출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캐릭터 범용성이 확대될수록 희소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되레 캐릭터 열성팬의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콜라보 제품을 완판하지 못하면 재고가 쌓이는 것도 문제다. 서용구 교수는 “재고품을 처리하기 위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면, 기업의 채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기업이 캐릭터와의 콜라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품의 질보다는 캐릭터만 바라보는 업계가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