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삼성카드·코스트코’ 18년 독점 깨
코스트코, 연간회원제라 고객 충성도 높아
삼성카드, 트레이더스 등 제휴파트너 확대
신한카드·KB카드까지 ‘마케팅 강화’
현대카드는 코스트코의 ‘전용 신용카드’ 자리를 꿰찼다. [현대카드 제공]
지난해 8월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이사 부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현대카드가 코스트코의 ‘전용 신용카드’가 됐다면서 이렇게 소식을 알렸다. 코스트코는 지난 18년 동안 삼성카드와 재계약을 거듭하며 협력 관계를 유지하다가 이번에 ‘파트너’를 교체했다. 코스트코는 수수료 비용을 낮추기 위해 특정 카드사와만 제휴를 맺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100%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얼마나 기뻤는지 이 소식을 알린 뒤에도 ‘코스트코 현대카드’ 디자인과 혜택 등을 소개하거나, 코스트코 점포를 방문해 카드 발급 신청을 직접 받는 등 적극적으로 이 사안을 챙겨왔다. 정 부회장이 그간 SNS를 통해 소비자와 꾸준히 소통해오긴 했지만, 이번에는 유난히 더 애착을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스트코의 ‘파트너’가 되는 것은 실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의미가 크다. 코스트코의 국내 회원 규모는 191만 명 수준이고, 연간 매출액은 4조 원에 이른다. 이 중 카드 결제액은 70~80%가량으로 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지난해 전체 신용카드의 하루 평균 결제액이 1조9000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을 뒤흔들 정도의 엄청난 규모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코스트코는 연간회원제로 운영하고 있어 고객 충성도가 높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스트코를 계속 이용하기 위해 신용카드를 갈아타는 고객이 많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번에 이 정도 규모의 고객을 끌어들일 기회는 흔치 않다. 또 신용카드 사용의 특성상 소비자가 코스트코에서 현대카드를 이용하기 시작하면 다른 매장에서도 해당 카드를 쓸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플러스알파’를 기대할 수도 있다.
삼성카드의 선공과 현대카드의 맞불
이에 더해 국내 카드업계에서 ‘중위권’으로 분류되던 현대카드가 이번 계약을 통해 상위권 진입을 노릴 수 있다는 상징성도 있다. 이 때문에 현대카드와 삼성카드 사이에 코스트코 고객들을 두고 ‘기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코스트코와 삼성카드의 계약 만료일은 지난 5월 23일이었다. 삼성카드는 이에 앞서 5월 11일부터 5만 원 이상 결제하는 고객에게 12개월 무이자 할부를 적용하는 행사를 기획해 진행했다. 카드업계에서는 통상 무이자 할부 기간을 10개월 이상 진행하면 손해를 본다고 여긴다. 출혈을 감수해가면서 기존 고객 지키기에 나선 셈이다.
이에 현대카드 측은 “과당경쟁을 부추긴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급기야 지난 4월 카드사들에 ‘과도한 일회성 마케팅을 자제하라’고 했던 금융 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삼성카드는 당초 5월 23일까지 진행하려던 무이자 할부 마케팅을 20일에 중단해야 했다.
그런데 무이자 할부 마케팅에 반발하던 현대카드가 곧장 ‘맞불’을 놨다. 5월 24일부터 6월 6일까지 50만 원 이상 결제 시 무이자 12개월 할부 마케팅을 진행한 것. 이에 대해 앞서 금융 당국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삼성카드 역시 “현대카드가 금융 당국의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파트너 교체’의 나비효과
삼성카드는 코스트코와의 계약이 끝난 시점에 홈플러스 전용 카드를 내놨다. [삼성카드 제공]
또 기존 코스트코 제휴 카드의 경우 별도로 교체하지 않아도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에서 사용금액의 1%를 적립해주는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코스트코 제휴 중단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문제는 이런 경쟁적인 마케팅이 업계 전반으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번 코스트코 제휴 건과는 별개이긴 하지만, 최근 KB국민카드의 경우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눈길을 끌고 있다. 자동차 구매 시 다른 카드사보다 많은 캐시백을 해주거나 아파트 관리비, 보험료 자동납부 등에 대한 혜택을 강화하면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는 것.
업계에서는 KB국민카드의 행보와 이번 코스트코 건이 맞물리면서 업체 간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카드와 KB국민카드, 현대카드는 국내 카드업계 2~4위권으로 쫓고 쫓기는 관계이기도 한 탓이다.
실제 신한·삼성카드의 양강 체제가 오랫동안 이어지던 국내 신용카드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개인·법인카드 신용판매 취급액 기준 올해 1분기 KB국민카드 시장점유율은 17.4%로 1년 전 16.5%에서 0.9%포인트 상승했다. 삼성카드의 경우 18.2%에서 17.9%로 하락하면서 2위 자리를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현대카드는 점유율 15.6%로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카드가 코스트코를 꿰차고, KB국민카드가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어 2위 자리를 위협받는 삼성카드 역시 마케팅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이 경우 삼성카드는 물론 다른 중위권 카드사나 업계 1위 신한카드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또 있다. 앞서 카드사들에 ‘출혈 마케팅을 자제하라’고 했던 금융 당국이 머쓱해졌다는 점이다.금융 당국은 지난해 말부터 지속해 카드사들에 연간 6조 원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줄이라고 압박해왔다. 정부가 영세·중소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자 카드사들이 ‘수익성이 악화한다’며 반발한 데 따른 대응 차원이다. 그런데 카드사들이 되레 마케팅을 더욱 강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금융 당국 입장에서는 체면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
체면 서지 않는 금융 당국
금융 당국은 “최근 카드사들의 마케팅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카드사들이 법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직접적인 제재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업계에서는 ‘금융 당국 책임론’이 나오기도 한다. 카드사들에 무작정 마케팅 비용을 줄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여론 눈치를 보느라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실제로 마케팅 비용을 줄이기 시작하면 소비자 혜택이 줄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는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위기”라며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불필요한 경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