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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학인(學人), 선방(禪房) 아닌 ‘중생의 일상’이 깨우치는 자리였다”

[단독인터뷰] 조계종 새 종정 성파스님

  • 오명철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사)우리글진흥원 고문 omc1215@naver.com

“나는 평생 학인(學人), 선방(禪房) 아닌 ‘중생의 일상’이 깨우치는 자리였다”

  • ● 2021년 12월 만장일치로 임기 5년 종정 추대
    ● 조계종 신성(神性) 상징, 종통(宗統) 승계하는 최고 권위자
    ● “조계종 종정은 선승 몫” 관행 깬 창조적 전환
    ● 월하스님 은사로 출가 후 통도사 주지·방장 역임
    ● 도자삼천불·16만 도자대장경 조성한 예술가
    ● “한국 불교사에서 원효(元曉), 자장(慈藏) 다음에 오실 분”
    ● 진제 종정 임기 끝나는 2022년 3월 임기 시작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 [박해윤 기자]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 [박해윤 기자]

경남 양산 영축산 통도사 방장(方丈) 성파(性坡)스님이 한국 불교 종가 조계종의 제15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됐다.

조계종은 2021년 12월 13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제15대 종정 추대회의를 열고 성파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이날 회의에는 원로회의 의원들과 조계종 행정 수반 격인 총무원장, 국회의장 격인 중앙종회의장, 대법원장 격인 호계원장 등 22명이 참석했다. 2012년 추대돼 한 차례 연임하며 10년간 재임한 현 종정 진제(眞際)스님 임기는 2022년 3월 25일 끝난다. 이후 성파스님이 정식 취임한다. 한국 불교 최고 정신적 지도자인 조계종 종정은 임기가 5년이고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조계종 신성의 상징, 종통 계승하는 최고 권위자

조계종 종헌에 따르면 종정은 종단 신성(神性)을 상징하며 종통(宗統)을 승계하는 최고 권위와 지위를 갖는다. 1700년간 이어 내려오면서 한국인의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한국 불교가 성파스님을 새 종정으로 모신 것은 한국 불교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선택’으로 기록될 일이다. 성파스님은 출가 후 통도사 주지를 마치고 경내 영축산 자락 서운암(瑞雲庵)에 주석한 이래 그림과 글씨, 도예와 민화, 옻칠과 염색 등에 천착해 왔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그래서 “종정스님이 되시기엔 참선과 수행이 다소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 불교계 대표적 수행승이던 ‘무소유(無所有)’의 법정(法頂)스님(1932∼2010)과 선원 수좌들의 추앙과 존경을 받은 ‘무애(無碍)도인’ 설악 무산(雪嶽 霧山)스님(1932∼2018)의 속가(俗家) 제자로서, 두 은사 스님이 생전에 “통도사 성파스님은 여법(如法)하게 참 잘 사시는 분”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다.

성파스님(왼쪽)이 대한불교조계종 신임 종정(宗正)에 추대된 2021년 12월 13일, 서울 조계사에서 종단의 주요 소임자 스님들이 삼배를 올리고 있다. [박해윤 기자]

성파스님(왼쪽)이 대한불교조계종 신임 종정(宗正)에 추대된 2021년 12월 13일, 서울 조계사에서 종단의 주요 소임자 스님들이 삼배를 올리고 있다. [박해윤 기자]

성파스님은 한국 불교가 배출한 수많은 ‘큰스님’ 계보에서 가장 독특한 수행 방식으로 법랍(法臘)을 쌓은 분이다. 조계종 통합 종단 출범 후 종정을 지낸 초대 효봉(曉峰), 2대 청담(靑潭), 3·4대 고암(古庵), 5대 서옹(西翁), 6·7대 성철(性徹), 8대 서암(西庵), 9대 월하(月下), 10대 혜암(慧菴), 11·12대 법전(法傳), 13·14대 진제(眞際)스님들과는 결이 다르다. 과거 종정스님들에게 전설처럼 따라다닌 간화선(看話禪) 수행 이력, 파격과 기행, 전설이나 일화가 성파스님에게는 없다. 이분은 ‘예술과 창작을 통한 수행과 참선’, ‘겸손과 하심(下心)’으로 일관한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파스님의 종정 추대는 한국 불교의 창조적 전환이자 엄청난 도전인 셈이다.



불교계 혁신파들은 “‘선승(禪僧)만 조계종 종정을 할 수 있다’는 외곬 신념을 가진 이가 조계종 주류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한국 불교계가 성파스님을 새 종정으로 모신 것은 로마 가톨릭이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추기경을 교황으로 모신 것에 맞먹는 절묘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2021년 12월 13일 성파스님이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음 날 서둘러 통도사로 내려갔다. 필자는 스님과 1991년 동아일보 종교담당 기자 시절부터 30년간 교분을 쌓았다. 당시 성파스님은 통도사 경내 17개 암자 중 하나인 서운암의 주지로 살면서 16만 도자대장경 불사를 하고 계셨다. 그때 여러 선배 기자들과 함께 내려가 취재한 것이 인연이 됐다. 1939년 7월 1일생으로, 2022년 기준 세수 83세 법랍 62년이신 스님은 예의 천진불(天眞佛) 또는 동자승(童子僧) 같은 맑고 환한 얼굴로 필자를 맞아주셨다.

한학과 외국어 독학한 學僧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실에는 역대 방장들의 사진이 모셔져있다. 왼쪽부터 경봉 성해 구하 월하 스님.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실에는 역대 방장들의 사진이 모셔져있다. 왼쪽부터 경봉 성해 구하 월하 스님.

- 우선 감축드립니다. 불문(佛門)에 들어오신 이래 종단 최고 자리에 오르겠다는 생각이나 욕심을 가져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이고, 무슨…. 중노릇이나 올바르게 하면 됐지, 주지니 방장이니 종정 같은 자리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불교를 뜯어고치겠다거나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거창한 포부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절 인연이 있어 종단 원로들과 제방 승려, 신도들이 제가 감히 꿈도 꿔본 적이 없는 높은 자리에 저를 앉히는 것을 보면서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느낍니다. 이제껏 그래왔듯 종정 직책도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성파스님은 참선과 수행, 경전과 학문 가운데 참선을 최우선으로 치는 조계종의 ‘선승(禪僧)’ 계보를 대표하는 분은 아니다. 하지만 1998년 봉암사 태고선원 안거(安居) 이래 40여 안거를 성만(盛滿)한 수행 이력을 갖고 있다. 2000년 4월 그가 주지로 있던 서운암에 무위선원(無爲禪院)을 연 데 이어 통도사 방장 취임 후에도 영축산 자락에 보광선원(普光禪院)을 신축 개원했다. 독학으로 중국어와 일본어를 깨쳐 수준 높은 대화가 가능하며, 한시를 짓고 초서를 막힘없이 읽어 내려가는 수준의 한학 실력도 갖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이런 실력을 전혀 내세우지 않는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출가하시게 됐습니까?

“경남 합천 해인사 인근에서 중농의 4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채 서당에 들어가 유교 경전을 배웠는데 도중에 발심(發心)했습니다. 유서(儒書)를 깊이 읽으면 불교에 입문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가 깊은 유학자들이 불문(佛門)에 들어오는 사례가 많습니다. 출가 후 강원도 쪽 절을 순력하다가 통도사에서 월하(月下)스님을 뵙고 1960년 가을 사미계를 받았습니다. 비구계를 받은 건 10년 뒤인 1970년 4월입니다.”

스님의 속명은 조봉주(曺鳳周). 성파(性坡)는 법명이고, 법호는 중봉(中峰)이다. 스님은 그동안 절집 시간표에 따라 오전 3시 반 일어나 참선과 예불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5시 반 아침 공양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8시경 서운암 인근 산중에 있는 작업실로 향한다. 사중(寺中)에 자신이 참석해야 하는 행사가 없는 한 허름한 창고 같은 그곳에서 저녁 무렵까지 글씨 쓰고, 그림 그리고, 도자기 굽고, 옻칠하고, 염색하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며 하루를 보낸다. 국내외에서 특별한 손님이 통도사를 방문하는 경우에는 방장실로 내려가 맞는다. 이때 3000배는커녕 108배도 요구하지 않는다. 불자가 아닌 경우에는 ‘절 한 번만 하라’고 하거나 맞절을 한다.

“중노릇 하나만 옳게 하면 된다”

- 은사이신 월하 종정스님의 가르침은 어떤 것이었으며, 출가 이후 줄곧 지켜온 수행 원칙은 무엇입니까?

“오늘(2021년 12월 14일·음력 11월 12일)이 마침 은사스님 제삿날입니다. 종정에 추대되고 조계사 대웅전에서 고불식(告佛式)을 가진 뒤 부족한 저를 종정으로 추대해 준 원로 스님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린 채 서둘러 밤길을 달려 통도사로 내려왔습니다. 1962년 대한불교 조계종이 통합 종단으로 출범한 이래 출가로 인연을 맺은 스승과 제자가 둘 다 종정이 된 것은 처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자하고 과묵했지만 수행에서만큼은 단호했던 은사스님 가르침은 한마디로 ‘중노릇 하나만 옳게 하면 된다’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중노릇을 제대로 하고자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습니다. ‘일상(日常)에 도(道)가 있고, 천지사방이 학교’라는 것이 제 깨달음이고, ‘민중이 스승’이라는 것이 제 신심(信心)입니다.”

성파스님의 예술적 탐색은 곧 그의 구도 여정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전통 옹기 5000여 개에다 국산 콩으로 메주와 간장을 담아 자급자족으로 절과 선원 살림을 해결하고, 불사(佛事) 비용을 충당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날은 먹지 않는다’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을 일찌감치 실천했다.

통도사는 개산조(開山祖)인 신라 고승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금란가사(金襴袈裟)를 보유한 불보종찰(佛寶宗刹)이다. 절 전체가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한국 불교에서는 통도사를 비롯해 부처님 팔만사천법문을 간직한 법보(法寶)종찰 해인사, 16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종찰 송광사를 삼보사찰이라 한다. 이 중에서도 통도사는 자타가 인정하는 ‘불가의 종가이며 나라의 큰 절(佛之宗家 佛之大刹)’이다.

통도사 전각(殿閣) 대부분은 최소 100년 이상 된 유서 깊은 목조건물이다. 2022년 개산(開山) 1377년을 맞았으며, 신도 수가 10만 명에 이른다. 또 국내외에서 연간 300만 명의 순례자가 찾아온다. 명품 암자 자장암(慈藏庵) 등 17개 암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상주하는 스님만 200여 명이 넘는 거찰(巨刹)이다. 해외 문화예술 지식인이나 국내 주재 외국 대사들은 통도사를 방문하면 한국 전통 사찰의 빼어난 풍광과 심오한 위치 선정 및 공간 배치, 친환경적 건축 기술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성파스님이 타고난 문화예술적 재능을 갖고 있거나 출가 후 바로 예술 세계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스님은 출가 초기 선원에서 참선 수행에 정진했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발생한 10·27 법난(法難) 이후부터다. 이 일로 당시 조계종 살림을 맡던 스님들이 대거 일선에서 밀려나고 성파스님을 비롯한 선방 수좌들이 공백을 채우게 됐다. 성파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요직인 사회교무부장과 통도사 주지 등을 마쳤다. 임기를 마쳤을 때 나이는 40대로, 새로운 소임을 감당하기에는 경력이 있으나 뒷방으로 물러나기엔 이른 연배였다. 성파스님은 그때 새 길을 모색했다. 스님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시기를 ‘출출가(出出家)’라고 표현했다. 첫 출가 당시의 마음을 잊지 않고, 이제껏 가지 않은 새 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또 다른 출가를 했다는 의미로 새겨진다.

“발길 닿은 곳이 곧 수행처요, 학교”

성파스님이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 인근 산중 작업실에서 휘호를 쓰고 있다. 한국 수묵화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은 성파스님 글씨를 ‘성파체’로 칭하며 “스님은 마음과 붓과 종이가 하나 되는 경지를 아는 당대 최고 수준의 서예가”라고 평했다. [오명철 제공]

성파스님이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 인근 산중 작업실에서 휘호를 쓰고 있다. 한국 수묵화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은 성파스님 글씨를 ‘성파체’로 칭하며 “스님은 마음과 붓과 종이가 하나 되는 경지를 아는 당대 최고 수준의 서예가”라고 평했다. [오명철 제공]

성파 스님이 평소 작품을 위해 쓰는 붓들.

성파 스님이 평소 작품을 위해 쓰는 붓들.

통도사 암자인 서운암에 주석한 스님은 전통 옹기 수집과 된장·간장 담그기부터 시작해 옻칠, 도자기 및 한지 제작 등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나갔다. 우리 고유 문학인 시조가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1984년 ‘성파 시조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후 봄에는 전국 시조 백일장을 열고, 가을에는 기성 시조 시인에게 상을 줘 격려했다. 성파스님은 그 자신이 뛰어난 선시와 시조 시인이기도 하다.

- 스님이 남다른 방식으로 절을 꾸려가고, 우리 전통 음식과 문화예술에 공력을 쏟을 때 불교계 안팎에서 “염불과 참선은 안 하고 절집에서 된장과 간장을 팔며 쓸데없는 취미생활이나 한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 걸로 압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명인과 고수가 계시는 곳은 불원천리 찾아가 배움을 청했습니다. 내 발길 닿은 곳이 바로 수행처(修行處)이고 학교였습니다. 가방끈이 짧으니 젊을 때부터 ‘우주 무한 대학생’이라고 자처하며 국내외 가리지 않고 스승을 찾아다녔지요. 나는 시작도 학인(學人)이고, 마치는 것도 학인인 ‘평생학인(平生學人)’이 될 겁니다. 선방(禪房)이 아니라 ‘중생의 일상’이 나의 깨우치는 자리였습니다.”

- 그렇다면 스님의 깨우침은 무엇입니까

“그건 말로 하는 게 아니고, 일상을 통해 보여줘야 합니다. 도를 깨우쳤다고 하는 어른도 계시는데, 혼자만 알고 깨우치고 즐기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른 예를 들 것도 없습니다. 부처님 일생을 보면 압니다. 부처님은 평생 천촌만락을 누비며 때로는 같이 웃고 같이 울었습니다. 이를 대자대비라고 합니다. 불교의 핵심은 대자대비의 실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반드시 모든 공덕을 중생과 나눠야 합니다. 이웃과 나누지 않는 도는 도가 아닙니다.”

스님은 이 대목에서 이례적으로 단호하게 말씀했다. 스님의 단호함을 지켜보면서 몇 해 전 강원도 유명 사찰 원로스님으로부터 “한국 불교는 깨우쳤다는 노장 스님들의 ‘갑질’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산 박대성 화백이 성파스님 종정 추대를 축하하며 제작한 작품. 제목은 원융무애(圓融無礙)다.

소산 박대성 화백이 성파스님 종정 추대를 축하하며 제작한 작품. 제목은 원융무애(圓融無礙)다.

성파스님을 곁에서 지켜보지 않은 사람들은 스님의 수많은 창작 예술품을 “재주가 약간 있는 한가하고 인자한 큰 절 권승(權僧)의 여기(餘技)”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커다란 착각이거나 무지의 소산이다. 한국 수묵화 거장인 소산 박대성(77) 화백 얘기다.

“성파스님이 이룬 16만 도자대장경, 옻칠과 천연염색, 민화와 전통 한지(韓紙) 복원 및 공예, 전통 옹기 수집과 된장·간장 담그기, 전통 한지(韓紙) 복원 등은 민중의 삶과 예술을 선(禪)의 경지로 끌어올린 위대한 구도 행각이다. 내 이름을 걸고 자신 있게 말하건대, 성파스님은 절집에서 일찌감치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고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민중의 예술과 우리 미풍양속을 끌어내 계승 발전했다. 또 민중의 언어로 말하고 하심(下心)으로 중생 속으로 들어가셨다. 한국 불교사에서 원효(元曉·617~686), 자장(慈藏·590년~658) 다음에 오실 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소산은 특히 성파스님 글씨를 ‘성파체’로 칭하면서 “성파스님은 마음과 붓과 종이가 하나 되는 경지를 아는 당대 최고 수준의 서예가”라고 높이 평가했다.

한국 불교미술의 새 경지를 개척해가고 있는 광주 무각사 주지 청학스님도 한 대목 거든다.

“오래 전 프랑스 파리 길상사 개원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승용차 한 대가 절 앞에 멈추기에 의아했는데 성파스님이 내리시더라. 고명은 들었지만 평소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절집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들었다. 스님을 모시고 온 분이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패션쇼에 최고 아티스트이자 VVIP로 초대를 받아 오신 것’이라고 해서 그런가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절에 나오는 한국 유학생들이 성파스님과 한국 전통문화에 관한 기사가 프랑스 권위지 르몽드에 대서특필 됐다며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더라. 나중에 들어보니 르몽드 기자가 한국에 취재를 왔다가 성파스님의 예술 세계와 수행 이력에 매료돼 며칠을 통도사에서 지내면서 샅샅이 취재를 해 특집기사를 실었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사람들이 성파스님 예술 세계를 잘 모르던 시절인데, 예술 도시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패션쇼에 VVIP로 초대되고, 프랑스 권위지에 크게 소개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 문화예술계 뛰어난 감식안(鑑識眼) 중 한 명인 정양모(88)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성파스님이 수행승이 아니었다면 위대한 예술가나 명장 명인이 되셨을 분”이라고 했다. 정 전 관장은 “오래전 성파스님 작업 공간을 방문했을 때 소박하고 검소한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면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너무 많은 작품을 하시는 것이 염려돼 작품을 선별해 드리면서 ‘아주 좋은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가까운 이들에게 주시라’고 했더니 그대로 실천하셨다”고 전했다.

“수행자에게는 오늘이 있을 뿐 내일은 없다”

최근 통도사를 내방해 성파 스님을 알현한 사이먼 스미스 전 주한영국대사 부부.

최근 통도사를 내방해 성파 스님을 알현한 사이먼 스미스 전 주한영국대사 부부.

여성 최초로 주(駐)영국 대사를 지낸 박은하 부산시 국제관계대사와 김원수 전 유엔 사무차장 부부는 두 달여 전 통도사 영빈관 격인 불소원(佛笑院)에서 머물며 1박 2일간 통도사 곳곳을 둘러봤다. 성파스님은 이들을 접견하며 친필 휘호와 직접 만든 스카프를 선물했다. 박 대사는 “성파스님이 조계종 종정 자리에 오르신 것은 영국으로 치면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신 것이나 다름없는 경사다. 스님이 한국 불교계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 되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3년여 동안 한국에서 근무하고 2022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이몬 스미스 주한영국대사 부부도 2021년 11월 한영협회 회원 25명과 함께 통도사를 방문했다. 이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민선식 시사영어사 회장은 “대사 부부가 한국 전통 사찰의 매력과 심오한 공간 배치, 성파스님의 예술적 안목과 소탈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성파스님 법어는 잔잔하고 평범하지만 깊이가 있다. 어렵고 난해한 법문을 하자고 들면 당대 최고 선지식(善知識)처럼 할 수 있겠으나, 대중 눈높이에 맞춰 누구나 알아듣고 한두 대목은 기억할 수 있도록 쉽고 평이한 구어체(口語體) 법문을 하신다. 또 성파스님은 다른 고승들과 달리 법어와 법문을 모두 직접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도사 방장으로서 신축년 동안거 때 내린 결제 법어 ‘일 마친 대장부의 길’을 보자.

“목숨을 아끼지 말고 조사의 공안을 참구하되 내일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수행자에게는 오늘이 있을 뿐 내일은 없다. 내일을 기다리는 자는 설사 미륵이 열반하더라도 벗어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사람 몸 받았을 때 일대사를 마쳐야 한다. 출가자로 금생에 이 일을 마치지 못하면 시은(施恩)을 갚지 못한 죄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힘쓰고 또 힘쓸지어다.”

2021년 11월 통도사에서 내는 ‘월간 통도지’에 보낸 법문은 더욱 알기 쉽다. 하지만 오묘하다.

“산에 올라가 보지 않고는 다리 힘을 모르듯이 물의 수심을 재지 않고는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수행정진을 직접 경험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혁범성성(革凡成聖)이라! 범부를 바꿔서 성인이 되는 것이라, 중생이 따로 없고 성불이 따로 없습니다. 중생이 성불하면 부처입니다. 인고의 수행 과정을 겪고 훌륭한 결과를 이룬다면 그가 바로 부처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모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왼쪽)이 2021년 11월 2일 경남 양산 통도사를 방문해 주지 현문스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통도사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과 모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왼쪽)이 2021년 11월 2일 경남 양산 통도사를 방문해 주지 현문스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통도사 제공]

2021년 11월 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모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통도사를 방문했다. 두 사람은 방장 성파스님과 주지 현문스님을 친견하고 차담을 나눴으며, 16만 도자대장경을 모신 장경각, 현문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자장암과 다실(茶室) 등을 두루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이 모자가 무슨 인연으로 통도사에 찾아와 성파스님과 현문스님을 친견하고 사중을 둘러보고 간 걸까?

통도사와 삼성 고위 관계자들을 통해 들은 바에 따르면 2021년 가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대통령의 해외순방 시기 통도사에 들렀다. 문 대통령 부부가 퇴임 후 이사할 목적으로 짓는 사저가 통도사 인근에 있다. 그 공사 현장을 둘러본 뒤 통도사에 들러 방장스님과 주지스님을 만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성파스님은 김정숙 여사에게 “이제 그만 됐으니 아무런 조건 없이 이재용 부회장을 석방해 나라 경제를 살리고 민심을 수습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대통령께서 귀국하시면 꼭 이 말씀을 전해주십시오”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숙 여사는 “대통령이 돌아오시는 대로 ‘큰스님’ 말씀을 꼭 전달해 올리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 마지막으로, 어떤 각오로 종정의 자리를 감당해 내시겠습니까?

“이제껏 살아온 그대로일 겁니다. 중노릇을 옳게 하려고 전력을 다해 온 것처럼 종정 노릇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절집 제방 스님들과 불자들이 계셔서 결코 외롭지 않은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분들과 ‘더불어 같이’ 가고 싶습니다.”

한국 불교는 유구한 역사 동안 한국인의 정신과 의식은 물론 생활을 지배해 왔다. 조계종 종정은 불교계에서 범접할 수 없는 권위와 지위를 누려왔다. 하지만 몇몇 초인적인 수행과 법력을 가진 큰스님의 ‘막행막식(莫行莫食)’과 ‘무애행(無碍行)’이 깨우침과 성불의 증표인 것처럼 여기는 풍토가 한국 불교계를 지배하면서 폐해를 남긴 것도 사실이다. “중노릇 하나만 옳게 하면 그게 바로 수행이요 성불”이라는 마음으로 청정비구로 일관하면서 오직 한국 전통 예술과 민중 생활 복원·재창조·발전에 용맹정진(勇猛精進)해 온 성파 새 종정 스님에게 한국 불교계와 사회 전체가 유달리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이유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귀하고 좋은 어른이 만장일치로 새 종정으로 추대되셨다. 열과 성을 다해 잘 모시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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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22년 1월호

오명철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사)우리글진흥원 고문 omc12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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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학인(學人), 선방(禪房) 아닌 ‘중생의 일상’이 깨우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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