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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국’ 터키의 민낯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황승경의 Into the Arte] 영화 ‘더 프로미스(The Promise)’

  •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형제국’ 터키의 민낯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 혐오는 광기를 촉매 삼아 폭력으로 발화한다. 연옥의 불꽃처럼 맹위를 떨치는 살기(殺氣)에 인간의 존엄은 가축의 그것보다도 하찮게 바스라진다. 100여 년 전 스러져간 이들의 절규와 현세(現世)의 울부짖음이 다를 게 있을까. 기억에서 잊히고 만 참극의 아리아는 역사의 도돌이표를 타고 영겁(永劫) 동안 반복되게 마련이다.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은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이다. 최소 100만 명에서 최대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살해당했다. [누리픽쳐스]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은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이다. 최소 100만 명에서 최대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살해당했다. [누리픽쳐스]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했다. 특히 러시아군이 부차학살(올해 4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에서 민간인 650여 명을 사살한 사건)을 자행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노사이드(genocide·인종청소)를 추진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제노사이드는 인종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genos’와 살인을 나타내는 ‘cide’가 결합된 것으로서 특정 국가나 종족, 인종 등을 파괴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집단 살상을 의미한다.

反지성의 결정체, 제노사이드

이전부터 바이든 대통령은 인권 문제에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 4월 24일 아르메니아 집단학살(1915~1916년 오스만제국 계획·실행하에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사건)을 ‘제노사이드’로 지칭했다. 최근 40여 년 동안 미국 정부는 터키의 반발을 우려해 이 문제를 쉬쉬해 왔다.

학살로 인해 프랑스, 독일, 캐나다, 미국, 이탈리아, 러시아 등 107개국으로 뿔뿔이 흩어진 아르메니아 후손은 10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선조의 고통과 애환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켜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려 했다. 세대를 거치며 100년 넘게 멈추지 않고 기록했다.

영화계를 예로 들면 2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됐다. 학살을 두 눈으로 목격한 피해자 오로라 마르디가니안(1901~1994)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출연까지 한 ‘강간당한 아르메니아’(1919)와 1991년 아르메니아 출신의 거장 앙리 베르누이(1920~2002)가 메가폰을 잡은 자전적 영화 ‘메이리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영화 ‘더 프로미스’ 포스터. [누리픽쳐스]

영화 ‘더 프로미스’ 포스터. [누리픽쳐스]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 카지노 재벌이자 기업투자가인 억만장자 커크 커코리언(1917~2015)이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100주년 추모를 위해 작심하고 제작비를 전담한 ‘더 프로미스’(2016)가 단연 백미다. 아무리 말살하려 해도 억새풀처럼 질기게 버티며 세계에 뿌리내린 아르메니아인들의 생명력을 잘 그려냈다. 약소민족이 당한 고통을 읊조리는 게 다인 영화가 아니다. 잔악한 역사와 인간 존엄을 해치는 반(反)지성을 고발한다.



 영화 ‘더 프로미스’는 가상의 도시 ‘시룬’을 설정해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사건을 생생히 재현했다. [누리픽쳐스]

영화 ‘더 프로미스’는 가상의 도시 ‘시룬’을 설정해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사건을 생생히 재현했다. [누리픽쳐스]

‘더 프로미스’의 감독 테리 조지(69)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북아일랜드 출신으로서 10대 후반부터 조국의 해방을 꿈꿨다. 아일랜드민족해방군(INLA)에서 활동하다 1975년에 체포돼 6년형을 받았고, 3년 만에 가석방돼 1981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4년 뒤엔 수감 생활 중 탈옥 경험을 바탕으로 연극 ‘더 터널’의 각본을 쓰며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1993년엔 대니얼 데이 루이스 주연의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에 극본 겸 조감독으로 참여해 영화계에 데뷔했다.

고난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아르메니아인을 보며 조국 아일랜드를 떠올린 걸까. 조지 감독 특유의 묵직한 디아스포라(모국을 떠나 타국에서 흩어져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감성이 영화 ‘더 프로미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더 프로미스’는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이슈화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오판과 외면이 불러온 殺傷

영화 ‘더 프로미스’가 재현한 오스만제국의 도시 풍경. [누리픽쳐스]

영화 ‘더 프로미스’가 재현한 오스만제국의 도시 풍경. [누리픽쳐스]

영화는 1914년 터키 남부 ‘시룬’이라는 평화로운 가상 도시에서 시작한다. 조지 감독은 터키의 이의 제기를 대비해 아예 지도상에 없는 가상의 목가마을을 설정했다(시룬은 아르메니아어로 ‘아름다움’을 뜻한다).

주인공 미카엘 보고시앙(오스카 아이작)은 아르메니아인이다. 약재상으로 일하며 200년 동안 내려오는 가문의 비법으로 약을 조제했지만 한계를 느낀다. 체계적으로 의학을 배우길 갈망해 콘스탄티노플 황립의과대 입학을 결심한다. 태어나 처음 콘스탄티노플에 이른 미카엘은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대도시의 이국적 풍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부유한 숙부의 집에 머물며 도시 생활에 빠르게 적응한다. 조카들의 가정교사인 아나 케사리언(샬롯 르 본)과 교우하고 의과대학에서 오스만 고관대작의 자제인 엠레 오간(마르반 켄자리)과도 친구가 된다. 프랑스 소르본대 출신의 아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오페라 ‘라보엠’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을 들으며 신문에 게재할 삽화를 그리고 발레를 춘다. 미카엘은 아나의 모습에 매료된다.

1844년 오스만제국이 시행한 마지막 인구조사에서 아르메니아인은 240만 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아르메니아인이라고 해도 거주지역과 계층에 따라 경제적 지위가 천차만별이었다. 미카엘의 숙부처럼 최상류층이 된 사람도 있었고, 아나처럼 외국에서 예술을 공부한 엘리트도 있었다.

아나는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파리에서 되돌아와 고향에서 정착하고자 한다. 남자친구이자 AP통신 기자인 미국인 크리스(크리스티안 베일)와 함께 살지만 성격 차이로 다툼이 잦다. 크리스는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열혈 기자지만 알코올의존증과 다혈질이 항상 문제다. 미카엘의 숙부는 미카엘에게 “지참금에 그 절반을 더 얹어서 주겠다”며 고향에서 맺은 약혼을 파하고 아나와 만나길 권유한다. 미카엘은 약혼녀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고 단번에 거절한다.

20세기 초반 러시아가 남하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며 흑해 지역에 군사 증대를 계획하자 오스만제국은 재빨리 영국에 신형 군함을 발주한다. 그러나 1914년 7월 갑작스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일방적으로 약속을 어긴다. 오스만제국인의 반영 감정은 극에 달한다. 중립을 고수하던 오스만제국은 독일과 손을 잡고 전쟁에 참여하려 한다.

이즈음 오스만 군대의 이동 노선에 수상함을 느낀 크리스는 아나에게 호텔을 절대 벗어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하고 지방으로 취재를 떠난다. 취재 중 끔찍한 학살 현장과 강제이주 행렬을 마주하곤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오스만제국은 전형적 다종교·다민족 국가다. 역사적으로 오스만제국 내 비(非)무슬림은 갖은 차별과 멸시를 당하며 높은 세금에 시달렸다. 19세기 후반 발칸반도의 여러 기독교 국가들이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아르메니아는 상대적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다른 민족과 달리 아르메니아인은 무슬림과 섞여 전국에 퍼져 거주했기에 지역적으로 아르메니아의 독립을 규정하기 모호했다.

또 아르메니아는 세르비아나 불가리아가 택한 봉기, 혹은 민중투쟁의 형식이 아니라 평화적 외교로만 자치행정을 이루려고 했다. 오스만제국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 없었을뿐더러 국제 정세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를 지극히 순수한 이상으로만 바라본 아르메니아 지도자들의 판단 오류였다. 서구 열강 처지로선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은 아르메니아 문제로 오스만제국의 심기를 건드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1878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오스만제국은 베를린 조정회의에서 아르메니아인의 안전 보장을 약속했다. 평화는 잠깐이었다. 국제사회가 아르메니아에 더는 관심을 가지지 않자 오스만제국은 1895년부터 거리낌 없이 아르메니아인을 살상했다.

홀로코스트로 되풀이된 비극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당시 아르메니아인은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 앞에 철저히 무시당했다. [누리픽쳐스]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당시 아르메니아인은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 앞에 철저히 무시당했다. [누리픽쳐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제국 내 모든 아르메니아 청년은 군대에 징집됐다. 당연히 미카엘도 징집 대상이었지만 엠레의 도움으로 병역을 피한다. ‘붉은 일요일’로 명명된 1915년 4월 24일 오스만제국은 전시 상황 비상계엄령을 이용해 아르메니아 민족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 성직자, 경제인을 모아 모두 처형해 버린다.

이는 집단학살의 서막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메니아인 남자는 강제 징집돼 바로 총살되거나 징용을 당해 공사 현장에서 노동하다 집단 사살됐다. 남은 여성과 노인, 어린이는 척박한 시리아 사막으로 추방돼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나갔다.

벼랑 끝 흙 한 줌 위에도 꽃은 피는 법. 미카엘과 아나는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다 거리에서 오스만 군중시위대와 마주쳐 위기에 처한다. 가까스로 광기 어린 무리를 피한 두 아르메니아 남녀는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사랑을 확인한다. 다음 날 숙부의 체포 소식을 들은 미카엘은 엠레에게 부탁해 남은 돈을 모두 갖고 국가안보국을 찾는다. 뇌물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체포돼 트로스 산맥의 철도공사 노동교화소에 수용되고 만다.

미카엘은 열악한 공사 현장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다. 폭발사고의 어수선한 틈을 타 겨우 도망쳐 고향을 향해 여정에 나선다. 달리는 기차 지붕에 매달려 숨을 돌리려는 찰나, 어디선가 요란한 비명이 들린다.

미카엘은 기차 짐칸 내부에 빼곡하게 실린 아르메니아 동포들이 내리는 빗물에 조금이라도 몸을 적셔 보려고 철조망 창문으로 팔을 내미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 장면은 마치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3)의 한 장면과 매우 유사하다. 홀로코스트(유대인 절멸을 위해 아돌프 히틀러의 주도 아래 그 협력자들이 동참해 벌인 조직적 집단학살)의 원흉 히틀러는 저서 ‘나의 투쟁’에서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거론하며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잊히니 부강한 국가권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국제사회가 좀 더 깨어 있는 시대정신을 함양하고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임했더라면 홀로코스트가 되풀이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감독의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집에 돌아온 미카엘은 어른들에 떠밀려 약혼자 마랄(안젤라 사라피언)과 결혼식을 올리고 산속 깊은 곳의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긴다. 아나를 잊지 못해 마음이 무겁지만 이내 마카엘은 마랄과 안정을 찾고 산속 생활에 적응한다.

힘의 논리가 곧 正義인 현실

영화 ‘더 프로미스’에서 집단의 광기 앞에 주인공들의 안식은 힘없이 바스러지고 만다. [누리픽쳐스]

영화 ‘더 프로미스’에서 집단의 광기 앞에 주인공들의 안식은 힘없이 바스러지고 만다. [누리픽쳐스]

한편 콘스탄티노플에 남은 미카엘의 숙모와 조카들이 아나와 크리스의 도움을 받아 미카엘의 고향에 찾아온다. 마침 임신한 마랄이 위중하자 미카엘은 마랄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온다. 아나와 크리스가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미카엘은 이번이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한다. 오매불망 미카엘을 기다리던 아나는 미카엘의 결혼 소식에 큰 충격을 받지만 미카엘의 가족이 고아들과 무사히 구출선을 탈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새 군인들이 고향에 들이닥쳐 살육을 자행한다. 살해당한 아내와 가족의 시신을 본 미카엘은 피를 토하며 절규한다. 충분히 슬퍼할 틈도 없이 미카엘 일행은 다시 군인들과 맞닥뜨리고 이 과정에서 크리스가 붙잡힌다. 크리스는 엠레가 미국대사관에 그의 체포 소식을 알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크리스는 몰타로 추방돼 목숨을 건지지만 엠레는 반역죄로 총살당한다.

영화는 아르메니아인의 처참한 절망과 고통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투지도 함께 조명한다. 아르메니아 피난민은 오스만제국군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는다. 양떼처럼 그들을 따라가다 떼죽음당하지 않고 무사다흐산 등성이에 은신처를 만든다.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도 최후까지 싸우리라 결사항전 의지를 천명한다. 미카엘은 복수심에 치를 떨지만 아나는 “살아남는 것이 곧 복수”라며 그를 위로한다.

포화 속에서 아르메니아인을 구하려는 프랑스 전함이 가까스로 도착한다. 전쟁고아를 비롯한 아르메니아 난민 4000여 명이 구조된다. 미카엘은 조카 예바와 함께 살아남지만 아나는 끝내 전함에 오르지 못한다. 영화는 “한 민족을 산산조각 냈지만 그들은 두 명만 만나면 새로운 아르메니아를 건설해 다시 웃고 노래하고 기도할 것”이라는 문구로 마무리를 장식한다. 아르메니아계 미국 작가 윌리엄 사로얀(1908~1981)의 단편소설 ‘아르메니아인과 아르메니아인’의 한 구절이다.

터키는 아직도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집단이주 과정에서 나온 이민족 간의 단순 소요(騷擾)라고 주장한다. 6·25전쟁 때 어깨를 맞대고 싸운 전우이자 ‘형제국’으로 여겨지는 터키의 섬뜩한 과거가 어색하기만 하다. 아직 많은 국가가 정치·경제적 이유로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근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집단학살 논쟁의 한가운데 선 러시아가 정작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전 세계에서 3번째로 인정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황승경
● 1976년 서울 출생
● 이탈리아 레피체국립음악원 디플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성균관대 공연예술학 박사
● 국제오페라단 단장
● 前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리포터, 월간 ‘영카페’ 편집장
● 저서 : ‘3S 보컬트레이닝’ ‘무한한 상상과 놀이의 변주’ 外



신동아 2022년 7월호

황승경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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