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검증된 지식커뮤니티가 우리사회에 드물어서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 간 월 1회씩 책 한권을 고재석 ‘신동아’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내뱉는 대사다. 정면 돌파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기가 엿보인다. 살다 보면 이런 결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상책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범죄 대응에 있어서다. 도시를 다룬 책을 논하는 데 범죄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전공이 경찰안보학이다 보니 책도 나의 프레임으로 읽혀서다.
저자는 도시가 대규모 경찰력, 준법 시민, 튼튼한 인프라 등 여러 자원을 갖춰 바깥의 끔찍한 위협에 맞서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역시 ‘도시의 승리’를 지탱하는 주요 근거다. 저자의 해결책은 정면 돌파다. 범죄율을 낮추기 위해 경찰 인원을 늘리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식이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각종 통계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경제학자다. 범죄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저자의 해결책은 효과적이다. 근거는 ‘합리적 선택 이론’이다. 이에 따르면 범죄자가 죄를 저질러 얻는 이익이 감수해야 할 손해(징역, 벌금 등)보다 크다고 생각할 때 사건이 발생한다. 인센티브가 존재하는 까닭에 범죄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범죄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대응하면 범죄자가 감수할 손해가 커지고 인센티브가 준다. 그러면 범죄율이 떨어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범죄가 반드시 줄어들 거라고 손쉽게 예단할 수는 없다. 저자는 ‘범죄자의 재범률이 종종 90%가 넘는다’는 통계를 합리적 선택 이론을 지탱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도시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통계로도 읽을 수 있다. 도시 당국이 시행하는 정면 돌파 방식(처벌 수위 강화 및 경찰력 증대)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유는 낙인효과 때문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다시 죄를 저지르는 건 출소 후 범죄 말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범죄자로 낙인찍히면 사회활동에 큰 제약이 뒤따른다. 아무리 손해가 커져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저지르게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사람에 있다. 도시는 범죄자의 재사회화 프로그램 마련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사람 중심 프로그램 운영은 흔히 말하는 정면 돌파 방식이 아니다. 성과도 당장 눈에 띄지 않고, 길을 되돌아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경제학적 진단을 넘은 근본적 해결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미래에는 덜 고통스럽게 범죄를 줄이는 방법을 찾길 바랄 뿐’이라고 밝히는데, 그 해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자의 생각 바깥에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