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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 불문율이 필요한 이유[베이스볼 비키니]

보복성 빈볼이 무죄? 메이저리그 불문율 논란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야구에 불문율이 필요한 이유[베이스볼 비키니]

  • ● 메이저리그에서 불거진 야구계 불문율 논란
    ● 야구 경기선 사소한 예외도 성문화된 ‘룰’ 따르지만…
    ● 벤치 클리어링 등 경기 중 다툼엔 처벌 규정 없어
    ● 불문율은 선수 감정을 다루는 또 하나의 규칙
토니 라루사(77)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 [뉴시스]

토니 라루사(77)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 [뉴시스]

보통 홈런이 나왔을 때 비판을 받는 쪽은 투수입니다. 그런데 이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명장’ 토니 라루사(77) 시카고 화이트삭스 감독은 타자를 비판했습니다. 그것도 상대 팀이 아니라 같은 팀 타자였습니다.

라루사 감독의 비판의 화살을 맞은 선수는 메이저리그 2년차 포수 예르민 메르세데스(28)였습니다. 메르세데스는 지명타자로 출전한 5월 18일 미네소타 방문 경기 때 팀이 15-4로 앞서고 있던 9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1점 홈런을 때렸습니다.

불문율 과거의 악습일 뿐?

라루사 감독이 문제 삼은 건 △이미 팀이 11점차로 앞서고 있는 상황인데다 △상대 팀 미네소타 트윈스 마운드는 주전 투수가 아니라 포수 겸 내야수인 윌리안스 아스투디요(30)가 지키고 있었고 △볼카운트도 3볼 0스트라이크(3-0)였기 때문입니다. 메이저리그에는 ‘이미 승패가 결정된 경기에서는 더는 홈런을 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라루사 감독은 ‘메르세데스가 이 불문율을 위반했다’며 비판한 것이죠.

메이저리거라면 ‘반드시 보복하라’는 불문율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오른손 투수 타일러 더피(31)는 2-4로 뒤진 이튿날 경기 7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메르세데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허벅지를 향해 시속 93마일(약 150km)짜리 속구를 던졌습니다. 메르세데스는 이 공을 피했지만 심판진은 즉각 더피에게 퇴장 판정을 내렸습니다. 의도적인 ‘빈볼(타자 몸에 맞추는 공)’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라루사 감독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상대 팀 선택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화이트삭스 선수들이 등을 돌렸습니다. 투수 랜스 린(34)은 “이제 불문율은 사라지는 추세”라면서 같은 팀 감독을 깎아내렸습니다. 이어 2013년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인 유격수 팀 앤더슨(28)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메르세데스에게 “보지도 듣지도 말고 (하던 대로) 계속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이에 메르세데스는 “알겠다, 형제여”라고 답했습니다.



현역 선수만 등을 돌린 게 아닙니다.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고 통산 448홈런을 날린 프랭크 토머스(53) 역시 라루사 감독의 처사에 대해 “참으로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평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251승을 거뒀고, 자기 팀 선수가 빈볼을 맞았을 때는 제일 먼저 응징에 앞장섰던, 왼손 투수 CC 서배시아(41·은퇴)는 자신이 진행하는 야구 팟캐스트 ‘R2C2’에서 “그 인간은 XX 감독 자격이 없다”며 아예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니까 ‘불문율을 따라야 한다’는 불문율이 메이저리그에서 갈수록 힘을 잃고 있는 겁니다.

야구는 성문법의 게임

추신수(39) SSG 랜더스 선수가 5월 2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LG트윈스와의 경기에서 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왼쪽). 장승현(27) 두산 베어스 선수가 6월 2일 창원NC파크에서 벌어진 NC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파울성 타구를 받다 두산 더그아웃으로 미끄러져 넘어지는 모습. [뉴시스]

추신수(39) SSG 랜더스 선수가 5월 2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LG트윈스와의 경기에서 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다(왼쪽). 장승현(27) 두산 베어스 선수가 6월 2일 창원NC파크에서 벌어진 NC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파울성 타구를 받다 두산 더그아웃으로 미끄러져 넘어지는 모습. [뉴시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도대체 몇 점이나 차이가 나야 점수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차라리 그냥 야구 규칙에 ‘몇 점 이상일 때는 아래 행위는 금지’라고 명시해 놓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대신 점수 차이가 그보다 적을 때는 마음대로 플레이하도록 하는 편이 ‘성문법의 게임’인 야구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사실 야구 규칙에는 ‘이런 내용까지 다 있어?’ 하는 내용이 적지 않게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구공이 새에 맞았을 때 심판이 어떤 판정을 내려야 하는지도 규칙에 나와 있습니다. 만약 홈런성 타구가 날아가는 새에 맞았다면 홈런입니다. ‘한국야구위원회 공식야구규칙’ (이하 야구 규칙) 5.06(4)(A)[주1]에 “페어의 타구가 공중에 뜬 상태로 확실히 펜스를 넘어갔을 것으로 심판원이 판단하셨을 때는 관중이나 새 등에 닿았을 때도 본루가 주어진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조항은 “투구가 새에게 맞았을 경우에는 볼 데드로 하고 카운트 하지 않는다”로 이어집니다.

이런 이유로 공식 기록이 상식과 어긋날 때도 있습니다.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가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맞붙은 5월 21일 프로야구 경기가 그랬습니다. ‘추추 트레인’ 추신수(39)가 ‘산책 주루’로 끝내기 득점을 올리며 SSG가 승리한 그 경기 말입니다. 이 경기 마지막 플레이 공식 기록은 LG의 유격수 손호영(27)의 포구 실책이었습니다. 포구 실책은 야수가 공을 떨어뜨린 상황에서 기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손호영은 글러브 안에 얌전하게 공을 쥔 채로 포구 실책을 남겼습니다.

이는 야구 규칙 9.12(a)(1)(C)[주]에 “야수가 주자에게 태그하면 충분히 아웃시킬 수 있었으나 태그하지 못하여 주자를 살려주었을 때도 그 야수에게 실책을 기록한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기록원은 추신수가 3루에서 홈으로 ‘걸어갈 때’ LG 선수 누군가가 태그 등을 시도했다면 충분히 아웃시킬 수 있던 상황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리고 LG에서 마지막으로 공을 받은 선수가 손호영이기 때문에 손호영에게 포구 실책을 기록했습니다.

야구에 벤치 클리어링 처벌 규칙이 없는 까닭

4월 16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클리블랜드의 메이저리그 경기 1회말 도중 양 팀 선수단이 그라운드 위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4월 16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개런티드 레이트 필드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클리블랜드의 메이저리그 경기 1회말 도중 양 팀 선수단이 그라운드 위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이런 꼼꼼한 규정 때문에 ‘포수 희생 플라이’라는 기록이 나오기도 합니다. NC 다이노스 박석민(36)은 6월 2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4회말 무사 1, 3루 상황에서 1루 쪽 파울 지역에 높이 뜨는 파울 타구를 날렸습니다. 이때 점수는 1-1. 두산 포수 장승현(27)이 쫓아가 이 공을 잡았습니다. 이러면 기록은 보통은 ‘포수 파울 플라이’로 끝입니다.

그런데 장승현이 공을 잡는 과정에서 미끄러지면서 더그아웃 안쪽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야구 규칙 5.06(b)(3)(C)에 따라 “야수가 플라이 볼을 잡은 뒤 벤치 또는 스탠드 안으로 볼데드 지역을 밟거나 넘어져 완전히 들어가게 된 경우”에는 타자를 제외한 각 주자는 아웃될 염려 없이 한 베이스를 진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루에 있던 NC 양의지(34)가 안전하게 홈을 밟으면서 희생플라이로 기록이 바뀌었습니다.

포수 희생플라이는 이날 전까지 프로야구에서 투수와 타자가 156만881번 맞대결을 벌이는 동안 딱 두 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입니다. 이렇게 발생 확률이 제로(0)에 수렴하는 플레이도 규칙만 잘 따르면 정리와 기록이 가능한 종목이 야구입니다. 이렇게 보면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요? 그 각종 불문율을 전부 다 규칙에 넣어두고 지키라고 하면 안 되는 걸까요?

물론 다른 종목 규칙에는 나와 있지만 야구 기록에는 빠진 조항도 있습니다. 벤치 클리어링(경기 도중 선수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을 때 양 팀 선수들이 전부 벤치를 비우고 경기장으로 뛰어나가는 행동) 처벌 조항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벤치 클리어링이 자주 일어나기로 유명한 북미프로아이스하키리그(NHL)는 벤치 클리어링 발생 시 제일 먼저 링크로 뛰어나간 선수와 그다음 선수에 대한 처벌 내용을 공식 규칙에 못 박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벤치 또는 페널티박스를 떠난 선수는 10경기 출장 정지와 그 기간에 해당하는 연봉을 받을 수 없고, 두 번째 선수는 5경기 기준으로 동일한 방식의 징계를 받습니다.

반면 야구 규칙에는 고의 빈볼 의심 사례에 대한 처벌 조항만 있습니다. 이는 야구가 아이스하키를 비롯한 여타 스포츠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스포츠는 공격과 수비 팀 양측 같은 인원이 경기장에 나와 있습니다. 반면 야구에서는 수비 팀은 늘 9명(투수, 포수, 유격수, 내야수 3명, 외야수 3명)이 경기장에 나와 있지만 공격 팀은 7명(주자 3명, 베이스 코치 2명, 타자, 대기 타자)이 최대치입니다.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선수까지 전부 나서 싸움을 벌이는 편이 수가 맞는 ‘공정한 싸움’을 벌일 수 있습니다.

벤치 클리어링을 처벌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야구계 불문율입니다.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공격 팀을 위한 작은 배려(?)인 셈이죠. 다툼이 벌어졌는데 같은 편이 부족하다면 그만큼 서운할 수 있으니까요. 이처럼 야구의 경기 규정이 경기장 안에서 벌어진 사실을 다룬다면, 불문율은 선수의 감정을 다룹니다.

부상 위험 줄이려면, ‘양심’이라는 불문율에 기대야

게다가 야구는 아주 위험한 구기 종목입니다.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비교적 단단한 공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타석에 있을 때는 시속 150km가 넘는 공이 언제 머리를 향해 날아올지 모르고, 수비할 때도 상대 주자 슬라이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면 무릎이 문자 그대로 ‘아작’ 나기도 합니다. 타구나 송구된 공에 맞아 부상하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선수들도 당연히 무섭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기자 레너드 코페트(1923~2003)는 야구 입문서 ‘야구란 무엇인가(The Thinking Fan’s Guide To Baseball)’를 펴내면서 ‘두려움(fear)’이라는 딱 한 낱말로 첫 문장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겁니다.
야구는 또 공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나는 가장 인문학적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 그래서 정답이 없습니다. 그게 바로 성문법의 게임인 야구에 “너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는 불문율이 남아 있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정답이 없기에 불문율을 향한 논란도 사라지지 않을 테고, 그렇게 야구는 계속 가장 인문학적 스포츠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될 겁니다.

#불문율 #MLB #KBO #산책주루 #화이트삭스



신동아 2021년 7월호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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