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나 더위에 지나치게 민감하면 갑상샘 기능 이상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GettyImage]
난임전문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같은 트집이 억지 같아도 의학적으로 상당 부분 일리가 있다. 추위나 더위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것이 난임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말이다.
추위를 과하게 탄다면 ‘갑상샘기능저하증’을, 덥지도 않은데 심한 열감에 시달린다면 ‘갑상샘기능항진증’을 의심해볼 만하다. 갑상샘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 몸의 신진대사에 비상등이 켜지면서 급기야 생식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갑상샘 질환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흔히 나타난다. 국가암정보센터 통계를 보면 전체 여성 질병 중에 갑상샘암이 1위를 차지했다. 갑상샘 질환은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어 건강검진이나 다른 질환으로 검사를 받다가 혹은 난임 검사를 받다가 발병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자연임신 후 유산이 반복돼 그 이유를 추적하다가 갑상샘기능항진증이 포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선 갑상샘에 대해 살펴보자. 갑상샘은 갑상샘호르몬(TH)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 내분비기관(분비샘)이다. 무게 15g~20g 정도로 목의 앞쪽에 자리한 튀어나온 물렁뼈 아래에, 마치 날개를 펼친 나비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항진증은 유산, 저하증은 난임 유발하기도
갑상샘호르몬은 갑상샘에서 자체적으로 분비하는 호르몬이 아니다. 뇌하수체 전엽에서 나오는 갑상샘자극호르몬(TSH)의 자극을 받아 갑상샘에서 갑상샘호르몬(T3·T4 등)을 분비하는 것이다. TSH와 갑상샘호르몬은 반비례 관계다. TSH 농도가 높으면 갑상샘호르몬 분비량이 저하된다. 그런데 갑상샘 기능은 갑상샘호르몬의 혈중농도가 높다고 해서 항진되는 건 아니다. 갑상샘호르몬과 결합단백질(TBG)과 결합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free T4(FT4) 같은 것이 실질적인 기능을 하면 그때 항진된다.갑상샘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하는 역할을 이해하려면 자동차 액셀러레이터나 연탄난로의 불구멍을 떠올리면 된다. 갑상샘호르몬이 너무 과하게 분비되면 과열된 자동차가 되는 것이고, 너무 적게 분비되면 느린 이륜자동차가 되는 것이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불구멍을 열면 숯이 빨리 타고, 불구멍을 닫으면 숯불이 꺼지려 하는 것과 같다. 갑상샘호르몬이 많이 나오면 신진대사가 빨라지고, 갑상샘호르몬이 적게 나오면 신진대사가 느려지는 것이다.
우리 몸은 갑상샘호르몬의 자극을 받아 티록신(thyroxine/T4)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데 이것이 물질대사에 관여한다. 티록신이 많이 분비되면 세포의 대사 기능을 항진시켜 기초대사량이 증가하게 된다. 티록신은 요오드 성분을 필요로 한다. 산후조리를 할 때 미역국을 먹는 것도 바로 요오드를 보충하기 위해서다.
갑상샘호르몬이 모자라거나 넘쳐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먼저, 갑상샘호르몬이 모자라면 신진대사가 이륜자동차처럼 느려져 피로감이 증가하고 피부가 푸석푸석해진다. 몸이 차고 머리털이 빠지고 굵기가 가늘어지며 머리카락이 갈라지거나 힘없이 끊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기억력이 감소하고 장 운동이 느려져 변비가 생긴다. 입맛이 없으나 체중이 늘고, 피부를 눌러보면 딴딴한 부종(myxedema)이 느껴진다. 목소리가 굵어지고 움직임이 굼떠진다. 심장이 천천히 뛰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멍해 보인다는 지적을 받으며 같은 추위라도 상대적으로 더 못 견딘다.
반대로 갑상샘호르몬 기능이 지나치게 활발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갑상샘기능항진증에 걸린 여자들은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호소한다. 가만있지 못하고 움직임이 커진다. 더운 것을 참지 못하는 특징도 보인다. 몸이 덥고 땀이 많으며 쉬 피로를 느낀다. 체중이 감소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왕성해진 식욕으로 인해 체중이 증가하기도 한다. 장운동이 빨라져 설사를 자주 하고 소변량도 증가한다. 손을 만져보면 따뜻하고 축축한 느낌이 든다. 가끔 몸을 떨기도 한다. 갑상샘 부위가 커진 모습도 볼 수 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요즘 화가 많이 나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안구가 돌출되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문제는 갑상샘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기면 여성의 생리 기능과 임신, 출산, 태아의 건강에까지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갑상샘기능저하증에 걸리면 배란이 원활하지 못해 생리불순이 나타나거나 자연임신을 하더라도 유산 확률이 높아지고, 임신 후 조기 분만이 일어날 수 있다. 갑상샘기능항진증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리불순에서 성욕 감퇴까지 이어진다. 임신부는 초기 유산, 조기 진통, 조기 분만의 위험도가 증가한다. 남성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갑상샘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기면 정자 수가 감소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심각한 갑상샘 질환으로 인한 난임일지라도 치료제를 복용하면 대부분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난임전문 의료기관을 찾는 여성 가운데는 애매모호한 증상이나 징후에도 ‘갑상샘기능저하’ 진단을 받는 이가 적지 않다. TSH 농도가 증가했지만 FT4가 정상 범위에 있을 때다. 이런 경우라도 치료해야 한다. 갑상샘기능항진증에 걸리면 유산이 잘될 수 있고, 갑상샘기능저하증에 이르면 임신이 잘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갑상샘호르몬(특히 T4)이 임신 초기 태아의 뇌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임신 초기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갑상샘호르몬 분비 이상을 방치하면 임신 중독증, 태반조기박리, 심장 기능 이상 등의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다만, 갑상샘기능항진증인 임신부일 경우 갑상샘호르몬 억제제(PTU 또는 MMI)를 써야 하는데, PTU(Propylthiouracil)는 기형을 초래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요즘 시중에 활력을 되찾아 준다는 드링크제가 많이 나와 있다. 아미노산 제제, 인삼추출물, 녹용, 꾸지뽕 등이 이런 드링크제의 성분이다. 하지만 먹을거리로 기력을 회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만약 잠을 푹 자도 몸이 무겁고 피로감이 밀려오는 등 신체의 전반적 기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병원에 가서 TSH 수치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TSH 수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정 수준(0.4~4.0uU/mL)이어야 한다. 혈중 갑상샘 혈액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활력 드링크제, 다이어트약 주의
가임여성은 기초대사량을 높이는 성분이 들어간 다이어트 약을 함부로 먹어선 안 된다. [GettyImage]
예전에 할머니들은 “눈이 튀어나오면 아기가 안 들어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실제로 장기간 갑상샘기능항진증을 방치하면 갑상샘 부위만 커지는 게 아니라 눈이 튀어나오는 안구 돌출(그레이브스 안병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의학적 기전을 몰랐음에도 선조들은 참으로 지혜로웠다. 자식 농사가 인륜지대사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에 사소한 몸의 변화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조정현 #난임 #갑상샘호르몬 #임신 #신동아
조 정 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