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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토착왜구와 싸운다는 妄想이 민주당 망가뜨렸다

[금태섭의 In & Out]

  • 금태섭 前 국회의원

친일파·토착왜구와 싸운다는 妄想이 민주당 망가뜨렸다

  • ● 민주당 의원들은 실익도 없는 일을 왜?
    ● 지지층 결집 위한 캐치프레이즈
    ● 조국·최강욱 내용 없는 사과의 이면
    ● 동문서답 정치의 비극
    ● 세상은 협력하고 경쟁하며 공익 추구하는 곳
경쟁을 적대관계로 부추기는 포스터.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경쟁을 적대관계로 부추기는 포스터.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더불어민주당이 기를 쓰고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던 시기에 많이 듣던 질문이 있다.

“도대체 민주당 의원들은 무슨 생각인가요? 어차피 정권이 바뀐 이상 새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경찰을 동원해서라도 전(前) 정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을 텐데 검찰 수사권만 빼앗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실익도 없는 일을 왜 할까요?”

누구나 상식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대통령은 검찰뿐 아니라 경찰, 고위공직자법죄수사처(공수처) 인사권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법무부 장관은 언제든지 상설특검을 지명해 수사를 시킬 수 있다. 말하자면 검수완박은 흔히 떠올리는 ‘문재인 지키기’ ‘이재명 지키기’에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조치다. 이런 일에 여론의 비판을 받아가며 정치적 자원을 소모하는 행태는 합리적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누가 봐도 무리한 일 추진한 이유

4월 27일 박광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른바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가결시키고 있다. [뉴스1]

4월 27일 박광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른바 ‘검수완박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가결시키고 있다. [뉴스1]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전체 그림의 한 단면만 보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민주당의 지도부나 의원들도 바보는 아니다. 누가 봐도 무리한 일을 추진하는 데는 이유와 목표가 있다. 검수완박의 경우 그것은 지지층의 결속이다.

민주당이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세계는 선악으로 선명히 구분되는 곳이다. 한쪽에는 민주당, 시민단체, 스스로 ‘깨어 있는 시민’으로 부르는 지지층이 있다. 반대쪽에는 국민의힘, 보수 언론, 기득권층이 있다. 실제로는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고 보기 힘든 ‘친일파’ ‘토착왜구’도 여기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세계관 아래에서 선거를 치르면 당연히 민주당이 속한 쪽이 이겨야 한다. ‘선한 세력’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친일파에 넘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서 ‘이번 선거는 한일전이다!’라는 포스터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건강한 경쟁 세력이어야 할 여야의 관계를 절대적 선과 악의 적대적 관계로 변질시키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런 전략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귀에 쏙 들어오는 쉽고 간명한 구호가 필요하다. 검수완박은 그런 정치적 구호의 의미를 갖는다.

검수완박이 어떤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지지층 결집을 위한 캐치프레이즈의 기능을 한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드러난다. 우선 법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조차 잘 모르고 큰 관심이 없다. 사실 형사절차에서 기소권과 수사권을 어떻게 분배하고 배치할 것인지,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하는 것은 극히 전문적 내용이다. 한 마디 구호로 요약하기 힘들다. 대륙법계 국가와 영미법계 국가의 제도가 다르고 그 안에서도 각국의 역사와 전통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나뉜다. 미국만 하더라도 경제사범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가 활발한 뉴욕 남부 검찰청과 다른 주의 실무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검수완박 법안은 제대로 된 토론도 거치지 않은 채 민주당의 당론이 됐다. 정치적 구호에 내용이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들이 처음 발의한 법안과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동일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내용이 크게 다르다. 그야말로 졸속으로 법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너무나 조잡한 부분은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단계에서든지 검수완박 법안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검찰 기득권을 옹호하는 반(反)개혁의 저항으로 치부된다. 검수완박은 대한민국의 형사절차를 개선하려는 목적을 가진 수단이 아니라 찬성과 반대로 국민을 편가르기 하고 자기편을 결집하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법안 내용은 얘기하지 말고, 할 건지 말 건지만 논의합시다”

영화 ‘그대가 조국’ 포스터. [엣나인필름]

영화 ‘그대가 조국’ 포스터. [엣나인필름]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이 정책이나 법안을 제안하면서 그 실질적 효과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적 구호로만 활용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과거 절대선처럼 추진하던 정책들이 오히려 개혁과는 반대의 효과를 낳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특히 그렇다. 대표적 예가 임대차 3법이다. 집 없는 세입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밀어붙였지만, 실제로는 임차료를 올리고 연쇄적으로 집값까지 급등시켰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단 1표의 이탈도 없이 임대차 3법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의원들의 머릿속에 있는 세계에서 그 법안은 ‘부동산 투기꾼을 옹호하는 악의 세력’과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하는 개혁 세력’을 가르는 기준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법 때문에 서민들이 오히려 고통받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관심 사항이 아니다.

민주당 소속 의원이던 시절 공수처 표결에서 기권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강경파들로부터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받고 끝내 당의 공식적 징계까지 받았을 때 개인적으로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기권으로 법안 통과에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압도적 표차로 통과되는데 왜 그렇게 질색을 할까. 나중에 공수처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 돌이켜 생각해 보고 깨달았다. 공수처는 단순히 하나의 제도나 정책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으로서 검찰개혁 그 자체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선과 악을 나누는 징표였다. 민주당 의원 중에 그런 공수처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들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수처 입법 과정에서 예상되는 구체적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면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고 “법안의 내용은 얘기하지 말고 할 건지 말 건지만 얘기합시다”라고 토론을 막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현재 공수처가 실제로 얼마나 한심한 모습인지에 대해서 철저히 외면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분석해 봐야 하는 민주당의 전형적인 행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동문서답 정치’다. 최근에 있었던 전형적 예가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발언 파문이다. 사실 이 사건이 최초로 보도됐을 때 정치권의 주요 인사들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심각하게 다룰 사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상임위에 속한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이 참여한 회의에서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것인데 당사자가 깨끗이 사과하면 끝날 일이었다. “제가 별생각 없이 어처구니없는 실언을 했습니다. 발언을 듣고 상처를 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입장을 밝혔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잊혔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일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성희롱 문제 제기하면 성적 욕망 들끓는 사람?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먼저 의원실에서는 성희롱성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정면으로 부인했다. 동전으로 하는 내기를 가리키는 “짤짤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듣는 사람들이 오해했다는 것이다. 시인 류근 씨는 심지어 최 의원의 당고모는 소설 ‘혼불’을 쓴 최명희 작가로서 최강욱 의원이 구사하는 언어는 고급스럽고 빈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성적 모멸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를 썼을 리가 없다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짤짤이에서 자동적으로 성적 시그널을 떠올렸다면 심리적으로 (듣는 이의) 내부에 늘 그러한 욕망이 들끓는 것일 수도 있다”고 피해자들을 공격했다.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했다가 졸지에 성적 욕망이 들끓는 사람이 돼버린 피해자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사실관계 확인에 착수하고 윤리심판원에 징계 절차를 조회한 것으로 알려지자 최 의원은 사건 1주일 만에 당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의도된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나의 발언으로 정신적 고통을 입은 우리 당 보좌진들께 사과드린다. 앞으로 공사의 자리를 불문하고 정치인으로서 모든 발언과 행동에 더욱 신중을 기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최 의원이 한 번도 문제의 성희롱성 발언을 했는지 여부를 정면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는 “짤짤이”라고 했는데 오해를 샀다는 뜻인지 혹은 성희롱성 단어를 써서 미안하다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만약 문제 된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애초에 의원실에서 나온 반박은 거짓말이 되는 셈인데 이에 대한 해명도 없다. 사건 이후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당의 공식 입장도 없다. 피해자들은 사과에 앞서 그런 발언을 했다고 인정하는 얘기를 듣고 싶겠지만, 최 의원의 대답은 그저 내용 없는 사과에 그쳤다.

“GSGG는 욕설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최 의원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의에 참석한 보좌진이 서로 확인이나 의논도 안 해보고 자기 당 국회의원에게 성희롱이라는 문제 제기를 했겠는가. 문제는 이런 일이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민주당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8월,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소위 ‘언론개혁법’을 상정하지 않는 박병석 국회의장을 비난하면서 SNS에 GSGG라는 글자를 올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봐도 ‘개XX’라고 욕설을 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실제로 윤호중 원내대표와 김승원 의원 본인이 국회의장을 찾아가서 공개적으로 사과도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한 번도 자신이 국회의장에게 욕설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한 일이 없다. GSGG가 욕설이 아니라 “Government serve general G”의 약자라는 해괴한 변명을 했을 뿐이다. 만일 GSGG가 정말로 그런 의미라면(사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영어 단어의 나열일 뿐이지만 어쨌든 욕설은 아니라면) 애초에 사과할 이유도 없다. 공개 사과를 했다는 것은 욕설을 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인데, 그럼에도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다.

박지현 민주당 비대위원장으로부터 사과 요구를 받은 조국 전 장관도 마찬가지다. 조 전 장관은 “제 가족과 달리 교수 부모가 제공한 인턴·체험활동의 기회를 갖지 못한 분들께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당시 젊은 세대가 분노한 것은 단지 조 전 장관의 자녀들이 인턴, 체험활동의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격하기 짝이 없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왔으면서도 스스로는 문서를 위조해 가며 입시 부정을 저지른 행태, 전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거듭한 뻔뻔스러움에 충격을 받고 격분한 것이다. 그러나 박지현 위원장이 무엇을 사과하라는지 모를 리 없는 조 전 장관은 엉뚱한 얘기만을 계속한다. 그는 “또 사과하라고 하면 수백 번이라도 하겠다”라고 말했는데, 틀림없이 핀트가 어긋난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동문서답의 전형이다.

‘성누리당’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

2020년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재석 의원 287명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스1]

2020년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이 재석 의원 287명 가운데 찬성 187명, 반대 99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스1]

왜 이러는 것일까. 민주당 국회의원들이나 전직 장관이 하나같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처럼 딴소리를 할까. 여기에도 그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다.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첫째는 일종의 선민의식이 무심결에 튀어나온 것일 수 있다. ‘보좌진과 하는 회의 도중에 성희롱 발언을 하는 것은 ‘성누리당’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개혁 세력이 모인 민주당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은 민주당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민주당 인사들이 한결같이 동문서답을 반복하는 것은 이런 선입견이 얼마나 깊게 체화돼 있는지 보여준다.

둘째는 전략적 고려다. 민주당 강경파는 정치를 우리 편과 상대편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고 싶어 한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은 그런 구도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 우리 편의 문제에는 눈을 감고 상대방의 실책만을 지적해야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대선, 지선을 연달아 패했으면서도 반성하고 성찰하자는 얘기가 나오면 ‘수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구상이 과연 먹힐까.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민주당은 집권 여당일 때보다 야당일 때 더 능력을 발휘하는 정당이다.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보수의 잘못을 기회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는 항상 능란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명박 정부 때 광우병 파동,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 참사 이후의 전개를 보면 민주당의 강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바로 민주당 ‘동문서답 정치의 비극’이 있다. 싸우고 저항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기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 모두 거론할 만한 성취를 남기지 못했다. 민주당이 이 모순을 뛰어넘지 못하면 집권을 연장해 나가는 실력 있는 정치세력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국 정치가 건강해지려면 민주당이 활기를 되찾고 잘돼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동문서답을 하면서까지 정치를 대결 구도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은 민주당 스스로 망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부 민주당 인사들의 망상과는 달리, 서로 협력하고 때로 경쟁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가는 곳이지 ‘친일파’ ‘토착왜구’와 싸우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바뀌기를 기대한다.



신동아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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