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노무현 정부에서 복지국가 추진, 이낙연 캠프 위원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끌며 복지 어젠다 제시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 동시 추진은 불가능
기본소득보다 보편적 복지가 우월한 사실은 이미 입증
민주당 당헌도 위배…토론 제의에도 李측 ‘묵묵부답’
운동권 정치 카르텔이 슬그머니 기본소득을 가지고 들어와…
현실은 보지 않고 기본소득을 종교처럼 신봉
‘기본소득, 국민 원치 않으면 철회’ 발언 믿지 않는다
민주당은 중병 걸려…내게 이래서는 안 된다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편적 복지국가 수립’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당헌과 기본소득 정책은 같이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호영 기자]
둘은 똑같이 가난과 장애를 겪었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이재명 후보는 변호사가 된 뒤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 ‘기본소득’ 공약을 내놓았다.
의대 진학 후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은 이 교수는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이 후보가 2017년부터 내놓은 기본소득 공약을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던 2021년 11월 29일 이 교수는 민주당 제주도당으로부터 8개월 ‘당원자격정지’ 징계가 내려졌다는 통보를 받았다. 한 당원이 그의 징계를 청원했는데, 그 사유는 과거 그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쓴 표현이다. 구체적으로는 이 후보를 지칭해 “기본소득 포퓰리스트” “대장동 부동산 불로소득 게이트의 당사자” “해당 행위를 하고 계신 분은 이재명 후보”라는 글을 문제 삼았다(사진 참조). 이 징계청원서는 이 교수가 직접 SNS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따라서 민주당 제주도당은 11월 29일 이 징계청원서를 바탕으로 ‘당규 제7호 제14조 제1항 4호(허위사실유포로 당원을 모해하거나 허위사실 또는 기타 모욕적 언행으로 당원 간의 단합을 해하는 경우)’를 내세워 이 교수에게 8개월 당원자격정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당 안팎에서 민주당과 교류한 이 교수는 이번 징계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12월 3일 서울 동아일보 사옥에서 마주 앉은 그는 “요즘 잠을 잘 못 잔다”며 입을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한 당원이 제주도당에 제출한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대한 징계청원서. 이 교수는 자신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이 청원서를 공개했다. [이상이 교수 SNS 캡처]
‘기본소득 저격수’로 등판
- 왜 잠을 못 자나. 당원권 정지 징계의 영향인가.“그런 것 같다. 참담하다. 요즘 잠을 오래 못 잔다. 사람이 분노로 가득차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다. 민주당이 내게 이러면 안 된다. 중도보수 정당이던 민주당을 지금의 중도진보 정당으로 옮겨오는 데 기여한 게 나와 내가 몸담았던 ‘복지국가소사이어티’였다. 오랜 시간 민주당에 복지 의제를 제시하며 공헌했는데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잠시 시곗바늘을 과거로 돌려보자. 이상이 교수는 1984년 의대 진학 후 의료봉사 과정에서 도시빈민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는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든다. 이후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집권당 보건의료정책 전문위원을,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지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07년에 복지국가소사이어티라는 싱크탱크를 만들었다. 이 교수는 13년간 이 단체 공동대표를 맡아 우리나라에서 활발히 진행된 복지국가 논의의 한 축을 담당했고, 현재는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는 “민주당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2010년 10월 당헌에 ‘보편적 복지국가를 수립한다’는 조항을 삽입한 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영향이었다”고 설명했다. 2013년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가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할 수 있었던 것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제안한 무상급식으로 대변되는 보편적 복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덕분”이라고 말한 일도 있다. 이 교수는 “그런 민주당이 내게 이럴 수는 없다”며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민주당 제주도당이 밝힌 징계 사유는 명예훼손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발언이 이재명 후보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나.
“제주도당은 내가 대선후보인 이재명 당원에게 모욕적 언사를 해 그의 명예를 훼손하고 당원 간의 단합을 저해했다고 한다. 나는 이 후보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한 사실이 없다. 다만 2017년 이 후보가 기본소득을 대선 공약으로 들고나오던 시점부터 계속 그 정책을 비판해 왔다. 그전에는 아무 문제없던 일이 이 후보가 대선후보가 되면서 갑자기 명예훼손이 된 것이다.”
- 이재명 후보와는 서로 알고지내는 사이 아닌가.
“2014년 이 후보가 성남시장 재선에 도전할 당시 핵심 참모들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도움을 청했다. 그때 무상 교복과 공공 산후조리원 공약을 추천했다. 이후 2015년 성남시청에서 강연 요청이 왔다. 강의를 마치고 잠깐 만난 적은 있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
- 징계 이후 민주당에서 연락을 받은 적은 없나.
“없다.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내 진심이 왜곡될까 봐 일부러 당과 거리를 두는 편이다. 경선이 끝나고 이낙연 캠프 관계자들과도 연락하지 않고 있다.”
이 교수는 이재명, 이낙연 후보 간 대선후보 경쟁을 치열하게 펼치던, 이른바 ‘명낙대전’이 한창이던 2021년 9월 13일에 이낙연 캠프에 합류했다. 당시 이낙연 캠프가 기본소득을 비판하기 시작할 때 복지국가비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것이다. 이 교수는 “오로지 보편적 복지국가와 충돌하는 기본소득 공약을 막기 위해 캠프에 합류했다”고 했다.
2021년 7월 22일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이 지사는 “임기 내 기본소득을 청년에게 200만 원, 전국민에게 10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보편적 복지국가를 수립한다’는 민주당 당헌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국가는 국민이 필요로 하는 복지를 제공하는 정책 노선이다. 기본소득은 무조건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교수는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맞아 증세는 불가피하다. 5년 내 조세부담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근접하도록 하는 일도 어려운데 어렵게 걷은 세수를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면 복지도 제대로 안 된다”며 “한정된 재원으로 보편적 복지정책과 기본소득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1%로 OECD 평균(24.9%)에 못 미친다. 이어 그는 1920년대 영국 노동당 사례를 꺼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1920년대 노동당에서도 보편적 복지국가와 기본소득 간 노선 투쟁이 있었다. 당원들 사이 치열한 토론 끝에 노동당은 보편적 복지국가 지향을 당론으로 정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런 토론이 없었다. 운동권 정치 카르텔이 기본소득 공약을 슬그머니 당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을 뿐이다.”
- 과거에 학생운동을 했더라도 정치적 의제는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기본소득 담론은 서구에서 20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현실에서 정책으로 시행하는 국가가 없는 것은 이미 보편적 복지정책이 기본소득보다 우월하다는 점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운동권의 문제는 토론같은 민주적인 절차를 밟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현실을 보지 않고 기본소득을 종교처럼 신봉하며 밀어붙인다.”
“공론화는 官 동원해 홍보하겠다는 말”
- 이낙연 후보 캠프에 들어간 이후 이재명 후보 측과 기본소득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없었나.“전혀 없었다. 당시 민주당 후보가 네 명이다 보니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하기 어려웠다. 이낙연 캠프에서 ‘후보 대 후보’로 끝장 토론을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이재명 후보 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된다면 후보와 정책전문가가 동석해 ‘2:2 토론’을 하자는 제안도 여러 차례 했는데 묵묵부답이었다. 친문 성향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4.0’을 통해 제안해도 응하지 않았다.”
- 이재명 후보는 12월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임기 내 기본소득을 공론화해 국민이 원치 않으면 추진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믿지 않는다. 기본소득으로는 본선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나온 정치공학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본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초반에도 (이 후보는) 기본소득이 자신의 ‘1호 공약’이 아니라고 했다. 캠프 측에서 자제시킨 것 같은데, 표 대결에서 우세해지니 다시 기본소득 공약을 전면에 들고 나온 거다. (대통령) 임기 내 기본소득 이슈를 공론화하겠다는 말은 대통령이 되면 ‘관(官)’을 동원해 기본소득을 홍보하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이 후보는 이미 경기지사 시절 그렇게 한 전례가 있다. 나는 그가 설사 기본소득 공약을 내려놓는다 해도 후보직을 사퇴해야 한다고 본다.”
- 어떠한 이유에서인가.
“이 후보는 예전의 민주당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결격 사유가 있는 대선후보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공공개발 비리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형수 욕설 사건 등 일일이 꼽기도 어렵다. ‘전과 4범’이면 서울시의원에도 출마하지 못할 텐데 이런 사람을 대선후보로 받아들인 민주당은 지금 중병(重病)에 걸려 있다. 당 지도부부터 문제를 깨달아야 한다.”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이 후보가 기본소득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기본소득은 국민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충분하게 지급하는 정책이다.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한 번 나눠주는 것은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없다. 이 후보가 경기지사 시절 시행한 청년기본소득도 진정한 의미의 기본소득이 아니다. ‘경기도에 10년 이상 거주한 청년’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1년에 100만 원씩 준다고 젊은이들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 후보는 자기 정책을 홍보하려고 아무 데나 ‘기본’이라는 타이틀을 붙인다.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 포퓰리스트의 전형적인 행위다.”
2011년 11월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와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 정동영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이 오찬을 하고 있다. [뉴스1]
“기본소득 비판 멈추면 내 직업에 대한 직무유기”
- 징계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당원권을 8개월간 정지한다는 건 사실상 ‘당에서 나가라’는 의미다. 일단 나는 명예훼손을 한 적이 없기에 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서 재심의 신청도 하지 않았다. 나는 30년간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한 학자이자 시민운동가로 살아왔다. 기본소득을 시행하겠다는 대통령 후보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직업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기본소득 정책을 계속 비판할 생각이다.”
인터뷰 도중 이 교수는 인생을 살며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으로 2012년 대선을 꼽았다. 그는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보편적 복지국가’ 정책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정책이 맞붙는 광경을 보고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대한민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겠구나” 하는 뿌듯함이 밀려왔다고 회상했다. 복지국가가 완성된다면 당파도 정파도 중요치 않다는 태도였다.
두 시간 반이 넘어가는 인터뷰가 끝난 뒤 이 교수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가족정책 토론회에 참석하러 간다”고 했다. 그는 “가족정책이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며 기자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는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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