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목선 정박 귀순’ 5大 의혹

전례 없고 이상한 ‘합동신문’… 간이조사 후 2명 돌려보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9-07-2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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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눈치 보느라 뭉개려 했나

    • ‘삼척항 인근’ 표현 軍에선 안 써

    • “군인, 어민 구분 어렵다”

    • 청와대 개입 없다면서 안보실 1차장 ‘엄중 경고’

    • ‘가정불화’ ‘생활고’ 석연찮은 귀순 동기

    이낙연 국무총리는 야당 의원을 상대할 때 정중하게 답변하되 순발력 있는 촌철살인으로 말문을 차단하곤 한다. 그런 이 총리가 7월 9일 국회에서 열린 통일·외교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목에 음식이 걸린 사람처럼 머뭇거렸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대정부 질의 때다. 

    -총리 진짜 화가 납니다. 북한 목선 그게 뭡니까. “….” 

    -입이 100개라도 정부는 할 말이 없어요. “…, 네.” 

    -대북 유화 정책을 쓰면 안보는 강하게 해야 합니다. 변명이라도 해보세요. 

    ”참으로 드릴 말씀이 없는 경계 실패였고, 이번 일을 계기로 보완하겠습니다.” 

    -그걸 알면서 20일이 넘도록 변명만 하고, 이게 되겠습니까. “네, 잘못….” 



    -안보 라인 책임져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네, 그거….” 

    -건의하시겠어요. “네, …. 아, …. 의원님들의 질책을 전하….” 

    -대통령께서 왜 안보 1차장 경고했습니까. 경고한 내용이 뭡니까. 

    “상황을 안이하게 봤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을 경고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 그…. 군의 최초 보고에…, 허술함이 있었는데 그걸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문책이었습니다.” 

    이 총리는 이날 ‘삼척항 입항 귀순 사건’과 관련해 ‘못난 짓’ ‘부끄러운 실책’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목선 사건은 의혹투성이다. 석연치 않은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니다. △합동신문에서 공작원 여부를 제대로 조사했나 △왜 서둘러 북한으로 돌려보냈나 △표류한 것처럼 뭉갠 게 청와대인가 △안보실 1차장이 경고받은 이유는 뭔가 △북한 눈치를 본 것은 아닌지가 그것이다.

    3중 경계망 뚫고 57시간 동해 잠행

    함경북도 경성에서 강원도 삼척은 직선거리만 500㎞다. 길이 10m, 폭 2.5m, 무게 1.8t의 28마력 목선이 최소 700㎞ 거리를 항해했다. 경비함·해상초계기·해상작전헬기 3중 경계망을 뚫고 남측 해역을 아무런 제지 없이 57시간 동안 돌아다녔다. 해상 경계망을 살펴보려는 북한의 공작이었다면 충격적인 일이다.
     
    선원 4명 중 1명은 빳빳하게 다림질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인민복·전투복으로 보이는 복장을 두고 ‘군인설’ ‘간첩설’도 제기됐다. 어로 작업을 했다고 보기엔 배가 지나치게 깨끗해 모선(母船)의 존재가 거론되기도 했다. 

    6월 15일 새벽 북한 주민 4명이 삼척항에 입항했는데 그중 2명이 사흘 후 북한으로 돌려보내졌다. 이 과정에서 합동신문(국정원·안보지원사·경찰 등의 합동정보조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귀순 당일인 6월 15일 1차 합동정보조사를 했다. 통일부가 합동신문(합신) 결과를 통보받은 것은 이튿날 오전이다. 통일부는 16일 오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선원 2명의 송환을 통보했다. 이튿날 북한이 인수 의사를 통보해옴에 따라 6월 18일 2명을 판문점을 통해 송환했다. 

    홍성민 안보정책네트웍스 대표는 “합신이라고는 할 수 없는 간이 조사 후 2명을 서둘러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사건의 경우 합신은 보통 수개월 걸린다. 조난당하거나 표류한 게 아니라 삼척항을 목적지로 입항한 사건이다. 표류한 어민은 그렇게 돌려보낼 수도 있으나 이번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軍 일각 “억울하다”

    전례를 보면 정부는 북한 어선을 해상에서 구조하고도 5일 넘게 합신을 거친 뒤 송환 절차를 시작했다. 탈북민들도 합동신문센터에서 수개월간 고통스러운 신문 과정을 거친 후 탈북민 정착 지원 기관 하나원으로 이동한다. 

    4명에 대한 개별 면담조사는 6월 15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41분까지 7시간가량 이뤄졌다. 의심스러운 대목이 적잖은데도 단 한 번의 조사와 일방적 진술만 청취하고 ‘민간인’으로 규정한 후 2명을 돌려보낸 것이다. 

    한 탈북 인사는 “두 사람이 군인이나 공작원이 아니라면 북한으로 돌아가 보위부의 가혹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몸집, 어깨 근육의 발달 상태, 몸동작 등으로 전투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식별해내는 기법이 있다”고 국정원은 설명하나, 한 예비역 장성은 “군인과 어민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목선의 발견 장소를 ‘삼척항 인근’으로 뭉갠 주체도 밝혀지지 않았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6월 20일 “‘인근’이라는 표현은 군에서 많이 쓰는 용어”라면서 “항은 보통 방파제·부두를 포함한다”고 퉁쳤다. 말장난에 가까운 해명이다. 

    군 지휘관들은 좌표를 입에 달고 산다. “항내라고 표기하지 인근이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군 장교는 잘라 말했다. 4명을 태운 목선은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된 게 아니라 방파제 부두에 배를 댔다. 

    ‘삼척항 인근’은 표류의 의미가 강하다. ‘삼척항내’는 ‘특정한 의도’에 따라 좌표상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 ‘인근’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안을 축소·은폐하거나 적어도 뭉개려 했다고 봐야 한다. 

    군 관계자는 “합동정보조사 과정에서 군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안다”면서 “경계 실패는 잘못이지만 축소·은폐 의혹을 군이 뒤집어쓰게 된 모양새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삼척항 인근’으로 뭉갠 주체는 누군가. 청와대 안보실 A행정관이 6월 17, 19일 국방부 백그라운드 브리핑에 참석했다. 윤도한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어떤 방식으로 여론이 흘러가는지 확인하고자 브리핑에 간 것으로, 행정관이 국방부 관계자와 협의하거나 조율한 것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청와대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축소·은폐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으나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6월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국가안보실도 소홀함이 있었다”고 천기(?)를 누설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개인 페이스북에 그런 글을 올린 것도 괴이하다. 

    정부는 ‘삼척항 인근’과 ‘표류’ 등의 언론 발표에 청와대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는데 김유근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은 ‘엄중 경고’를 받았다. 도대체 왜 경고를 받은 건가.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 

    내각의 장관을 제치고 청와대가 다 결정한다고 해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을 듣지만, 안보실 1차장은 국방부 장관을 지휘하는 자리도 아니고, 경계를 책임지는 직위도 아니고, 목선 사건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국민에게 브리핑하는 자리도 아니다. 그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당최 알기 어렵다.

    범법자,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공개

    일각에서는 청와대 혹은 군의 누군가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사건을 조용히 넘기는 게 문재인 대통령과 대북 정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게 아니냐고 관측한다. 경계 작전 실패와 관련해서는 장군 6명을 징계했으나 은폐·축소 논란은 꼬리 자르기도 없다. 퉁치고 넘어가려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청와대는 북한 눈치를 봤는가. 윤도한 수석은 6월 21일 ‘삼척항 입항 귀순 사건’을 최초로 전한 언론 보도를 ‘사고’라고 표현했다. “나가서는 안 되는 보도였다”는 것이다. “귀순자들이 귀순 의사를 갖고 넘어왔다면 보도로 인해서 남북관계가 굉장히 경색된다”고도 했다. 그는 또 “애초 북한에서 어떻게든 남쪽으로 오면 합동신문을 해서 끝날 때까지 (몇 달간 발표를) 안 하는 것인데 (이번 사건은) 중간에 일종의 사고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귀순 사건에서 동기는 “한국을 동경했다” 정도로 공개하는 게 관례다. 정부는 범법자 혹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귀순했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가정불화가 있었다” “생활고를 겪었다” “육상 탈북을 시도하다 체포된 전력이 있다” “한국 영화 시청 혐의로 처벌받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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