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르포] ‘부산型 산학협력 모델’ 구축 현장을 가다

박형준 시장 “실질적인 지·산·학(地産學) 협력, 동시다발 추진”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1-12-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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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목소리 듣는 여섯 번째 오픈 캠퍼스 미팅

    • 박형준 “市는 産學 코디네이터…‘티핑포인트’ 마련”

    • 토론회 나선 학생들 “인재들의 脫부산 어떻게?”

    • 朴 “‘디지털 인재’ 일할 공간 마련, 신산업 창업 지원”

    • “권위적 기업문화도 문제” 지적에 “챙겨보겠다”

    • 23개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청년층 유출로 고민

    • 市 조례 제정…인재육성·R&D·대학혁신 ‘세 마리 토끼’

    • ‘박형준표 지산학 협력’ 부산 영광 재현할까

    2021년 12월 8일 부산 사하구 동아대 승학캠퍼스에서 열린 ‘오픈 캠퍼스 미팅’ 행사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문영훈 기자]

    2021년 12월 8일 부산 사하구 동아대 승학캠퍼스에서 열린 ‘오픈 캠퍼스 미팅’ 행사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이 발언하고 있다. [문영훈 기자]

    “부산시가 산학(産學)협력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아 기존의 형식적인 산학협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부산 발전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급변점)’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12월 8일 오후 부산 동아대 승학캠퍼스 본관 대강당에서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박 시장에 이어 김성재 동아대 산학협력단장은 인사말에서 “동아대는 중앙정부 지원에 의존하던 산학연이 아니라 실질적인 ‘부산형 지산학 모델’을 구축하려고 한다”며 “바이오메디컬학과가 수소·AI 등 신기술 분야 연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지식 기반 생태계를 구축해 서부산 지역 청년들의 스타트업 육성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부산시가 동아대에서 ‘오픈 캠퍼스 미팅’ 행사를 개최한 날. 행사는 부산시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지·산·학(地産學) 협력 체계’ 구축을 위해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자리였다. 이 대학 사회학과 교수 출신인 박 시장은 행사장에 참석한 학생들과 일일이 ‘주먹 인사’를 하며 애정을 보였고, “동아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시장직을 수행할 밑거름을 닦았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박 시장은 2021년 6월 동의과학대를 시작으로 부산 소재 10여 개 대학을 돌며 대학 및 기업체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듣고 있는데, 이날 동아대는 여섯 번째 방문 자리였다.

    오픈 캠퍼스 미팅 현장에는 박 시장과 이해우 동아대 총장, 첨단 바이오 의약품 개발 기업·AI(인공지능) 및 빅데이터 기업 등 신(新)산업 기업 대표들과 학생 등 50여 명이 참가해 대학과 기업 간 실질적인 토론회가 펼쳐졌다.

    미래 新산업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박 시장은 “사회를 잘 보는 사회학과 출신 전직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교수 재직 시절 체감한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며 토론 분위기를 이끌었다. 토론은 형식적으로 ‘질의 및 건의 사항’을 말하는 자리가 아니라 학생과 기업 대표들이 발언하면 박 시장이 부산시가 지원할 분야와 아이디어를 역제안하는 등 심도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주제는 수소경제·바이오메디컬·AI 등 미래 신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특히 신산업 관련 학과를 다니는 학생들은 부산시 차원의 산업육성 계획에 관심이 컸다. 동아대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에 다니는 강효림 씨가 “부산시의 구체적인 수소 산업 육성 계획이 무엇이냐”고 묻자 박 시장은 “앞으로 수소경제 주도권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수소경제에서 중요한 저장·운송 산업과 관련해 투자를 유치하고 이에 맞는 인력 개발을 지원해 중소기업들이 수소 분야로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답했다. 양기은(동아대 건강과학과 박사과정) 씨는 “부산 지역의 바이오메디컬 분야 발전 계획”에 대해 묻자 박 시장은 “동아대를 비롯해 의과대학을 운영하는 대학이 부산에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해결되면 의료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도록 대학과 부산시가 함께 노력하자”고 답했다.

    동아대 오픈 캠퍼스 미팅에서는 부산 지역 일자리 문제도 중요한 토론 주제였다. 전영수(동아대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 씨는 “학교를 졸업한 선·후배들을 보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학생이 많은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묻자 박 시장은 “AI나 클라우드서비스 등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춘 산업육성을 위해서는 다양한 층위의 인재가 필요하다”며 “대학에서 관련 인재를 육성하는 것과 더불어 소프트웨어나 블록체인 기업 등을 유치해 부산이 배출한 디지털 인재가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부산시가 지역 내 디지털 혁신을 주도해 학생들이 미래 신산업과 관련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위적인 기업문화도 문제”…“챙겨보겠다”

    전씨 말대로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지역의 인구 유출 문제는 부산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2021년 5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부산 순유출 인구 4701명 중 수도권으로 이동한 이들은 2279명(48%)였다. 특히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청년층의 이탈세가 두드러졌다. 순유출 인구 중 20대가 1146명(24%)으로 전체 연령 중 가장 많았다.

    학생들이 실제 겪은 사례를 통해 부산의 현실을 고발(?)해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다음은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석사과정인 박준훈 씨와 박 시장과의 대화 내용 일부다.

    - 박준훈 :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 마냥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서, 급여 수준이 높아서 서울에 일자리를 구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기업문화와 직장 내 갑질 문화도 ‘탈(脫)부산’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 박 시장 : “좋은 문제의식이다. ‘문화적 수혜’를 보고자 부산을 떠나는 학생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기업문화가 나빠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창의성과 도전이 요구되는 현실에서 수직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본다. ‘직장 내 갑질’ 등 문제가 있다면 시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챙겨보고 반드시 개선책을 찾아 해결하겠다. 앞으로도 그런 사례가 있다면 꼭 연락해 달라.”

    이날 행사에 앞서 박 시장과 이 총장은 고기능성밸브기술지원센터(지원센터)가 있는 동아대 산학관을 방문했다. 지원센터는 동남권에서 유일한 미국선급협회(ABS) 승인 시험기관이다. 이곳에서는 밸브가 초고온(1000°C)이나 초저온(-196°C) 상황에서 가스가 누설되는지 테스트하는 실험이 이뤄졌다.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이 총장이 함께 참여해 지원센터의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초고압가스 기자재는 수소 운송과 저장에 필요한 핵심 부품으로, 서부산 지역에 200~300개의 밸브 생산업체가 있고, 부산시가 10년간 2조4000억 원을 투자해 이 분야를 집중 육성할 계획이어서 ‘부산형 지산학 모델’의 하나로 관심이 크다.

    2021년 12월 8일 부산 사하구 동아대 고기능성밸브기술지원센터에서 박형준 부산시장(가운데)과 이해우 동아대 총장(오른쪽)이 밸브 누설 시험 시연을 보고 있다.  2021년 10월 12일 부산 사상구 신라대 항공대학 격납고에서 열린 ‘오픈 캠퍼스 미팅’ 행사. [부산시 제공]

    2021년 12월 8일 부산 사하구 동아대 고기능성밸브기술지원센터에서 박형준 부산시장(가운데)과 이해우 동아대 총장(오른쪽)이 밸브 누설 시험 시연을 보고 있다. 2021년 10월 12일 부산 사상구 신라대 항공대학 격납고에서 열린 ‘오픈 캠퍼스 미팅’ 행사. [부산시 제공]

    오픈 캠퍼스 미팅을 하는 이유

    이 총장은 “밸브를 검사하는 데 한 건당 200만~300만 원의 수수료를 받아 2020년 1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며 “한 건에 1억 원을 호가하는 수소 밸브 시험센터가 생기면 대학의 재정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저렴한 가격에 검사 서비스를 제공해 서부산 지역 산업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작업이 위험하지는 않으냐”라며 안전문제를 물었고, 이 총장은 “안전에는 문제가 없지만 과거 식당으로 사용하던 공간을 개조해 지원센터를 운영하다 보니 시설이 낙후된 편”이라고 말한 뒤 산학관 옆 ‘L2M 플랫폼(Lap to Market Platform)’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동아대가 스마트특성화 기반구축사업과 연계한 시험·연구가 이뤄질 건물(약 4298㎡)로, 2023년 3월 완공 예정이다.

    동아대뿐 아니라 부산에서는 대학마다 특화된 산학협력 프로젝트도 이미 가동 중이다. 이는 각 대학 오픈캠퍼스 미팅에서도 잘 드러났다. 한국해양대에서는 스마트 해운항만물류와 친환경 선박에 대한 토론이, 스마트팜 농업과가 있는 부산경상대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도시농업 분야 발전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다. 그 외에도 AI(동의과학대), 창업(부경대), 반려동물(신라대) 등 다양한 주제로 오픈 캠퍼스 미팅이 열려 대학과 지역 특색에 맞는 산학협력을 모색했다.

    이순정 부산시 청년산학창업국 지산학협력과 과장은 “부산에서는 이미 각 대학 특성화 비전에 맞는 지산학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사립대학에 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관련 산업 육성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12월 27일 열리는 동의대 오픈 캠퍼스 미팅도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2021년 6월 4일 부산 부산진구 동의과학대에서 처음 열린 ‘오픈 캠퍼스 미팅’ 행사에서 한 학생이 미래형 강의실 ‘AI Cafe’를 체험해 보고 있다. [부산시 제공]

    2021년 6월 4일 부산 부산진구 동의과학대에서 처음 열린 ‘오픈 캠퍼스 미팅’ 행사에서 한 학생이 미래형 강의실 ‘AI Cafe’를 체험해 보고 있다. [부산시 제공]

    대학의 위기, 인재 유출 위기, 부산의 위기

    부산시가 이처럼 산학협력에 집중하고 ‘부산형 지산학 모델’을 구축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뿐 아니라 출생률 저하로 학령인구가 줄면서 대학마다 근심도 깊다. 2021년 12월 5일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가 발표한 ‘인구변동과 미래 전망: 지방대학 분야’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385여 곳인 전국의 대학 수는 2042~2046년 190개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서울 소재 81.5% 대학(54개 중 44개)은 살아남지만 부산 지역 대학은 30.4%(23곳 중 7곳)만 살아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대학과 산업 현장 협력이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이다.

    하지만 그동안 지역의 산학협력은 기존 중앙정부 주도로 이뤄져 중장기적인 산업생태계를 조성하기보다는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 의존하거나, 대학 중심 연구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기업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부산 역시 국가와 지방정부, 대학, 기업이 각기 움직이다 보니 지역의 우수 인재는 유망 기업을 찾아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부산시의 판단이다.

    이순정 지산학협력과장은 “시와 기업, 대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혁신주체들이 스스로 협력하는 지산학 협력 생태계 조성을 위해 2022년에는 ‘인재 육성, 연구개발(R&D), 대학 혁신 유도’라는 세 가지 전략으로 지산학 협력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며 “지산학 협력 촉진 조례를 제정하고, 지산학협력협의회를 운영하면서 기업과 대학,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모델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산학 협력에 참여할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오픈 캠퍼스 미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형준 “실질적인 지산학 협력, 동시다발 추진”

    이에 따라 부산시는 대학이 연구개발과 교육 혁신을 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재원을 지원하면서 기업에는 정책자금을 제공하고, 일자리 매칭을 돕고 있다. 대학과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공동 연구와 기업 현장실습 등을 통해 지자체와 산업, 대학이 상생할 수 있는 산학 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게 한다는 게 부산시의 복안이다.

    대표적인 사업이 연 3000명의 인력을 양성하는 ‘부산 디지털 혁신아카데미’ 운영. 동서대·동의대·부경대·부산대 등 지역 대학들이 참여해 ‘ICT 오픈캠퍼스’를 개설해 비전공자도 4차 산업혁명에 맞춰 디지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이와 함께 채용연계형 인재육성 모델을 개발·운영하고, 현장실습 연계를 강화해 학생들이 배운 지식을 실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학과 기업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 R&D 사업에는 2022년 3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다. 20개 안팎의 과학기술 전 분야 연구기획과제를 선정해 지역 연구자들의 연구를 촉진하고 부산 지역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기업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 과제다.

    박 시장은 “청년들이 부산에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기업은 우수 인재들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의 기술을 개발하고, 대학은 연구개발에 나서며 발전을 추구하는 실질적인 지산학 모델을 만들기 위해 여러 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지산학 협력뿐 아니라 문화관광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부산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정책도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이해우 동아대 총장은 “2020년 8월 취임 이후 산학협력의 중요성을 학교 구성원들에게 강조하면서 20여 곳의 기업체를 방문해 현장 목소리를 듣고 있다”며 “지산학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부산형 지산학 모델’이 과거 산업도시 부산의 영광을 재현하고 인구 유출을 막는 ‘비책’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부산시 #지산학 #오픈캠퍼스미팅 #박형준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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