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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희망이라는 우량주

  • 양동혁 작가

[에세이] 희망이라는 우량주

아침부터 친구 녀석이 전화를 했다. 받지 못했다. 휴대전화 메시지 창에는 단어 한 개와 그 뒤로 점 여러 개가 찍혀 있었다. 며칠 전 그 녀석에게 얘기한 주식이었다. 나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 그 주식을 샀다. 녀석에게 전화를 바로 걸었다.

“그 주식 날아간다.” 녀석은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운전 중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저 위로 훌훌 나아가고 있다는 말인가. 기분이 좋아졌다. 쌈짓돈까지 투자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서둘러 주식 앱을 켜고 확인했다. 그런데 ‘날아간다’가 아니라 ‘날라간다’였다. 주식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 서둘러 팔았다. 혹시 내가 모르는 악재가 있었나. 오늘 새벽 잠들기 전까지는 없었다. 다시 확인해 볼 여유는 없었다. 팔고 더 떨어졌을 때 다시 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팔자마자, 거짓말처럼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생활비보다 많은 120만 원을 날렸다.

동아줄

2년 전 코로나19가 막 퍼질 때 즈음 주식을 시작했다. 저축한 것도 없고 노후 준비도 돼 있지 않았다. 통장 잔고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침울해졌다. 만나던 사람과도 헤어졌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불편해졌다. 그러다 녀석에게 신세 한탄했다. 녀석은 비밀이라며,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고 지금도 계속 벌고 있다고 했다. 주식 계좌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얘기였다.

그때 녀석이 알려준 방법은 한 달에 한 번씩, 여유 될 때마다 삼성전자 같은 우량주를 사라는 거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런 건 관심 없다고 했다. 오래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 도박이나 주식 같은 건 집에서 금기 사항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웃으면서 주식은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주식은 도박이 아니라 적금이라고. 은행보다 이자가 훨씬 높은 적금에 든다고 생각하고 여윳돈으로 매달 조금씩만 사면 그게 1년 뒤, 10년 뒤에는 꽤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우량주는 결국 오른다고. 우리 같은 소시민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는데, 유튜버가 되거나 주식이나 코인을 사는 것.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매달 허리띠를 졸라매고 주식을 샀다.



[Gettyimage]

[Gettyimage]

경제적 자가격리

처음에는 꽤 괜찮았다. 복리의 마법은 위대했고 이걸로 인생 역전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상상에 빠졌다. 10만 원 언저리로 시작해서 이 정도 수익이면, 100만 원, 1000만 원, 1억 원이면 생활비 걱정은 평생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무리해 금액을 늘렸다. 미래가 장밋빛으로 보였다. 때는 작년 6월, 코스피가 3300 역대 최고치를 찍었을 때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식이 폭락했다.

언론에서는 금리 인상이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니 하면서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서 파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곧 다시 복구될 것이라고 믿었다. 오히려 지금이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간이라 더 사야 한다고…. 알다시피 주식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내가 산 주식만 떨어진 게 아니라 주식 대부분이 떨어진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 탓에 코로나19에 걸린 것처럼 경제적 자가격리 상태에 놓였다. 주식을 하면서 없는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모임이나 술 약속은 물론 문화생활도 끊었다. 그러다 승부수를 띄웠다. 모든 주식을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한 종목을 전부 사들였다. 아무리 시장이 좋지 않아도 오르는 주식은 오르는 법이었고, 공포에 사고 환희에 팔라는 말이 있었다. 공포심이 극에 달해 투자자들이 체념하거나 포기할 때, 주가가 바닥을 칠 때가 기회다, 그때 주식을 사야 한다는 말이었다.

고르고 고른 주식이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아무리 코스피가 떨어져도 그 주식은 괜찮았다. 아침에 그 전화만 아니었으면 수익 실현도 가능했다.

녀석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저녁에 집에서 밥이나 같이 먹자고 했다. 술이나 좀 사 오라고 했더니, 금주 중이라고 했다. 녀석은 과체중에 의한 통풍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러면서 고기를 먹자고 했다. 아무튼 녀석은 고기를 잔뜩 싸 들고 왔다. 나는 최선을 다해 흡입했다. 술이 없어서인지 고기가 술술 들어갔다. 녀석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

겨우 120만 원이었다. 적어도 하늘이 무너지는 액수는 아니었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렇지, 그 120만 원 때문에 이렇게 속이 타들어 가는 게 처량했다. 내가 120만 원의 가치밖에 없는 우스운 인간이 된 거 같았다. 제대로 된 경제활동도 하지 못하는 잉여가 주식에 빠져서 돈까지 날려 먹었다. 도박해서 돈을 잃은 것처럼 정말 낙오자가 된 것 같았고 그게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웠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한동안 화병을 앓았다는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할아버지도 통풍에 걸린 친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녀석이 무슨 일 있느냐며 표정이 좋지 않다고 했다. 나는 툴툴거리며 급하게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배가 아프다고 둘러댔다. 실제로 속이 안 좋기도 했다. “욕심을 버려. 욕심 부리는 만큼 손해 봐.” 녀석이 말했다. 녀석은 배가 아프다는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사실 그게 맞기도 했지만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 괜히 화장실에 다녀왔다.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녀석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급하게 많이 먹을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만 먹을 생각해.” 녀석이 고기를 구우며 말했다. 나는 유튜브로 아이유 음악을 틀고 겨우겨우 마음을 다스렸다. 이번에 손해 본 건 수강료다. 그래도 손해 본 게 120만 원뿐이라 다행이다. 잃은 것 이상으로 고민하고 배웠으니 괜찮은 건 개뿔, 속이 더 쓰려왔다. 내가 저 뚱뚱보보다 뭐가 못나서 이렇게 지지리 궁상인지 울컥 화가 치밀었다.

“사실 나 이번에 1000만 원 정도 손해 봤다.” 화를 낼 틈도 없이 녀석이 말했다. 순간 명치에 걸려 있던 고기가 쑥 내려갔다. 녀석은 바닥인 줄 알고 샀는데, 계속 떨어진다면서 더는 바닥이 보이지 않아 결국 손해 보고 팔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식은 예측이 아니라 대응이라며, 익절보다 손절을 잘해야 한다면서,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발을 빼고 지켜봐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했는데….

그것보다 친구가 손절했다는 주식 이야기가 들으면 들을수록 솔깃했다. 우량주에 재료까지 좋다고 했다. 공포에 사라는 말이 떠올랐다. 주식은 모두 비관하고 팔 때가 가장 사기 좋은 때라고 했다. 시기가 좋지 않아 잠시 주춤하더라도 성장성 있는 우량주는 언젠가 날아오르게 돼 있다. 녀석에게 그 주식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녀석은 혹시라도 살 생각하지 말라고, 지금은 시장이 좋지 않다며 하수가 섣불리 덤비면 안 된다고 했지만,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인생, 지금은 어차피 답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이야말로 인생 역전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로또를 사는 거보다는 확률이 높다. 이번에 사는 건 그저 그런 주식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우량주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이지만, 조금씩 꾸준히 사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반등할 것이다.



신동아 202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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