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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태현’? SK? SSG의 인천상륙작전 성공할까[베이스볼 비키니]

정용진 “삼성은 야구에 관심 없지만 카카오는 많다”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삼청태현’? SK? SSG의 인천상륙작전 성공할까[베이스볼 비키니]

  • ● 5년을 채 못버티고 인천 떠난 5개 구단
    ● 인천 떠난 현대에 상한 팬심 다독인 SK
    ● SK의 야구단 매각에 프로야구 위기설 돌아
    ● B2C기업 SSG는 야구단 운영에 시너지
3월 5일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에서 SK와이번스 이재원 선수(왼쪽)와 김원형 감독이 유니폼 반납식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3월 5일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야구장에서 SK와이번스 이재원 선수(왼쪽)와 김원형 감독이 유니폼 반납식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조선 제일 명의 유의태는 아들 유도지가 과거 시험(의과)에 합격한 게 오히려 불만이다. 아들이 ‘살려달라’면서 울고불고하는 백성을 뒤로 한 채 과거 시험장으로 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반면 제자이던 허준은 이들을 치료하느라 시험장에 들어서지도 못했다. 유의태는 아들에게 “너는 허준에게 졌다”면서 “약방에 남아 마음공부를 조금 더 하라”고 조언했지만 유도지는 결국 서울로 떠났다. 그리고 약방을 지킨 건 제자 허준이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유의태의 의술을 잇는 사람은 아들이 아닌 제자 허준이 됐다. 

MBC에서 2000년에 방영한 드라마 ‘허준’의 한 대목이다. 허준이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고공비행 중이던 2000년 3월의 마지막 날 서울 광진구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SK 와이번스 창단식이 열렸다. 다들 잘 아는 것처럼 SK 와이번스의 연고지는 서울이 아니라 인천이었지만 모기업 계열 호텔에서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장소가 서울이 됐다. 공식적으로는 ‘창단’이었지만 실질적으로 SK는 전북지역을 연고로 하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인수한 형태에 가까웠다.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는 모기업의 경영악화로 구단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SK 와이번스는 쌍방울에 선수단 몸값 명목으로 70억 원을 지급했다.

인천에서 야반도주한 현대

SK가 인천을 연고지로 삼은 건 원래 이 도시에 뿌리를 두고 있던 현대 유니콘스(이하 현대)가 ‘야반도주’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현대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공중 분해되면서 혼란스러운 틈을 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서울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서울에는 구장이 없으니 3~4시즌 간은 현대 유니콘스의 제2구장이 있던 수원에서 활동하며 그 사이 서울에 새 구장을 지어 보금자리를 옮기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원래 기업 발상지 수원을 연고로 삼으려 했던 SK가 ‘우리도 광역시를 연고지로 삼겠다’고 주장하며 무주공산이 된 인천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SK가 처음부터 인천이 좋아서 인천을 연고지로 선택한 건 아니었다. 

그럴 만도 했다. 1999년까지 프로야구 역사 18년 동안 인천 연고 팀은 평균 4.5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원년 팀 삼미 슈퍼스타즈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세 시즌 동안 꼴찌를 두 차례 경험한 뒤 네 번째 시즌을 끝마치지 못한 채 청보 핀토스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역시 꼴찌를 두 번 경험한 청보 역시 세 시즌도 못 돼 태평양 돌핀스(이하 태평양)로 이름을 바꿔야 했다. 



태평양은 앞선 두 팀과 달리 성적이 좋았다. 1989년 인천 팀으로는 처음으로 ‘가을 야구’행 티켓을 따내고 1994년에는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는 등 ‘영광의 시대’를 열었지만 현대의 물량공세에 무릎을 꿇었다. 1995년 태평양은 470억 원을 받고 현대에 야구단을 매각했다. 

이후 인천에 자리 잡은 현대는 1998년 인천에 첫 우승컵을 안겨줬다. 하지만 인천 입성 5년만인 2000년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겠다며 인천을 떠났다. SK는 이때 현대에 54억 원을 내고 연고지 인천을 사들였다. 그렇게 ‘삼청태현’(삼미, 청보, 태평양, 현대)가 인천 야구를 버리자 인천에 들어온 구단이 바로 SK였다. 

한편 상경하겠다며 팬들을 매몰차게 버린 현대의 말로는 좋지 못했다. 2000년 당시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며 서울로 연고지를 옮길 자본이 부족해졌다. 결국 현대는 제 2구장이 있던 수원을 연고지로 7시즌을 치르고 2007년 시즌이 끝난 이듬해인 2008년 해산한다.

까다로운 인천 팬 마음 사로잡았던 SK

인천을 연고지로 삼은 첫 프로야구 구단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엠블럼.  [동아DB]

인천을 연고지로 삼은 첫 프로야구 구단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엠블럼. [동아DB]

고향을 ‘구도(球都·야구 도시)’라고 부르는 자존심 강한 인천 팬들은 SK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프로야구 초창기 마산구장에는 유독 열정적인(?) 팬이 많았다. 그래서 생겨난 표현이 ‘마산아재’다. 인천 중구 도원동에 자리했던 숭의야구장을 찾는 팬들은 마산아재보다 더 열정적이었다. 요즘에도 야구 팬 커뮤니티에는 팬티 바람으로 야구장 안전 그물망을 타고 올라가는 ‘타잔 아저씨’ 사진이 올라오고는 한다. 그 사진을 찍은 곳이 바로 숭의야구장이었다. 이렇게 적극적인 응원 문화 때문에 이들은 ‘아재’도 아니고 ‘도원전사(戰士)’로 통했다. 

도원전사들은 쉽사리 SK에 마음을 쉽사리 열지 않았다. 창단 첫해 도원구장을 찾은 관중은 총 8만4563명(경기당 1281명)에 불과했다. SK는 계속 인천 야구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SK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천 SK’라는 표현을 강조한 것도 팬들의 마음을 얻기 위함이었다. 2002년 인천 미추홀구 문학동에 있는 문학구장으로 둥지를 옮긴 뒤에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를 합쳐 ‘스포테인먼트’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다양한 특별좌석을 만들었다. 특별좌석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잔디가 깔린 ‘T그린존’이다. 이곳에서 도원구장의 전사들은 가족과 함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야구를 관람했다. 야구팬들만 찾던 야구장을 가족 나들이 장소로 만든 셈이다. 

성적도 좋았다. SK는 20년 동안 열두 번 ‘가을 야구’에 진출했고, 그 중 8번은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우승 트로피도 네 번 들어 올렸다. 모기업에서 화끈하게 투자한 덕이었다. 박경완(49)·김재현(47) 같은 스타 선수를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영입했고, 김광현(33·세인트루이스), 최정(34)처럼 인천은 물론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도 길러냈다. 

SK는 인천 팬들의 자랑이자 자긍심이 됐다. SK는 2012년 관중 106만 9929명을 불러 모으면서 팀 100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2018년에도 또 한 번 100만 관중(103만 7211명)을 돌파했다. 유의태의 후계자는 유도지가 아니라 허준인 것처럼 인천 야구의 적자 역시 다른 팀이 아니라 SK였다.

신세계의 인천 입성, 프로야구 위기 아냐

그러나 2021년 3월 5일을 기점으로 인천 야구의 주인공은 SK가 아니라 SSG 랜더스가 됐다. 신세계그룹은 총 1352억8000만 원을 들여 SK 야구단을 인수했다. 신세계에서 야구단 주식 인수 절차를 마무리한 날 SK 선수단은 전지훈련장인 제주 서귀포 강창학야구장에서 ‘굿바이 와이번스’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었다. SK 선수들은 인천 팬들이 수천, 수만 번 불렀던 대표 응원가 ‘연안부두’를 목놓아 불렀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 떠나면 나도 운단다.” 

재계 3위 SK가 팀을 매각하면서 ‘프로야구 위기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1995년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한 금액이 470억 원이었는데 1352억8000만 원은 너무 싸다는 평가도 나왔다. 프로야구 해설위원들은 “한국 기업에서 프로야구에 대한 인식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한국처럼 모기업이 따로 있는 일본 프로야구를 보면 주인 회사가 바뀌는 걸로 위기를 논하기는 무리라는 걸 알 수 있다. 

요코하마(横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DeNA 베이스타스는 1992년까지 다이요(大洋) 웨일스라는 이름으로 통하던 팀이었다. 다이요는 포경(捕鯨) 그러니까 고래를 잡는 일이 주력 사업인 회사다. 전 세계적으로 포경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면서 팀 이름이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지분 80%를 다이요가 소유하던 상태였다. 이 지분은 2002년 TV 방송사인 ‘TBS 테레비’로 넘어 왔다가 2012년부터는 게임회사인 DeNA가 이 팀 모기업이 됐다. 

DeNA뿐만이 아니다. 일본 프로야구가 양대 리그 제도를 도입한 1950년 12개 팀 모기업을 업종별로 분석하면 △철도 5 △신문 3 △영화 2 △식품 1 △시민구단 1개의 형태였다. 1985년에는 철도와 식품 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팀이 각각 네 곳으로 제일 많았다. 현재는 △식품 3 △철도 2 △신문 2 △IT 3 △금융 1 △자동차 1개의 구조로 식품과 IT업계의 비중이 가장 높다. 

그러니까 당시 경제 상황과 산업 지형에 따라 프로야구 팀을 사고 파는 게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서류를 여전히 FAX로 받는 등 변화를 극도로 꺼리는 전통을 지키는 나라인 일본도 그렇다.

“유통업자가 야구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기대해 달라”

3월 9일 SSG 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연습경기가 열렸다. [동아DB]

3월 9일 SSG 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연습경기가 열렸다. [동아DB]

한국에서도 기왕이면 ‘야구적인 것’을 통해 조금 더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가 프로야구 팀을 운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 SK에서 야구단 운영을 책임지고 있던 SK텔레콤은 기업과 소비자 거래(B2C)에서 기업 간 거래(B2B) 쪽으로 사업 방향을 바꾸고 있다. 이에 비하면 신세계 주력 사업 분야인 유통업은 B2C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소비자와 가까운 만큼 야구단 운영의 시너지가 클 수 있다. SK가 모기업 사정이 어렵지 않은데도 야구단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오히려 프로야구팀이 비즈니스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음성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럽하우스’를 통해 야구팬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든 뒤 “삼성은 야구에 관심이 없지만 카카오는 많다. 야구팀 운영 주체가 변할 때가 됐다”고 강조한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은 대목이다. 정 부회장은 “인천 청라지구에 테마파크를 지을 예정이었는데 그 돈으로 돔 구장을 짓겠다”면서 “유통업자가 야구판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롯데 자이언츠의 팬은 “40년 동안 지켜봤는데 별 것 없더라”는 심드렁한 평을 내놓았다. 그렇다. 신세계가 ‘삼청태현’의 길을 걷게 될지 아니면 SK의 길을 걷게 될지는 오직 신세계의 행동에 따라 갈린다. 신세계의 인천상륙작전은 이제 시작이다.



신동아 2021년 4월호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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