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투자 반도체 기업 현금 지원, 부지 무상제공”
일하는 소외청년 1000만 원 통장 만들어주기
‘이재명표 청년기본소득과 지역화폐’ 전국 확산 중
호불호 갈리지만 파괴력 있는 차기 주자
1심 무죄, 항소심 8월 26일 선고, 올해 결론
“권력 가지면 주변의 욕망이 너무 커진다”
“성장과 분배는 동전의 양면”
[동아DB]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발표 이후 정부의 관련 부처 못지않게 바쁜 곳이 경기도다. 일본에 대해 ‘오만함의 방증’이라고 펀치를 날린 이재명(55) 경기지사는 반도체 위기대응팀을 꾸리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국내 반도체 사업체의 50% 이상, 반도체 산업 종사자의 60% 이상이 경기도에 있기 때문에 일본의 수출 규제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지자체도 경기도다.
하지만 이 지사는 위기의 두 요소인 위험과 기회 가운데 기회적 요인에 더 주목하고 있다. 7월 12일 SNS에 올린 글에서 반도체 제재 위기를 부품 국산화 실현의 기회로 삼자고 주장했다.
“이번 반도체 규제는 세계적인 경제 전쟁의 서막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일본의 무역 보복은 분명 위기이지만, 반도체 부품의 국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모두를 각성케 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부품 소재의 국산화는 진척이 더뎠던 과제입니다. 이제라도 기업과 국민, 그리고 국가가 한 뜻으로 국산화를 실현하고 안정적인 공급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일본 제품 독과점 현황 전수조사
이재명 지사가 7월 12일 경기 화성의 반도체 소재기업 동진쎄미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 지사는 7월 4일엔 “일본 중심의 독과점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일본 스스로 열어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련해 경기도는 피해 기업 지원을 위한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일본 제품의 독과점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그동안 감춰진 일본 독과점 폐해까지 모두 발굴해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일본 기업을 대체할 해외 기업이 경기도에 투자하면 현금 지원 및 기업 부지 무상제공까지 계획하고 있다.
2016년 겨울을 넘기며 들불처럼 일어났던 촛불시위에서 휴대용 확성기 하나 들고 시민들에게 열변을 토하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대선후보 경선에 나가 패했지만 파란을 일으켰고, 다시 경기지사에 당선돼 1년 만에 최고의 ‘기업 프렌들리(friendly)’ 광역단체장이 됐다. ‘매일경제’가 7월 초 대기업 50곳과 중소기업 5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 지사가 1위로 꼽혔다.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공정거래추진단을 발족하고 공정경제를 강조해왔으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청년벤처에 파격적인 지원을 해오면서 기업 환경을 꾸준히 개선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이 지사는 경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협조를 얻기 힘든 단체장 2위에도 올랐다. 대기업에 공정 경쟁과 상생 등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경기도發 나비효과’
이 지사의 지난 1년 도정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이 지사에 대해 환호하는 이들은 ‘공정 성장’이라는 대원칙 아래 고정관념을 뒤집는 각종 정책을 펼치며 시민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하고, 지지하지 않는 이들은 결정적 한방이 없다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분명한 것은 다른 지자체에서 볼 수 없는 ‘튀는’ 정책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실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기본소득(경기 지역에서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게 분기별로 25만 원씩 연간 100만 원을 경기지역화폐로 지급)과 지역화폐는 이제 익숙한 용어가 됐다. 이들 정책뿐 아니라 관급공사의 건설원가 공개, 공공분양 아파트 후분양제, 초등학교 4학년 치과주치의, 수술실 CCTV 확대 설치, 맞춤형 체납관리단 운영, 경비원·미화원 휴게공간 설치, 지자체 중심의 남북교류 협력 모델 제시 등은 중앙정부와 다른 지자체에도 확산되고 있는 ‘경기도발(發) 나비효과(작은 사건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뜻)’ 정책들이다.
이 밖에도 ‘경기도 일하는 청년통장’(저소득 근로 청년이 매월 10만 원씩 3년간 저축하면 경기도가 지원금을 내주고 1000만 원으로 불려주는 통장) 만들어주기, 공정 사회를 만들기 위한 특별사법경찰단, 무상교복 지원사업, 도청 조직에 공정국과 노동국 신설, 반도체 클러스트 용인 유치, 비무장지대 세계유산 등재 노력 등으로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경기도가 19세 이상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도정현안 여론조사’(7월 1일 발표)에서 경기도민은 이 지사의 도정 수행능력에 대해 ‘잘했다’(60%)라고 평가했다.
이렇듯 많은 일을 벌여놓았지만 그동안 이 지사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은 작년 말부터 시작된 재판이었다. 검찰은 ‘친형 강제입원’ 관련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을,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벌금 600만 원을 구형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1심 재판부는 이들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항소를 제기해 7월 10일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고, 8월 26일 안에 선고가 내려질 예정이다. 공직선거법상 기소 1년 이내 재판이 마무리돼야 해서 최종 결론도 올해 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넘어야 할 벽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 지사는 1심 선고로 자신감이 크게 붙은 게 사실이다.
‘큰길 계속 함께 가기를’
요즘 이 지사는 스스로 ‘차기 주자’로 언급되는 것을 극히 꺼리는 상황이지만 무죄를 선고받은 5월 16일 “큰길로 계속 함께 가기를 기대한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여권에선 이낙연 총리가 단연 앞서 달리고 있지만, 이 지사, 박원순 서울시장이 만만치 않은 힘을 모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박 시장은 7월 4일 대권 잠룡으로 현시점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누구인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구태여 답한다면 자기 자신”이라고 밝혔는데, 이 지사 또한 ‘자책골’만 넣지 않는다면 파괴력 있는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 지사는 최근 국회의원들과의 만남이 잦다. 국회토론회에도 자주 참석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 지사를 가끔 만나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 지사의 한 측근은 “정치적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그동안 느슨했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 지사가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의원들뿐 아니라 평당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너무 갈려서 그것부터 넘어야 할 듯하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민주당 당원 게시판이 ‘친문’(親문재인) 당원들과 ‘친재명’(親이재명) 당원들 간 싸움터로 변질되면서 민주당은 6월 26일 게시판심의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1심 선고 이후 법정을 나온 이 지사는 “도민들께서 믿고 기다려주셨는데 도민의 삶을 개선하는 큰 성과로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지난 1년 사이 재판과 스캔들 뉴스 등에 가려져 있던 그의 ‘튀는’ 개혁적 정책들이 다시금 주목받는 상황이다.
‘1년은 공정의 씨앗을 심는 시간’
이재명 경기지사가 6월 27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취임 1주년 기념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기도청 제공]
-이전 민선 6기에서 집행해오던 정책 중에 폐기했거나 획기적으로 개선한 정책이 있는지, 또 새 정책 중에 미진하거나 보완이 필요한 정책은 무엇인가.
“나는 행정의 일관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도정은 도지사가 아니라 도민이 하는 것이다. 대표자가 바뀌었다고 정책이 바뀌면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극단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은 한 일부러 폐기한 것은 없다. 새로 한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청년기본소득과 지역화폐다.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미진한 것은 여러 가지 환경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제가 기획한 것은 도의회 협조로 잘 이행한 것 같다. 수많은 정책 가운데 두세 가지 이론(異論)이 있거나 협의 중인 것이 있지만, 대부분 차질 없이 해나가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경기 선순환 측면에서 예산 조기집행을 고려할 수 있나.
“예산 조기집행에 대해서는 얼마전 확대간부회의에서 지시했지만 근본 대책은 못된다. 청년기본소득 정책에 쓰이는 돈을 지역화폐로 지급해 골목경제나 영세자영업자의 매출이 늘어나게 하고 있다. 정책 발행 카드(온라인 지원시스템에 등록)는 마중물 역할을 하게 하고, 일반 발행 카드(경기지역화폐 앱 등록)는 지역경제에 스며들게 하는 것인데,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중이라 다행이다. 이것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을 뿐 아니라 중앙정부에서도 행정 지원을 해줄 만큼 성공적이다. 모든 지출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 한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도 꼭 필요한 것은 해야겠지만, 경제와 고용 측면에서는 교육, 사회 서비스, 일자리 사업 투자가 더 중요하다.”
사내유보금 과세에 강한 의지
-문재인 정부가 펴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의견은 무엇인가.“경제가 성장할 때 정부 가계 기업 부문이 각 몇 %를 차지하느냐에 대한 통계가 있는데,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 몫은 17% 정도로 거의 일정하다. 그런데 가계소득 몫은 줄어드는 반면 기업 몫의 비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결국 경제성장의 몫이 대부분 기업으로 가다 보니 이런 불균형이 생겨난 것이다.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소비 영역이 위축되니 생산 영역에 과잉 이윤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소위 사내유보금(이익잉여금과 자본잉여금의 합)이다. 현재 1000조 원 이상이라고 한다. 그것도 특정 소수 기업, 1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800조가 넘는다. 결국 보유세 등을 올리는 방법밖에 없지만 이에 대해선 조세저항이 크다. 앞으로 생겨날 성장의 몫이라도 민간 가계 영역으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시장이 커진다.
첫째 방법은 1차 분배, 즉 노동소득 분배를 늘리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노조의 단결권 강화, 노동자 보호, 독점 완화, 대기업의 중소기업 탈취와 억압을 완화하면서 불균형을 완화하는 것이다.
둘째, 재분배 정책이다. 정부가 세입을 늘려서 재정을 확보한 다음에 국민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것이다. 이전소득을 늘려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복지지출이다. 이를 통해 불평등 확대 속도를 조금이나마 줄여야 한다. 그것이 결국 포용적 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도 포용적 성장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성장과 복지, 성장과 분배는 과거에는 양립할 수 없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복지 확대, 재분배 정책 강화, 가계 몫 늘리기, 지나친 초과이윤 세금 환수, 지나친 사내유보금 줄이기 같은 것이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고, 거대 기업들도 살아남는 길이다. 경제가 죽지 않는 유일한 길은 공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 해결 위해 노동시간 단축’
이 지사는 사내유보금 과세에 대해 재계의 반발에도 강한 의지를 피력한다. 사내유보금이 투자용이 아닌 현금성 자산이나 투기용 부동산 등으로 과도하게 쌓이면 경제가 나빠진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법인세 누진율 강화, 실효세율 정상화, 비투자 사내유보금 과세로 배당이나 임금 관련 중소기업 몫이 늘어나면 경제 흐름이 회복된다고 주장한다.-경기도 산하기관을 통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나.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그래야 현재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혁명을 맞게 되는데, 생산력은 높아지겠지만 인간 노동에 대한 수요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시간당 노임이나 대가의 상향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방식으로 장시간 노동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경기도가 산하기관에서 고용을 늘린다고 해도 그건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선도해야 할 책무가 있으므로 일부 산하기관과 협의해서 주 4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업무에) 필요한 만큼 인력을 추가 고용할까 생각 중이다. 이것의 효율이 드러나면 다른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임금이 줄어들면 노사와 경기도가 비용을 분담하면 될 것이다.
그 외 기본소득으로 4차산업혁명 시대에 예상되는 대량실업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경기도의 기본소득 논의는 정부기구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대규모로,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랑스럽게도 ‘basic income(기본소득)’이라고 구글에서 검색하면 자동완성기능으로 ‘basic income Korea’가 형성된다.”
‘정치 본질은 억강부약’
-지난 1년간 나온 이재명표 정책들 가운데 중앙정부와 엇갈리는 것들이 있다.“지자체 상호 간, 지자체와 중앙부처 상호 간에 의견차가 있을 수 있다. 의견이 다른 것은 더 나은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기 위한 과정이다. 예컨대 경기도의 청년 국민연금과 관련해 1회분 선납 지급정책에 대해 복지부에서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이 논쟁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경찰 문제도 중앙정부의 권한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다. 전국 근로감독관이 2000명 정도다. 기업 수가 500만 개나 되는데 임금체불이나 노동현장의 불법을 그들만으로 감독하는 게 쉽지 않다. 산재 추락사고가 많은 것은 법에 따른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경기도가 돕겠다는 것이니 권한만 부여해달라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소신은 무엇인가.
“정치의 본질은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을 절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당하게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게 하고, 기회를 공정하게 주며, 함께 살기 위해 정한 규칙을 지키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가가 하는 일이다. 그런데 너무 뻔한 얘기지만 그것이 잘 안 된다. 위임된 권한을 갖고 정치와 행정을 해나갈 때 이것을 어떻게 행사하느냐가 중요하다. 나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느냐, 아니면 모두를 위해 행사하느냐. 그러면 안 되지만 인간이라 언제든지 유혹에 노출된다. 유혹과 압박, 강요, 욕망을 견뎌내는 일이 정말 어렵다. 권력과 힘을 갖고 있으면 그것을 악용하려는 자신의 욕구도 클 뿐 아니라 주변의 욕망이 너무도 커진다. 견뎌내기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주어진 권한과 영향력을 모두를 위해 공평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