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기’대해도 될까요? ‘세’번째 롯데 우승을!

[베이스볼 비키니] 잔루·실책 대명사 롯데, 6년 만의 환골탈태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23-06-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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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가 5월 6할 승률? 21세기 최초

    • 9연승 이상 기록, 가을 야구 보증수표

    • 이 ‘기세’로 ‘내려갈 팀’ 오명 벗나

    4월 30일 키움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러 온 롯데 팬들이 사직구장을 가득 메웠다. [롯데 자이언츠]

    4월 30일 키움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러 온 롯데 팬들이 사직구장을 가득 메웠다. [롯데 자이언츠]

    “주간지라면 롯데 이야기를 쓰는 게 맞는데 월간지라….”

    1931년 창간한 시사 월간지 ‘신동아’에서 ‘베이스볼 비키니’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동료가 이번 달 원고 주제를 묻기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롯데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DTD’(Down Team is Down·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세 글자를 염두에 둬야합니다.

    게다가 지난달 원고에 등장한 ‘4월 마지막 날 쓰고 있는 이 글’이라는 표현 때문에 한 온라인 독자로부터 “그런데 이제야 올리는 이유가 뭐냐? 네 부모님은 니가 이렇게 게으른 것 알고 있냐?”는 e메일을 받은 뒤라 고민이 더욱 컸습니다. 물론 저희 부모님도 원래 제가 게으른 걸 잘 알고 계셨지만 따로 산 지도 벌써 10년이라 제가 게으른 걸 잊으셨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부모님은 제가 월간지 원고를 쓰면서 약 3주 뒤에 벌어질 일까지 100% 예상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결국 롯데 이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역시 부모님 때문입니다. 최동원 선수(1958~2011) 어머니 김정자(89) 여사는 아들 생일(5월 24일)을 맞아 묘비 옆에 이런 편지를 남겼습니다. “동원아! 잘 지냈지? 엄마다. 세월은 너무 빨리 흘러가는구나. 벌써 66해나 됐네. 엄마는 너 때문에 행복했고, 잘 지내고 있단다. 금년에는 우리 롯데 선수들이 너무 잘해서 엄마는 기분이 참 좋아! 어디서든 롯데의 경기를 볼 때마다 ‘너’를 생각하게 되거든. 행복하게 잘 있어. 엄마가.”

    네, 맞습니다. 금년에는 롯데가 잘해도 너무 잘합니다. 롯데는 올해 5월을 27승 17패(승률 0.614)로 마감했습니다. 롯데가 5월 종료 시점에 승률 6할 이상을 기록한 건 ‘검은 갈매기’ 호세(58)가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1999년 이후 24년 만입니다. 그러니까 21세기 이후로는 올해가 ‘부산의 봄’이 가장 긴 해인 겁니다. 1999년 5월을 30승 3무 15패(승률 0.667)로 마감한 롯데는 결국 그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현재까지도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건 1999년이 마지막입니다.



    또 롯데는 올해 5월 3일 광주 방문 경기에서 KIA에 2-10으로 패할 때까지 9연승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연도와 팀을 구분해 따져보면 지난해까지 프로야구에서 9연승 이상을 기록한 건 총 50개 팀입니다. 이 가운데 2013년 KIA와 2019년 KT 두 팀을 빼놓고는 모두 ‘가을 야구’ 무대를 밟았습니다. 또 이 중 20개 팀은 한국시리즈 정상까지 차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이 세상에 나갈 때 롯데가 몇 연패에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2023년 시즌 개막 첫 두 달 동안 놀랄 만한 ‘기세를 떨쳤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5월 2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롯데가 9연승을 달성한 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동아DB]

    5월 2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롯데가 9연승을 달성한 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동아DB]

    우리 롯데가 달라졌어요

    부산 최고의 중국집은? 스스로를 ‘꼴빠’(꼴찌 롯데 팬)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잔루만루’라는 답이 바로 떠오르실 겁니다. 물론 부산에 실제로 이런 중국집이 있는 건 아닙니다. 롯데가 득점 기회를 잡고도 잔루만 차곡차곡 쌓여가는 걸 아쉬워한 팬들이 만든 ‘자학 개그’입니다. (참고로 호세의 전성 시절에는 롯데 안방 사직구장 옆에 실제로 ‘호세한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롯데가 5월까지 기록한 잔루는 323개가 전부입니다. 최소 잔루 1위 삼성(322개)과 딱 1개 차이입니다. 물론 잔루가 적다는 게 곧 집중력이 뛰어다나는 뜻은 아닙니다. 아예 출루율이 떨어지거나 병살타가 많은 팀도 잔루가 적습니다. 출루율 9위(0.315), 병살타 최다 1위(38개)를 기록 중인 삼성이 이 경우에 해당합니다. 반면 롯데는 출루율 4위(0.334), 병살타 공동 4위(32개)를 기록하고도 잔루가 적습니다.

    롯데는 대신 득점권 타율 2위(0.292)를 기록하는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주자를 열심히 불러들였습니다. 이 부문 1위인 LG(0.297)와 비교해도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네, 지금 우리는 다른 팀이 아니라 롯데 타자들이 찬스에 강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잔루만큼 롯데를 잘 표현하는 기록을 꼽으라면 많은 팬이 ‘실책’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실 겁니다. 롯데는 올해 5월까지 야수 실책(20개)도 역시 삼성(18개)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팀입니다. 네, 지금 우리는 다른 팀이 아니라 롯데 야수들이 수비를 잘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민규 단장 프로세스 = 석세스?

    롯데가 실책을 줄인 가장 큰 이유는 ‘뜬공 유도’가 늘어난 데 있습니다. 지난해 롯데는 뜬공 아웃 대비 땅볼 아웃 유도 비율(1.17)이 가장 높은 팀이었습니다. 올해는 이 숫자가 0.78로 줄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땅볼 아웃(1338개)을 뜬공 아웃(1140개)보다 17.4% 더 많이 유도했는데 올해는 뜬공 아웃(436개)을 유도한 게 땅볼 아웃(342개)보다 28.2% 더 많은 겁니다.

    야구에서 뜬공은 그냥 한 번만 잡으면 아웃입니다. 반면 땅볼은 포구 → 송구 → 포구에 모두 성공해야 아웃 카운트를 올릴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책을 저지를 확률도 그만큼 올라갑니다. 야수가 땅볼을 처리 할 때 얼마나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는지 롯데 팬보다 잘 아는 그룹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올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사직구장은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외야 담장 높이는 4.8m에서 6m로 높아졌다. [롯데 자이언츠]

    올해 시즌 개막을 앞두고 사직구장은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외야 담장 높이는 4.8m에서 6m로 높아졌다. [롯데 자이언츠]

    게다가 롯데는 지난 시즌 개막을 앞두고 △홈플레이트를 포수 뒤쪽으로 2.884m 옮겨 외야 담장까지 거리를 늘이고 △외야 담장 높이를 4.8에서 6m로 높이는 사직구장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구장이라면 홈런이 됐을 타구가 워닝 트랙에서 잡히거나 담장에 맞고 다시 그라운드로 들어오는 일이 늘어나게 됐습니다. 이런 구장을 안방으로 쓰는 팀 투수진 역시 뜬공을 많이 유도하는 편이 좋습니다. 땅볼이 담장까지 굴러갔다면, 그 타자 이름이 이대호(41·은퇴)가 아닌 이상, 장타라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롯데는 5월 22일 사직구장 내에 있는 구단 사무실에 1984년과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트로피 사이에 빈 전시함을 배치는데요. 이 전시함 아래에는 ‘넥스트 챔피언스(Next Champions)’라는 문구를 써두었습니다.

    호사가 사이에서는 28년째 숙성 중인 ‘LG 트윈스 우승주’처럼 롯데도 이 빈칸을 꽤 오래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압니까. 올해가 성민규(41) 롯데 단장의 ‘프로세스’가 ‘석세스’로 바뀌는 해가 될지. 그런 믿음마저 없으면 프로야구 출범 이후 2700패(역대 1위)나 당한 롯데를 응원하는 건 정신 건강에 너무 해로운 일이 될 테니 말입니다. (롯데가 10연승 도전에 실패한 그 경기가 통산 2700번째 패배 경기였습니다.)

    “롯데도 하는데 여러분이 왜 못 합니까”

    정신 건강 이야기를 꺼낸 건 박종석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때문입니다. 박 전문의는 2019년 7월 3일 ‘정신의학신문’에 ‘롯데 자이언츠 유발성 우울증’이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27년간 지켜본 롯데의 팀 컬러를 말씀드리자면 (중략) 작전 성공률, 특점권 타율이 최악이고 주자 있는 상황에서는 여지없이 팀 배팅이 아닌 병살타와 잔루가 쌓입니다. 어이없는 실책, 무사 만루에서 1점도 내지 못할 경우의 수가 이리도 많을 수 있구나. 특히나 최근 있었던 낫아웃 끝내기 패배는 ‘느그가 프로가’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라고 한탄했습니다.

    앞서 보신 것처럼 요즘 롯데는 반대입니다. 박 전문의는 요즘 롯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찾아봤습니다. 올해 5월 17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남겼더군요.

    “(롯데의) 방만하고 나태한 플레이, 7연패를 하고도 퇴근할 생각에 웃는 선수들. 분노와 절망, 목 디스크, 후두엽의 통증을 느끼며 리모컨을 집어던졌습니다. 그 팀이 2023년 5월 17일, 1등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 것 같아요.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평생 조연이고 엑스트라인데 살아봤자 뭐해요.’ 우울증에 걸리신 분들, 롯데도 그랬습니다. 패배가 당연했던 꼴찌 팀이 변하기까지 6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내일 당장 내가 달라지길 원해선 안 됩니다. 한 번의 진심 어린 스윙이, 포기하지 않는 수비 하나가 6년간 켜켜이 쌓여서 오늘을 만든 것입니다. 갑자기 자격증을 따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걸 목표로 삼지 마시고, 하루 10분 운동하기, 5분 일찍 일어나기.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달성하면서 ‘나’를 한 번만 더 믿어봅시다. 농사를 짓듯이, 당장이 아니라 내년, 후년을 바라보며, 무기력과 불안을 이겨내시고 하루에 0.1%씩만, 반 발자국씩만 앞으로 나아가세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롯데도 하는데 여러분이 왜 못 합니까.”

    맞습니다. 이제 롯데는 팬들에게 ‘활력’을 주는 팀이 됐습니다. 적어도 시즌 개막 첫 두 달 동안에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걸로 롯데는 이미 올해 해야 할 일은 다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이 세상에 나갈 때 롯데가 DTD를 시전하고 있을까 두려워 덧붙여 두는 문장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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