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자랑스러운 고대병원 역사, 혁신·소통으로 도약 발판 마련할 것”

[인터뷰] 정희진 고려대구로병원장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1-12-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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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정희진(57) 고려대구로병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감염 분야 전문가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 백신의 빠른 개발과 출시를 이끈 공로로 대통령 근정포장을 받았다. 2015년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2020년 이후 이어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도 정책 자문 등에 앞장섰다. 현재 정 원장은 대한항균요법학회장, 대한백신학회 부회장, 대한인수공통감염병학회 부회장으로 학계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2021년 11월 1일 고려대구로병원장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를 만났다.

    환자 진료와 의학 연구로 사회 기여

    - 취임을 축하드린다. 소감과 포부를 말씀해 달라.

    “많은 분이 축하 인사를 해주시는데 ‘감사합니다’라는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 기쁘기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나는 1990년 의사가 됐다. 이후 진료 및 연구 대부분을 고려대구로병원에서 했다. 이 병원에서 받은 것이 무척 많은 셈이다. 앞으로 그것에 몇 배를 곱해 교직원들에게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고려대의대를 수석 졸업하신 것으로 안다. 어떤 전공이든 선택할 수 있었을 텐데 감염내과 전문의가 된 이유가 있나.

    “내가 인턴 생활을 시작할 무렵 고려대구로병원에 실험실이 하나 생겼다. 감염내과 전임의 선생님들이 만든 공간이다. 거기서 연구에 몰두하는 선배들을 보며 ‘나도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최근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문가 가운데 상당수가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출신이다.

    “맞다. 나와 함께 공부한 동료, 선후배들이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는 오랫동안 호흡기바이러스와 백신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최근 호흡기바이러스로 인한 위기가 잦아지면서 그동안 쌓아온 역량이 주목받게 된 것 같다. 또 한 가지,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초대 과장을 지내신 고(故) 박승철 교수님 영향도 있다고 본다. 박 교수님은 제자들에게 ‘감염내과 의사는 공중보건학적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국가와 사회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나는 지금도 그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 방역 정책 등에 대해 자문을 구할 경우 최선을 다해 응한다.”

    - 고려대구로병원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 같다.

    “그렇다. 우리 병원 구성원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고려대구로병원은 1970년대 후반, 독일 차관을 받아 건립 공사를 시작했다. 그때 독일이 건축 자금을 빌려주며 조건으로 내건 것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병원을 만들어야 한다’였다. 우리 병원이 당시 공장이 밀집해 있던, 그래서 주거 및 의료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던 구로 지역에 터를 잡은 이유가 여기 있다. 지금도 고려대구로병원은 ‘어떻게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고려대구로병원에는 국내 유일의 중증외상전문의 수련센터가 있다. 여기서 교육받은 의사들이 고려대구로병원에 남는 게 아니다. 국군수도통합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중증외상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지역 병원에서 일하며, 우리나라 의료계의 외상 대응 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 우리 병원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다. 병원 경영 측면에서 보면 득이 되는 시설이 아니다. 숙련된 전문 인력이 24시간 상주하고, 응급환자 전용 중환자실·수술실·병상 등을 갖춰야 해서 오히려 부담이 크다. 하지만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에 기여해야 한다는 고려대구로병원 설립 취지에 부합하기 때문에 병원 구성원 모두 책임감을 갖고 운영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우리 병원에는 자랑할 것이 무척 많다. 그 가운데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수익보다 사회적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전통’이라고 답하겠다. 그 정신을 지키고 후배에게 잘 전달하는 게 내게 주어진 임무다.”

    외래관 완공으로 새로운 도약

    - 시간이 흐르면서 고려대구로병원 주변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디지털 산업단지가 됐다. 시대 변화에 따라 고려대구로병원이 담당할 사회적 역할도 달라졌을 것 같다.

    “그렇다. 구로디지털산업단지에는 의료기기 관련 기업이 많다. 이들과 협업해 한국 의료산업 발전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 병원은 2019년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분야 기업 육성 및 지원을 목표로 실시한 ‘개방형 실험실 구축사업’ 주관기관으로 뽑혔다. 2021년에는 ‘G밸리 의료기기 개발 지원센터’ 위탁운영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G밸리 의료기기 개발 지원센터’는 서울시가 국내 바이오산업 인프라를 확충하고, 의료기기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추진하는 사업이다. 고려대구로병원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바이오 벤처 기업, 주요 대학, 정부 기관 등과 협력해 ‘한국형 의료 실리콘밸리’를 키워나가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

    - 병원 내부적으로는 외래관 건립 등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 병원을 환자 중심의 편리하고 쾌적한 진료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지금 병원은 ‘내과’, ‘외과’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심장이 안 좋은 환자가 병원에 왔다고 해보자. 자신이 어느 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겠나. 철저히 공급자 위주로 짜인 이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질환 중심 센터’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2022년 5월로 예정된 외래관 건립은 이런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 외래관이 완공되면 병원에 어떤 변화가 생기나.

    “상대적으로 외래 환자 비율이 높은 안과, 이비인후·두경부외과 등 일부 진료과가 외래관으로 이전한다. 본관과 신관에는 중증질환 치료 시설이 집중된다. 그렇게 되면 뇌신경센터,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심혈관센터 등 고려대구로병원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전문 센터들이 좀 더 넓은 공간에서 환자에게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상급종합병원에 기대하는 역할이 있다. 최고의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가장 우수한 의료진을 확보해 환자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말이다. 고려대구로병원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

    - 그 외 원장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구성원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감염내과는 다른 진료과와 협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과 대화를 나누며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직원들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원장으로 있는 동안 업무 환경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드리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적어도 문제를 직시하고,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우리가 그동안 관습적으로 해온 업무 프로세스 가운데 불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없애겠다. 또 누구하고든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겠다.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변화가 미래 우리 병원의 강점이 될 거다. 얼마 전 한 원로 교수님께서 내게 ‘메르켈 같은 병원장이 돼달라’고 하시더라. 그 말씀을 듣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엄마 리더십’을 가진 병원장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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