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태극연습, 군을 객체로 전락시킨 민방위훈련 수준”
“합참의장 대신 총리가, 합참 대신 행안부가 주도”
“재난 대비하고 전시 초기만 연습…전쟁 대비 허술”
“쌍룡, 키리졸브, 독수리, 맥스썬더…줄줄이 무력화”
“프리미어리그 구단이 조기축구단 된 격”
“북한 의식해도 너무 의식”
“안보 공백 어쩌나”
5월 ‘2019 을지태극연습’의 하나로 열린 독가스 테러·화재 대응훈련에 참가한 군 화생방 요원들이 제독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로써 한미연합방위 태세 아래서 한미연합사령부 주관으로 정부와 함께 실시해오던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은 4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부와 군은 이번 을지태극연습이 을지프리덤가디언을 대체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국무조정실은 5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을지태극연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규모 복합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국가위기 대응연습’을 실시해 국가위기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태극연습과 연계한 국가총력전 차원의 ‘전시대비연습’을 통해 비상대비태세 확립을 목표로 실시됩니다.”
“자괴감 느낄 지경”
그러나 필자가 파악한 결과, 이번 을지태극연습은 국가급 군사훈련이라고 하기 민망할 수준이었다. “군이 전쟁에 대비하는 훈련을 어쩌면 이렇게까지 허술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탄식마저 나온다. 남북 평화를 강조하는 정부의 기조를 볼 때,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을 것을 터. 하지만 군 내부에선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몇몇 군 소식통은 을지태극연습에 대해 “자괴감이 들 지경”이라고 했다.정부는 2018년 7월 10일 “최근 조성된 여러 안보정세 및 한미연합훈련 유예 방침에 따라 올해(2018년) 계획된 정부 을지연습을 잠정 유예하기로 결정했다”면서 “을지태극연습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부분의 국가급 연습은 1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키리졸브연습, 독수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도 1년 전부터 준비한다. “이번 을지태극연습은 을지연습과 태극연습을 통합해 군의 독자적 작전 수행 능력을 배양할 뿐만 아니라 테러·재난 대응을 포함하는 포괄적 안보 개념을 적용해 실시됐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이번 훈련 기간은 4일밖에 안 됐지만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처럼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제1부 국가위기대응연습은 5월 27일부터 28일 오후 4시까지, 제2부 전시대비연습은 5월 28일 오후 4시부터 30일까지 합참 주도하에 전시대비 지휘소 연습으로 실시됐다.
문제는 제2부
문제는 제2부다. 제2부 전시대비연습은 합참 주도하에 위기 상황에 따른 통합방위사태 선포 절차, 전쟁 이전 단계의 전시전환 절차, 방어적 성격의 전면전 초기 대응 절차 정도만 ‘묘사’했다. 전시대비 지휘소연습은 실제 병력과 장비가 참여하지 않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뤄졌다. 국방부 측은 “전시대비연습을 통해…확고한 군사대비태세가 유지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필자가 파악한 이번 훈련 수준은 ‘민방위훈련’이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필자는 2018년 민방위훈련 강사를 한 적이 있다. 민방위는 적의 침공이나 재난으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방공, 응급방재, 구조, 복구, 군사작전상 필요한 지원 등을 수행한다.
민방위 훈련은 1년에 8번 실시된다. 행정안전부가 주관하고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지방행정기관, 공공기관, 공공단체가 참여한다. 이러한 민방위훈련의 최상위 지침은 국가안보전략지침이다. 물론 군사전략의 최상위 지도지침도 이 지침이다. 이 지침은 평시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과 전시 전쟁지도지침으로 구분된다. 이 2가지 지침에 의거해 이번 을지태극연습의 큰 골격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제1부에선 국가위기 대응연습을, 제2부에선 전시대비연습을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종래의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과 비교할 때, 이번 을지태극연습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전시에 주체가 돼야 할 군이 객체가 돼 훈련한 점이다. 이번 훈련의 연습총감은 국무총리다. 지진 등 재난에 대비한 국가위기관리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2부 전시대비 군사연습도 위기 관리와 전시전환 절차 훈련에 집중했다. 2일간 전면전 초기 대응절차만 묘사된 것이다.
이런 단계의 훈련은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에서는 본훈련 기간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때에는 훈련 1주 전에 위기 증대에 따른 전시전환절차 훈련을 한다. 지금은 주적(主敵)을 명확히 하지 못하다 보니 적(敵)도 없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적(敵)도 없는 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의 제1부는 한국 정부와 연계해 방어 성격의 훈련을 한다. 제2부는 한미연합사 주도로 반격 성격의 훈련을 한다. 이때 전시작전계획에 의거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작전통제가 전환되고 한미연합군 부대가 계속 훈련에 참여한다. 정부는 충무계획에 의해 군의 작전을 지원한다. 전시엔 효율적으로 승전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군 지휘관에게 권한이 집중된다. 6·25전쟁 때도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이 전쟁을 지휘했다.한미연합사령관이 키리졸브 연습이나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을 주도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전시에 2000여 대 항공기(25개 비행대대), 5개 항모전투단, 2개 해병기동군, 지상군 2개 군단 등 약 69만 명의 미군 병력을 증원하는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증원은 미국의 백악관, 펜타곤(국방부), 합참, 인도태평양사령부가 긴밀히 연계되는 복잡다단한 일이다. 미군 부대의 한반도 전개는 미국 본토는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전력을 투입해야 하므로 시차별 부대 전개 목록과 제원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한다. 유엔군사령관은 한국과 일본에서 6·25전쟁 참전국을 중심으로 20여 개 국가의 유엔사 연락장교단을 운영한다. 이들 국가는 유사시 유엔군사령관의 통제를 받으면서 한반도에 병력과 장비를 투입한다. 유엔사는 이를 돕기 위해 7개 유엔사 후방기지를 일본에 두고 있다.
군을 재난 대응에 투입한 것은 난센스
을지태극연습이 포괄적 안보 개념을 구현한다면서 군을 재난 대응에 투입한 것은 난센스다. 전시 군의 역할을 망각한 무지의 소치에 가까워 보인다. 연습 각본을 이렇게 짠 것도 문제이지만 이런 각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전쟁 주체가 아닌 재난 대응 주력으로 전락한 군도 문제다.연습총감이 합참의장이 아닌 국무총리인 데다 연습 주관도 군(합동참모본부)이 아닌 행정안전부가 했고 국방부가 지원했다. 훈련은 재해재난 대비 훈련을 중점으로 했다. 전시에 적과 싸워 이기는 훈련이 아니라 민방위훈련 비슷한 훈련으로 전락한 것 같다.
아울러 5월 14일 연습준비보고회의에서 연습총감인 이낙연 국무총리는 재난 대응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만큼 앞으로 안전 분야를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또, 전시 대비도 완벽히 해나가고 민·관·군이 유기적으로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는 합참의장과 각 군 총장도 참석했다. 장소도 국방부나 합동참모본부가 아닌 정부서울청사였다. 한 군사 전문가는 “북한을 의식해도 너무 의식했다”고 말했다.
대대급 이하 한미연합훈련의 실태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독수리 연습을 대체해 3월 4~12일 실시한 동맹연습도 북한을 의식해서인지 방어 위주 훈련으로 진행됐다. 기존의 반격연습은 작전개념 예행연습 등 점검 차원에서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 한미연합훈련은 대대급 이하 훈련만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취지인 북한군 특수부대 후방 침투에 대한 연합 대응, 후방 기지를 통한 대규모 전시 증원 병력 전개 훈련은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미국 NBC방송도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을 작은 규모의 특정 임무별 훈련으로 대체할 예정”이라며 “소규모 훈련을 통해 어떻게 군대의 준비 태세를 확립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수천 명의 병력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군 소식통은 “연대급 이상 훈련은 한미가 각자 단독으로 시행하고 대대급 이하 훈련은 한미연합으로 시행한다는 것이 합참과 연합사의 방침”이라며 “연대급 이상 단독훈련 과정에서 연합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술토의나 작전개념 예행연습 등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간 대규모로 시행된 연합훈련 시기와 규모, 일정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실제로 매년 4월 초 한미연합군의 상륙능력 연마를 위해 실시해온 쌍룡훈련이 올해 미군 병력과 장비 참여 없이 한국군 단독 훈련으로 진행됐다. 쌍룡훈련은 폐지가 결정된 독수리훈련의 일환으로 시행된 연대급 야외기동훈련이다. 유사시 한미 해군과 해병대가 적 해안으로 상륙해 상륙부대의 진로를 개척하는 능력을 배양할 목적으로 실시돼왔다.
한미가 지난해 말 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를 연기하면서 한국 공군만 독자적으로 ‘공군 전투준비태세 종합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을 공포에 떨게 한 ‘비질런트 에이스’도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한미 공군의 연합전투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맥스썬더’ 훈련도 이름을 ‘공군전투준비태세 점검’으로 바꿔 5월 3~7일 대대급 이하 한미 공군훈련으로 실시됐다. 100대 이상의 한미 공군기가 참여하던 훈련이 20여 대의 군용기가 참가하는 규모로 줄어들었다.
이름 바꾸고 100여 대를 20여 대로
지난해 12월 6일 한미연합 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에 참가한 미국 전략폭격기 B-1B 랜서(왼쪽)와 미국 F-35A, 한국 F-15K 전투기들. [공군 제공]
이번 훈련엔 북한이 꺼리는 F-22 랩터 스텔스 전투기 등의 전략자산은 오지 않았고 미국도 보낼 생각이 없었다. 군 소식통은 “맥스썬더 훈련 축소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맥스썬더 훈련은 ‘유사시 적기를 요격하고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해 적의 주요 시설물까지 파괴한다’는 시나리오에 따라 2009년부터 실시돼왔다.
대대급 한미연합훈련 중 편대종합훈련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미 공군은 4월 22일부터 5월 3일까지 편대종합훈련을 했다. 북한은 5월 8일 남북 장성급 회담 북측 대변인 명의로 이 훈련을 문제 삼았다. 이어 우리민족끼리, 메아리 등 대외선전매체를 총동원해 끈질기게 이 훈련을 비난했다. 북한의 평양방송은 5월 14일 “연합훈련을 진행하는 남측이야말로 군사합의를 위반하고 있다”며 “미국과의 은폐된 적대행위에 매달리며 북남군사합의를 난폭하게 유린해 이미 그에 대해 말할 자격을 깡그리 상실한 자들의 뻔뻔스러운 넋두리”라고 주장했다.
몇몇 군 관계자가 “이젠 한미공군 편대종합훈련을 제외하면 규모를 막론하고 제대로 된 군사훈련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 정부와 가까운 한 예비역 고위 장성은 “한미연합훈련이 50개 이상 되는데 80%는 예전처럼 제대로 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을지태극연습도 위기관리와 재해재난에 치중했지만 “시스템이 전시임무수행과 동일하다”고 역설했다. “북한 비핵화를 견인하기 위해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미연합사 출신 예비역 장성은 “소규모 연합 훈련은 계속 한다고 하지만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이 취소된 데 이어 키리졸브 연습도 폐지됐으니 주한미군 장교단의 한반도 전장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훈련 중단-축소의 후유증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주한미군 축소가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미군은 훈련하지 않는 군대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고 했다.반면, 북한은 9·19 평양선언 및 남북군사합의 이후 한국의 작은 훈련까지 비난하면서 자신의 국가급 훈련을 예년 수준으로 실시했다. 5월 4일과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 지도하에 동·서부 전연(전방) 포병과 미사일 여단들이 참가한 가운데 국가급 화력타격훈련이 실시됐다. 이때 북한은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실전배치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을 을지태극연습으로 바꾼 것은 프리미어리그 구단을 조기축구단으로 바꾼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 군사 전문가는 평한다. 이러한 군사훈련 중단-축소의 후유증은 앞으로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다. 북한 목선이 한국 해안을 휘젓고 다녔다. 안보 공백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김기호
● 육군사관학교 졸업(35기) 육군 대령 전역
● 한미연합사령부 작전계획과장
● 국방대 안보대학원 군사전략학부 교수
● 現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