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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착취 피해자 얼굴로 ‘짤방’ 만들어 돌려보며 관전평”

‘n번방’ 피해자 무료 법률 지원 김영미 변호사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성착취 피해자 얼굴로 ‘짤방’ 만들어 돌려보며 관전평”

  • ●피해자 상당수, 영상 재유포될라 불안한 하루하루
    ●가해자들 “영상 본 것만으로는 처벌 못 해”
    ●피해자 고민 들어주는 척 신뢰 쌓은 뒤 몸 사진 요구
    ●스마트폰 익숙한 세대, 몸 보여주며 일탈 즐겨
    ●법원, 온라인 성범죄 상대적으로 가볍게 인식
    ●국민 다수 “n번방 가해자 刑 감경하면 안 된다”
    ●피해자 연대 통해 서로 북돋우며 용기 가지길
    ●피해자들이 목소리 내야 n번방 가해자 제대로 처벌받는다
“성착취 피해자 얼굴로 ‘짤방’ 만들어 돌려보며 관전평”
2020년 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함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박사방’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n번방 사건이다. n번방 사건은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텔레그램 등을 이용해 성(性) 착취물을 제작·유포하고 피해 여성을 협박한 사건을 일컫는다. 현재 경찰은 여성 단체 제보와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관련 다수 사례를 확인하고 가해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4월 2일 현재 경찰이 파악한 성착취 피해자 수는 103명. 그중 10대와 20대는 각각 26명, 17명이다. 경찰이 수사를 확대한 만큼 피해자 수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여변 소속 변호사 117명 무료 법률 지원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지금까지 성착취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나 주변에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혼자 움츠러드는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의 협박 및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 피해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 등이 영향을 미쳤다. 다행히 최근에는 사회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n번방 사건 책임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피해자를 돕고자 움직이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여변)에서 공보이사를 맡은 김영미 변호사(46·법무법인 숭인)도 그중 하나다. 그는 현재 n번방 피해자를 위한 무료 법률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변이 구성한 법률지원단에 참여 의사를 밝힌 변호사 수는 4월 6일 기준 117명에 달한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나서서 자기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야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는다. 그렇게 해야 성착취 카르텔이 무너지고 유사범죄가 예방되며, 궁극적으로 세상이 바뀐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과거에도 한국성폭력위기센터 등에서 활동하며 디지털 성범죄 사건 피해자들을 변호해 왔다. 피해자 보호 및 피해 구제, 가해자 처벌 강화를 위한 활동도 꾸준히 했다. 최근에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에 참여해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에 관한 국민 의견을 모으는 데 앞장서고 있다. 양형 기준은 법원에서 형을 선고할 때 참고하는 준거를 뜻한다. 대법원에서 정하며, 개별 법원은 합리적 이유 없이 양형 기준을 위반할 수 없다. 

김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 결정에 국민 뜻을 반영하고자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을 통해 3월 1~31일까지 각계 의견을 수렴했다. 그러곤 2만182명의 의견을 분석, 정리해 4월 8일 대법원에 의견서를 냈다.




영상 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김 변호사를 4월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법무법인 숭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변호사는 “지난 10년간 수많은 유형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다뤘지만 이번처럼 잔혹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피해 여성의 성을 착취한 사건은 처음 봤다”며 입을 열었다. 

-여변 법률지원단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여성단체에 피해를 제보한 사람들의 상태는 어떤가요. 

“매일매일 불안에 떨며 지냅니다. 영상이 유포된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재유포될지 몰라 두려워하고, 영상이 아직 유포되지 않은 피해자도 남모를 고통에 신음하고 있어요. 텔레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기 영상이 퍼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인터넷을 뒤지느라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피해자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습니다. 가해자 요구대로 자기 몸을 찍어 보냈는데, 해당 영상이 유포됐는지조차 확인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이 피해자는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구속된 뒤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심각한 불안 증세를 보인다고 해서 마음이 무척 아팠어요.” 

-피해자들은 왜 가해자 요구에 응한 건가요. 

“앞의 미성년 피해자는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가해자를 알게 됐다고 합니다. 가해자는 성적 목적으로 접근했지만 처음엔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습니다. 주로 피해자의 관심 사항을 대화 주제로 삼았죠. 이를테면 피해자가 강아지를 좋아하고 SNS 활동을 열심히 하니까 ‘나도 강아지를 좋아한다’ ‘SNS 계정이 있으니 우리 친구 맺자’ 하는 식으로 공통 주제를 만들어 대화를 계속 이어가며 호감을 얻은 겁니다. 피해자가 친구와 싸워 속상해하거나 학업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면 고민 상담자를 자처하며 신뢰를 차츰 쌓아갔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믿음이 생긴 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너는 얼굴도 예쁠 것 같다’고 외모를 칭찬하면서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몸 사진 주자 돌변한 가해자

3월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강력 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하를는 시민. [뉴스1]

3월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앞에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강력 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하를는 시민. [뉴스1]

-피해자가 가해자의 그 요구에 응한 건가요. 

“아니요. 처음엔 거절했어요. 그러자 가해자가 ‘나를 못 믿느냐. 내가 시간 내서 네 이야기를 들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화를 냈대요. 그러고는 ‘내 사진을 먼저 보내주겠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너도 내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하라’며 회유하더랍니다. 이후 피해자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얼굴 사진을 보내니 가해자가 ‘생각보다 훨씬 예쁘다. 너는 키도 크고 날씬할 것 같다’면서 이번엔 다리, 가슴 등 신체 일부를 영상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피해자는 이번에도 별일 없을 줄 알고 그 요구에 응했고요. 그런데 몸 사진을 확보한 뒤 가해자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노예다. 내 말을 안 들으면 이 사진을 SNS에 올리고 네 가족, 친구한테도 뿌리겠다’며 자기 요구대로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협박하더랍니다. 피해자는 몸 사진이 주변에 퍼지는 게 두려워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계속 영상을 찍어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해당 사건은 어떻게 됐나요. 

“피해자가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고, 부모 신고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사진과 영상을 보낼 때 이용한 온라인 플랫폼이 국내 기업 카카오가 운영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고, 피해자가 채팅방 화면 캡처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덕분에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죠. 지금은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상태입니다. 조주빈 구속으로 디지털 성범죄자 처리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니 가해자가 몹시 초조해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신체 노출하는 10, 20대 놀이 문화

-피해자들이 자기 몸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는 일에 거부감을 갖지는 않았습니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만나고 상담하면서 알게 된 건 요즘 10대, 20대에겐 카메라 앞에서 자기 신체를 노출하는 게 하나의 문화이자 놀이라는 점입니다. 어려서부터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을 갖고 놀면서 자란 세대라 추억을 영상으로 남겨두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또 이들은 채팅 앱이나 SNS 대화방에서 국경, 나이, 직업을 초월해 같이 어울리는데, 자기 신상 정보를 밝히지 않은 채 소통한다는 점 때문인지 일탈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어요. 피해자가 자기 신체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가해자에게 보낸 것도 이런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를 만나 상담한 저도 그 심리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얘기하더군요. 기성세대 눈에는 비상식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게 요즘 아이들 놀이 문화라고 해요.” 

김 변호사 설명처럼 요즘 트위터 등 SNS에는 성별 구별 없이 자기 얼굴과 신상 정보를 가린 채 신체 노출 사진 등을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계정을 ‘일탈계’ ‘살색계’라고 한다. 중·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10대가 교복을 풀어헤친 채 가슴이나 자기 성기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SNS를 이용하는 10대 이모 군은 “SNS에 노출 사진을 올리면 ‘좋아요’를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n번방 성착취자들은 이런 일탈계를 운영하는 여성들에게 접근해 협박한 뒤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n번방 피해 여성이 성을 스스로 상품화해 가해자에게 빌미를 제공했으니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다”란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우리 사회는 피해자가 순결하기를 기대하고, 그들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여자든 남자든 성욕이 있을 수 있고, 그걸 표현할 수 있다. 일탈계 운영자가 성적 호기심에서든 자기 성적 욕구를 드러내기 위해서든 자기 사진을 SNS에 찍어 올렸다고 해서 마땅히 성 착취를 당해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성착취물은 음란물과 구분돼야

김 변호사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상당수가 한번 가해자의 덫에 걸리면 점점 더 노출 정도가 심하고 엽기적인 영상을 찍어 보낼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진다. 김 변호사는 “이것이 바로 성착취”라고 했다. 

“성적 영상물을 당사자 동의 없이 촬영해 제작·유포하고, 해당 영상물을 피해자를 협박·조종하는 데 사용하는 행위가 바로 성착취(sexual exploitation)입니다. 현재 국내법에는 성착취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의돼 있지 않아요. 음란물이란 용어만 있죠. 하지만 n번방 사건에서 보듯 피해자가 있는 성착취물은 음란물과 구별해야 하고 처벌도 질적으로 달리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현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에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란 말을 쓰지 말고 ‘아동·청소년성착취음란물’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어요.” 

이와 관련 국회 입법조사처는 3월 31일 ‘텔레그램 n번방 디지털 성범죄 대책 현황과 개선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여기엔 디지털 성착취 개념을 입법화해야 한다는 제안이 담겨 있다. 

김 변호사가 n번방에서의 성착취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해 말 한 유튜브 미디어 관계자가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 취재한 여성 활동가들로부터 건네받은 자료를 보여주면서다. 이 관계자는 “최근 SNS에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여성 성착취물이 유포되고 있다”며 법적 자문을 요청해 왔다고 한다. 특히 “성착취자들이 ‘텔레그램에서는 성착취물을 유포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경찰에 붙잡혀도 처벌받지 않는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데 정말 이들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그가 건넨 자료에 담긴 n번방의 실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피해자 모습 스티커로 만든 뒤 채팅 때 사용

“n번방 안에서 일어난 일은 일일이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합니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단순히 몇 명이 모여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관람한 수준이 아니에요. n번방은 성착취물을 볼 수 있는 방과 채팅이 이뤄지는 방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채팅이 이뤄지는 방에서는 누군가 성착취물에 등장하는 피해자 모습을 스티커나 짤방(사람들 이목을 집중시키려고 인터넷상에 올리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제작해 올려요. 그러면 이용자들이 이를 내려받죠. 성착취물이 올라온 대화방에서 영상을 본 뒤 채팅방으로 돌아와 해당 피해자 모습으로 만든 스티커나 짤방을 써가며 관전평을 늘어놓습니다. n번방 중에는 아동·청소년만 대상으로 한 대화방도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변기 물을 마시게 하거나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기어 다니게 한 뒤 그걸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는 엽기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n번방 실태를 마주했을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분노가 일었죠. 온라인에서 알게 된 피해자에게 몸 사진을 요구하거나 특정 인물 얼굴을 포르노에 합성해 온라인에 뿌리는 유의 디지털 성범죄는 수년 전부터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n번방 사건처럼 피해자를 협박해 노예 부리듯 하고, 성착취물을 계속 생산하게 만들며, 이것을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한 뒤 피해자 이름, 나이, 학교, 주소, SNS 같은 신상 정보까지 올려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수법은 이제껏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성적 만족을 위해 지능적으로 수법을 연구한 거죠.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완전히 상실했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요.” 

-n번방 이용자들은 본인들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나요. 

“처음 제게 자문을 요청한 관계자 말처럼 ‘경찰은 절대 우리를 못 잡는다’ ‘잡혀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확신에 가득 차 있더군요. 자기들 행동을 하나의 놀이 문화 정도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가해자를 특정만 한다면 이들은 결코 처벌을 피하지 못합니다. 성착취물 제작·유포 행위에 가담한 사람은 물론 피해자 모습을 스티커나 짤방 등 2차 저작물로 만든 사람, 이를 내려받아 채팅방에서 사용한 사람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성착취는 반드시 처벌받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성인 대상 불법 촬영 및 배포와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 제작·유통·배포·소지 행위를 처벌하지만 해당 영상물의 시청·접근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제가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성착취물을 내려받지 않고 보기만 한 단순 관전자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 변호사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이 경우 우리 법의 ‘소지’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성착취물을 따로 내려받지 않았다 해도 대화방에 올라온 성착취물을 삭제할 수 있는데 그대로 놔두거나 해당 대화방에서 완전히 나오지 않은 채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면 성착취물을 소지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어요. ‘나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이용자들이 성착취물을 올려서 어쩔 수 없이 봤을 뿐’이라는 주장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김 변호사는 “n번방 실태 자료를 보며 온라인 성착취자들이 범죄에 대해 대단히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걸 알았다”고 했다. “피해자한테 실제로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지 않나”라며 자기 죄를 가볍게 여기더라는 것이다. 그는 “이제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말 참혹하게 느껴지는 건 n번방 성착취자들의 이런 인식이 그간 수사기관이나 사법부가 보여준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다행히 경찰이 해외 법집행기관 등과 긴밀히 공조해 수사하겠다고 나서고, 채팅 앱 ‘디스코드’가 관련 수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시각이 조금이나마 달라진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번에 제대로 된 처벌 선례를 남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법원, 디지털 성범죄 상대적으로 가볍게 인식

대법원은 4월 20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의결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대법원은 4월 20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의결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방송통신위원회 자료를 보면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4년을 기점으로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 범죄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때 디지털 성범죄의 싹을 자르지 못했을까요. 

“법원이 가해자에게 선고하는 형량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여변이 2011~2016년 서울 지역 법원에서 나온 불법 촬영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해 보니 가해자의 70%가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피해 정도가 더 심각한 불법 촬영물 유포 행위도 벌금형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어요. 유포 대상이 광범위한 사건도 가해자 대부분이 실형 1~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습니다.” 

불법 동영상 촬영 및 유포자뿐 아니라 소지자도 처벌해 달라는 목소리가 그간 끊이지 않고 나왔다. 2016년 소라넷 폐쇄 때나 2018년 웹하드 카르텔, 2019년 정준영 단체 카카오톡방 내용 유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회적 요구가 컸지만 매번 유야무야됐다. 김 변호사는 “그동안 어영부영 넘어간 결과가 n번방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번엔 반드시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관련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여변이 2만219명의 의견을 분석해 ‘디지털 성범죄 처벌 국민의견 분석 최종보고서’를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이것이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정하는 대법원 양형위 결정에 영향을 미칠까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온라인 플랫폼에 ‘디지털 성범죄 처벌 기준에 관한 당신의 의견을 들려주세요’라는 글을 올리면서 구체적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졌어요. 그중 하나가 ‘형 감경 요소로 고려할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형사범죄에서는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피해배상금을 공탁하면 형을 다소 깎아줍니다. 이런 것을 감경 요소라고 하죠.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94%는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감경요소로 고려할 게 없다고 했어요. 이를 제외하고 감경 사유를 제시한 1383개 답변을 분석했더니,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피해자와의 합의’(57.6%)를 꼽았습니다. ‘자수·자백’(36.1%) ‘피해자 전원과 합의’(2.3%) ‘영상 삭제를 위한 노력’(1.9%)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법원이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반영하는 ‘진지한 반성’(0.8%)과 ‘초범’(0.2%)을 감경 사유로 꼽은 사람은 매우 적었어요. 이번에 대법원에 국민 의견서를 내면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243명의 의견서도 별도로 제출했습니다.” 

-최근 텔레그램처럼 해외에 서버를 둔 플랫폼이 성착취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성착취 범죄 방지 차원에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고, 본인 확인 절차 없이 가입할 수 있게 돼 있는 플랫폼의 경우는 우리나라에 도입할 때 일부 기능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외국 플랫폼 사업자가 국내에 진출할 때는 의무적으로 국내에 책임자를 두고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다하도록 해야 해요. 대화방에 성착취물이 올라오면 곧바로 삭제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구축되면 제2의 n번방 사건이 벌어지는 걸 예방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 용기 내달라

여성단체 연합 회원들이 3월 30일 대전지방검찰청 앞에서 텔레그램 N번방 이용자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여성단체 연합 회원들이 3월 30일 대전지방검찰청 앞에서 텔레그램 N번방 이용자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n번방 등에서 성착취 피해를 당했지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말씀 해준다면요. 

“현재 여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위원회, 여러 여성단체가 모여 공동대책단을 만들었습니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여성단체가 상담 및 심리 치료를 지원하고, 민변 여성위원회와 여변이 법률적인 부분을 도와드릴 겁니다. 피해를 신고한다고 해서 여러분께 불이익이 가지 않습니다. 조금만 용기를 내서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신고해 주길 바랍니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전 어떤 걸 준비하면 좋을까요. 

“증거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텔레그램 대화방의 경우 화면 캡처가 안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땐 다른 사람 휴대전화로 대화 내용을 찍으면 됩니다. 만일 대화방에서 나왔다면 112에 연락하거나 경찰서 민원실을 찾아가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포렌식(Forensic) 센터에 휴대전화를 제출해 복원 요청을 하면 됩니다. 경우에 따라 대화 내용의 일부만 복원되기도 합니다만, 대화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증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경찰서에 찾아가 신고하는 게 부담스럽다면 여변(kwla.or.kr)이나 여성단체 등에 연락해 피해 사실을 신고해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김 변호사는 피해자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날마다 불안에 떨며 행여나 자신의 성착취물이 퍼졌을까 봐 인터넷을 찾아 헤매는 걸 그만두고 싶어 합니다. 저도 피해자들이 그 짐을 이제 그만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용기를 내 다른 피해자들과 피해 사실을 공유하며 가해자 처벌에 힘을 쏟고, 서로를 북돋우며 용기를 얻기 바랍니다. 더불어 피해자 주변 분들에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잊고 살라’고 말하는 건 피해자를 더 힘들게 만듭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 주길 바랍니다.” 

김 변호사와 인터뷰를 마친 뒤 기자 머릿속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졌다. ‘용기를 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신동아 2020년 5월호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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