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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먹는 매콤한 닭볶음탕, 개운한 소머리국밥

[김민경 ‘맛 이야기’] 찬바람 불 때 먹어야 더 맛있는 국물 요리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한겨울에 먹는 매콤한 닭볶음탕, 개운한 소머리국밥

  • 요즘은 다슬기나 재첩으로 끓인 국을 인터넷으로 쉽게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반가운 마음에 몇 번 구매해 데워 먹어봤다. 맛은 얼추 식당에서 먹은 것과 비슷한데, 영 신이 나질 않는다. 찬바람을 뚫고 가서 먹는 맛, 낯선 곳에서 다정한 사람과 먹는 재미가 빠져서일 것이다.
시원하게 끓인 콩나물국에 밥을 토렴하고 잘게 썬 삶은 오징어를 섞어 먹는 콩나물국밥(왼쪽). 뽀얀 국물에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소머리국밥. 맛이 무겁지 않고 순해 먹을수록 더 당긴다. [GettyImage]

시원하게 끓인 콩나물국에 밥을 토렴하고 잘게 썬 삶은 오징어를 섞어 먹는 콩나물국밥(왼쪽). 뽀얀 국물에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소머리국밥. 맛이 무겁지 않고 순해 먹을수록 더 당긴다. [GettyImage]

전북 전주에 참 여러 번 갔는데 어쩌다 보니 매번 겨울이었다. 처음 전주에 간 날 혹독하게도 추웠다. 그때 막걸리 유통을 하는 친한 선배가 콩나물국밥에 모주를 먹여 얼어붙은 나를 되살려냈다. 그러니 ‘추운 날 전주’ 하면 내 다리는 절로 남부시장으로 향한다.

시원하게 끓인 콩나물국에 밥을 토렴해 작은 뚝배기가 넘치도록 담고 송송 썬 매운 고추와 대파를 띄워주는 뜨끈한 국밥. 여기에 잘게 썬 삶은 오징어를 섞어 먹는다. 노른자가 여전히 말랑한 설익은 달걀찜에 오징어와 콩나물을 조금 덜어 뒤섞은 다음 김까지 올려 고소한 죽처럼 만들어 퍼먹는다. 꽝꽝 얼었던 얼굴이 좀 녹는가 싶으면 모주 한잔! 그제야 앞에 앉은 사람이 보이고, 달아오른 내 얼굴 열기도 느껴진다.

어느 날 밤, 강원 강릉에서 일하는 친구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날 우리는 시장에서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설렁탕과 갈비탕 중간쯤에 놓으면 마침맞을 뽀얀 국물에 머릿고기가 듬뿍 들어 있었다. 소머리국밥은 이름 그대로 소머리를 삶아 만든다. 뼈를 너무 오래 끓이거나 조미를 많이 하면 국물에서 잡다한 맛이 난다. 처음 한 술은 맛있을지 몰라도, 다 먹고 나면 입이 마르고 개운치 않은 냄새가 남는다. 친구가 데려간 곳 국물은 달랐다. 색은 뽀얀데 맛이 무겁지 않고 순해 먹을수록 더 당겼다.

푸근해서 더 당기는 부산 맛 순대국밥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에서는 푸근하고 둥근 맛이 난다. [GettyImage]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에서는 푸근하고 둥근 맛이 난다. [GettyImage]

내가 좋아하는 우설과 볼살을 비롯해 꼬들꼬들한 것, 쫄깃한 것, 부드러운 것 등 온갖 살코기가 숟가락에 올라오는 것도 좋았다. 고기를 먼저 건져 먹고, 밥을 말아 반쯤 먹고, 깍두기를 국물에 넣고 흔들어가며 밥이랑 건져 마저 먹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나눈 이야기는 고작 “다음엔 소머리국밥 먹으러 영천에 한번 가보자” “그보다 창녕 가서 수구레국밥부터 먹자”였던 것 같다.

돼지국밥은 정말 다양한 사람과 같이 먹었다. 가족과 친구를 비롯해, 지금의 남편, 취재차 만난 우체부 아저씨, 홍보대행사 직원 등과 부산 곳곳 식당에 다녔다. 아직 맛없다고 할 만한 곳을 만난 적은 없다. 물론 돼지고기 냄새가 진한 곳, 국물 맛이 복잡한 곳, 고기 인심이 좀 아쉬운 곳이 있긴 했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한 그릇 뚝딱 비운 건 변함이 없다.



서울에서 순대국밥을 먹다가 부산에 가면 고기만 들어간 보송보송한 요리가 그저 좋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부추 무침을 살짝 올리고 밥을 만다. 잘 섞어 한입 먹으면 푸근하고 둥근 맛이 따뜻하다.

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푹 익은 감자

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닭고기 살과 푹 익은 감자를 적셔먹는 닭볶음탕. [GettyImage]

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닭고기 살과 푹 익은 감자를 적셔먹는 닭볶음탕. [GettyImage]

서울에는 설렁탕, 갈비탕, 곰탕 같은 게 흔하다. 형태를 보면 대체로 따로국밥이고, 국물에 당면이나 소면을 넣어 먹기도 한다. 이 가운데 곰탕에는 밥을 말아 내는 경우가 꽤 있다. 맑은 국물에 무를 썰어 넣어 끓이기도 하고, 우거지나 시래기를 넣어 맛을 내기도 한다. 나물 종류가 들어갈 때는 고춧가루 조금 넣어 얼큰한 맛을 더한다. 노란 달걀지단을 채 썰어 올려주는 곳도 있는데, 당연히 국밥 값도 1000~2000원 더 올라간다. 대체로 도드라지는 양념 없이 대파만 송송 썰어 얹고, 넉넉한 국물에 밥을 풀어 먹는다. 구수한 곰탕은 처음엔 심심한가 싶다가도 먹다 보면 간이 맞고, 담담한가 싶지만 입술에 기름기가 반질반질 돈다.

며칠 전 남편과 동네 식당에 가서 닭볶음탕을 먹었다. 걸쭉하고 매운 국물에 닭고기 살과 푹 익은 감자를 적셔 부지런히 먹으며 동네 친구들을 떠올렸다. 커다란 냄비를 가운데 두고 끓어오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운 요리가 있다. 각종 햄과 소시지, 통조림 콩, 두부, 납작한 떡 등을 빙 둘러 담아주는 부대찌개도 그렇다. 어떤 식당은 넓은 전골냄비에 국물 자작하게 부어 여유롭게 담아주고, 어떤 곳은 아담하고 납작한 냄비에 넘치도록 재료를 수북하게 올려 낸다. 희한하게도 모든 재료가 푹 익어 어우러지고 나면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냄비에 찰랑찰랑, 딱 먹기 좋게 국물이 보글거린다.

김치를 넣으면 칼칼하고, 치즈를 올리면 고소하고, 중간에 라면을 넣으면 국물 맛이 또 달라진다. 한창 잘 먹을 때는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은 다음에야 숟가락을 놓았다. 부대찌개는 자리에 따라 밥반찬이 되고, 술안주로도 좋으며, 해장으로는 더없이 알맞다.

곱창전골을 먹는 시간은 부대찌개 때보다 조금 느리게 흐른다. 식당 주방에서 한소끔 끓여 오지만 식탁 위에서 조금 더 익혀 맛내는 시간을 갖는다. 깨끗하게 손질한 곱창에서는 구수한 맛과 기름진 풍미가 우러난다. 쫄깃한 곱창과 채소를 건져 먹은 뒤 우동이나 칼국수처럼 굵은 면발을 넣어 곱이 스며든 국물을 마저 먹는 맛이 좋다.

깨끗하게 손질한 곱창으로 전골을 끓이면 구수한 맛과 기름진 풍미가 일품이다(위). 각종 햄과 소시지가 어우러져 맛을 내는 부대찌개. [GettyImage]

깨끗하게 손질한 곱창으로 전골을 끓이면 구수한 맛과 기름진 풍미가 일품이다(위). 각종 햄과 소시지가 어우러져 맛을 내는 부대찌개. [GettyImage]

‘오디오’가 빌 틈 없는 샤브샤브 식탁

곱창전골의 친척뻘인 ‘낙곱새’는 조금 더 발랄하다. 곱창에 작게 썬 낙지, 자잘한 새우를 넣고 칼칼한 양념을 풀어 국물이 자작하도록 끓여 먹는다. 식당에 따라 햄, 소시지, 떡, 치즈 같은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곳도 있다. 건더기를 퍼서 밥에 올려 비비듯 먹다가 마지막엔 밥이 찌개 냄비로 들어가 달달 볶아지기 일쑤다.

집에서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다면 배부르게는 만두전골, 술 마시기는 어묵탕, 반주 정도에는 간장국물 자작하게 볶아 먹는 스키야키 같은 게 편하다. 재료와 국물을 준비해 두면 누구 한 명 엉덩이를 들썩거리지 않고 다 같이 차분히 앉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중에도 채소와 고기를 바로바로 익혀 먹는 샤브샤브가 좋다. 고기며 채소, 어묵, 떡, 두부와 곤약을 넣고 익을 때마다 서로 떠주고, 같이 떠먹는 음식. 누군가 재료를 우루루 넣으면 누구는 뒤집고, 누구는 건져서 남의 그릇에 담아준다. 손이 바빠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느라 이른바 ‘오디오’가 빌 틈이 없다. 대단한 걸 내주지는 못해도 고기 한 점, 말랑하게 익은 배춧잎 한 장 친구 그릇에 놓아주고 나눠 먹는 마음과 시간은 얼마나 뜨끈한가.

인쇄소 볼일로 파주에 갈 때면 어죽을 포장해 오곤 한다. 내가 먹기도 하고, 보고 싶은 사람 집에 들러 주고 가기도 한다. 어죽은 말 그대로 물고기로 끓여 만든 죽이다. 이름 때문에 질색하며 안 먹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한번 맛보면 그 결심이 납작하게 접히기 일쑤다.

민물고기를 푹 끓여 만든 육수에 향신 채소를 넣고 밥을 말아 걸쭉하게 익혀내는 어죽. 자연산 홍합으로 끓인 섭국. 얼큰하고 뜨끈한 맛이 일품이다. 전남 순천의 짱뚱어탕. 고소한 짱뚱어 육수에 된장을 풀고 시래기 등을 넣어 끓인다(왼쪽부터). [한국관광공사 제공, 동아DB]

민물고기를 푹 끓여 만든 육수에 향신 채소를 넣고 밥을 말아 걸쭉하게 익혀내는 어죽. 자연산 홍합으로 끓인 섭국. 얼큰하고 뜨끈한 맛이 일품이다. 전남 순천의 짱뚱어탕. 고소한 짱뚱어 육수에 된장을 풀고 시래기 등을 넣어 끓인다(왼쪽부터). [한국관광공사 제공, 동아DB]

시원 칼칼 향기로운 어죽의 매력

어죽은 큰 강줄기가 있는 지역이라면 어디서나 먹는다. 내가 처음 어죽을 맛본 건 충남 금산 금강 근처였다. 민물고기를 잡아 푹 끓인 물을 체에 내려 고운 국물만 받는다. 여기에 대파, 마늘, 생강 같은 향신 채소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다. 그다음 밥이나 국수를 넣고 걸쭉하게 익혀 낸다. 되직한 국물에서 깊은 감칠맛이 나며, 얼큰함 가운데 구수함이 살아 있고 향도 좋다. 금산의 어죽에는 인삼이 들어가 특유의 향도 은은하게 난다.

이날 이후 모르는 동네에 가도 어죽집이 있으면 들어가 한 그릇 먹는데 대체로 맛있다. 어떤 집은 된장을 풀어 구수한 맛을 살리고, 어떤 곳은 감자를 한 덩이 넣기도 한다. 국물 농도, 재료, 맛이 집집마다 달라 먹는 재미가 좋다. 내가 자주 가는 파주 어죽집은 민물새우로 국물을 내 시원하고, 매운맛을 살려 칼칼하며, 깻잎을 듬뿍 넣어 향기롭다.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이다.

어죽과 추어탕 사이 어디쯤에 있는 꾹저구탕과 짱뚱어탕은 지역 별미로 꼽을 수 있다. 꾹저구는 바다와 민물을 오가며 사는 농어목 망둑엇과의 작은 민물고기로 뚜구리, 뿌구리, 뚝저구, 꾸부리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내장을 뺀 꾹저구를 푹 삶아 고운체에 걸러 국물을 내고 고추장을 풀어 끓이는 것은 어죽과 비슷하다. 그러나 국물 맛이 훨씬 달고 시원하다. 바다 맛이 섞여 그런가 싶다. 꾹저구탕 국물에는 으레 버섯을 듬뿍 넣고, 밥은 커다란 감자를 섞어 지어 준다. 노란 알감자를 빨간 국물에 으깨 넣고 함께 떠먹는 맛이 일품이다.

아주 깨끗한 갯벌에서만 사는 짱뚱어는 한참 남쪽으로 내려가야 맛볼 수 있다. 전남 순천·영암·보성 같은 지역의 별미인데, 짱뚱어가 점점 귀해져 요리도 함께 귀해지는 상황이다. 짱뚱어는 겨울잠을 자기에 지금 이맘때 잡히는 것이 가장 고소하고 맛이 좋다. 짱뚱어로 밑국물을 낸 다음 육수를 거르는 데까지는 다른 어죽과 매한가지다. 단 이번에는 된장을 풀고 시래기를 넣는 다. 우거지나 무를 함께 넣기도 한다. 묵은 채소에서 우러나는 겨울 맛이 더해져 웅숭깊고 진하디 진하다.
파주에서 시작해 꾹저구가 있는 강원 속초를 찍고, 다시 금강을 따라 내려간 다음 남쪽 갯벌에 들렀으니 동해 맛도 짚어보고 싶다. 여럿이 ‘우우’ 먹는 맛은 모리국수만한 게 없을 것 같다. 국물 맛을 내는 미더덕과 콩나물, 홍합 같은 조개류는 고정 재료다. 생선은 때마다 달라진다. 크고 깊은 냄비에 해산물과 채소를 넣고 푹 끓인다. 고추장, 고춧가루를 섞어 맛을 내고 마지막에 칼국수를 익혀 먹는다. 국수에서 나온 전분이 국물에 퍼지고, 국수가 육수를 삼켜 점점 걸쭉해진다. 너나 할 것 없이 젓가락질을 서둘러 가며 먹게 된다.

혼자 먹어도 쓸쓸하지 않은 섭국

오들오들 떨며 식탁 앞에 앉아도 모리국수를 먹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송, 등골까지 땀이 졸졸 흘러 몸과 정신이 개운해진다. 나라면 느릿느릿 대화가 오가는 술자리 안주보다는 다음 날 눈이 번쩍 뜨이는 해장 음식으로 모리국수를 택하겠다.

마지막으로 혼자 먹어도 쓸쓸하지 않은 겨울 음식, 섭국이 있다. 섭은 자연산 홍합을 말한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라도 홍합탕을 먹어본 이라면 시원한 감칠맛이 떠오를 것이다. 섭은 우리가 흔히 보는 홍합보다 훨씬 크고 살집도 여물다. 거친 바다에서 살아온 만큼 몸에 밴 맛이 진해 국물이 한결 깊고 시원하다. 섭을 끓인 국물에 대파, 미나리, 양파 같은 향긋한 채소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 푹 끓인다. 섭이 워낙 크니 살은 작게 잘라 넣는다. 밥과 달걀, 부추를 넣고 한소끔 끓여 완성한다. 진한 국물에 배어든 갖은 채소의 향과 달걀의 고소함, 쫄깃한 섭을 한 숟가락에 푹 떠서 맛볼 수 있다. 그릇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도 쉬 식지 않아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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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22년 1월호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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