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검증된 지식커뮤니티가 우리사회에 드물어서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 간 월 1회씩 책 한권을 고재석 ‘신동아’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관광객들은 고충을 토로한다. 울퉁불퉁한 돌길 탓에 조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프단다. 캐리어 바퀴가 훼손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짐을 옮겨야 하는 점도 고역이다. 그럼에도 로마는 관광객들의 편안함을 위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아닌 유적지 보존을 위한 돌길을 택했다.
그렇다고 로마가 인간을 배제한 건 아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진정한 도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의 체취로 이루어져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로 채워져 있는지가 도시의 모습을 결정한다. 그렇게 빚어진 도시라는 그릇이 재차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
마치 이와 같은 명제를 잘 알고 있었다는 듯 로마는 유연함을 발휘했다. 로마는 도시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남겨두면서도 명소마다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를 계획했다. 인간의 체취가 스며들 틈새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불편과 효율이 묘하게 섞인 셈이다.
어디 관광도시 로마뿐인가. 이민의 도시로 성장한 캐나다 밴쿠버, 쓰임새 많은 물류기지와 촘촘히 짜인 법규를 가진 싱가포르, 부동산 메카 미국 시카고 등은 독자적인 빛깔을 뿜으며 성장해왔다. 이 도시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합리적이면서도 유연한 도시계획 정책 덕이다.
이 정책을 만들어낸 주체도 사람, 즉 인적 자본이다. 좋은 인적 자본과 나쁜 인적 자본의 격차는 효율성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그렇기에 도시 간 경쟁은 인적 자본 간 경쟁과 다름 없다. 경제학자답게 글레이저는 경쟁이 때로는 가장 효율적인 도시 성장을 자극해 혁신을 가능케 할 거라고 주장한다.
도시에는 부유층과 빈곤층이 모두 있다. 글레이저의 해석대로라면 도시 탓에 빈곤이 심화하는 게 아니라, 도시가 빈곤층을 불러 모으는 것이다. 즉 빈곤층은 성공하기 위해 혹은 필요한 기술을 얻기 위해 도시로 몰려든다. 이는 도시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환경보호를 위해 도시화를 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똑똑하게 환경을 보호하면서 도시를 개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으로 도시를 성장시켜 혁신을 이뤄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