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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5위 롯데 창업주 장남 신동주 몰락 풀 스토리

日 법원 “신동주는 경영자로서 부적격, 준법 의식 현저히 결여”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재계 5위 롯데 창업주 장남 신동주 몰락 풀 스토리

  • ● 경영 스타일·성과·부친과의 관계 집중 분석
    ● 해임 관련 日 법원 판결문 2건 심층 취재
    ● ‘금단의 열매’, 몰래카메라 관련 사업
    ● 3년간 임직원 e메일 몰래 받고 내놓은 변명
    ● 후계자는 20년 전 이미 정해져 있었다
2016년 11월 4일 서울 청진동 그랑서울 18층 SDJ코퍼레이션 회의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홍중식 기자]

2016년 11월 4일 서울 청진동 그랑서울 18층 SDJ코퍼레이션 회의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 중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홍중식 기자]

롯데그룹의 겨울은 길었다. 재계 5위 위상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장바닥을 나뒹굴었다. ‘풍전등화’ ‘위기’ ‘빨간불’….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창업주의 장남과 차남이 정면충돌했다. 장남이 포문을 열고 차남이 맞서야 했던 기이한 구도였다. 차남에게는 우회로가 없었다. 말과 말이 피 튀기며 부딪쳤다. 누군가는 진부한 비유를 끌어와 ‘왕자의 난’이라 칭했다. 전쟁의 끄트머리에서 장남이 그룹에서 쫓겨났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언론이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형제 간 대치를 보도한 결과다. 족히 수만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파편적 보도가 난무했다. 문제를 촉발한 장남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소송에서는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널리 알려진 적이 없다.

이 기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신동아’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하 존칭 생략)의 성향이나 경영 스타일, 성과, 해임이라는 비극에까지 이르게 된 비화를 취재했다. 이를 위해 롯데그룹 관련 사료와 기사, 관련 인물들의 증언을 모았다.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신 전 부회장 해임과 관련한 일본 법원의 판결문 2건도 입수했다.

구순의 아버지를 이용한 장남

2015년 10월 8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오른쪽)이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면서 입장 발표를 부인 조은주 씨에게 부탁하고 있다. [동아DB]

2015년 10월 8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오른쪽)이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면서 입장 발표를 부인 조은주 씨에게 부탁하고 있다. [동아DB]

겨울이 오기 전엔 평화로웠다. 겉으로는 그랬다. 장남이 일본, 차남이 한국 사업을 주도하고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총괄하는 구조였다. 신동주는 1987년 일본 롯데상사에, 신동빈 현 롯데그룹 회장은 1990년 한국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에 입사했다.

2014년 12월은 롯데그룹에 변곡점으로 기록된 해다. 이때부터 이듬해 1월까지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 각 사의 이사직에서 해임됐다. 후계 구도는 ‘신동빈 원톱’으로 정리됐다. 상황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2015년 7월 말 신동주가 일부 가족을 앞세워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다.



개인 신동주의 성향을 고려하면 의아한 일이었다. 그와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일본 롯데그룹의 한 직원은 “신 전 부회장은 항상 안정을 추구했고 직원들에게 성장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도 자주 했다”면서 “혼자 결정을 잘 못 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에, 뭔가 생각을 하다 이내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무엇이 ‘소심한 신동주’를 움직였을까. 이와 관련해 2015년 10월 8일의 장면은 상징적이다. 이날 신동주는 경영권 분쟁의 전초기지 노릇을 할 SDJ코퍼레이션 설립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아내인 조은주 씨가 동석했고 통역을 맡았다. 이후 조씨는 경영권 분쟁 국면마다 얼굴을 드러냈다.

다른 대기업도 으레 경영권 분쟁을 겪었으나 배우자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재계에서는 신동주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조씨에게 의존한다거나, 조씨가 분쟁 국면을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실제 조씨는 이후 SDJ코퍼레이션과 광윤사의 임원으로도 등기됐다. 관련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 측이 롯데그룹을 위기로 몰아넣기 위해 진행한 각종 회의에도 조씨가 대부분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시곗바늘을 다시 8개월 앞으로 돌려보자. 2015년 2월 신동주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신 명예회장이 만나지 않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전달했으나 장남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93세의 고령이던 신 명예회장은 정신건강이 온전치 못했다. 이런 아버지를 통해 반전의 기회를 모색했던 걸까. 그런 의구심이 들 법한 일이 연달아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해 7월 27일 신동주는 신 명예회장을 일본으로 데려간다. 경영권 회복을 위해 아버지를 이용한 ‘쿠데타’를 시도한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신동주는 무단으로 녹음한 신 명예회장 육성을 공개하고(2015년 8월 1일), 비공개 장소인 집무실에 기자들을 들여 연출된 사과문을 공개했으며(8월 2일), 조력자인 민유성 전 KDB산업은행장 등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들을 끌어들여 롯데호텔 신관 34층 집무실 물리적으로 장악했다(10월 20일).

‘신동주 집무실’이 되자 아버지의 수행원들이 빈번히 교체됐다. 2년도 안된 시점에 총 4명의 비서실장이 임명됐다. 평균 근무기간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 신동주가 임명한 비서실장은 롯데그룹 직원이 아닐뿐더러 신 명예회장 보좌 경험도 전무했다.

2016년 10월에는 신동주가 아버지의 간병인 9명을 전원 교체한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간병인들은 2014년 신 명예회장이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곁을 지킨 인물들이다. 이와 관련해 전직 롯데 임원은 “보좌진의 잦은 교체 탓에 신 명예회장께서 스트레스를 받으셨고, 그로 인해 면역력까지 떨어진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간병인 교체의 의미는 작지 않다. 아버지를 둘러싼 ‘인의 장막’을 재구성하려던 목적으로 풀이돼서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 측이 롯데그룹 공식 비서진의 접근을 차단한 채 신 명예회장을 에워싸고 있어 심각할 정도로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그레이(gray)라면 고(go)한다”

신동주 해임과 관련한 일본 법원의 판결문 분석을 통해 대체 롯데그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해 볼 차례다. 하나는 신동주가 일본 롯데 4개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1심 판결문(2018년 3월)이다. 다른 하나는 신동주가 대표이사로 재직했던 롯데서비스가 그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1심 판결문(2022년 4월)이다. 8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① 금단의 열매, 몰래카메라 도촬 사업 2011년 초 신동주는 돌연 신사업을 추진한다. 2010년 12월 사내벤처 아이템으로 검토되다 사업성이 부족하고 법적 리스크 우려도 있어 접었던 ‘풀리카(POOLIKA)’ 사업이다. 롯데서비스가 풀리카라는 외부 업체와 계약해 사업을 진행했다.

골자는 이렇다. 편의점, 양판점, 드럭스토어 등 소매 점포에서 수집한 영상 데이터를 마케팅용 정보로 가공해 제3의 회사에 판매한다. 즉 몰래카메라를 통한 도촬(도둑 촬영)을 전제로 한 사업이다. 2011년 1월 ㈜롯데(당시 롯데서비스의 모회사) 총무부 법무담당부장이자 사내벤처 심사위원이던 아키모토는 풀리카 사업이 무단 촬영을 하는 탓에 위법 소지가 있고 자칫 롯데그룹과 소매업자와의 신뢰를 파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홀딩스 총무담당부장이었던 노다는 아키모토와 롯데서비스 팀장 스도에게 풀리카 사업의 위법성 유무에 대해 법률의견서를 취득하라고 지시했다. 1월 11일 신동주는 스도에게 법률의견서를 빨리 받아보라고 말하는 동시에 이런 지시를 내린다. “그레이(gray)라면 고(go)한다.” 리스크 요인이 있어도 사업성이 높으면 추진하라는 뜻이었다.

판결문에는 당시 아키모토와 스도가 취득한 변호사 3명의 법률의견서가 등장한다. 그중 두 변호사의 의견서를 소개한다. 먼저 아키모토가 2011년 1월 21일 취득한 일본 롯데그룹 고문변호사인 오카다의 의견서다.

“명시적으로 촬영 금지 표시가 있는 소매 점포와 관련해 본 건 사업 진행하는 것은 민사, 형사 양쪽으로 법적 리스크가 높고, 명시적으로 촬영 금지 표시가 없는 소매 점포 경우라도 법적 리스크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음. 장래적으로 명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이후 법적 리스크를 충분히 고려해야 함.”

다음은 스도가 2011년 1월 13일 취득한 야마우치 변호사의 의견서다.

“소매 점포 내 상품 진열 상황 사진 촬영 및 메모를 하는 등의 행위는 점포 관리자의 명시적 승낙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목적상 정당한 것으로 사료. 그 수단도 상당성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촬영된 사진이나 메모 등의 자료에 대해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위법이 될 근거는 없음. 단 해당 행위를 금지한다는 취지가 소매 점포 내에 명시돼 있을 경우 점포 관리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하는 것으로 이는 위법. 특히 사진 촬영에 대해서는 점포 관리자가 촬영 금지를 명시하고 있을 시 위법이 될 경우가 있음.”

여기서 소개하지 못한 도요타 변호사의 의견서도 야마우치 변호사의 의견과 유사하다. 2011년 1월 세 변호사에게 의견서를 받은 후 쓰쿠다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 등이 반대 의사를 표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신동주가 쓰쿠다를 만난다.

“소매업자와 큰 트러블 생길 가능성 있다”

② 거짓말과 허위 보고로 시작된 신사업 판결문에는 2011년 6월 말 신동주와 쓰쿠다 간의 대화가 기록돼 있다.

신동주 : 본건 사업(풀리카)에 대해 진행하도록 하세요.

쓰쿠다 : 매출, 이익 모두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매업의 지식, 노하우를 무단으로 촬영, 분석, 판매하는 것은 소매업자와 큰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동주 : 상품 진열은 공지의 사실이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변호사에게 확인받았어요.

쓰쿠다 : 변호사 의견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롯데그룹과 연관이 있는 것을 소매업자가 알게 될 겁니다. 최종적으로 소매업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면 해당 사업을 진행해도 좋습니다.

아버지의 승인을 얻기 위해 진행된 2011년 10월 11일 회장회의에서도 풀리카 사업에 대한 거짓 보고는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스도(롯데서비스 팀장)와 신 명예회장 사이에 오간 대화다.

스도 : 풀리카 사업은 비주얼 데이터를 기계적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고, 해당 시스템을 판촉 관련 기업 및 조사 기업에 임대해 그 임대료 등을 매출로 하는 사업입니다.

신 명예회장 : 점포 조사에도 활용 가능한가?(*일반적인 시장조사에 활용이 가능한지 물었던 것으로 추정.)

스도 : 조사 회사 등이 활용하는 건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각 조사 회사가 독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며 시스템을 데이터 처리 기술로 사용하는 건 가능합니다. 본 사업은 점포 조사에 관여하지 않는 걸 전제로 합니다.

경영진은 신 명예회장 앞에서 장남의 신규 사업을 대놓고 반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에 따르면 회장회의 이후에도 신동주는 풀리카 사업을 통해 직접적으로 점포 조사에 관여할 일은 없다는 취지의 말을 지속했다. 그러니 법적 리스크가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허위 보고를 한 셈이다.

③ 꼬리에 꼬리를 무는 허위 보고 2011년 11월 7일 스도는 약 4억7000만 엔 상당의 품의서(稟議書)를 신청했다. 그 과정에서 ㈜롯데 아키모토 부장 등에게 점포 조사에 관여할 일은 없다는 취지로 재차 허위 보고를 했다. 그러자 11월 17일 회사 측이 스도에게 사업 계획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다. 스도는 보충 설명 자료를 통해 풀리카는 점포 조사에 관여하지 않고 점포 조사와 관련해 소비재 제조업체에 완전 데이터를 판매하는 것은 데이터 구입 기업(시장조사 회사)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신동주의 의지대로 일은 풀렸다. 2011년 12월 15일 롯데서비스가 풀리카와 개별 업무위탁 계약을 체결했다. 판결문에는 이날 스도의 행보가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사회에서의 대화다.

이사진 : 풀리카 사업의 위법성과 나아가 기업윤리 측면에서 문제가 없습니까?

스도 : 고객에게 제공받은 이미지를 해석하는 것뿐이며 스스로 점포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문제가 없고 기업윤리에도 반하지 않습니다.

이사회는 사업 시작 후 3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사업의 지속 여부를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날 스도는 신동주에게 e메일을 보냈다.

스도 : 부회장님 덕분에 무사히 사업 승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향후 부회장님의 생각을 기본으로 하여 사업을 구체화해 소비자 구매행동 분석에 대한 새로운 솔루션을 제안하는 비즈니스를 목표로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신동주 : 사업 목표 실현을 위해 열심히 해주세요.

가발에 부착하고 백팩에 장착하다?

④ 몰래카메라 사업 본격화 “롯데서비스와 풀리카는 점포 조사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무색해졌다. 준비 단계부터 점포 조사 회사 선정, 소매점 조사 스케줄, 비용 및 인력 검토 등의 논의가 본격화했다. 스도는 세부 사항을 신동주에게 e메일로 일일이 보고했다. 2012년 6월 8일에는 신동주에게 “풀리카 다카기 대표가 도촬용 카메라 제품 조사를 위해 한국으로 출장을 갑니다”라는 내용까지 상세히 알렸다.

판결문에는 신동주가 구체적 정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흔적이 드러난다. 2012년 7월 11일 풀리카 사업에 관해 신동주가 보고받는 자리가 있었다. 보고 자료에는 ‘촬영 디바이스의 방향성’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를 보면 △모자의 앞머리 부분에 숨겨서 장착하고 커버로 안 보이게 하는 구조 △안경 △머리띠 △남성 가발 등에 설치하는 구조가 소개된다.

그해 11월 1일 롯데서비스는 카메라 개발, 시제품 및 양산 등의 업무를 위탁하는 취지로 풀리카와 계약을 체결한다. 그로부터 열흘 뒤 신동주가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

스도 & 다카기 : 2012년 12월경부터 50개 점포 조사, 2013년 6월경부터 500개 점포 조사, 9월경부터 1000개 점포 사전 서비스, 10월경부터 3000개 점포 본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코스트 다운 관점에서 점포 조사는 KIC(*점포 조사 용역을 준 회사)로 정하겠습니다. 몰래카메라는 (기존 모자·안경·머리띠가발 외) 숄더백과 패션가발에 장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신동주 : 점포 내에서 촬영함에 있어서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되지 않도록 카메라 연사 속도를 ○초 내로 해라. 아웃풋 데이터는 지역별로 필요하다.

KIC는 2013년 1월 7일부터 50개 점포를 대상으로 조사를 개시했다. 소매 점포의 양해를 받지 않고 상품 진열대를 촬영했다. 그러자 명시적으로 사진 촬영을 금한 소매 점포에서 조사원이 쫓겨나는 상황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신동주는 농담조로 이렇게 말했다.

“점포 조사에서 잡히지 않도록 해. 드럭스토어는 가격 조사에 민감하니까. 코스모스나 세가미 같은 곳에는 경쟁사 점포 직원 출입을 사양한다고 붙어 있잖아. 그래도 (우리는) 경쟁 점포 사람은 아니니까 조사해도 돼.”

2013년 7월 1일, 신동주는 그해 9월부터 615개 점포, 12월부터 900개 점포, 2014년 1월부터 1000개 점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는 점포 조사를 위해 백팩에 카메라를 장착하는 방식이 추가로 소개됐다.

7개월 만에 예산 소진하다

⑤ 몰카 구입하고 실험하느라 예산 소진 사업을 시작한 지 7개월 만인 2013년 7월. 시스템과 촬영기기 개발 및 운용 실험 등으로 초기 예산 4억7000만 엔 대부분이 소진됐다. 스도는 7월 7일 3억5000만 엔의 추가 품의서를 올렸다. 결재 절차가 진행되기도 전에 이미 결재 인감란에 신동주가 날인한 상태였다. 첨부 자료에는 “신 전 부회장 지시 사항으로 투자금액 상세내용에 대해 각 담당으로부터 사전 확인을 완료했고 신청 내용에 문제가 없으므로 승인한다”고 적혀 있었다. 결재 과정에 무언의 압력을 가한 셈이다.

실적은 초라했다. 풀리카 사업이 종료 때까지 고객사는 2014년 3월 몬데리즈 재팬(560만 엔 규모), 같은 해 8월 코카콜라(450만 엔 규모)에 불과했다. 신동주는 롯데상사에 고가로 데이터를 판매해 사업 자금을 확보하기로 한다. 그해 5월 2일 롯데상사가 풀리카로부터 데이터를 4400만 엔에 구입한다는 품의서가 기안됐다. 롯데상사 고초 이사는 곧바로 결재하지 않았다. 대신 ㈜롯데 아키모토 부장 동석하에 스도에게 점포 영상 취득과 관련한 소매업체와의 계약서 등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한 달 여 뒤인 6월 2일 스도는 신동주에게 “데이터 취득은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매장 정보 취득 내용은 비밀이라는 점을 풀리카가 (롯데상사 고초 이사에게) 답변토록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

6월 11일 롯데상사는 스도에게 소매업자와의 계약을 통해 점포 촬영을 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서면을 요청했다. 6월 24일 스도는 개인 점포 정보를 일절 알 수 없게 한다는 조건하에 특별히 허락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거짓 답변을 했다. 그 후 계약 규모가 줄어든 품의서가 다시 기안됐으나, 최종적으로는 롯데상사와 풀리카 사이의 계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⑥ 창업주 장남에 대한 감사 착수 결과적으로 이 사업은 약 2년 9개월 만에 초기 예산(4억7000만 엔)과 추가 예산(3억5000만 엔)을 모두 소진하고 말았다. 이 기간에 거둔 매출액은 약 1000만 엔에 불과했다. 1000여 개 소매 점포를 대상으로 점포 조사를 벌인 점을 통해 추정해 보면, 8억 엔이 넘는 예산 대부분은 몰래카메라 구입, 실험, 점포 도촬 인건비, 시스템 구입 등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 9월 18일. 신동주와 롯데홀딩스 고바야시 전무, ㈜롯데 아키모토 부장, 롯데서비스 스도 팀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스도는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3억8000만 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참석자들은 풀리카가 진행 중인 사업을 (롯데그룹이) 인수할 때까지 채권채무를 풀리카가 부담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결국 롯데그룹이 사업을 인계받지 않으면서 풀리카 사업도 막을 내렸다. 곧 감사가 시작됐다. 2014년 11월 19일 롯데홀딩스 이사회에서 풀리카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가 보고됐다. 이 자리에서 오간 대화다.

참석자 : 풀리카 사업 진행 과정에서 지불 청구에 대해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지불했다고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쓰쿠다 : 풀리카와의 관계를 해소하는 교섭을 위한 대응팀을 꾸려야 합니다. (풀리카 사업은) 거버넌스상 큰 문제가 있습니다. 권한 규정 재검토 등 대응책을 강구하기 위해 관계 부서와 협의해야 합니다.

감사 : 본 사업의 실무담당자인 스도에게 책임이 없다고 하기엔 어려운 경위가 있기 때문에 처분이 검토돼야 합니다.

고바야시 : 지금까지 결재 권한에는 신규 사업에 대한 명확한 룰이 없어서 향후 신규 사업에 대한 새로운 룰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신동주 : 회사의 양해를 받아 시작한 신규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무담당자를 처분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고바야시 : 신규 사업을 진행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정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대응을 한 것이 확인된 경우 처분하겠습니다.

‘e메일 무단 열람’의 전말

⑦ 3년간 임직원 e메일 몰래 받아보다 이른바 ‘e메일 무단 열람’도 신동주가 직접 연루된 스캔들이다. 그는 풀리카 사업이 시작될 즈음인 2011년 10월부터 사업 종료 후 감사가 진행된 시점인 2014년 12월까지 롯데그룹 임직원 등의 e메일을 30건 이상 전송받았다. 신동주의 대학 동창이 대표로 있는 ICL이 롯데그룹과 e메일 시스템 위탁계약을 하고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신동주 측 변론과 재판부의 판단을 대화체로 구성했다.

신동주 : e메일이 어떤 목적에서 어떤 방법으로 본인에게 전송되고 있는지 몰랐다. 본인 해임이 거론되는 시점에 긴급피난적 정당방위 차원에서 ICL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만 했을 뿐 직접적으로 임직원 e메일을 전송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의뢰한 것이 아니다.

재판부 : 신동주는 e메일이 전송되고 있는 사실을 인식하고도 (ICL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뭔가 있으면 알려달라고까지 말한 것으로 볼 때 신동주의 지시 또는 요청을 받아 전송됐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신동주가 e메일 정보를 취득한 것은 임직원과의 신뢰 관계를 현저하게 파괴하는 것이며, 3년여 장기간에 걸쳐 롯데그룹 전사를 부정하게 접속하고 정보누설 위험에 노출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메일 부정 취득이라는 부정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신동주는 직무상 부정행위를 한 것 또는 경영자로서 부적격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⑧ 윤리 문제 거론한 日 법원 일본 롯데그룹 경영진은 2014년 11월에서 12월 사이 풀리카 사업에 대한 감사 자료를 신격호 명예회장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신동주는 2014년 12월~2015년 1월 사이 롯데홀딩스롯데서비스㈜롯데롯데상사 이사직에서 해임됐는데, 그 여파로 보인다.

앞서 썼듯 신동주는 자신을 해임한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판결문이 나오면서 그의 해임 사유가 대외에 알려지게 됐다. 이보다 더 희극적인 악수(惡手)가 있을까.

2018년 3월 도쿄지방법원은 판결문에서 풀리카 사업에 대해 “해당 행위는 경영자로서의 적격성에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해임의 정당한 이유와 근거가 된다”고 명시했다. 또 “본건 사업 실시에 수반되는 소매 점포에 대한 무단 촬영 목적의 출입이 민·형사상 위법이라 판단되어, 적어도 원고가 민사상 불법행위 등의 책임을 질 리스크 그리고 해당사업과 신동주의 관계가 밝혀졌을 경우 신동주 뿐만 아니라 롯데그룹 전체 평판을 훼손시킬 리스크가 있었다”라고 판단했다. 임직원들의 e메일 정보를 부당하게 취득한 점도 인정된다면서 “준법 의식이 현저히 결여됐다”고 했다. 또 2022년 4월 도쿄지방법원은 풀리카 사업에 대한 판단 과정상의 책임을 묻고 신동주에게 약 4억 8000만 엔을 롯데서비스 측에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롯데그룹의 한 임원은 “신 전 부회장은 경영자로서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고 리더십 면에서도 임직원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며 “특히 준법경영 기준을 위반하고 임직원들의 e메일을 몰래 훔쳐본 부도덕 행위까지 드러나 해임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임직원 e메일 정보를 부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행위는 회사 정보 시스템을 외부 위험에 노출되도록 한 것으로 윤리 의식이 상당히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얄궂은 신동빈의 운명

신격호 명예회장이 별세한 지 4개월여가 지난 2020년 5월 말. 신 명예회장의 도쿄 집무실 금고에서 ‘유언장’이라고 쓰인 봉투가 나왔다. 유언장은 6월 11일 도쿄 가정재판소 가사 제3부에서 신 명예회장 상속인들의 법정대리인 입회 아래 개봉됐다. 작성일은 2000년 3월 4일이었다. 거기에는 “롯데그룹 후계자는 신동빈으로 한다. 신동주와 가족들은 경영에 참여하지 말고 그룹 발전을 위해 협력해 달라”고 적혀 있었다.

신 명예회장은 이 내용을 한국어일본어영어 등 3개 언어로 작성해 날인한 후 집무실 금고에 고이 넣었다. 시대를 풍미한 거인은 세상을 떠나기 20년 전에 ‘분란의 미래’를 내다보기라고 한 듯 서둘러 후계를 정해 놓았다.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장남이 협력하는 일은 없었다. 최고경영자로서 전성기가 될 법했던 시기를 허비해 버린 차남 신동빈의 운명이 새삼 얄궂다.

2015년 10월 16일 당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왼쪽)의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이 공개됐다.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서 있는 사람)과 민유성 KDB산업은행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오른쪽)이 배석했다. [동아DB]

2015년 10월 16일 당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왼쪽)의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이 공개됐다.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서 있는 사람)과 민유성 KDB산업은행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오른쪽)이 배석했다. [동아DB]

한 전직 국책은행장의 말로
한국산업은행(KDB산업은행)의 역대 행장 중 가장 논란이 큰 인물이 민유성 전 행장이다. 그는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변호사 자격 없이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법률 사무업무를 수행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12월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는 신 전 부회장으로부터 약 200억 원의 자문료를 받았다. 그러고도 100억 원을 더 달라는 취지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재판부가 두 사람 간 계약이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판단하면서 검찰 수사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신 전 부회장과 민 전 행장이 체결한 ‘프로젝트L’의 실체가 공개됐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취득 방해 △호텔롯데 상장 무산 등으로 롯데그룹에 위기 상황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 롯데그룹은 2016년 6월 검찰 수사를 받고 호텔롯데 상장을 철회했다. 예정돼 있던 국내외 투자 및 인수합병(M&A)건이 모두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2017년 7월 감사원 감사 결과, 2015년 11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취득했어야 할 특허권이 관세청의 점수 조작에 의해 타 기업에 간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직원 1300명이 졸지에 일터를 잃게 돼 사회문제로 부상한 바 있다.

그러자 롯데 호텔·면세점·월드·마트 노조위원장들이 민 전 행장을 알선수재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2019년 6월, 2020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고발했다. 고발인들은 민 전 행장이 롯데면세점 특허권 취득을 방해하기 위해 면세점 사업자 심사를 하는 관세청 보세판매장 특허심사위원들을 대상으로 불리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전개했을 개연성이 있고, 이에 대한 자문료나 성공보수를 약정한 만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자문료 분쟁 재판에서 대법원은 계약 자체가 변호사법 위반이라 무효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민사소송에서 변호사법 위반이 적시된 터라 향후 진행될 형사재판에서도 민 전 행장의 입지는 좁아 보인다.



신동아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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