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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입사보다 어려운 바늘구멍 대학 학회 [사바나]

대부분 경쟁률 5:1↑, 사실상 ‘두 번째 입시’

  • 김나연 고려대 언어학과 4학년 nayuntoggi@naver.com

대기업 입사보다 어려운 바늘구멍 대학 학회 [사바나]

  • ● 진로 바뀔 경우 좋은 해결책
    ● 밤 새워 준비하는 경쟁의 장
    ● 방향성 잡힌 취업 준비 가능
    ● 현직자와의 네트워크가 강점
    ● 영어 면접에 마케팅 기획서까지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각 대학이 코로나19 와중에도 개강을 한 지난 3월 18일. 서울시내 한 대학교에 취업관련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각 대학이 코로나19 와중에도 개강을 한 지난 3월 18일. 서울시내 한 대학교에 취업관련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전에는 빅데이터학회에 지원했는데 경쟁률이 높아서 바로 떨어졌고, 이번에는 경영학회를 꼭 합격하고 싶었는데 경영학회 학회원이 되는 데에도 경쟁이 심해 또 떨어질까 무서웠어요. 되는 대로 다 넣고 한 곳만 붙은 친구도 있어요.”

대학생 정유진(22) 씨는 3학년이 되면서 여러 학회에 지원하는 것을 고려했다. 원래대로라면 이탈리아에서 교환학생으로 학기를 보내며 해외 경험을 쌓을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물거품이 됐다. 한국에 발이 묶이자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장 생각난 게 학회였다. 하지만 정씨는 “학회 경쟁률이 너무 높고 면접도 복잡해 지원과정에서부터 스트레스가 컸다”고 말했다. 3차 면접까지 보고 그룹 토론도 해야 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로나 학번’의 고육지책

신규 채용이 줄고, 채용 과정이 점점 까다로워지는데다가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면서 학회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한 번에 네다섯 군데를 지원하고, 하나라도 붙길 바라며 밤 새워 준비하는 경쟁의 장. 학회는 대학 내 또 다른 엘리트 코스다.

‘코로나 학번’으로 불리는 20학번 중앙대 학생 김하연(20) 씨는 지난 한 해 갑갑한 새내기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동기들과 제대로 된 술자리 한 번 가져보지 못하고, 강의 정보를 편하게 물어볼 친한 선배도 없다. 캠퍼스의 낭만을 향한 희망고문을 포기하고 2학년이 되면서 선택한 것은 학회였다.



“코로나 때문에 지난 한 해 아무것도 못했거든요. 학회라도 하면 어쨌든 하나의 스펙으로 작용하는 거니까 지원했어요.”

김씨는 대부분 학생이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법학 관련 학과에 재학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랜B’를 고려해 소셜벤처 경영학회에 지원했다. 대학생활 중 진로가 바뀔 경우를 고려하면 학회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회는 학년, 학번, 학과에 상관없이 대학생들이 미래를 대비할 때 고려하는 1순위 활동이다. 대부분 경쟁률이 5:1을 넘는다. 서울대는 ‘3대 경영학회’로 불리는 학회(MCSA, SMIC, FCRC)의 경쟁률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복수지원을 금지했다.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 고려대 법학회는 경쟁률이 약 7:1까지 올랐다. 웬만한 대학 입시 경쟁률에 맞먹는 수준이다.

‘두 번째 입시’로 불릴 정도의 학회 경쟁은 코로나19가 지속하자 더욱 치열해졌다. 고려대 마케팅학회 KUDOS의 인사부장 김세빈(23) 씨는 코로나19 전에 비해 경쟁률이 1.5배가량 높아졌다고 전했다.

‘빛나는 한 줄’

대학 학회원들은 수업 이외의 시간 대부분을 학회 일정을 소화하는 데 쓴다. 기자가 취재를 종합해 재구성한 학회원의 일과. [김나연 제공]

대학 학회원들은 수업 이외의 시간 대부분을 학회 일정을 소화하는 데 쓴다. 기자가 취재를 종합해 재구성한 학회원의 일과. [김나연 제공]

취업 불황 속에서 대학생들은 고등학생들이 생활기록부를 관리하듯 경력을 쌓는다. 이들에게 학회는 요긴한 스펙이다. 저학년의 경우,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만남과 스펙 쌓기를 모두 이룰 수 있는 방안으로 학회를 택한다. 고학년은 꽉 막힌 취업 시장에서 늦게나마 경력을 만들기 위해 학회에 지원한다. 학회 활동만으로 직무와 관련된 많은 스펙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회 활동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취업 준비 시 학회 경험만으로 자기소개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졸업생도 있다.

학회는 관련 분야에 대한 흥미와 전문성을 동시에 입증해 준다. 연세대 빅데이터학회에서 활동 중인 A씨는 진로가 정해지지 않아 고민하던 중, 관심 분야인 데이터 분야부터 공부해보자는 생각으로 학회에 가입했다. 그는 “각종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컨퍼런스를 참가하면서 전문성이 확실히 쌓여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학회 활동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인재로 성장한 것이다.

동아리와 아르바이트 경험, 영어 점수가 이력서에 적혀있어도 취업은 물론 인턴 합격조차 어렵다. 그러나 이력서에서 학회 활동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역량을 모두 보여줘 ‘빛나는 한 줄’이 된다.

방향성 잡힌 취업 준비가 가능하다는 점도 학회의 장점이다. 학회 신입 회원들은 정식 학회원이 되면서 탄탄한 커리큘럼 하에서 실무 관련 지식을 교육받는다. 자료를 PPT(파워포인트)로 가시화하는 연습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고려대 경영학술학회 신입회원들은 ‘건강브랜드 기업 제안서’와 같은 주제로 PPT를 만들고 피드백을 받는다. PPT에는 다양한 정보와 도식이 깔끔하게 표현돼 있어야 한다. 신입 회원끼리 팀을 이뤄 24시간 안에 ‘식품 스타트업 신규 브랜딩 론칭’과 같은 케이스를 해결해야 하는 훈련도 있다. 산업구조와 소비자 분석 방법, 효율적인 리서치 방법을 교육 받은 후 실제로 적용해 보는 연습이다. 이외에도 약 한 달 간 현직자와 함께하는 케이스 분석 세션이 진행된다.

업계 선배로부터 직접 피드백도 얻으니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학회에는 함께 공부하거나 다른 스펙을 준비할 파트너도 많다. A씨는 “언제든 원하는 주제로 스터디를 꾸려 공부하고, 나가고 싶은 공모전이 있으면 학회에서 팀원을 구하여 참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심 분야가 비슷하고 실력을 함께 쌓은 동료와 공모전에도 참여할 수 있으니 더 편하다.

사례분석에 영어 면접도

4월 22일 경기 성남의 한 대학교에서 학생이 취업 및 면접 준비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4월 22일 경기 성남의 한 대학교에서 학생이 취업 및 면접 준비 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가장 큰 장점은 현직자와의 네트워크다. 학회원들은 학회 출신 각 업계 현직자들을 통해 아예 공고가 나지 않는 자리를 소개받거나 후임으로 추천받기도 한다. 김세빈 씨는 “저번 학기에 수료한 선배 둘도 이전 선배님이 인턴으로 스카웃해 갔다”면서 “역대 학회원들이 다 모여있는 ‘톡방’이 있는데, 거기에만 올라오는 모집공고들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김씨가 소개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는 170명의 현직자, 인사담당자, 학회원들이 속해있었다. 또 이틀에 한 번꼴로 인턴 관련 정보가 게시됐다. 취업을 위해 별도로 공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네트워크를 통해 얻는 정보가 ‘폭탄급’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명성이 높은 학회는 선발 절차를 3단계까지 두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회 FES는 ‘1-1차 서류기반 면접, 1-2차 사례분석 면접, 2차 최종 면접’을 진행한다. 서울대 금융학회 FCRC는 서류단계에서 지원자에게 지원서 양식과 함께 재무·회계 관련 자료를 준다. 면접에서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질문을 하고 영어로 면접을 진행하기도 한다.

중앙대 소셜벤처 경영학회 지원서에는 지원 동기, 관련 경험과 더불어 ‘평소 본인이 관심 있는 사회 문제를 설명하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비즈니스 모델로 기획해보세요’라는 문항이 있다. 서류전형에 합격하면 지원서를 바탕으로 1차 면접이 진행된다. 학회에 대한 열정과 팀워크 능력 등을 평가받는다. 2차 면접을 진행하는 학회에서는 지원서에 제출했던 기획서에 대해 자료를 추가 제작해 발표해야 한다. ‘면도 크림의 2021년 상반기 마케팅 전략 기획서’와 같은 주제를 주고 양식에 맞춰 발표를 시키기도 한다.

2차 면접에 합격해도 마지막으로 임원진의 압박 면접까지 통과해야 학회원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곳도 있다. 학회가 학내에 소속된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채용 과정에 버금가는 선발 절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기존 학회원(학부생)이 신입을 선발하지만, 학회 출신 졸업생이나 업계 현직자가 최종 단계에서 면접관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 지식 습득 능력을 평가하고 학회원으로서의 소양을 파악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모집 설명회를 진행하는 학회도 있는데, 고려대 경영전략학회 MCC에서 지난 학기 제작한 학회 소개 영상의 조회수는 1000회를 넘었다. 학회에 얼마나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프로젝트 위해 15시간 팀 회의까지

학회원으로 선발된 후에도 치열한 삶은 계속된다. 학회마다 차이는 있지만, 학교생활과 학회 생활을 병행하려면 밤샘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김세빈 씨는 빙그레와의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15시간 넘도록 팀 회의를 했다. 녹화강의를 틀어놓고 발표를 준비한 적도 허다하다. 세션 준비, 자료 조사 및 제작, 여러 차례에 걸친 회의, 피드백, 중간발표에 최종발표까지 하며 학교 수업을 신경 쓰기는 힘든 일이다.

학회는 들어가는 것도, 들어가서도 힘든 곳이지만 그만큼 이득이 커서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한 건설업체 인사담당자 B씨는 “고작 학점이나 자격증만으로는 지원자의 업무 태도, 실무능력, 전문성을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인사팀에서) 수백, 수천 명의 지원자를 가려내기 가장 편한 방법이 학회인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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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2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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