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수법 재현은 국민 두려움만 자극
코로나19가 친밀한 관계 사이 범죄에 영향
잇따른 부실 대응, 경찰 채용·조직 개편으로 해결
‘先교육 後채용’…첨탑형 조직 부채꼴로 바꿔야
민·형사상 책임 부담으로 물리력 사용 어렵다
모두 경찰일 뿐…‘여경’ ‘남경’은 없어져야 할 용어
본래 취지 벗어난 자치경찰제, 인력 낭비
2021년 12월 3일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경찰 직무 능력은 책으로 학습해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며 “채용 제도를 ‘선(先)교육 후(後)채용’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호영 기자]
김창룡 경찰청장 신년사 중의 한 대목이다. 김 청장 말처럼, 2021년은 경찰이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해였다. 오랜 진통 끝에 합의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따라 경찰은 2021년 새해 첫날부터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다. ‘생활밀착형 치안’을 표방한 자치경찰제는 7월 1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2021년은 경찰이 탈바꿈한 해로 기록되지는 않을 거 같다.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의 부실 대응 문제가 터졌다. 김 청장은 1월에는 ‘정인이 사건’으로, 11월에는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으로 국민에게 두 번 고개를 숙였다. ‘데이트 살인’ ‘존속살해’ 등 잔혹한 범죄도 줄을 이었고, 국민은 불안에 떨었다.
‘신동아’가 이윤호(66)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석좌교수를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미국 미시간주립대 형사사법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범죄학 박사로는 그가 국내 최초다. 이후 경기대 교정학과,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국가경찰위원회 위원을 맡아 경찰 관련 실무에도 훤하다. 이 교수는 “경찰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지탄받는 것은 마땅하다”고 했다. 아래는 2021년 12월 3일 그의 연구실에서 이뤄진 일문일답이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경찰해야”
- 갈수록 범죄가 잔악해지는 거 같다. 실제 현상인가 편견인가.“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우선 언론의 보도 방식을 지적하고 싶다. 잔혹한 사건·사고 보도 비중이 너무 높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재연배우를 써서 수법을 재현하기도 한다. 범죄 발생률로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세계적으로 치안이 좋은 나라로 꼽힌다. 그런데 시민들이 느끼는 범죄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을 조사하면 세계 평균 이상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잘못된 보도는 국민의 막연한 두려움에 영향을 준다. 범죄를 모방하거나 학습하는 이들도 생길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10만 명당 살인 비율은 0.6으로 미국(5.0), 프랑스(1.2), 독일(0.9)보다 낮다. 이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된 범죄는 주로 친밀한 관계 사이에서 벌어졌다”면서 “이러한 범죄 양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가 멀 때 범죄 발생 요건이 성립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 범죄다. 코로나19는 서로 간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면서 사회경제적 상황을 어렵게 만들어 두 사람 간의 갈등 요인을 키운다.”
최근 경찰 대응 논란이 크게 불거진 계기는 2021년 11월 15일 인천 남동구에서 층간 소음으로 빚어진 흉기 난동 사건이다. 출동한 경찰관 두 명이 흉기 난동이 벌어지는 현장을 벗어났다. 나흘 뒤인 11월 19일에는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는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으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30대 여성이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됐다.
2021년 11월 25일 김창룡 경찰청장이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관할 경찰서인 인천 남동구 논현경찰서에서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 김 청장은 이날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경찰의 현장 조치가 미흡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뉴스1]
“나는 경찰 채용 방식을 줄곧 문제 삼아왔다. 현재 객관식 문항의 시험점수가 합격 당락을 결정한다. 경찰은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은 뽑아놓고 경찰을 훈련하는데 이를 ‘선(先)교육 후(後)채용’ 제도로 바꿔야 한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미국은 폴리스아카데미 교육을 이수한 사람만 경찰에 지원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경찰 직무에 부적격한 사람을 골라낼 수 있다. 교육에 지원한 이들도 훈련 과정에서 자신이 경찰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 다른 직업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부실한 교육과 부족한 현장 경험이 부실 대응을 야기했다고 본다. 언론에서는 사건이 터지면 대응 매뉴얼을 이야기하는데, 경찰 직무 능력은 책으로 학습해서 길러지는 게 아니다. 동일한 종류의 사건이라고 해도 매번 상황이 달라져 표준 지침을 만들기 어렵다. 경험을 통해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
장비 있어도 못 쓰는 현실
2021년 12월 7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경찰서에서 경찰 물리력 대응 강화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경찰청 제공]
- 훈련만이 능사인가.
“훈련은 많을수록 좋다. 모든 걸 실제 현장에서 경험할 수 없으니 간접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다만 경찰이 현장에서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도 살펴봐야 한다.”
- 또 다른 이유는 뭔가.
“후사(後事)가 두렵기 때문이다. 까딱 잘못하면 조사와 징계를 받고 민·형사상 책임도 져야 한다. 총을 사용해 범인을 검거한다고 해서 승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왜 총기를 사용했나’라는 질문에 직면해야 하는 걸 더 무서워하는 현실이다.”
- 범인을 잡기 위한 정당한 이유라면 떳떳하지 않을까.
“애당초 조사를 받는 일 자체가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 부담을 지지 않으려 한다. 또 타인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일은 경찰 개인 처지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비교적 총기 사용이 자유로운 미국에서도 경찰이 현장에서 총기를 사용하면 휴가를 주고 심리 상담도 해준다. 어느 누가 원해서 다른 사람 신체에 위해를 가하고 싶겠나.”
경찰의 부실 대응 문제가 입방아에 오른 뒤 일선 경찰관 사이에서도 이 같은 불만이 터져 나왔다. 2021년 11월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을 20년째 일선 경찰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소개한 A씨는 “테이저건과 권총은 현장 경찰관이 사용할 수 없는 장구”라며 “범죄자가 잘나가는 변호사를 선임해 물리력 사용 요건을 충족했는지를 물고 늘어진다”고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2021년 11월 29일 경찰관 직무집행법(직무집행법) 개정안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경찰관이 긴박한 상황에서 범죄를 예방·진압하다가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직무 수행이 불가피하고, 경찰관의 고의나 중과실이 없을 시 형사 책임을 감경·면책해 주는 게 주요 내용이다.
- 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두고 공권력 남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법은 문제가 생겼을 때 경찰을 보호해 주기 위함이다. 오·남용 우려는 이해하지만 결국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법원이다. 무조건 감경·면책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법 통과로 앞으로 나아질 상황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여경’ ‘남경’ 단어 사용 자체가 문제”
이 교수는 그러면서도 “경찰 내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요새 경찰이 아동학대 사건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경찰이 약취 유인이나 주거침입으로 고발당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당한 법 집행 과정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를 조직이 책임져 주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젠더 갈등이 가시화되면서 여성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마다 ‘여경 무용론’이 나왔다.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에서도 현장을 이탈한 경찰이 6개월차 시보(試補) 경찰관 신분의 여성으로 밝혀지며 논란이 됐다. 하지만 함께 출동한 19년차 남성 경찰 역시 현장을 벗어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 성별 논란은 어떻게 보나.
“경찰이면 경찰이지 ‘여경’ ‘남경’이라는 단어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될 용어다. 경찰 조직 내 여성 인력 증가는 거역할 수 없는 추세다. 2023년부터 경찰대 학생과 간부 후보생을 뽑을 때 동등한 신체검사 기준을 둔다고 한다. 신체적인 차이는 좁혀나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만 ‘여경 논란’에 경찰 스스로가 일조한 게 아닌가 생각도 한다.”
- 경찰 내부에서 여성 경찰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여성 경찰 채용에 불만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여성 경찰이 파트너가 됐을 때 이들의 신변 보호를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성 경찰이 적지 않다. 애초 성장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학창 시절부터 여성은 여성스럽게, 남성은 남성스럽게를 강요받지 않나. 장기적 관점에서는 달라질 것이라 본다. 경찰 대응 문제와 관련해서는 경찰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더 크다”
이 교수는 2008년 8월부터 2011년 6월까지 행정안전부 소속 국가경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국가경찰위원회는 주요 치안 정책에 대한 심의·의결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경찰의 정치적 중립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관이다. 이 교수는 “경찰 조직 구조 변화가 없이는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가령 경찰 대응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조직 상부에서 지침을 새로 만드는데 탁상공론에 그친다는 비판이 많다. 이는 경찰이 되는 입직 창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현장 경험이 많은 경찰은 적다는 얘기다.”
이 대목에서 이 교수는 “경찰은 총 11계급으로 이뤄져 있다”며 손으로 첨탑 모양을 그렸다. 그는 “계급을 절반으로 줄이고 첨탑 구조를 부채꼴 모양으로 바꿔 현장에서 뛰는 인력이 절대 다수가 돼야 한다”며 “입직 창구는 순경으로 단일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찰대 출신 인사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미국 경찰은 모두 순경부터 시작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위치에서 일을 시작하고 계급이 단순화되면 승진할 기회도 생겨 동기부여가 된다. 지금은 순경으로 들어가 총경(경찰서장)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나. 일선 경찰들은 인력 부족을 호소하지만 경찰의 수만 놓고 봤을 때 한국은 선진국 수준이다. 그런데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 경찰은 많은데 실제로 도둑 잡는 경찰은 없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내근직이 많다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 경찰 1인당 담당 인구수는 2020년 기준 411명으로 2011년(501명)보다 크게 줄었다. 2015년 기준 독일(305명)이나 프랑스(322명)에 비해 많지만 미국(427명)과 영국(421명)과 비교할 때 크게 낮은 수치라고 보기 힘들다. 이 교수는 “일선에 나가서 현장 경험을 익혀야 범죄자를 잡는 데 중요한 순간 판단력을 기를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라도 조직 체계 개편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자치경찰제, 할 거면 제대로”
제주특별자치도에서만 시행되던 자치경찰제가 2021년 7월 전국으로 확대됐다. 기존의 경찰이 국가경찰·국가수사본부·자치경찰로 분리된 것이다. 자치경찰제 도입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되면서 경찰 권한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더 중요한 목적은 지역 사정에 맞는 정책을 개발해 생활밀착형 치안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다. 시행 6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이 교수는 자치경찰제에 대해 비판적인 모습이었다.- 왜 그런가.
“기존 경찰 개혁안은 국가·수사·자치경찰이 김 청장 아래 있는 한 지붕 세 가족 형태가 아니라 자치경찰을 별도의 조직으로 분가해 이를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지자체는 예산만 쓰고 실질적으로 경찰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도입 취지인 지역에 맞는 경찰 조직 운영과 융통성 있는 인사와도 맞지 않다.”
- 자치경찰제 도입 자체는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는 땅 덩어리가 큰 나라가 아닌데 애당초 필요했을지 의문이다. 지역마다 치안 상황이 다르다면 그 권한을 지방경찰청장에게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입된 걸 되돌릴 수는 없으니 꼭 해야 하다면 제대로 운영해야 한다. 지자체장에게 자치경찰제에 맞는 합당한 권한을 주고 이에 대한 심판은 유권자인 주민들이 하면 된다. 사실상 이전과 달라진 게 없는 상황에서 자치경찰위원회를 각 지자체마다 구성해 그 사무국에 수십 명씩 들어가 있다. 이런 게 앞서 말한 인력 낭비다.”
이 교수는 인터뷰의 말미에 “경찰의 사명감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사명감을 재차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경찰이 좋아 직업 경찰이 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면 한국은 안정적인 직장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경찰대 입학하는 학생들도 자동 임관 같은 특혜나 출세 지향적 성향을 띠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 경찰이 가진 본연의 업무인 ‘국민에 대한 헌신’은 후순위가 된다.”
- 현직 경찰로 보이는 이가 익명 커뮤니티에 쓴 “경찰도 직장인일 뿐”이라는 취지의 글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럴 때일수록 경찰과 맞지 않는 이들을 골라내는 경찰 채용 제도의 변화가 더욱 필요하다. 경찰은 일반 직장과는 다르지 않나. 기본적으로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그러면서 사회에 중요한 일을 한다는 사명 의식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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