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임신 도우미’ 영양제의 비밀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내 몸 상태 따라 천차만별, 과유불급

  • 난임전문의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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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21-03-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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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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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을 것이 지천에 널린 ‘영양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임신이 안 되는 난임부부들은 임신을 돕는 영양제를 찾아다닌다. 그들에게 영양제가 임신에 도움이 되는지 같은 진실게임 따위는 필요 없다. 임신만 된다면 영양제든 서슴없이 선택할 기세다. 간절함은 백 번 천 번 이해하고도 남는다. 

    필자는 영양제 신봉론자도 아니지만 무용론자도 아니다. 고령의 난임부부 혹은 업무 스트레스가 극심하고 불규칙한 식사를 할 수밖에 없는 맞벌이 난임 부부에게는 영양제를 권하고 있다. 영양제 무용론자들은 자연식품에서 충분한 영양을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리 제철채소와 과일을 잘 챙겨 먹는다고 해도 신이 내린 ‘수태식 슈퍼푸드’가 있다고 해도 완벽한 식이(食餌)가 될 수 없다. 

    식품으로 어떤 효능을 얻으려면 엄청난 양을 섭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우와 굴이 남성호르몬 분비와 전립선 기능에 필수영양소이자 정자 수를 증가시킨다고 해도 매일 꾸준히 챙겨 먹기는 힘들다. 비타민C 1000mg를 섭취하려면 감귤 서른 개는 먹어야 한다. 그러니 목표(임신)를 앞당기려면 임신에 꼭 필요한 영양소 성분표를 꼼꼼히 따져 각자 몸 상태에 맞게 섭취해야 한다.

    DNA 만드는 엽산 섭취의 필요성

    말 나온 김에 임신을 돕는 영양제를 짚어보자. 먼저, 임신을 기다린다면 엽산 섭취가 중요하다. 특히 채소 섭취를 기피하는 여성이라면 더더욱 엽산을 섭취해야 한다. 최근 식이와 생식 관련 논문을 검토하면 몇 가지 명백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건 바로 엽산이다. 엽산 섭취는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에서도 권장강화등급 A등급으로 규정해 가임기 여성에 대해 엽산 보충제 복용을 적극 권장한다. USPSTF의 지침에는 A, B, C, D 4등급이 있는데, A등급은 ‘효과가 상당하다’에 해당된다. 

    엽산은 비타민 B군에 속하는 수용성 비타민으로 아미노산과 핵산의 합성에 필수 영양소다.엽산이 부족하면 DNA와 RNA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신경관 결손 같은 기형아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신경관 결손을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추천용량보다 더 높은 용량으로 복용했을 때 난임 빈도와 유산율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유산할 때 투여하는 MTX주사제도 결국 엽산 대사를 못하게 하는 기전임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라면 계획 임신 3개월 전부터 엽산 보충제 400~800㎍(0.4~0.8mg)을 매일 복용하면 된다. 



    여성의 나이가 37세 이상이라면 항산화제를 적극 권한다. 35세 이후에는 스트레스 같은 환경적 요인(환경오염, 화학물질, 자외선, 혈액순환 장애 등)으로 인해 활성산소가 많이 쌓인다. 몸에 활성산소가 많아지면 철이 산소에 의해 산화되는 것처럼 우리 몸의 세포가 상하게 된다. 몸속 활성산소가 주변 세포나 조직을 공격해서 세포와 조직이 손상 되거나 노화된다. 심지어 많아진 활성산소로 인해 DNA가 파괴되고 세포막이 공격당하고,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생성돼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나빠진다. 그래서 고령 여성에게 건강한 난자를 키우기 위해서라면 항산화제 복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항산화제로 비타민C, 비타민E, 코큐텐, 레스베라트롤 등이 있다. 

    남성도 예외가 아니다. 항산화제를 복용하면 정자의 ‘깨짐’을 막을 수 있다. 정자의 DNA가 손상 되는 주된 원인도 바로 활성산소, 즉 발생기 산소다. 주로 정자 주위에서 발생하는 발생기 산소에 의해 DNA가 깨진다. 

    흔히 “정자는 한번 사정에 수(數)가 많고, 수정 시 난자에 핵(DNA)만 넘기기 때문에 핵이 건강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정자의 핵(DNA)에 이상이 없느냐는 것이다. 보통 세포는 DNA가 세포 중앙에 있지만, 정자는 유전물질인 DNA로 꽉 찬 주머니를 머리로 하고 중간에 미토콘드리아라는 연료통과 운동을 하는 꼬리로 돼 있다. 정자가 사정이 돼 질강과 자궁경부를 통해서 자궁강을 올라가 난관 끝(난자와의 만남을 위해)으로 가면서 여러 외부요인에 의해 DNA가 깨질 수가 있다. 

    사실 인공수정이나 IVF(시험관아기 시술)를 위해 정자를 싸고 있는 정장액을 씻어주거나, 운동성이 좋은 것만 골라내는 원심분리 과정을 거친다. 이때 정자의 DNA가 손상될 수 있다. 난임시술에서는 정자 숫자나 운동성, 모양으로 건강한 정자임을 판단하고는 있지만, 질 좋은 정자를 선발하려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인해 정자는 외부 위험인자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믿으면 아기는 빨리 찾아온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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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발생기 산소(활성산소)는 무엇에 의해 많이 생기는 걸까. 알코올과 흡연, 높은 함량의 카페인이다. 이들만 멀리해도 평균 수준의 건강한 정자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 정자의 숫자, 운동성, 질 등이 평균 이하로 떨어졌다면 영양제를 고를만하다. 이 때 성분표에서 아연, 셀레늄, 엘아르지닌(L-argine), 엘카르니틴(L-carnitine), 코엔자임(coenzyme) 등이 포함됐는지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때 빠질 수 없는 게 비타민C다. 가장 민감한 산화스트레스 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활성산소를 물리치는 데는 비타민C가 치료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과다복용은 금물이다. 비타민C는 과일과 채소만으로는 온전한 보충하기 어려워 별도 영양제를 챙겨 먹지만, 고용량 비타민C를 복용할 경우 임신을 방해하는 작용이 생길 수 있다. 고용량 비타민C가 항히스타민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자궁경부 점액을 마르게 해 정자가 자궁 내로 들어가는 것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임신 중에 권장하는 비타민D도 마찬가지. 요즘 비타민D 보충을 위해 주사를 맞으며 고용량의 칼슘과 함께 복용하기도 한다. 장내에서 칼슘을 강력하게 흡수하면 혈관 내 칼슘 침착이 일어날 수 있다. 비타민D와 칼슘은 소량으로 매일 복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오메가3 지방산은 생식에 좋은 영향을 준다. 오메가3 지방산은 참치 같은 등푸른 생선에 많이 함유돼 있지만 환경호르몬을 함께 섭취할 가능성이 있어 수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밖에 낙농제품과 콩, 콩류제품이 생식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불량한 수태력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영양제 시장규모는 무려 5조 원이다. 영양제 포화상태 시대에 어떤 영양제를 골라야 할지 난감하다면 우선 마케팅에 속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섭취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사와 상의해 제품을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또한 영양제 복용 목적(임신)에 필요한 성분표와 용량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다만 아무리 임신을 돕는 영양제라고 해도 일정량 이상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위장장애가 생기거나 간의 대사기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필자가 특히나 고령의 부부에게 영양제를 적극 권하는 것은 영양제가 난임부부에게 플라시보(위약) 효과를 발휘하는 치료제가 될 수가 있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결론 때문이다. 

    물론 영양제가 임신을 위한 치료제는 아니다. 영양제든 음식이든 현재 내 몸 상태에 맞춰 먹고, 기왕 먹는다면 임신에 도움이 된다고 믿어야 한다. 의사의 처방이든 영양제든 무엇이든 믿는 자에게 아기가 빨리 찾아오는 법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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