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의사로서 그리고 동물 행동 트레이너로서 일하다 보면 개가 여자보다 남자를 더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직접 느끼게 된다. 남자와의 사이에 부정적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그냥 남자를 무서워하는 개가 꽤 많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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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화 부족
나는 보통 15~20년 정도 되는 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생후 3~12주, 길게 보면 16주까지의 시기라고 말한다. 이때 개는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저명 행동전문 수의사인 이안 던바(Ian Dunbar)는 이렇게 말했다. “개는 생후 3개월까지 100명의 사람을 만나야 한다.” 달리 말하면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면 개의 사회화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생후 3개월까지 개의 뇌는 스펀지와 같다. 이때 긍정적으로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평생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확률이 높다. 반면 이 시기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줄곧 두려움을 갖게 된다. 혼자 사는 여성이 키우는 개의 경우 어릴 때 남성을 접하지 못해 평생 이유 없이 남성을 무서워하는 경우가 많다.
2▶▶▶ 부정적 경험
우리나라 개는 대부분 사회화 시기에 집 안에 있다. 밖에 나가는 건 백신 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을 때 정도가 전부다. 이때 개는 가뜩이나 외부에 오랜만에 나가니 모든 게 두렵다. 그런데 수의사는 주사를 놓아 개를 아프게 한다. 수의사는 대부분 남자이다 보니, 개는 남자에게 딱히 학대를 당한 게 아닌데도 남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개가 사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려움을 느낄 만한 외부 자극 중 상당수가 남자와 연관돼 있기도 하다. 거리에서 갑자기 오토바이 소리가 나거나 건설 현장에서 큰 소리가 들리면 개는 깜짝 놀란다. 그때 돌아보면 거기 남자가 있는 게 보통이니, 의도치 않게 남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회화 과정이 부족해 남자에 대한 좋은 경험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부정적 경험이 쌓이면, 개는 남자 자체를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게 될 수 있다.
3▶▶▶ 걷는 모습의 차이
4▶▶▶ 목소리
사람은 개의 소리 언어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도 있다. 개가 높은 소리를 내는 건 보통 “내게 가까이 오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개는 분리불안 증세를 보일 때 하울링을 한다. 높은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보호자에게 “빨리 내게 와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반면 개가 낮은 소리를 낼 때는 “내게서 멀어지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 개는 위협적인 자극이 느껴지면 보통 낮게 으르렁거린다. 일부 자신감이 넘치는 개는 공격성을 드러내기 전 ‘으르렁’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이는 “내게서 떨어지라”는 경고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달리 말하면 “와볼 테면 와보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런 개의 목소리 언어를 이해하면, 개가 왜 남자 목소리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개의 관점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가늘고 높은 여성 목소리는 “가까이 오라”는 사인으로, 굵고 낮은 남성 목소리는 “멀리 떨어지라”는 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는 셈이다.
5 ▶▶▶ 외모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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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개가 특정 성별을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남자가 억지로 다가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 상대를 위하는 길은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아닌가.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 건 그다음 문제다. 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개가 공포를 느끼는 행동은 일단 피하고, 조심스레 행동하면 개도 언젠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