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명사에세이

위장된 善보다 솔직한 惡이 낫다

  • 함대진 前 서울 서초구 기획재정국장

    입력2019-08-08 1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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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조직 생활 등에서 ‘튀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산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성격이 너무 곧거나 일에 두각을 보이면 오히려 질투와 시기 또는 ‘안티’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가 난 돌은 그걸 쪼아서 다듬는 ‘정’이 가해져 본래의 모습을 잃고 말며, 사람으로 치면 모난 사람은 정이 가해져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으레 하는 말이려니 여기고 이 속담을 그냥 지나쳐버리기 쉽다. 그런데 필자는 공직 생활 내내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 공직에 첫발을 내딛고 처음으로 부서를 옮긴 1987년의 일이다. 전입한 신참(나)을 수개월 지켜본 선배가 한 말이 “함 주사,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거였다. 일에 임하는 자세가 융통성 없이 원리원칙대로인 게 걱정돼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33년간의 공직 생활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7월 1일부터 1년간 공로연수에 들어가 내년 6월 정년퇴임한다. 후배들에게 편지를 남기면서 서두에 이렇게 썼다. 

    “그간 저의 공직 생활은 한마디로 감사와 뿌듯함 그 자체입니다. 흔히 얘기하는 ‘시원섭섭’이 아닌 ‘시원’입니다. 이는 (진부한 얘기인지 몰라도) 공직에 임함에 있어 사명감, 책임감, 청렴의 자세로, 일에 있어선 열정, 소신, 추진력, 강단, 좌고우면함 없이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새내기 때 그 소신 그대로 33년여 흐트러짐 없이 한결같은 자세를 견지했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그동안 제 어깨에 자리했던 (보이지 않는) ‘엄중한 공직의 멍에’를 내려놓기에 더욱 그런가 봅니다.” 

    이 편지를 쓰면서 필자는 무척 행복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대로라면 이미 정을 맞고 공직을 떠났을 수도 있는데, 용케도 서기보로 들어와 서기관으로 정년퇴임을 하며 그간의 희로애락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서였다. 



    사실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조직에서 자기 소신을 갖고 일관된 자세로 임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저 귀에 거슬려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적당히 양보하고 타협하며 두루뭉술하게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낙오되거나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듯,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봐주는 이들이 있다. 사무관으로 승진했을 때다. 죽을 둥 살 둥 열정을 다해 그야말로 신나게 일해 얻은 승진이었으나 주변의 시기와 질투가 극에 달했다. 공무원노조 게시판에 ‘사무관 승진을 위해 손바닥 지문이 닳았을 거다. 얼마나 싸다 바쳤겠냐?’라는 글이 있었다. 명예훼손이었다. 서기관 승진을 앞두고는 ‘(직원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소통담당관 천년만년 할 거냐. 이젠 몸도 안 좋으니 (서기관 승진) 내려놓으시죠’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후배로부터였다. 너무 서운하고 억울했다. 

    공직자에게 최고의 보람은 승진이다.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고 조직에 기여하면 당연히 정당한 평가를 받아 승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지도 않은 말을 사실처럼 입에 오르내리게 해 인내의 한계를 느낀 적도 있다. 난생처음 속앓이를 겪으며 사표를 쓰려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접었다. 그때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졌더라면 그야말로 엄청 후회할 뻔했다. 명예롭게 승진도 하고 정년퇴임을 맞게 됐으니 말이다. 

    시기와 질투로 인한 ‘태클’은 사람이 있는 곳엔 늘 존재한다. 그런데 무심코 던진 돌에 상처 입는 것을 넘어 사망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차적으로 내게 문제가 있었음도 반성한다. 두루뭉술하게 적당히 사는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장(僞裝)된 선(善)보다 솔직한 악(惡)이 낫다’는 철학을 갖고 살아왔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신독(愼獨)’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살아가자’는 의미다. 면전에서는 ‘아니오(No)’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예스(Yes)맨이 되는 게 조직 생활인지도 모른다. 용비어천가를 읊기도 한다. 그게 처세술일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 뒷담화를 한다. 앞에선 따르는 척하지만 돌아서서는 딴소리다. 면종복배(面從腹背)다. 그러나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러한 위장이 통한다는 데 있다.

    감싸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33년여 공직생활 동안 ‘모난 돌’이었으니 셀 수 없이 많은 부딪힘이 있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걸어올 수 있었던 데는 나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첫째, 진실한 자세와 정직함이다. 둘째, 공평함을 유지하려는 균형감이다. 셋째, 문제의식을 갖고 소신을 갖되 정(正)반(反)합(合)의 합리성을 지향한 것이다. 넷째 긍정 마인드다. 

    이런 자세로 살다 보니 언제부턴가 ‘독일 병정’이란 딱지가 붙었다. 독일 병정은 원칙대로 밀고나가는 사람을 비유해 일컫는 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와 같은 맥락이다. 독일 병정 같다는 말을 들을 때는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다잡는 데 동기부여가 됐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독일 병정 같다’고 말해준 선배들에게 큰절을 올린다. 그런 충고와 가르침이 있었기에 소신껏 일할 수 있었다. 생각해본다, 그간 만난 선배 동료 후배 등 무수히 많은 사람을. 내게 잘해준다고 해 다 우군은 아니다. 진정한 친구, 선배라면 때론 ‘아니다’라고 따끔한 질책과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감싸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간 보람도 컸다. ‘공직이 체질’이란 얘길 들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보람은 서울 송파구, 노원구, 서초구, 서울시를 거치며 홍보팀장, 과장으로 공직의 절반이 넘는 17년 6개월 동안 홍보맨으로 일한 거다. 미디어를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일을 주민에게 널리 알리고 소통하며 참여를 이끌어내는 가교 구실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가는 곳마다 도시 이미지를 좋게 만들고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특히 미디어를 통한 홍보로 ‘강북의 대치동, 중계동’ ‘강북 8학군 교육특구 노원’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 교육 경쟁력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임으로써 공공 영역의 홍보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꿨다. 두 권의 홍보 전략 서적을 출간하고 전국 여러 지자체에 강사로 초빙된 것도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도 홍보 관련 강의나 저술 활동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간 쓸개 다 빼놓고…

    마음 한 켠에 아쉬움과 후회도 있다. 일에 몰두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했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간 쓸개 다 빼놓고 해야 한다는 홍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병치레로 약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남긴 편지에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입니다. 가정 또한 첫째입니다. 스트레스는 금물입니다. 반드시 지혜롭게 날려 버리세요. 만병의 근원입니다. 이왕 할 일 끌려가지 말고 치고 나가며 즐기세요. 긍정 마인드입니다”라고 당부한 것이다. 

    33년여 공직생활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후회는 없다. 인생 후반전에 돌입한 지금도 ‘위장된 선보다 솔직한 악이 낫다’란 소신을 되새기며 힘차게 출발한다. 오늘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선배의 얘기가 귓전을 때린다.


    함대진
    ● 1960년 충남 서산 출생
    ● 서울시 공무원 서울시 노원구 홍보체육과장 서울시 홍보기획팀장 
    서울시 서초구 홍보담당관, 주민소통활성화추진단장
    ● 저서 : ‘휴지통에서 진주를 건지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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